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인터뷰] “박규희, 세 번의 운명... 하나의 음악”
리여석·피에리·프리드리히, 그리고 스페인 - 그녀를 만든 이름들 박규희 데뷔 15주년 기념 리사이틀, 예술의전당 IBK챔버홀(9/24)
해외 이민자들 사이에선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공항에 마중 나오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 사람의 직업이 결정된다.”예를 들어 세탁소에서 일하는 사람이 마중을 나오면 세탁소 일을, 슈퍼마켓 주인이 나오면 슈퍼마켓 일을 하게 된다는 것. 실소를 자아내는 이야기지만, 이 말에는 꽤나 현실적인 통찰이 담겨 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오는 9월, 데뷔 15주년 기념 리사이틀을 앞두고 있는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 그녀 역시 예술가로서의 길을 결정짓는 중요한 만남을 세 번이나 경험했다. ‘만남
해외 이민자들 사이에선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공항에 마중 나오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 사람의 직업이 결정된다.”
예를 들어 세탁소에서 일하는 사람이 마중을 나오면 세탁소 일을, 슈퍼마켓 주인이 나오면 슈퍼마켓 일을 하게 된다는 것. 실소를 자아내는 이야기지만, 이 말에는 꽤나 현실적인 통찰이 담겨 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오는 9월, 데뷔 15주년 기념 리사이틀을 앞두고 있는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 그녀 역시 예술가로서의 길을 결정짓는 중요한 만남을 세 번이나 경험했다. ‘만남이 곧 운명’이라는 말은 그녀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기타 그리고 첫 운명 리여석
기타와의 첫 만남은 제가 세 살 때, 일본에 살고 있던 시절이었어요. 제 키만 한 기타를 겨우겨우 들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현을 튕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어린 나이에 시작하기엔 다소 유난스러웠던 취미였죠(웃음).
사실 저희 어머니가 비틀즈의 열렬한 팬이셨어요.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태교 음악으로 비틀즈를 들려주셨을 정도였죠. 말하자면 저는 ‘비틀즈 키즈’였던 셈이에요. 당시 세 살이던 저는, 비틀즈 곡을 치고 싶었던 어머니 덕분에 기타 학원을 찾게 되었고, 마침 유아도 수강할 수 있다는 말에 어머니의 결정으로 생애 처음 기타를 접하게 됐어요. 그렇게 제 운명의 시간이 시작됐답니다.
이후 인천으로 이사한 뒤, 다섯 살 무렵 어머니의 지인을 통해 리여석(본명 이은철, 85세) 선생님을 소개받게 됐어요. 선생님은 지금까지도 현역에서 기타오케스트라를 이끌며 왕성히 활동 중이시고, 2020년에는 50주년 기념 공연도 성황리에 마치셨어요. 저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기타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됐고, 리여석 선생님과의 만남이 제 인생의 첫 번째 운명이 되었죠.
두 번째 운명, 전설과의 만남
예원학교를 졸업한 후 저는 일본 도쿄음악대학에서 수학했고, 이후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악대학에 진학해 세계적인 기타 거장 알바로 피에리(Alvaro Pierri, 1952)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분과의 만남이 제 인생의 두 번째 운명이라고 할 수 있죠.
고등학생 시절, 피에리 교수님의 음반을 들으며 막연히 꿈을 키웠던 저는 그때부터 그분을 동경했어요. 말하자면, 저에겐 음악 인생의 ‘첫사랑’ 같은 존재였죠. 그러던 어느 여름방학, 도쿄에서 공부하던 중 일본의 스승님께서 유럽의 작은 국가 리히텐슈타인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에 참가하시게 되었고, 마침 피에리 교수님도 그 자리에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저는 주저하지 않고 함께 따라나섰죠. 그렇게 제 인생의 첫 유럽 여행지가 된 리히텐슈타인에서, 정말 꿈에서나 그리던 전설과 마주하게 되었어요.
알바로 피에리 교수님은 본래 대학 교수 이전에, 로베르토 아우셀과 에두아르도 페르난데즈와 함께 남미 3대 연주자로 불릴 만큼 연주자로서 명성이 자자한 분이에요. 클래식 기타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신적인 존재나 다름없죠. 저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드디어 마스터 클래스 시간이 되자, 저는 준비한 곡을 연주했어요. 하지만 너무 긴장한 탓에 어떻게 연주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분 앞에 서 있다는 사실 자체가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만큼 벅찼고, 머릿속이 하얘졌죠. 수업이 끝난 뒤, 교수님이 저에게 물으셨어요.
“넌 어떻게 연주하고 싶은 거니? 왜 이렇게 치고 있니?” 그 순간 저는 얼어붙었고, 아무런 대답도,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어요. 부끄럽고 창피했던 그 시간이 아직도 생생해요.
하지만 그 순간, 저는 하나의 결심을 하게 됐어요. “무조건, 하루라도 빨리 이분께 배우러 다시 와야겠다.” 그렇게 마음을 정한 뒤, 곧 도쿄음대를 중퇴하고 바로 유학 준비를 시작해 이듬해 빈 국립음악대학에 입학하게 됐어요.
그리고 다시 마주한 피에리 교수님은 다행히 저와 제가 연주한 곡까지 기억하고 계셨어요. 저는 그날의 연주가 너무 형편없었다고 생각했지만, 교수님은 오히려 “재능이 있어서 기억한다”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 말씀을 계기로, 저는 교수님의 따뜻한 지도와 사랑 속에서 기타에 더욱 몰두할 수 있었죠.
피에리 교수님은 제가 어떤 점에서 좋은 연주자인지, 무엇을 잘하는지를 명확히 짚어 주셨어요. “넌 이걸 잘해. 너의 강점은 바로 이거야.” 그렇게 제 안에 숨어 있던 가능성과 잠재력을 하나하나 이끌어 주셨어요.
일본에서는 수많은 콩쿠르에 참가했지만, 늘 ‘1등 없는 2등’이라는 결과를 받아야 했어요. 마치 “네 한계는 여기까지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죠. 한국인으로서 일본에서 실감한, 넘기 어려운 벽이 있었어요.
하지만 알바로 피에리 교수님을 만나면서 비로소 음악적인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었고, 진짜 자신감을 갖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어요. 유학 2년 차부터 국제 콩쿠르에서 연이어 1등을 차지했고, 이후 7~8년 동안 1등 9회를 포함해, ‘1등 없는 2등’까지 총 10번의 우승을 경험했어요.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누구를 만나느냐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껴요. 가족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한 선생님과의 훈련 과정 속에서 저는 점점 단련되었고, 전사가 되어갔죠.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참 많은 복을 타고난 사람인 것 같아요. 흔히 ‘만남의 축복’이라고 하잖아요. 저에게는 기타의 기초를 다져주신 리여석 선생님, 그리고 저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이끌어주신 알바로 피에리 선생님이 계셨어요. 두 분 모두 저만의 색깔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죠.
세 번째 운명, 다니엘 프리드리히
알바로 피에리 선생님과 저는 같은 기타를 연주하고 있어요. 바로 명기타 제작자 다니엘 프리드리히(Daniel Friederich, 1932–2020)의 손에서 탄생한 걸작이죠. 제가 사용하는 악기는 2009년에 제작된 모델이에요.
당시 학생이었던 저는 감히 가질 수 없는 악기였는데, 교수님께서 이 기타라면 제 실력이 크게 향상될 거라며 저를 위해 특별히 주문해 주셨죠. 그 시절엔 프리드리히가 오직 거장들을 위한 주문만을 받았고, 중고 악기만이 거래된다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악기가 제 손에 들어와 있었어요. 정말 꿈만 같았죠.
콩쿠르에 나가면 대기실에서 사람들이 다가와 “악기를 한번 만져봐도 될까요?” 하고 묻는 경우도 종종 있었어요. 그만큼 이 기타의 명성은 대단했어요.
프리드리히의 기타는 음색 자체가 무척 섬세해요. 손가락 각도나 힘의 미세한 1~2도 차이만으로도 소리의 결이 완전히 달라지고, 연주하는 공간에 따라서도 민감하게 반응하죠. 같은 음을 반복해 연주해도 손가락의 움직임이나 튕기는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감각이 전해져요.
그만큼 예민하고 섬세한 악기라 아주 미세한 감정의 결까지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어요. 다른 기타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섬세함이죠. 오직 저만을 위해 제작된, 저만의 맞춤형 기타였어요. 이 악기와의 만남은 제 인생의 세 번째 운명 같은 순간이었고요, 지금도 언제나 제 곁에서 든든히 저를 지지해주는 분신 같은 존재예요.
저에게 아낌없는 가르침과 무한한 지지를 보내주셨던 두 분의 스승님, 그리고 명기 프리드리히와의 만남은 오늘의 저를 있게 한 놀라운 인연이자, 인생의 큰 축복 같은 운명이었어요. 이런 만남이 운명이 아니라면, 무엇이 운명이겠어요?
태양의 나라 ‘스페인’
세 번째 운명인 프리드리히와의 만남까지, 제 인생은 그렇게 세 번의 놀라운 ‘만남’을 통해 기타리스트로서 성장해 왔어요. 그리고 이제, 그 여정에서 마주한 모든 감정과 경험을 관객 여러분과 함께 나눌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는 9월, 데뷔 15주년을 맞아 저는 ‘스페인’을 주제로 한 리사이틀을 준비하고 있어요.
스페인 하면 무엇보다 기타의 종주국이 떠오르죠. 기타는 한때 가난한 이들의 애환을 달래주던, 삶에 가장 가까운 악기였어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와 단순한 손재주만으로도 만들 수 있었기에, 누구나 기타를 손에 쥘 수 있었죠. 집시들의 음악이기도 했고요. 그래서인지 춤과 음악이 유독 발달한 곳이기도 해요.
스페인에는 아직 우리가 모르는 기타 음악이 정말 많아요. 그런 수많은 곡들을 찾아내고 세상에 알리는 일이 바로 저 같은 기타리스트에게 주어진 숙제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새로운 곡을 만날 때마다 늘 설레고, 정말 신나요.
작년에는 바흐 음반을 발매하면서, 투어 콘서트를 통해 바흐의 곡을 기타로 편곡한 트랜스크립션(transcription) 음악을 선보였어요. 이번에는 기타의 순수한 오리지널 곡들을 들려드리고 싶었고, 그래서 ‘스페인’을 주제로 정하게 됐어요.
진짜 기타의 매력이 무엇인지, 본능에 가까운 열정으로 음악을 빚어낸 스페인 작곡가들의 작품을 통해, 관객 여러분을 ‘태양의 나라’로 초대하려고 해요.
세고비아와 깊은 교류를 나눴던 페데리코 모레노 토로바(Federico Moreno Torroba),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으로 잘 알려진 타레가의 제자 미겔 요벳(Miguel Llobet), 그리고 마누엘 데 파야(Manuel de Falla) 등 스페인을 대표하는 작곡가들의 곡을 중심으로,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그들만의 자유롭고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관객 여러분께서는 마치 흥미로운 영화 한 편을 보듯 가볍게 오셔서, 저와 함께 스페인으로 음악 여행을 떠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웃음)
인터뷰를 마치고…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개성 있는 이미지, 그리고 국내외를 넘나들며 가장 활발한 활동과 주목을 받는 클래식 기타리스트. 단연 박규희다.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외모와는 달리,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과 에너지는 마치 하나의 오케스트라 같다. 하지만 박규희는 여전히 음악에 ‘배고프다’. 아직 익혀야 할 곡들이 너무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끝이 없다고 말한다.
다가오는 9월, 데뷔 15주년을 기념하는 리사이틀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녀의 심장은 이미 20주년을 향해 박동하고 있다.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대사처럼, “음악을 한다는 건 악보 속에서 자기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박규희는 오늘도 자신만의 답을 향해, 한 음 한 음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About 박규희
박규희는 알람브라 콩쿠르를 포함해 총 아홉 차례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일찍이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벨기에 프렝탕 국제 기타 콩쿠르에서는 최초의 여성이자 아시아인 우승자로 기록됐고, 2012년 스페인 알람브라 콩쿠르에서는 1위와 청중상을 동시 수상하며 낙소스 레이블과의 앨범 발매, 스페인 전역 투어를 성사시켰다.
뉴욕 카네기홀 데뷔를 비롯해 세이지 오자와, 파비오 루이지 등 세계적 지휘자들과 협업하며 일본과 러시아 등지의 오케스트라와 활발한 무대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 클래식 전문지 <Ongaku no Tomo>가 선정한 ‘올해의 명연주’에 클래식 기타리스트로는 이례적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음반 작업에서도 꾸준한 행보를 이어온 그녀는 2010년 Fontec 레이블에서 첫 앨범 Sueño를 발표한 이후, Sonata Noir, Spanish Journey, El Ultimo Trémolo 등을 통해 섬세한 스페인 레퍼토리 해석으로 주목받았다. 2013년 낙소스(NAXOS)에서 발매한 Guitar Recital은 국제 콩쿠르 우승의 결실이자 세계 무대에서의 입지를 다진 음반이다.
이후 Saudade, 베스트앨범 Favorite Selection, Harmonia 등을 통해 음악 세계를 확장했으며, 2020년부터는 Music&ArtCompany와 함께 Le Départ, Letters(베스트앨범), The Live(라이브 앨범), Two Guitars(미니앨범) 등을 선보였다. 가장 최근작인 Bach(2024, Denon)에서는 바흐 트랜스크립션 곡들을 담아 깊이 있는 해석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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