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주연경 “오케스트라는 나를 내려놓고 서로의 소리를 듣는 과정”
- 서울시향 제1바이올린 부수석 주연경, PFO 멘토로 청년 음악가들과 만난다 - 파트별 멘토링부터 오케스트라 리허설까지...“실전에서 부딪히며 얻는 경험이 중요”
오케스트라는 결국 듣는 훈련. 같은 파트에서 각자 자기 소리만 내는 것 아닌, 그룹으로 좋은 소리 만들어야
[시사매거진 강창호 기자] 서울시립교향악단 제1바이올린 부수석이자 독주자와 실내악 연주자로 활동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주연경이 새로운 음악적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PAPA가 2027년 1월 창단을 앞두고 추진하는 국제 오케스트라 프로젝트 PAPA Festival Orchestra(PFO)의 바이올린 멘토로 참여하면서다.
PFO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젊은 음악가들이 함께 배우고 연주하는 국제 오케스트라 프로젝트다. 교육과 파트별 멘토링, 오케스트라 리허설, 공연까지 전 과정을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구성해 젊은 연주자들이 실제 오케스트라 현장에서 필요한 음악적 감각과 협업 방식을 경험하도록 한다.
주연경이 PFO에서 특히 강조하는 것은 ‘듣는 능력’과 ‘조화를 위해 자신을 조절하는 능력’이다. 혼자 잘 연주하는 것과 오케스트라 안에서 음악을 만들어가는 것은 다르다. 그는 그 차이를 실제 현장에서 경험하는 일이 젊은 음악가들에게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5살부터 음악을...바이올린을 선택한 건 초등학교 4학년
주연경에게 음악은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다섯 살 때부터 악기를 배웠고, 어머니가 음악학원을 운영했던 만큼 집과 음악학원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환경에서 성장했다.
“언니들(주연주, 주연선)도 계속 배우고 있었고, 저도 사실 음악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없었던 것 같아요. 너무 당연하게 하는 일이었죠.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네 가지를 모두 배우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하나를 선택하게 됐어요. 언니들은 바이올린과 첼로를 선택했고 저도 바이올린을 골랐죠.”
처음부터 음악가의 길만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에는 잠시 디자이너를 꿈꾸기도 했다.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했고 디자인하는 것도 좋아했어요. 그런데 음악을 너무 오랫동안 해왔고, 제가 혼자 이 환경에서 떨어져 나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어리기도 했고 방법도 몰랐어요. 지금 생각하면 음악을 한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고,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서울예고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영재로 입학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라이스대학교와 맨해튼 음대에서 수학했다. 국내외 주요 콩쿠르와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을 거치며 연주자로 성장했고, 현재는 서울시향 제1바이올린 부수석으로 활동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에게 무대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연습하는 건 너무 힘들어도 무대에 세워 놓으면 정말 좋아했어요. 지금도 무대에 서는 게 좋고요. 그래서 연주 기회가 주어지면 거의 다 하는 편이에요. ‘하기 싫다’는 생각이 별로 없어요. 그냥 연주할 기회가 생기는 것 자체가 좋더라고요.”
한상일과 10년 넘게 이어온 음악적 인연
주연경과 PAPA를 연결한 인물은 협회장이자 PFO 예술감독을 맡은 피아니스트 한상일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상일 선생님도 한예종을 나왔어요. 저보다 후배인데 학교 다닐 때는 서로 모르고 지냈죠. 그러다 지인인 기타리스트 김진택 선생님이 한번 만나보라고 소개해줬어요.”
당시 한상일은 프로코피예프 작품을 연이어 무대에 올리며 주변 음악가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때 김진택 선생님이 한상일을 두고 ‘괴물 같은 녀석’이라고 했어요. 그 뒤로 같이 연주를 많이 하게 됐죠. 주연선 선생님과 저, 한상일이 함께 피아노 트리오로 공연하기도 했고, 이후 서울시향 공연에도 많이 오셨고 실내악도 함께 많이 했어요."
10년 넘게 이어진 인연은 이제 PFO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주연경은 한상일의 가장 큰 장점으로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는 힘을 꼽았다.
“한상일 선생님은 미래에 대한 열정이 굉장히 커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큰데, 무엇보다 실행력이 정말 대단해요. 저는 생각만 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친구는 어느 순간 실제로 하고 있더라고요.”
한상일이 오케스트라 창단을 준비하면서 주연경에게 조언을 구했고, 주연경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연주자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저도 비슷한 페스티벌에 참여해본 경험이 있어서 이런 프로그램이 젊은 연주자들에게 정말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그걸 또 바로 반영해서 추진하더라고요.”
잘하는 젊은 연주자 많지만...자리를 찾기 어렵다
주연경이 PFO 멘토 참여를 흔쾌히 받아들인 데에는 젊은 연주자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한상일 선생님과 친해서 함께하게 된 것도 있지만, 저한테 부탁해준 것 자체가 고마웠어요. 처음 한 발을 내딛는 큰 프로젝트에 저를 함께 넣어준 것도 고맙고, 제가 많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는 특히 현재 젊은 음악가들이 처한 현실에 주목했다.
“요즘에는 정말 잘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젊은 연주자들도 너무 많고요. 그런데 생각보다 자리를 찾기가 어려워요.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는 것도 굉장히 어렵고, 정말 잘하는데도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친구들이 많죠.”
그런 상황에서 PFO가 새로운 연결고리이자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이런 계기로 또 연결고리가 생기고,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에게 좋은 시너지가 돼서 잘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독주와 오케스트라의 차이...실제로 부딪혀봐야
주연경이 PFO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실전 경험이다. 학생 시절 오케스트라를 경험하고 레퍼토리를 공부하는 것과 실제 전문 오케스트라 현장에서 연주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저도 학생 과정을 거쳤고 학생 오케스트라에도 참여해봤어요. 다양한 레퍼토리도 배웠고요. 그런데 실제 현장에서 하는 것과는 많이 달라요. 혼자 레슨을 받고 준비하는 것과 실제로 부딪히면서 얻는 것은 정말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개인의 연주 능력을 넘어선 앙상블 감각이다.
“혼자 잘하면 된다는 생각, 독주를 위해 쌓아온 실력만으로는 오케스트라에서 부딪히는 한계가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PFO를 통해 젊은 연주자들에게 그런 경험을 나눠주고 싶어요. 이런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면 나중에 오디션을 보거나 다른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할 때도 훨씬 도움이 될 거예요.”
같은 파트가 하나의 소리를 만드는 경험
PFO의 멘토링에서 주연경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또 하나의 지점은 같은 파트의 연주자들이 함께 소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퍼스트 바이올린만 해도 열 명이 넘는 연주자들이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야 하잖아요. 같은 파트에서 같은 멜로디를 연주하면서도 각자 자기 소리만 내는 것이 아니라 그룹으로 좋은 소리를 만들어야 해요.”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자신의 소리를 무조건 크게 내는 능력이 아니다. 때로는 소리를 줄이고, 때로는 더 크게 내면서 전체의 흐름에 맞춰야 한다.
“어떨 때는 나를 좀 죽여야 하고, 어떨 때는 조금 더 크게 해야 해요. 또 어떨 때는 내가 음악을 만드는 나만의 해석을 내려놓아야 할 때도 있죠. 지휘자에 따라서도 그렇고, 옆에 있는 사람에 따라서도 내가 더 줄여야 할 때가 있고 더 소리를 내야 할 때가 있어요.”
그가 반복해서 강조한 것은 ‘듣기’였다.
“오케스트라는 결국 듣는 훈련이에요. 다른 사람이 어떤 멜로디를 하고 있는지 듣고, 그걸 따라가고, 내 소리를 조절해야 하죠.”
그는 이 과정이 음악을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도 닮아 있다고 설명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면 내 성격도 조금은 죽여야 하잖아요. 음악으로 풀어내면 결국 사회생활과 비슷한 것 같아요. 서로 다른 환경에서 모이고, 다른 언어를 쓰더라도 어울릴 수 있도록 맞춰가는 과정이죠.”
조화를 위해 나를 내려놓는 법을 배웠으면
주연경이 젊은 연주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분명하다. 전체의 조화를 위해 자신의 소리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화를 위해 나를 내려놓는 부분에 좀 중점을 두고 이 프로젝트에 임했으면 좋겠어요.”
오케스트라에서는 한 파트만으로 음악을 완성할 수 없다. 다른 파트가 어떤 음악을 만들어가는지 듣고 이해해야 하며, 스코어를 통해 전체적인 구조와 흐름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내 파트만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파트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가는 것도 굉장히 중요해요. 저쪽 파트가 저런 멜로디를 하고 있다면 나는 그것을 좀 더 잘 들어야 하고, 따라가야 하죠. 그런 조율을 배우는 기회가 될 것 같아요.”
쇼스타코비치·프로코피예프·차이콥스키...서로 다른 음악적 요구를 경험하다
PFO 창단 연주회 프로그램은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협주곡 제2번,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제3번,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5번으로 구성된다.
주연경은 세 작품이 젊은 연주자들에게 서로 다른 음악적 요구를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쇼스타코비치와 프로코피예프는 리드미컬하고 다이내믹하죠. 건반 음악이나 타악기처럼 굉장히 리드미컬하게 따라가야 하는 부분이 많고, 변박도 많아요. 반면 차이콥스키는 호흡이 굉장히 길어야 하죠.”
서로 다른 음악적 언어를 한 프로그램 안에서 경험하면서 지휘자의 호흡을 따라가고, 솔리스트와 오케스트라 사이의 균형을 만들어가는 과정까지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지휘자를 믿고 따라가야 하지만 솔리스트도 들어야 해요. 솔로 파트를 잘 모르면 따라가기가 정말 어려워요. 지휘자를 믿으면서도 내가 들으면서 가야 하거든요.”
특히 협주곡에서는 솔리스트의 연주 역시 매번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솔리스트도 AI처럼 일정하게 연주하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때는 다르게 하고 또 어떤 때는 다르게 하죠. 그 미세한 변화에 맞춰서 따라가야 해요. 그런 부분에서 젊은 음악가들이 많이 배울 것 같아요.”
멘티들이 이끌어가는 오케스트라가 돼야
PFO는 멘티들이 오케스트라의 주축이 되어 창단 연주회를 이끌어간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멘토링을 통해 젊은 음악가들의 성장을 돕고, 실제 무대에서는 이들이 연주와 앙상블의 중심에 선다.
일부 멘토들은 연주자로도 참여한다. 주연경은 객원악장으로, 진예찬(트럼펫)과 김형주(호른)는 객원 수석으로 멘티들과 함께 무대를 완성할 예정이다. 멘티들이 중심을 이루고 경험을 갖춘 연주자들이 함께 호흡하며 무대를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주연경은 젊은 연주자들이 오케스트라의 주체로 성장하는 데 이번 프로젝트의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들이 하는, 그들이 이끌어가는 오케스트라가 돼야 할 것 같아요. 결국 무대를 이끌어가는 주체는 젊은 연주자들이어야겠죠.”
그는 과거 비슷한 프로그램에서 젊은 연주자들의 열정을 직접 경험했던 기억도 떠올렸다.
“대학생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였는데 정말 열심히 하더라고요. 늦게까지 남아서 연습하고요. 오히려 제가 많이 놀랐어요. 어린 친구들은 오케스트라를 별로 안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다들 솔리스트가 되려고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정말 오케스트라를 좋아하고 열정적이더라고요. 저도 그때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한국에서 끝나지 않고 아시아로 뻗어나가는 출발점 되길
PFO가 한국을 넘어 아시아 청년 음악가들이 함께 배우고 교류하는 국제 오케스트라를 지향한다는 점에도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 부분은 한상일 선생님만이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외국으로 나가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잖아요. 그런 점이 멋있다고 생각해요.”
음악은 국경을 넘어 사람을 연결하는 언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클래식 음악이 한국에서만 머무르기보다는 정말 많은 사람과 교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PFO의 의미는 한 번의 공연에 그치지 않는다. 함께 연주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이 또 다른 무대에서 만나고, 국경을 넘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 있다.
“오케스트라에서 맞춰 나가고, 조화를 이루고, 듣는 능력을 키우고, 스코어를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같이하는 친구들과의 관계도 중요해요.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사람 사는 세상과 비슷하잖아요.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니까요.”
그는 PFO가 젊은 음악가들에게 새로운 관계와 무대를 연결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했다.
“그 오케스트라에서 만난 친구들과 사회적인 관계를 만들어가고, 또 다른 무대에서 만날 수도 있고, 외국에서 다시 만날 수도 있죠. 그렇게 뻗어나가는 과정 자체가 성장 과정인 것 같아요. PFO가 그런 면에서 하나의 시작점, 출발점이 되면 정말 좋겠습니다.”
PFO 창단 연주회는 2027년 1월 17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한상일이 예술감독 겸 지휘자를 맡으며, 피아니스트 오쿠이 시오와 루엉 칸 니가 협연한다. 쇼스타코비치와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5번을 통해 젊은 연주자들이 함께 만들어갈 첫 무대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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