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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아의 섬데이 서울] 우리는 어쩌면 사모아에서 태어났을 지도 모른다
[시사매거진 박재아 기자] 사모아가 우리나라와 무슨 상관이 있겠나 싶겠지만, 어쩌면, 아주 어쩌면 우리는 사모아에서 태어났을 지도 모른다. 두 개의 사모아남태평양에 두 개의 사모아가 있다. 독립국 사모아와 미국령으로 남아있는 미국령 사모아다. 우리나라처럼 분단이 된 나라인데, 자발적 분단이라 상황은 좀 다르다. 두 나라 사이의 거리는 220 km 밖에 안 되는데, 시차는 무려 24시간이나 난다. 폴리네시아의 따뜻한 정서와 독특한 문화, 아름다운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곳이라 죽기 전에 한 번 쯤 꼭 가보기를 추천드리는 곳이지만, 참으
[시사매거진 박재아 기자] 사모아가 우리나라와 무슨 상관이 있겠나 싶겠지만, 어쩌면, 아주 어쩌면 우리는 사모아에서 태어났을 지도 모른다.
두 개의 사모아
남태평양에 두 개의 사모아가 있다. 독립국 사모아와 미국령으로 남아있는 미국령 사모아다. 우리나라처럼 분단이 된 나라인데, 자발적 분단이라 상황은 좀 다르다. 두 나라 사이의 거리는 220 km 밖에 안 되는데, 시차는 무려 24시간이나 난다.
폴리네시아의 따뜻한 정서와 독특한 문화, 아름다운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곳이라 죽기 전에 한 번 쯤 꼭 가보기를 추천드리는 곳이지만, 참으로 머나멀다. 한 때 대한항공이 피지까지 직항을 띄운 적이 있었다. 2005년 부터 2018년 까지니 꽤나 오랜 기간이다. 이 때 피지를 경유해 사모아로 신혼여행을 간 분들이 종종 있긴 했다. 독립국 사모아에서 미국령 사모아까지는 비행기로 30분도 채 안 걸리는데 당시에는 비자 받기가 쉽지 않아 여행상품으로는 판매되지 않았다. 지금은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30일까지 체류 가능한 관광비자로 손쉽게 방문이 가능해졌지만, 이동이 만만치 않아졌다.
아무튼, 독립국이던 미국령이던 도대체 사모아가 우리나라와 무슨 상관이 있겠나 싶겠지만, 어쩌면, 아주 어쩌면 우리는 사모아에서 태어났을 지도 모른다.
참 고마운 남태평양 참치
우리는 태평양에 큰 빚을 졌다. 원양어선 조업으로 벌어들인 외화가 한국경제 성장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원양어업 60년 회고록'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66달러이던 시절, 1960년대 원양 어선으로 벌어들인 외환은 20억 달러에 달했다.
'지남호'라는 배 한 척으로 시작한 원양어업은 정부의 과감한 투자와 지원 정책에 힘입어 1970년 대부터 20년간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연간 어획량은 최대 100만 톤에 달했다.
1971년 참치산업은 총 수출액의 5%를 차지했다. 이는 현재 주요 수출 품목인 휴대폰(6%), 철강제품(5.8%), 석유제품(5.3%), 자동차 부품(5%) 등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1976년 원양어업으로 벌어들인 외화는 2억 6천만 달러로 당시 13만 가구의 소득을 합친 것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원양어업의 외화 획득 액은 1966년부터 1991년까지의 명목 국민 총소득(GNI)의 0.1% 이상을 차지해 파독 광부나 간호사의 송금액보다 경제적 기여도가 훨씬 컸다.
사모아 먹여 살리는 스타키스트
한국 원양어선이 가장 많이 진출하던 시기인 1970년대에는 잡은 참치를 참치캔 가공 공장에 납품하기 위해 사모아 팡오팡오(Pagopago)항에 정박한 한국 배가 250척, 당시 승선한 한국인 선원 수가 3천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미국령 사모아에는 세계적인 참치 통조림 제조회사인 스타키스트(Starkist)가 있는데 동원산업이 2008년 당시 미국의 제 1위 참치가공 업체인 이 회사를 인수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스타키스트는 약 2,500의 현지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참치 통조림은 하루 약 10만 톤이며 전량 미국으로 수출되고 있는데, 이는 미국 참치 통조림 시장 점유율의 44%나 된다.
바다를 향해 잠들다
과거 한국 원양어업의 메카였던 사모아에는 망망대해에서 거친 파도와 싸우며 조업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여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잠들어있는 한국 선원들의 묘지 87기가 안장되어 있다. 네 곳 중 한곳을 다녀왔는데 안내자 왈, 이 섬에서 가장 풍경이 좋은 목이라고 한다. 비석들이 모두 바다를 향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두고 온 처자식과 고향이 사무치게 그리웠을 텐데 죽어서라도 외로움을 달래며 안식을 취하시기를 묵념으로 빌었다.
"쩌~어그 사모아 가는 배 지나간다"
당시 조업을 하러 오신 분들 중 전라도 출신 선원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중에서도 신안군에서 오신 분들이 특히 많았다던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섬이 많은 곳이라 아무래도 바다지 일에 익숙했던 분들이리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3,348개의 섬이 있는데 시도별로 가장 섬이 많은 곳은 전라남도로 1,676개가 있다. 이중 신안에 무려 1,026개의 섬이 있다.
사모아까지 가려면 인천에서 홍콩 혹은 일본으로 가서 피지까지 가는 비행기를 타고, 피지에서 사모아로 가서, 사모아에서 또 비행기를 타고 미국령 사모아로 넘어가야 한다. 순수 비행시간만 따져도 15시간인데, 당시에는 얼마나 더 멀게 느껴졌을까? 선원들의 아이들은 큰 배가 지나갈 때마다 "저 배는 사모아로 가는 배인갑다" 하고 잘 보이지도 않는 배를 향해 팔이 빠지도록 손을 흔들어 댔다고 한다.
"한국을 사모아 群島로 옮겨라"
1950년 12월 미국은 한국 포기 계획을 세운다. 6·25전쟁 당시 맥아더 장군이 파견한 월튼 워커 중장은 전쟁으로 대한민국이 패망하면 이승만 등 대한민국의 주요 인사들을 미국령 사모아로 피난시켜 망명 정부를 구성하려는 계획을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982년에 나온 '한국전 비화(韓國戰 秘話)'(조셉 C. 굴든. 타임스 북스)에 따르면, 미국 합참 기획부서는 한반도에서 미군이 철수할 경우에 대비, 한국군과 한국인들의 처리 문제로 고심했다. 합참은 일단 군인을 포함한 한국인 32만8,000명을 해외로 데리고 가기로 한다. 문제는 이들을 어디로 옮기느냐였다. 일본은 제외되었다. 조총련이 활동적이고 한일(韓日) 민족감정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보았다. 미국령 사이판과 티니안도 제외되었다. 미군 기지의 안전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미(美) 합참이 잠정적으로 결정한 곳은 서(西)사모아 군도(群島)의 두 섬, 사바이와 우폴루였다. 두 섬은 약 800평방킬로미터이고, 인구가 1평방 마일 당 68명이었다. 합참은 이곳에 30여 만명의 한국인을 이주시켜 '뉴 코리아'를 만든다는 계획을 확정하였다. 이 계획을 비밀에 붙인 것은 새어나갈 경우 정치적 심리적 악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로 이 계획은 전면 무산됐다. 물론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전쟁이 지속되었다면 우리는 어쩌면 사모아에서 태어났을 지도 모른다.
박재아의 <섬데이 서울>은 '몰라서 몰랐던' 세계 섬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해당 내용은 <시사매거진> 당사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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