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시사칼럼] 민주주의에 성역은 없다
부마민주항쟁 47주년 기념일을 맞아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은 권력이 국민의 자유와 존엄을 억압할 때 시민이 어떻게 저항하고 민주주의의 길을 열어 가는지를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다. 그날의 외침은 오늘도 열린 사회를 지향하며 민주주의를 '지켜야' 할 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질문하고, 비판하고,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
철학자 칼 포퍼는 그의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특정한 이념이나 역사적 신념을 절대적 진리로 내세우고, 그 진리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는 사회의 위험성을 지적한 바 있다. 열린 사회란 누구도 오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권력자도, 정치인도, 정당도, 정부도, 다수의 여론도 잘못할 수 있다. 그렇기에 어떤 주장과 정책도 비판과 검증의 대상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맞다. 모든 인간도 제도도 오류를 범할 수 있는 불완전한 것이기에, 어떤 이념이나 권력도 절대적 진리를 독점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포퍼는 비판과 토론, 자유로운 반론이 보장되고 잘못된 정책과 권력을 평화롭게 교체·개선할 수 있는 사회가 ‘열린 사회’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핵심은 단순히 다수결로 통치자를 뽑는 데 그치지 않고, 권력의 잘못을 시민이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제도적으로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선거를 통해 권력을 위임받았더라도 그 권력은 끊임없이 감시받아야 하며, 시민은 언제든 권력의 잘못을 지적하고 변화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포퍼의 열린사회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 역시 여기에 있다. 권력을 누가 차지하느냐만큼 중요한 것은 권력이 잘못했을 때 그것을 평화롭게 비판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제도와 문화이다.
그래서 민주주의에 성역은 없어야 한다. 대통령도, 국회도, 지방정부도, 정당도, 시민사회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민주화의 역사와 그 정신을 계승한다는 명분 역시 비판을 면제받는 특권이 될 수 없다.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주장도 민주주의의 원칙에 비추어 검증받아야 한다. 자신에게 동의하는 목소리만 허용하고 반대하는 목소리를 배척한다면, 민주주의의 이름을 내걸더라도 열린 사회의 정신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비판의 자유가 타인에 대한 모욕과 위협, 허위사실의 유포까지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비판의 자유는 사실과 근거에 기초한 토론, 타인의 권리와 존엄에 대한 존중과 함께할 때 더욱 굳건해진다. 중요한 것은 불편한 의견이라는 이유만으로 '입틀막' 하지 않는 것이다. 비판에 대한 답은 침묵의 강요가 아니라 더 나은 논증과 설명이어야 한다.
그래서 부마민주항쟁의 정신을 기린다는 것은 항쟁의 역사를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항쟁이 요구했던 자유와 민주주의를 오늘의 정치와 행정, 사회 곳곳에서 실천하는 일이다. 시민의 비판을 불편해하는 권력, 내부의 이견을 용납하지 못하는 정당, 반대 의견을 적대시하는 정치문화가 있다면 우리는 그 앞에서 다시 민주주의의 본령을 물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비판이 사라진 곳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비판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성장한다. 권력을 향한 질문이 자유롭고, 소수의 목소리가 존중되며, 불편한 진실도 공론의 장에서 논의될 수 있어야 열린사회이며, 우리가 부마민주항쟁의 역사에서 이어받아야 할 민주주의의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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