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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의 클래식 동맹③] 열정이 촉발한 예술의 경지, 예외와 파격으로 채색된 임윤찬의 그림

임윤찬 피아노 리사이틀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6/17)

스무 살의 피아니스트가 들려준 무소륵스키의 중 마지막 3분은 흡사 씻김굿을 연상시켰다. 주먹으로 내리치듯 강렬한 타건은 ‘키예프의 대문’을 생사를 가르는 경계의 문으로 변모시키며 비통함을 자아냈다. 그러나 이어진 하강 스케일에서 분위기는 전환됐다. 영롱하게 산화되는 선율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예술혼에 대한 찬미로 바꾼 것이다. 온몸을 불사른 타건에 전석을 가득 메운 청중이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지난 6월 17일에 열린 임윤찬의 피아노 리사이틀에서다.화제성의 이면에 자리한 예술의 본질세계적 수준의 음향을 자랑하는 부

스무 살의 피아니스트가 들려준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중 마지막 3분은 흡사 씻김굿을 연상시켰다. 주먹으로 내리치듯 강렬한 타건은 ‘키예프의 대문’을 생사를 가르는 경계의 문으로 변모시키며 비통함을 자아냈다. 그러나 이어진 하강 스케일에서 분위기는 전환됐다. 영롱하게 산화되는 선율이 죽음에 대한 공포를 예술혼에 대한 찬미로 바꾼 것이다. 온몸을 불사른 타건에 전석을 가득 메운 청중이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지난 6월 17일에 열린 임윤찬의 피아노 리사이틀에서다.

임윤찬 리사이틀(사진제공_부천아트센터)
임윤찬 리사이틀(사진제공_부천아트센터)

화제성의 이면에 자리한 예술의 본질

세계적 수준의 음향을 자랑하는 부천아트센터에서 선보인 이번 리사이틀은 이례적인 월요일 공연이었음에도 들뜬 기색이 역력한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이번 공연은 50초 만에 매진되며 화제를 낳았지만, 부천시민을 대상으로 한 초청 이벤트가 진행되며 또 다른 화제를 낳았다. 15명(1인 2매)을 뽑는 이벤트였지만 지원자는 7,410명에 이르며 임윤찬의 파워를 다시 한번 증명했다. 클래식 애호가를 비롯한 타 지역주민들은 ‘이것이 문화 복지’라며 부천시민에 대한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올해 4월 19일, 데카 레이블을 통해 [쇼팽:에튀드]를 발매한 임윤찬은 앨범 발매 후 열흘이 지난 시점에서 돌연 리사이틀의 선곡을 변경했다. ‘아티스트의 새 프로그램에 대한 열의’가 반영된 이날 프로그램은 멘델스존의 <무언가(작품번호 19-1, 85-4)>와 차이콥스키의 <사계>, 그리고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으로 구성됐다. 특히 회화가 음악으로 탄생된 <전람회의 그림>은 연주자의 시각적, 정서적 아이디어가 중요하게 작용하기에 임윤찬식 해석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임윤찬 리사이틀(사진제공_부천아트센터)
임윤찬 리사이틀(사진제공_부천아트센터)

환상을 불러일으킨 낭만적 서정

첫 번째 곡인 멘델스존의 <무언가>는 포근한 삽화로 채워진 오래된 동화를 연상시켰다. 특히 ‘무언가 작품번호 19-1’은 루바토를 연상시키는 자유로운 리듬 위에 오른손의 영롱한 터치와 왼손의 부드러운 반주가 미묘한 조화를 이루며 전개되었다. 이어진 ‘무언가 작품번호 85-4’ 역시 부드러운 색채를 이어받았다. 안단테의 지시에도 통상적인 속도보다 진취적으로 전개된 연주는 한 소년이 유년기의 노스탤지어로 달려가는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무언가>의 정취를 이어가려는 듯 휴지 없이 전개된 차이콥스키의 <사계>는 젊은 피아니스트의 낭만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임윤찬의 세밀한 터치는 음형이 묘사하는 심상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며 계절의 심상에 영혼을 부여했다. 악상과 통념에서 벗어난 독특한 박자 역시 그의 내밀한 정서를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이러한 장치는 ‘12개의 성격적 소품’이라는 부제가 붙은 <사계>에 자유로운 환상곡의 인상을 덧씌우며 정격과 파격을 넘나들었다. 그러나 곡에 내포된 정서를 효과적으로 전달받은 것과는 별개로, 고독을 예상한 곡에서 낙관적 서정이 느껴질 때에는 러시아의 정취와 토속성이 반감된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입체적인 화성과 변화를 거듭하는 리듬 역시 러시아의 풍경화보다 여러 겹으로 채색된 동양의 수채화를 연상시키며 해석과 수용의 범위를 고민케 했다.

임윤찬 리사이틀(사진제공_부천아트센터)
임윤찬 리사이틀(사진제공_부천아트센터)

예외와 파격의 붓을 들고

하지만 이어진 <전람회의 그림>에서 임윤찬의 설득력은 대단했다. 예외와 파격으로 회화와 심상을 넘나든 전개는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다. <전람회의 그림>은 무소륵스키가 친구이자 화가인 빅토르 하르트만을 잃고 큰 충격을 받은 뒤 완성한 작품이다. 함께 예술혼을 불태우던 친구를 잃은 무소륵스키는 하르트만을 잃은 슬픔에 한동안 술에 취해 밤을 지새웠다. 임윤찬의 손끝은 그러한 애통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임윤찬식 <전람회의 그림>을 그려냈다.

주저 없이 피아노 앞에 다가간 임윤찬은 확신에 찬 타건으로 ‘프롬나드 1’의 도입부를 연주한 뒤 예상을 빗나간 전개로 심장을 강타했다. 첫 동기가 반복되는 구간에서 셈여림을 소폭 줄여 전람회를 메우는 발걸음에 입체감을 부여한 것이다. 악보상 아무 표기도 되어있지 않은 곳에 그가 임의적으로 추가한 장치였지만 정서를 부각시키는 효과는 대단했다. 전람회를 메우는 관람객의 발걸음을 묘사했다고 여겨지는 ‘프롬나드 1’이 하르트만을 잃고 그의 유작을 마주하는 무소륵스키의 심정을 전하며 앞으로의 해석을 짐작케 하는 장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의미심장한 파격은 전람회의 그림을 묘사하며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섬세한 페달링으로 관람객의 발걸음을 확장시키며 벅참을 선사한 임윤찬은 코다에 가까워지자 강박적으로 페달을 밟으며 청중을 <난쟁이>로 이끌었다. 음과 음 사이의 리듬은 불규칙했고, 전반적인 박자는 급진적인 변화를 반복했다. 이러한 전개는 난쟁이의 기괴한 걸음을 묘사하는 동시에 노트르담의 꼽추에서의 콰시모도를 연상시키며 음울하고 애처로운 인상을 주었다.

임윤찬 리사이틀(사진제공_부천아트센터)
임윤찬 리사이틀(사진제공_부천아트센터)

회화와 음악이 만나는 연주자의 작업실

이어진 ‘프롬나드 2’는 온화하면서도 아련함을 강조하며 ‘옛 성’과 자연스레 연결되었다. 특히 변박이 두드러진 연주는 손풍금을 연주하는 늙은 악사를 연상시키며 쓸쓸함을 자아냈다. ‘튈르리’에서는 글리산도를 연상시키는 속주가 명랑함을 부각시켰고, ‘비들로’는 묵직한 페달링이 앞선 곡과 대조되며 쉽사리 끝나지 않는 농민의 애환을 효과적으로 연상시켰다. 이렇듯 임윤찬의 타건은 소실된 회화가 눈앞에서 입체적으로 복원되는 듯한 경이감을 선사했다.

서정적이고 엄숙한 ‘프롬나드 4’에 이어 ‘껍질을 덜 벗은 햇병아리들의 발레’의 도입부에서는 임윤찬의 소년스러운 모습이 드러나기도 했다. 알의 깨어짐을 묘사하듯 조심스레 시작한 첫마디 후 객석에서 무언가가 떨어지자 병아리를 연상시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객석을 바라본 뒤 연주를 이어간 것이다. 뒤이은 속주와 깨어질 듯 여린 트릴은 휘청이는 병아리의 움직임을 제대로 묘사하는 동시에 임윤찬의 비르투오소적인 면모를 깨닫게 했다.

‘사무엘 골덴베르크와 슈무엘레’와 ‘리모쥬’는 회화적인 요소가 보다 두드러졌다. 두 인물을 묘사하는 리듬의 대비는 화가의 양옆에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그려진 귀스타브 쿠르베의 ‘화가의 작업실(L'Atelier du peintre, 1854~1855년)’을 연상시켰으며, 이어진 ‘리모쥬(시장)’은 16분 음표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속주에서도 명징한 타건으로 조르주 쇠라의 점묘화를 연상시켰다.

특히 ‘리모쥬’의 후반부에서 ‘카타콤’에 진입할 때는 의도적인 휴지와 악센트가 빛났다. 극단적인 대비로 시장이라는 삶의 현장을 지하 무덤이라는 죽음의 현장에 효과적으로 중첩시키며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다가올 죽음을 연상시킨 것이다.

임윤찬 리사이틀(사진제공_부천아트센터)
임윤찬 리사이틀(사진제공_부천아트센터)

음표에서 무소륵스키의 정신을 길다

‘카타콤’, ‘닭다리 위의 오두막집’, ‘키예프의 대문’은 하트만을 잃은 무소륵스키의 심상을 반영하듯 죽음에 대한 인상이 중점적으로 전개되었다. ‘카타콤’은 포르테와 피아니시모가 간격 없이 교차하고, 크레셴도(점점 크게)와 디미누엔도(점점 여리게)가 한마디에 들어있는 모순적인 악상으로 전개된다. 호흡을 하는 것도 잊은 듯 신중하게 셈여림을 조절한 임윤찬은 프롬나드가 변형된 선율을 애절하고 아스라한 부름으로 전개시켰다. 이는 앞선 ‘프롬나드’를 일관되게 관통한 그리움의 정서와 맞닿아 더욱 큰 울림을 일으켰다.

그로테스크한 음형이 강조되며 소용돌이치듯 전개된 ‘닭다리 위의 오두막집’은 인간을 쫓아오는 죽음을 연상시킬 정도로 어둡고 광폭했다. 역동적인 악센트와 강력한 포르티시모에도 임윤찬의 질주는 거침없었다. 건반이나 페달이 떨어질까 걱정될 찰나, 임윤찬은 죽음에게 쫓기던 인간을 ‘키예프의 대문’으로 인도하며 다시 한번 심장을 강타했다. ‘프롬나드 1’ 종결부의 점진적인 환희를 연상시킨 첫 소절은 점차 죽은 이를 그리는 비통함으로 변화되었다.

임윤찬 리사이틀(사진제공_부천아트센터)
임윤찬 리사이틀(사진제공_부천아트센터)

중반부의 경건한 코랄 뒤 임윤찬의 의도는 보다 뚜렷하게 다가왔다. 오른손의 맑은 프롬나드가 장엄함과 비감이 얽혀 확장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묘사는 키예프의 대문을 삶과 죽음을 가르는 비석으로 연상시키며 친구를 애도하는 무소륵스키의 심경을 떠올리게 했다.

이렇듯 임윤찬의 <전람회의 그림>이 특별한 이유는 ‘프롬나드’를 거칠 때마다 배가되었다. 그의 프롬나드는 작품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간주곡을 넘어서서 생사에 관한 무소륵스키의 심상을 잇는 연결고리였다. 더욱이 <전람회의 작품>이 회화와 음악이 결합된 작품이자 무소륵스키가 러시아의 민속주의 5인방 중 한 명으로 자유로운 음악어법을 구사했다는 사실을 견지했을 때, 고정된 표기에 구애받지 않고 정격과 파격을 넘나든 임윤찬의 해석은 무소륵스키의 정신을 계승한 듯 여겨졌다.

임윤찬 리사이틀(사진제공_부천아트센터)
임윤찬 리사이틀(사진제공_부천아트센터)

음악으로 재확인된 열정의 의미

무엇보다 임윤찬의 타건이 강렬한 설득력을 지닌 이유는 그가 열정의 경지를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열정은 사람을 몰아와 무아로 이끌고, 감정의 진폭을 키워 일상을 마비시킨 뒤 삶을 더 맹렬히 영위하도록 만드는 촉매제가 된다. <전람회의 그림>은 무소륵스키가 하트만의 죽음에서 촉발된 감정에 열정을 불어넣어 음악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임윤찬은 악보의 이면에 자리한 무소륵스키의 심상을 예리하게 발굴하고 이를 극대화시켜 표현하며 거부할 수 없는 <전람회의 그림>을 그려냈다. 마지막 타건의 잔향이 채 가시기 전 즉각적인 기립박수가 터져 나온 이유는 그가 음악의 본질로 열정의 의미를 재확인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이번 공연을 통해 창조적인 예술의 길을 개척하는 임윤찬의 행보를 더욱더 응원하게 된 이유다.

음악 칼럼니스트 김보경

눈부시게 아름다운 어느 5월에 슈만의 가곡을 듣고 클래식에 입문했다. 객석 한켠에서 음악이 마치 나만을 향하는 것처럼 진심으로 듣는다. '네 비평은 음악보다 어려워‘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충격을 받아, 깊이 있으되 쉽게 읽히는 리뷰를 지향한다. 숙명여대 대학원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했고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KoCACA)에서 근무했다.

임윤찬 리사이틀(포스터_부천아트센터)
임윤찬 리사이틀(포스터_부천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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