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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작곡가 김지호, “기억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죠”

- 경기민요 ‘이별가’와 진도씻김굿의 장단으로 빚어낸 국악관현악 ‘기억의 노래’ - 청주시립국악단 with 아창제, 청주아트홀 11월 5일

작곡가 김지호(사진_ARKO)
작곡가 김지호(사진_ARKO)

[시사매거진 강창호 기자] 누군가를 떠나보낸 뒤에도 기억의 잔상은 오래토록 남는다. 함께했던 순간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리움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오늘을 살아갈 힘이 되기도 한다. 작곡가 김지호는 이러한 기억의 의미를 국악관현악으로 풀어냈다. 경기민요 ‘이별가’의 애절한 선율과 진도씻김굿의 장단을 바탕으로 한 작품 <기억의 노래>다.

이 작품은 2025년 국립국악관현악단 ‘2025 작곡가 프로젝트’에서 초연된 뒤 제17회 ARKO한국창작음악제(아창제) 국악부문에 선정됐다. 오는 11월 5일 오후 7시 30분 청주아트홀에서 열리는 ‘청주시립국악단 with 아창제’를 통해 다시 관객과 만난다. 김원선의 지휘 아래 청주시립국악단이 연주하며, 가야금 문양숙과 대금 김정승, 소리 서진실·홍준표, 청주시립합창단이 협연자로 함께한다. 이날 공연에서는 김지호를 비롯해 손다혜, 임희선, 이고운, 이정호의 창작관현악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재연은 작품이 새로운 연주단체와 관객을 만나며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내는지 살펴볼 기회다. 창작곡이 초연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무대에서 연주되며 레퍼토리로 자리 잡도록 지원하는 ‘with 아창제’의 취지와도 맞닿아 있다.

김지호에게 ‘기억의 노래’는 이별의 감정을 음악으로 재현하는 데서 출발해 각자의 기억을 돌아보고 서로를 위로하는 공간으로 확장된 작품이다. 서로 다른 전통음악의 요소를 어떻게 하나의 음악적 흐름으로 엮었는지, 초연 이후 재연을 앞둔 소회는 어떤지, 창작음악의 지속적인 연주가 작곡가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작곡가 김지호 '기억의 노래' (사진_ARKO)
작곡가 김지호 '기억의 노래' (사진_ARKO)

기억에서 출발해 위로에 이르는 음악

‘기억의 노래’를 구상한 출발점은 소중한 존재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김지호는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떠나보내기도 하고,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잊히지 않는 순간과 사람들이 남는다고 말한다. 그에게 기억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나 상실감에 머무르지 않는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생각을 음악으로 풀어내기 위해 주목한 것은 경기민요 ‘이별가’와 진도씻김굿이었다. ‘이별가’의 애절하면서도 담담한 선율, 진도씻김굿의 역동적인 장단과 의식적인 울림에는 이별의 슬픔뿐 아니라 그것을 마주하고 견뎌 내는 마음도 담겨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김지호는 “특정한 이별의 감정을 재현하기보다 각자가 간직한 기억과 추억을 돌아보고 서로의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서로 다른 음악적 성격을 지닌 두 전통음악을 국악관현악 안에서 연결하는 과정에서는 각 요소가 하나의 흐름 안에서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별가’의 서정성과 진도씻김굿 장단의 역동성을 대비시키면서도, 두 요소가 이별과 기억을 마주하는 마음에서 만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음색과 밀도의 변화를 활용했다. 장단의 역동성을 통해 감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선율과 음향을 절제해 내면의 감정에 집중하도록 하는 부분도 마련했다. 하나의 정서에 머무르지 않고 음악이 진행되면서 감정의 결이 변화하고 확장되는 과정에 주목한 것이다.

김지호는 전통음악의 고유한 힘을 살리는 동시에 오늘날의 관객이 자신의 경험과 감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자 했다. 작품해설에서도 ‘기억의 노래’는 가까운 지인부터 역사의 무게를 짊어진 인물,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낯선 이까지 기억하고 싶은 모든 존재를 향한 음악으로 소개된다. 작품이 특정한 대상이나 사건에 한정되지 않는 이유다.

“누구든 기억하고 싶은 존재 앞에서 느끼는 감정에는 서로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객들이 작품을 들으며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사람과 순간을 떠올렸으면 합니다. 각자의 기억이 음악을 통해 서로 다른 감정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경험으로 확장된다면 더욱 뜻깊을 것 같습니다.”

작곡가 김지호 '기억의 노래' (사진_ARKO)
작곡가 김지호 '기억의 노래' (사진_ARKO)

초연을 넘어 새로운 연주자와 만나다

2025년 제17회 아창제 초연 당시 김지호가 집중한 것은 자신이 구상한 음악적 생각과 정서를 무대 위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였다. 이후 작품이 새로운 연주단체와 관객을 만날 기회를 얻으면서 재연의 의미도 한층 깊어졌다.

김지호는 작품이 작곡가의 의도에서 출발하더라도 연주자들의 해석과 관객의 경험을 만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한다. 특히 각자의 기억과 연결될 수 있도록 열어 둔 <기억의 노래>는 연주 환경과 관객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다가갈 수 있다.

그에게 재연은 새로운 연주자와 관객을 통해 작품이 새롭게 해석되고 확장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11월 청주시립국악단의 연주 역시 작품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같은 악보라도 연주자와 단체에 따라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과 표현 방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차이가 작품에 새로운 생명력을 더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청주시립국악단의 연주에서도 단체 고유의 음악적 색채와 호흡을 통해 작품의 또 다른 면모가 드러나기를 기대합니다.”

이러한 기대는 창작음악이 무대에 오르는 방식에 관한 고민으로도 이어진다. 작품을 발표하는 일만큼이나 이후 어떤 연주자와 만나고, 어떤 무대에서 다시 연주되며,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창제가 창작관현악 작품의 발표를 지원하는 데서 나아가 재연과 레퍼토리화를 모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22년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with 아창제’를 시작으로 이어져 온 이 사업은 아창제 선정작을 지역 연주단체와 연결해 새로운 무대에서 소개하는 데 목적을 둔다. 이번 청주시립국악단 공연 역시 작품이 일회성 연주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연주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연주될 가능성을 넓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지호는 “창작곡이 초연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무대에 오르려면 작품을 연주하는 단체와 연주자, 그리고 관객을 만날 기회가 필요하다”며 “재연을 통해 작품의 또 다른 면모가 발견되고 연주 레퍼토리로 자리 잡는다면 창작음악의 생명력도 더욱 길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5 작곡가 프로젝트, 제17회 ARKO한국창작음악제(아창제)에서 작곡가 김지호(사진_ARKO)
2025 작곡가 프로젝트, 제17회 ARKO한국창작음악제(아창제)에서 작곡가 김지호(사진_ARKO)

서양음악 작곡에서 국악작곡으로

 김지호가 처음부터 국악작곡을 공부했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서양음악 작곡을 공부했고, 대학 입시도 같은 전공으로 치렀다. 대학에서 스승인 김성국 교수를 만나면서 음악적 방향을 바꾸는 계기를 맞았다.

교수의 작품과 가르침을 접하며 국악관현악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국악기가 서양악기를 대체하는 수단이 아니라, 고유한 음향과 표현력을 지닌 독립적인 음악적 매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개별 악기의 음색을 활용하는 차원을 넘어 악기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하나의 음악적 구조를 만들어 가는 방식에서 국악관현악만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 경험은 작곡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전통음악의 고유한 특성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 악기와 편성이 지닌 가능성을 작품의 음악적 언어로 발전시키는 일이 그의 창작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김지호는 동시대 국악 창작이 전통을 보존하거나 현대적인 방식으로 변형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통 안에 담긴 음악적 가치와 표현의 가능성을 오늘의 관점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전통음악에는 오랜 시간 축적된 음악적 어법과 미학뿐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감정, 공동체의 경험이 담겨 있다. 이를 깊이 이해하고 창작의 출발점으로 삼을 때 동시대 관객과도 진정성 있게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특정한 양식이나 표현에 머무르기보다 작품마다 주제에 적합한 음악적 언어와 형식을 찾아갈 계획이다. 전통음악의 고유한 어법과 음향을 깊이 탐구하면서 다양한 편성과 장르를 통해 새로운 표현 가능성을 모색하고, 자신만의 음악적 세계를 확장해 나가고자 한다.

2025 작곡가 프로젝트, 제17회 ARKO한국창작음악제(아창제)에서 작곡가 김지호(왼쪽) (사진_ARKO)
2025 작곡가 프로젝트, 제17회 ARKO한국창작음악제(아창제)에서 작곡가 김지호(왼쪽) (사진_ARKO)

작품이 새로운 무대를 만날 때

김지호는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에서 국악작곡을 전공해 학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동 대학원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제38회 해외파견콩쿠르 작곡부문 1위와 제51회 서울창작음악제 우수작품상을 수상했으며, 국립국악관현악단·국립창극단·서울시국악관현악단·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등 국내 주요 예술단체와 협업해 작·편곡과 작품 발표를 이어 왔다. 현재 전통문화예술단체 ‘지지대악’과 창작음악앙상블 ‘하날’에서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기억의 노래>가 이번 청주시립국악단의 연주를 통해 어떤 울림을 전할지도 관심을 모은다. 경기민요의 애절한 선율과 진도씻김굿의 역동적인 장단이 만나 빚어낸 음악은 이별의 슬픔을 넘어 각자의 기억을 돌아보게 한다. 초연에서 출발한 작품이 새로운 연주자와 관객을 만나 또 다른 의미를 얻는 과정은 창작음악이 무대 위에서 이어지는 방식에 관해서도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오는 11월 5일 청주아트홀에서 열리는 ‘청주시립국악단 with 아창제’는 김지호의 <기억의 노래>를 비롯한 다섯 작곡가의 작품을 통해 우리 창작관현악의 현재를 만나는 자리다. 작품이 다시 연주된다는 것은 악보가 되살아나는 일이면서, 그 안에 담긴 음악과 감정이 새로운 사람들의 경험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2026 청주with아창제(포스터_ARKO)
2026 청주with아창제(포스터_AR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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