쇼팽의 선율 위에 피어나는 사랑과 비극…국립발레단 ‘카멜리아 레이디’
- 존 노이마이어의 드라마 발레, 11월 10~1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 한나래·곽동현의 깊어진 호흡부터 알리나 코조카루·양준영의 첫 만남까지 3색 캐스팅
쇼팽의 서정적인 선율 위에 한 여인의 사랑과 희생, 그리고 비극적인 운명이 펼쳐진다.
[시사매거진 강창호 기자] 국립발레단이 오는 11월 10일부터 15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존 노이마이어의 드라마 발레 <카멜리아 레이디>를 선보인다.
2025년 아시아 최초로 국립발레단이 초연한 <카멜리아 레이디>는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소설 『춘희』를 바탕으로 1978년 존 노이마이어가 창작한 작품이다. 파리 사교계의 화려한 삶을 살아가는 코르티잔 마르그리트와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청년 아르망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과 희생, 오해와 상실을 그린다. 쇼팽의 피아노 작품을 중심으로 한 음악과 치밀하게 구성된 극적 서사,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풀어내는 안무가 어우러져 드라마 발레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이번 공연의 관전 포인트는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세 가지 캐스팅이다. 초연에서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밀도 높은 파트너십으로 호평받은 한나래·곽동현 커플은 한층 깊어진 감정 표현으로 다시 무대에 오른다. 초연 당시 아르망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변성완은 이번에 새롭게 마르그리트 역을 맡은 정은지와 호흡을 맞춘다. 여기에 세계적인 발레리나 알리나 코조카루와 국립발레단의 차세대 무용수 양준영이 처음으로 파트너를 이뤄 새로운 무대를 완성한다.
작품은 마르그리트가 세상을 떠난 뒤 그녀의 저택에서 유품 경매가 진행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르망은 경매장에 들어와 마르그리트의 물건들을 바라보다 지난 사랑을 떠올린다. 현재와 과거, 아르망의 회상과 마르그리트의 일기장이 교차하는 플래시백 기법은 두 사람의 만남부터 이별,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까지를 입체적으로 펼쳐낸다.
노이마이어는 원작 『춘희』에 소설 『마농 레스코』의 이야기를 겹쳐 작품의 서사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 극중극으로 등장하는 발레 <마농 레스코>의 주인공 마농은 사랑과 사치 사이에서 갈등하다 비극적인 운명을 맞는 인물이다. 마르그리트는 무대 위 마농에게서 자신의 삶을 발견하고, 마농의 환영은 작품 곳곳에서 그녀의 내면과 운명을 비추는 거울처럼 등장한다. 두 여인의 삶을 교차시키는 이 장치는 마르그리트가 선택해야 했던 사랑과 희생의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작품의 음악적·안무적 정점은 세 차례에 걸쳐 등장하는 파드되(Pas de deux)다. 마르그리트가 입은 드레스 색에 따라 퍼플, 화이트, 블랙으로 구분되는 세 장면은 사랑의 시작과 행복의 절정, 그리고 이별 이후의 절망과 애증을 각각 상징한다.
첫 번째 퍼플 파드되는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을 배경으로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그린다. 아르망의 진심 어린 고백과 마르그리트의 마음이 움직이는 과정이 부드럽고 서정적인 선율 위에 펼쳐진다. 고난도의 리프트와 섬세한 동선은 망설임과 열정이 교차하는 두 사람의 감정을 역동적으로 표현한다.
두 번째 화이트 파드되는 ‘피아노 소나타 3번 3악장(Largo)’에 맞춰 시골 별장에서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의 행복한 시간을 담는다. 화려한 사교계에서 벗어나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순간이다. 첫 번째 파드되가 사랑의 시작을 향한 설렘을 보여준다면, 화이트 파드되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연인의 평온함과 애틋함을 섬세한 움직임으로 그려낸다.
마지막 블랙 파드되는 쇼팽의 ‘발라드 1번’과 함께 비극적인 사랑의 정점으로 향한다. 오해와 질투, 배신감으로 멀어졌던 두 사람이 다시 마주하며 서로를 향한 사랑과 원망을 쏟아낸다. 격렬하고 드라마틱한 안무와 몰아치는 음악은 끝내 끊어내지 못하는 두 사람의 감정을 폭발시키며 작품의 비극성을 극대화한다.
세 파드되는 각기 다른 색채와 음악, 움직임을 통해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의 사랑이 지나온 궤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쇼팽의 선율이 인물의 감정과 맞물리고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그 내면을 드러내는 순간, 작품은 한 편의 문학 작품을 무대 위에 옮겨놓은 듯한 깊이를 만들어낸다.
이번 시즌 세 커플은 각기 다른 해석과 파트너십으로 작품에 새로운 색을 입힌다. 먼저 한나래와 곽동현은 11월 12일과 14일 무대에 오른다. 2025년 초연에서 단단하면서도 섬세한 호흡으로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의 감정 교류를 그려낸 두 사람은 이번 공연에서 더욱 성숙해진 표현력으로 사랑과 이별의 서사를 풀어낸다. 우아한 움직임 속에 쌓아 올린 밀도 높은 감정 연기가 두 사람의 관계를 한층 깊이 있게 전달할 것으로 기대된다.
알리나 코조카루와 양준영은 11월 10일과 13일, 15일 공연에서 만난다. 국립발레단이 객원 주역으로 초청한 알리나 코조카루는 세계 무대에서 독보적인 표현력을 인정받아 온 발레리나다. 2022년 내한 갈라 이후 오랜만에 한국 관객과 만나며, 국내에서 전막 발레의 주역으로 무대에 오르는 것은 물론 국립발레단과의 첫 협업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상대역 아르망을 맡은 양준영에게도 이번 공연은 특별하다. 지난해 초연 당시 연습 중 부상으로 무대에 서지 못했던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번에 첫 주역 데뷔에 도전한다. 세계적인 발레리나의 깊이 있는 표현력과 차세대 무용수의 새로운 에너지가 만나 어떤 무대적 시너지를 만들어낼지 관심을 모은다.
정은지와 변성완은 11월 11일과 14일 공연을 책임진다. 초연에서 아르망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변성완과 새롭게 마르그리트 역에 합류한 정은지의 조합이다. 특히 정은지는 존 노이마이어가 연습 영상만으로 직접 캐스팅을 확정한 이례적인 사례로 주목받는다.
작품의 안무 지도를 위해 내한한 야누스 마존이 전달한 연습 영상을 본 노이마이어가 정은지의 기량과 배역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 평가해 캐스팅을 결정했다. 정은지의 섬세한 인물 해석과 변성완의 탄탄한 테크닉, 강렬한 감정 연기가 만나 새로운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을 그려낼 예정이다.
초연의 완성도를 이어가기 위한 안무 지도진의 참여도 눈길을 끈다. 존 노이마이어의 작품을 오랜 시간 경험해 온 야누스 마존과 마레인 라데마커가 다시 한국을 찾아 무용수들의 연습을 이끈다. 야누스 마존은 함부르크 발레단 퍼스트 솔리스트 출신으로 현재 함부르크 발레학교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마레인 라데마커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으로, 2006년 <카멜리아 레이디>에서 아르망 역을 성공적으로 소화한 직후 수석무용수로 승급한 이력을 지녔다.
두 지도자는 노이마이어 특유의 섬세한 움직임과 극적 구성, 인물의 감정을 몸으로 전달하는 연기까지 작품 전반을 지도한다. 초연을 경험한 무용수들에게는 더욱 깊어진 해석을, 새로운 주역들에게는 작품의 본질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인물을 완성할 기회를 제공한다.
1년 만에 다시 돌아오는 국립발레단의 <카멜리아 레이디>는 초연의 성과 위에 깊어진 파트너십과 새로운 캐스팅을 더해 작품의 감동을 확장한다. 퍼플에서 화이트, 블랙으로 이어지는 사랑의 세 장면과 쇼팽의 음악이 빚어내는 비극적 서사. 서로 다른 세 커플이 그려낼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의 이야기는 같은 작품 안에서도 저마다 다른 사랑의 얼굴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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