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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면제 각서 믿었는데… 새 건물주의 명도소송은

-전 건물주의 면제 각서, 새 주인에게도 통할까 -대법원, 차임 변경의 공시 여부 확인해야 -연체액과 해지 요건 따져 명도청구 준비

(사진제공 =  엄정숙 부동산전문 변호사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사진제공 = 엄정숙 부동산전문 변호사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시사매거진 = 주성진 기자] 전 건물주가 월세를 받지 않겠다고 써 준 각서가 있다면 새 건물주의 명도소송도 막을 수 있을까. 상가를 매수한 사람이 월세를 청구할 때는 면제 약정의 존재뿐 아니라 그 약정이 새 소유자에게도 효력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차임을 낼 의무가 있는지에 따라 연체액과 계약해지 여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법도종합법률사무소 엄정숙 변호사는 6일 "전 임대인과 합의한 내용이 모두 새 건물주에게 그대로 적용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각서가 어떤 채무를 정산하기 위한 것인지, 임대차조건 자체를 바꾼 것인지와 그 변경 내용이 공시됐는지를 나눠 살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2026년 6월 25일 선고한 2026다201494 판결에서 종전 임대인과의 차임 면제 약정을 건물 양수인에게 주장할 수 있는지가 문제 된 임료 사건을 심리했다. 공장을 빌린 임차인은 전 소유자가 작성한 각서들을 근거로 월세가 면제됐다고 주장했고, 경매로 건물을 취득한 새 소유자는 차임을 청구했다.

각서에는 전 소유자가 임차인에게 지급할 기계 대금과 월세를 정산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원심은 이 약정으로 임대차계약 내용이 차임을 면제하는 것으로 변경됐으므로,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한 새 소유자에게도 임차인이 면제를 주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임차인에게 유리하게 임대차계약이 변경됐더라도 사업자등록 정정신고를 통해 상가건물 임대차 현황서에 그 내용이 기재되는 등으로 공시되지 않았다면, 임차인은 그 변경으로 새 소유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는 취지다.

판단의 출발점은 사업자등록의 공시 기능이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1항은 건물 인도와 사업자등록을 대항력의 요건으로 정한다. 대법원은 사업자등록이 임대차의 존재와 내용을 제3자가 알 수 있도록 하는 공시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당사자끼리 작성한 서류가 있다는 사정과 제3자에게 그 내용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결론은 구별된다.

같은 법 제4조 제3항에 따라 상가건물 임대차에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은 관할 세무서장에게 확정일자 부여일, 차임과 보증금 등의 정보 제공을 요청할 수 있다. 법령상 요청 자격과 절차를 확인해 임대차 현황서를 확보하고, 계약서·각서에 적힌 차임과 실제 공시된 내용이 일치하는지 대조할 필요가 있다.

각서의 문구를 해석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대법원은 이 사건의 각서 하나에 대해, 서로 다른 계약에서 생긴 차임채권과 기계 매매대금채권을 대등한 금액 범위에서 소멸시키기로 한 약정에 불과하고 임대차계약 내용 자체를 바꾼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돈을 받지 않기로 했다는 표현만으로 언제나 차임 면제의 계약 변경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차이는 건물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때 드러난다. 전 소유자에게 받을 개인적인 채권을 월세와 정산하기로 한 것인지, 앞으로의 차임 자체를 면제하기로 한 것인지에 따라 검토할 법률관계가 달라진다. 각서 제목보다 작성 경위, 적용 기간, 채권의 당사자와 정산 방식 등 실제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

다만 이 판결을 새 건물주가 곧바로 임차인을 내보낼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대법원이 판단한 사건은 건물 인도 자체가 아니라 차임 지급을 둘러싼 분쟁이다. 원심을 파기환송한 판결이라는 점도 구분해야 한다. 면제 약정의 대항력이 부정된다는 이유만으로 명도청구의 모든 요건이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차임 연체를 이유로 상가 명도소송을 준비한다면 실제 지급의무가 있는 차임과 납부 내역부터 계산해야 한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10조의8은 차임연체액이 3기의 차임액에 달하는 때 임대인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정한다. 연체 횟수만 셀 것이 아니라 지급기일별 미지급액과 정산·면제 약정의 적용 범위를 대조할 필요가 있다.

연체만으로 계약이 자동 종료되는 것도 아니다. 해지권의 발생과 행사, 해지 의사표시의 효력 발생을 구별해야 한다. 민법 제111조 제1항에 따라 상대방이 있는 의사표시는 도달한 때 효력이 생긴다. 해지 사유가 성립하는지와 의사가 적법하게 도달했는지를 확인하고, 그에 맞춰 건물 인도청구의 근거를 정리해야 한다.

엄 변호사는 "임대차계약서와 면제 각서만 보지 말고 사업자등록 정정 내역, 임대차 현황서, 차임 지급 자료를 함께 대조해야 한다. 새 건물주는 자신에게 주장할 수 있는 약정인지부터 확인하고, 임차인은 면제 합의만 믿고 지급을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 실제 연체액과 해지 요건을 검토한 뒤 명도 여부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조언했다.

글)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엄정숙 부동산전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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