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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의 클담28]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 엿새간의 뜨거운 기록

2025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8/5-10) 김준형의 '클래식이 자라는 담벼락' Vol.28

매해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 2021년에 시작했으니 이제 다섯 번째다. 모두 11회의 초청 공연뿐 아니라 공모 연주도 5팀에 이른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다채로우면서도 짜임새 있는 프로그래밍이 놀라웠다. 독주에서 실내악, 대편성 관현악까지, 그리고 고음악에서 현대음악까지 시대와 사조를 넘나드는 레퍼토리였다. 떠오르는 신예 연주자부터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세계적인 거장의 귀한 무대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6일, 현존 피아노 트리오 가운데 정점에 있다고 평가받는 트리오 반더러(Trio Wanderer)

매해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 2021년에 시작했으니 이제 다섯 번째다. 모두 11회의 초청 공연뿐 아니라 공모 연주도 5팀에 이른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다채로우면서도 짜임새 있는 프로그래밍이 놀라웠다. 독주에서 실내악, 대편성 관현악까지, 그리고 고음악에서 현대음악까지 시대와 사조를 넘나드는 레퍼토리였다. 떠오르는 신예 연주자부터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세계적인 거장의 귀한 무대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5일 개막연주, 로렌스 르네스 with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사진_예술의전당)
5일 개막연주, 로렌스 르네스 with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사진_예술의전당)

6일, 현존 피아노 트리오 가운데 정점에 있다고 평가받는 트리오 반더러(Trio Wanderer)의 연주는 언제나 감탄스러웠으나, 올해는 그간 접해 온 그들의 음악이 한층 더 경지에 오른 듯했다. 섬세한 조탁은 예전만 못했으나 음악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훨씬 자유롭고 분방했다. 드뷔시는 애써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려 하기보다 무심한 듯 터벅터벅 걷는 걸음처럼 자연스러웠다. 그윽하면서도 과하지 않은 소리는 여전했고, 밝은 분위기의 2악장조차 무겁고 짙은 뉘앙스로 새롭게 해석되었다. 3악장은 깊은 음악성을 드러내며 점차 열기를 더했고, 4악장에서 뜨겁게 분출했다. 이어 분위기를 바꾸어 스메타나를 연주했다.

6일, 트리오 반더러(사진_예술의전당)
6일, 트리오 반더러(사진_예술의전당)

바이올린과 첼로는 승화된 비통함에 가장 어울리는 소리를 냈다. 날카로운 바이올린 고음은 폐부를 찌르는 듯했고, 명쾌하면서 투명하고 강력한 피아노 연주와 극적인 대조를 이루었다. 엇갈리는 듯한 정서의 2악장은 세 주자의 안정적인 앙상블이 균형을 이루며 묘한 효과를 냈다. 마지막 악장에서는 그간의 우아함을 벗어던지고 맹렬히 질주했다. 경종처럼 울리는 피아노는 승화된 슬픔의 상징처럼 깊은 인상을 남겼다.

리스트의 걸작 <순례의 해> 중 ‘오르베만의 골짜기’를 라센을 거쳐 리스트가 직접 피아노 3중주로 개정한 <슬픔>은 간명한 선율에 깊은 정서를 담아 남다른 음악성을 보여주었다. 라벨은 이국적인 리듬을 정교하게 살린 2악장에서, 바로크적 구조에 오리엔탈풍의 애수를 담아 무겁지 않으면서도 심연으로 가라앉는 듯한 예술성을 드러냈다. 화려한 4악장은 한 톤 낮춘 듯 번득이지 않으면서 은은하고 고아한 울림이 일품이었다.

7일, 가이스터 듀오(사진_예술의전당)
7일, 가이스터 듀오(사진_예술의전당)

7일, 뮌헨 ARD 콩쿠르 우승은 물론 드뷔시와 슈베르트 등의 피아노 듀오 음반으로도 심도 있는 음악성을 인정받고 있는 가이스터 듀오(Geister Duo). 다비드 살몽과 마뉘엘 비에야르가 짝을 이루는 팀이다. 전반부는 슈베르트로 채웠다. <독일 춤>은 슈베르트 특유의 분방한 악상의 즐거움을 살리면서 즉흥성과 오락성이 두드러졌다. 동시에 세심하게 다듬어진 세련된 사운드가 빛났다.

<환상곡 D.940>에서는 익숙한 작품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 널리 알려진 주제 선율을 담백하게 처리하면서 이어지는 풍성한 악상을 다소 건조하게 발전시켰다. 지적이면서도 섬세한 손길이 느껴졌고, 비극적 정서에 빠지지 않은 성숙함이 매력적이었다. ‘환상곡’이라는 부제가 붙은 라흐마니노프의 <모음곡 제1번>은 찰랑이는 물결을 그려내는 듯한 감각적인 고음과 이어지는 악상에서 이들의 비르투오소다운 연주력이 드러났다.

가이스터 듀오(사진_예술의전당)
가이스터 듀오(사진_예술의전당)

‘눈물’이라는 부제가 붙은 3악장은 환상적이면서도 명료한 묘사가 돋보였다. 반복적이고 예리한 교향적 울림이 특징인 마지막 악장에서는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교향적 무곡>의 맹아를 엿볼 수 있었다. 마지막 라벨 편곡의 <볼레로>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지닌 신선한 무대였다. 정중동의 미학을 실감하게 했다. 정교함의 대명사인 라벨의 완벽한 설계도를 한 땀 한 땀 정성껏 엮어가며 미묘한 음색 변화를 감각적으로 포착한 연주가 훌륭했다. 마지막 대목의 음향 효과는 탄성을 자아냈다. 앙코르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라벨 <어미거위> 중 ‘요정의 정원’과 ‘미녀와 야수’를 들려주었는데, 품위 넘치는 우아함의 극치였다.

8일, 스티븐 이셜리스 첼로 리사이틀 with 코니 시(사진_예술의전당)
8일, 스티븐 이셜리스 첼로 리사이틀 with 코니 시(사진_예술의전당)

8일, 언제나 좋은 첼로 연주를 듣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거장의 무대는 더욱 귀하다. 우리 시대 최고의 거장 가운데 한 사람인 스티븐 이설리스(Steven Isserlis)의 연주를 한국 무대에서 접하기란 쉽지 않기에, 러시아 레퍼토리로만 구성된 이번 리사이틀은 더욱 기대를 모았다. 그는 실내악 파트너인 피아니스트 코니 시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볼륨이 크지 않은 연주 스타일이기에 콘서트홀을 공연장으로 선택한 것은 다소 무리가 따랐으나, 그의 명성을 고려하면 이해할 만한 선택이었다.

스티븐 이셜리스 첼로 리사이틀 with 코니 시(사진_예술의전당)
스티븐 이셜리스 첼로 리사이틀 with 코니 시(사진_예술의전당)

쇼스타코비치 소나타는 심오한 내면에 대한 이해를 담아 고요하면서도 간결하게 풀어낸 1악장에서부터 큰 울림을 안겼다. 피아노가 주도하는 2악장은 음향 밸런스로 인해 효과가 다소 반감되었다. 우울한 선율이 지배적인 3악장은 황량함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깊은 음악성을 느낄 수 있었고, 마지막 론도 악장의 산뜻한 마무리도 인상적이었다. 카발렙스키 소나타는 비애를 머금은 선율을 아름답고 밀도 있게 연주하여 신비롭고도 심오한 매력을 드러냈다. 쉽게 접하기 어려운 걸작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다.

세르게이 타네예프의 제자인 조부 율리우스 이설리스의 <발라드> 또한 훌륭했다. 라흐마니노프의 소나타는 느린 템포의 1악장은 유연하고 유장한 프레이징으로, 2악장은 격렬함으로, 그리고 마지막 악장은 특유의 낭만성을 극대화하며 개성 있는 해석을 보여주었다. 풍성함보다는 지적이고 예리한 접근이 돋보였으며, 3악장은 저음의 강력함이 다소 아쉬웠으나 고요한 마무리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10일, 테오팀 랑글로아 드 스와르트, 토마스 던포드 듀오 콘서트(사진_예술의전당)
10일, 테오팀 랑글로아 드 스와르트, 토마스 던포드 듀오 콘서트(사진_예술의전당)

10일, 이번 국제음악제에서는 바로크 음악의 현주소와 혁신적인 미래를 보여준 두 연주회가 폐막일을 빛냈다. 지난해 예술의전당에서 하프시코드 주자 쥐스탱 테일러와 함께 뛰어난 연주를 들려준 테오팀 랑글로아 드 스와르테는 이번에는 류트 연주자 토마스 던포드와 함께 17~18세기 영국 음악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꾸렸다. 에클스의 <광기의 연인> 모음곡으로 시작한 무대는 대부분이 초연작으로, 도서관에 잠자고 있던 작품들을 발굴해 선보였다. 낯선 곡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주자들의 친근한 태도와 환상적인 기량 덕분에 무척 흥겹고 활기찬 무대가 이어졌다. 퍼셀 소나타에서는 끊어질 듯 이어지는 긴장감이 돋보였고, 마테이스의 <라 폴리아> 변주곡에서는 요염한 색채의 변주를, 이어진 모음곡에서는 테오팀의 명인기를 실감케 하는 속주가 빛났다.

테오팀 랑글로아 드 스와르트, 토마스 던포드 듀오 콘서트(사진_예술의전당)
테오팀 랑글로아 드 스와르트, 토마스 던포드 듀오 콘서트(사진_예술의전당)

에클스 소나타에서는 심오한 음악성과 더불어 대중 친화적인 즉흥성이 돋보였다. 특히 던포드가 류트로 ‘아리랑’을 주제로 즉흥 연주를 선보이자 청중의 즉각적인 호응이 이어졌다. 공연 말미에는 에클스의 변주곡을 연주하며 청중이 직접 선율을 따라 부르게 했고, 류트와 바이올린, 청중의 합창이 어우러지며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사라졌다. 앙코르 또한 특별했다. 비틀스와 아리랑, 그리고 록 음악까지—장르와 시대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즉흥성이 공연 전체를 관통했다. 연주자들은 적극적으로 관객과 호흡했고, 그 과정에서 고음악은 단순한 ‘과거의 음악’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살아 있는 예술임을 증명해냈다.

리나 뚜르 보네트, 홍승아, 아렌트 흐로스펠트(사진_예술의전당)
리나 뚜르 보네트, 홍승아, 아렌트 흐로스펠트(사진_예술의전당)

폐막일의 마지막 연주회는 뜻밖의 출발이었다. 조르디 사발이 이끄는 르 콩세르 데 나시옹의 악장, 원전 악기 바이올리니스트 리나 뚜르 보네트(Lina Tur Bonet)와 홍승아, 아렌트 흐로스펠트(Arend Grosfeld)의 연주로 알려졌으나, 무대에는 단 두 사람만 등장해 의아함을 자아냈다. 잠시 뒤, 1층 객석 뒤편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바이올린 선율이 신비로운 오프닝을 열었다. 첫 곡은 비버의 <로사리오 소나타> 중 1번 ‘수태고지’. 이미 레퍼런스 연주로 평가받은 바 있는 이 곡에서 그녀는 고요한 긴장감을 담아내며, 점차 거칠고 생생한 음색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리나 뚜르 보네트, 홍승아, 아렌트 흐로스펠트(사진_예술의전당)
리나 뚜르 보네트, 홍승아, 아렌트 흐로스펠트(사진_예술의전당)

살라베르네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에서는 미묘하게 변화하는 표정이 매력적이었고, 팔코니에로의 <달콤한 선율과 코렌테>에서는 세 악기가 절묘한 대화를 나누었다. 슈멜처의 바이올린 소나타 4번으로 1부가 마무리되었는데, 첼로와 쳄발로의 굳건한 베이스 위에 자유로운 선율이 빛났다. 2부에서는 코렐리와 헨델, 그리고 <라 폴리아> 소나타 등 바로크 음악의 백미들이 연주되었으며, 마지막 곡은 감정의 격랑으로 치달으며 그녀 특유의 섬세함과 상상력을 드러냈다.

10일 클로징 콘서트-로렌스 르네스, 얀 리시에츠키 with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사진_예술의전당)
10일 클로징 콘서트-로렌스 르네스, 얀 리시에츠키 with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사진_예술의전당)

축제의 개막과 폐막에는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함께했다. 국내외 유수의 오케스트라에서 활약하는 연주자들로 꾸려져, 그 어떤 프로젝트 오케스트라보다 훌륭한 예술적 역량을 보여주었다. 올해는 네덜란드-몰타 출신의 지휘자 로렌스 르네스(Lawrence Renes)가 이끌었으며, 개막과 폐막에 참여한 단원 구성이 달라 각기 다른 매력을 드러냈다.

5일, 개막 연주는 올 슈트라우스 프로그램. <돈 후안>으로 시작해 <장미의 기사> 모음곡, 그리고 대망의 <영웅의 생애>까지 이어졌다. 단기간에 조직된 오케스트라가 이 곡들의 앙상블과 완성도를 맞추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 도전만으로도 인상적이었다. 정교한 합주력보다는 각 연주자, 특히 솔리스트들의 뛰어난 기량을 즐길 수 있는 무대였다.

클로징 콘서트-로렌스 르네스, 얀 리시에츠키 with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사진_예술의전당)
클로징 콘서트-로렌스 르네스, 얀 리시에츠키 with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사진_예술의전당)

10일, 폐막은 말러 교향곡 제1번 ‘거인’. 음향 효과가 탁월한 선택이었다. 해외 저명 오케스트라의 수석 연주자들이 합류해 눈부신 비르투오시티를 보여주었고, 특히 3악장의 콘트라베이스 솔로는 안정적이면서도 우람하여 압도적인 인상을 남겼다.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수석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전반부에는 캐나다 출신의 쇼팽 스페셜리스트 얀 리시에츠키(Jan Lisiecki)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협연했다. 이미 베토벤 협주곡 전곡을 오케스트라와 직접 지휘하며 연주한 바 있는 만큼 애착이 깊은 레퍼토리다. 정통 독일-오스트리아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투명하고 신선한 음색, 독창적인 프레이징, 때로 들려주는 낭만적인 루바토가 새로웠다. 앙코르로 들려준 쇼팽의 야상곡은 앞선 연주와 달리 느리고 진한 정서를 담았다.

9일, 얀 리시에츠키 피아노 리사이틀(사진_예술의전당)
9일, 얀 리시에츠키 피아노 리사이틀(사진_예술의전당)

그의 쇼팽 연주를 들으니, <전주곡>을 주제로 한 리사이틀이 떠올랐다. 쇼팽 Op.28 전곡과 함께 바흐, 메시앙, 고레츠키,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을 아우르며 자신만의 투명하고 감각적인 개성을 드러냈다. 특히 신비로운 메시앙, 현란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시마노프스키, 우아하고 세련된 라흐마니노프가 인상적이었다. 또한 연주뿐만 아니라, ‘전주곡’이라는 주제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담은 수필을 함께 제시해 그의 음악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6일, 노세다, 주미강, NYO-USA(사진_예술의전당)
6일, 노세다, 주미강, NYO-USA(사진_예술의전당)

아쉽게 직접 관람하지는 못했으나, 6일에 연주한 미국 내셔널 유스 오케스트라(NYO-USA)가 거장 자난드레아 노세다(Gianandera Noseda)의 지휘로 보여준 무대, 올해 롱-티보 콩쿠르 우승으로 주목받은 피아니스트 김세현의 리사이틀도 호평을 받았다. 재즈와 바로크의 접점을 모색한 정지수 & 바로크 인 블루, 그리고 금관 앙상블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준 브라스아츠 서울의 무대도 큰 화제를 모았다. 어느덧, 대한민국 대표 음악축제로 굳건히 자리한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가 더욱 풍성한 음악으로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기를 기원한다.

5일, 정지수 바로크 인블루(사진)예술의전당)
5일, 정지수 바로크 인블루(사진)예술의전당)
6일, 노세다, 주미강, NYO-USA(사진_예술의전당)
6일, 노세다, 주미강, NYO-USA(사진_예술의전당)
9일, 브라스아츠 서울(사진_예술의전당)
9일, 브라스아츠 서울(사진_예술의전당)
9일, 김세현 피아노 리사이틀(사진_예술의전당)
9일, 김세현 피아노 리사이틀(사진_예술의전당)

음악 칼럼니스트 김준형

예술의전당 월간지 <Beautiful Life>에서 SAC’s choice 코너를 3년간 연재했으며, 객석, 피아노 음악, 스트라드, 스트링 앤 보우, 월간 오디오 등 음악 관련 매체들에 오랫동안 칼럼을 기고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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