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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4부작 대장정 시작

10월 29일~11월 1일 예술의전당서 ‘라인의 황금’ 공연...2029년까지 이어지는 링사이클 프로젝트의 서막

‘라인의 황금’을 시작으로 바그너의 링사이클 4부작을 단계적으로 선보이는 장기 프로젝트. 신화와 인간 심리, 권력과 욕망을 아우르는 바그너의 대작을 국내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할지 주목된다.

바그너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중 '라인의황금' (포스터_국랍오페라단)
바그너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중 '라인의황금' (포스터_국랍오페라단)

[시사매거진 강창호 기자] 국립오페라단이 리하르트 바그너의 대작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을 향한 장기 프로젝트의 첫 무대를 선보인다. 출발점은 ‘라인의 황금’이다. 사랑과 권력, 탐욕과 저주의 기원을 다룬 이 작품을 통해 2029년까지 이어질 링사이클 대장정의 막을 올린다.

‘라인의 황금’은 바그너가 약 26년에 걸쳐 완성한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의 첫 작품이다. 라인강의 황금을 둘러싼 신과 거인, 난쟁이들의 갈등을 통해 권력과 소유에 대한 욕망이 어떻게 세계의 질서를 무너뜨리는지 그린다. 이후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 사상과 인물 간 갈등이 처음 제시된다는 점에서 링사이클의 방향을 이해하는 핵심 작품으로 꼽힌다.

라인의 황금 무대(사진_국립오페라단)
라인의 황금 무대(사진_국립오페라단)

공연은 10월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다. 지휘는 2024년 국립오페라단 ‘죽음의 도시’에서 밀도 있는 해석을 선보인 로타 쾨닉스가 맡는다. 바그너 음악 특유의 구조적 긴장과 에너지를 살려 작품의 극적인 흐름을 이끈다. 연출은 2025년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에서 유연한 상상력과 동시대적 감각을 보여준 로렌조 피오로니가 담당한다.

이번 연출은 신화적 서사를 오늘날의 현실과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피오로니는 연출가의 글에서 ‘라인의 황금’을 부동산과 계약, 노동 착취, 사회적 야망, 젊음에 대한 집착, 소유의 문제 등 현대 사회에서도 반복되는 욕망을 다루는 작품으로 해석한다. 신과 거인, 난쟁이들이 등장하는 신화적 세계를 과거의 이야기로 한정하지 않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권력 구조와 인간관계를 비추는 거울로 바라본다.

이러한 시각은 작품의 중심인물인 보탄과 알베리히를 바라보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신들의 왕 보탄은 웅장한 발할라 성을 짓기 위해 거인들에게 공사를 맡기지만,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권력을 유지하려는 보탄과 황금을 통해 권력을 얻으려는 알베리히는 서로 다른 위치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을 수단으로 삼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연출은 두 인물을 선과 악의 대립으로만 구분하지 않고, 권력을 좇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폭력과 모순을 함께 조명한다.

라인의 황금 무대(사진_국립오페라단)
라인의 황금 무대(사진_국립오페라단)

무대에서는 라이브 카메라와 영상도 주요한 연극적 장치로 활용된다. 카메라가 인물의 신체를 확대해 내면의 풍경을 드러내는 한편, 무대 위 모습과 스크린에 비친 이미지를 대비해 인물과 권력의 관계를 다각도로 보여준다. 특히 알베리히가 황금을 얻은 뒤 펼쳐지는 니벨하임 장면은 지하 세계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자와 상품, 포장재와 쓰레기가 거대한 도시로 증식하는 이미지로 구성된다. 이를 통해 물질과 소유를 향한 욕망이 만들어내는 세계를 시각화한다.

작품의 줄거리는 라인강 깊은 곳에서 황금을 지키는 세 처녀로부터 시작된다. 난쟁이 알베리히는 처녀들에게 구애하지만 조롱당하자 사랑을 저주하고 황금을 훔쳐 반지를 만든다. 한편 발할라 성의 대가로 젊음의 여신 프라이아를 약속했던 보탄은 신들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알베리히의 반지를 빼앗는다. 그러나 반지에는 저주가 깃들고, 이를 차지하려는 자들 사이에서 탐욕과 배신이 이어진다. 결국 거인 형제 파프너와 파솔트의 갈등으로 비극이 벌어지고, 신들은 그 위에 세워진 발할라 성으로 들어선다.

피오로니는 결말 역시 신들의 승리를 축하하는 장면이 아니라, 라인의 처녀들을 애도하는 장례식으로 구상한다. 권력자들의 엄숙하고 화려한 행렬 뒤에 그들이 만들어낸 세계의 잔해를 배치해 승리의 이면에 놓인 희생을 드러낸다. 황금을 차지한 이들이 승리를 확신하는 순간에도 그 대가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국립오페라단의 이번 공연은 ‘라인의 황금’을 시작으로 바그너의 링사이클 4부작을 단계적으로 선보이는 장기 프로젝트다. 신화와 인간 심리, 권력과 욕망을 아우르는 바그너의 대작을 국내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할지 주목된다. 황금을 차지하려는 욕망에서 시작된 균열이 이후 네 작품을 거치며 어떤 비극으로 확장될지, 이번 공연은 그 거대한 서사의 첫 장을 연다.

라인의 황금 무대(사진_국립오페라단)
라인의 황금 무대(사진_국립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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