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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니리, “그의 영원한 블루스”

싱글 앨범 ‘쟈니 블루스’ 발매를 앞두고 photo by 최윤하 작가, Kon ll Pause editor Mari Kim

[시사매거진] “나는 음악이 너무 좋아요” 데뷔 65주년을 맞은 노장의 첫 소감이다. 선글라스 너머 반짝이는 눈빛과 손짓 그리고 잔잔한 음성까지 그 모든 것들이 지난 세월이 담긴 또 다른 의미처럼 다가왔다. 곧 신곡 앨범 발매를 위해 작업에 매진 중인 그를 만나보았다.쟈니리(Johnny Lee), 그는 누구인가?그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산역사의 증인으로 중국 상하이에서 유아기를 보냈다. 6.25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평안남도에서 소학교를 다녔으며, 그의 어릴 적 추억이라곤 전쟁 후 잿더미가 된 한반도와 떠돌이 생활의 서러움, 그

가수 쟈니리(Johnny Lee), 신곡 '쟈니 블루스'를 부르고 있다. (사진=최윤하 작가, Kon ll Pause)
가수 쟈니리(Johnny Lee), 신곡 '쟈니 블루스'를 부르고 있다. (사진=최윤하 작가, Kon ll Pause)

[시사매거진] “나는 음악이 너무 좋아요” 데뷔 65주년을 맞은 노장의 첫 소감이다. 선글라스 너머 반짝이는 눈빛과 손짓 그리고 잔잔한 음성까지 그 모든 것들이 지난 세월이 담긴 또 다른 의미처럼 다가왔다. 곧 신곡 앨범 발매를 위해 작업에 매진 중인 그를 만나보았다.

쟈니리(Johnny Lee), 그는 누구인가?

그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산역사의 증인으로 중국 상하이에서 유아기를 보냈다. 6.25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평안남도에서 소학교를 다녔으며, 그의 어릴 적 추억이라곤 전쟁 후 잿더미가 된 한반도와 떠돌이 생활의 서러움, 그리고 배고픔뿐이었다.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그는 “부모 없는 설움이 가득했던 유년 시절을 생각하면 몸서리 처진다”며 “주변으로부터의 학대와 외로움을 지울 수 없었다”고 회고한다. 특히 예술인을 갈망했던 어머니는 전국 각지로 공연을 하러 다니셨기에 그가 어머니와 함께한 추억은 많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6.25가 터지고 1.4후퇴 때 수많은 피난 인파에 떠밀려 어머니와 생이별을 하였다. 결국 그는 13살에 부모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고아가 되었다. 훗날 가수로 성공하기 전까지 가난과 외로움으로 힘겨운 삶을 살았던 그에게 많은 위로를 준 유일한 친구가 바로 ‘음악’이었던 것이다.

그는 때때로 지난 고생스러운 삶에 대한 생각과 부모님을 향한 그리움에 <뜨거운 안녕>(1966년, 백영진 작사 서영은 작곡)을 자주 부르곤 했다. 그가 살면서 가장 눈물을 많이 흘린 노래이기도 하다.

쟈니리, 그는 60년대 최고의 스타였고, ‘한국의 레이 찰스’ 혹은 ‘제임스 딘’이라고도 불렸다. (사진=최윤하 작가, Kon ll Pause)
쟈니리, 그는 60년대 최고의 스타였고, ‘한국의 레이 찰스’ 혹은 ‘제임스 딘’이라고도 불렸다. (사진=최윤하 작가, Kon ll Pause)

가수 쟈니리(이영길, 1938)를 애칭하는 이름들은 시대적으로 수많았다. 그는 60년대 최고의 스타였고, ‘한국의 레이 찰스’ 혹은 ‘제임스 딘’이라고도 불렸다. 당시 젊음의 상징이자 반항의 아이콘이었던 그는 청바지를 유행시킨 장본인이기도 했다. 찢어진 청바지에 운동화, 장발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을 정도였다.

이런 그의 예술인생 시작은 1959년에 극단 '쇼보트'의 단원으로 데뷔였다. 그 후 1961년에 미 8군 무대에서 가수로 활동하며, 1966년에 <뜨거운 안녕>, <통금 5분전>등 여러 히트곡을 남겼다. 그리고 최근 2021년에 신곡 <바보사랑>을 발표했으며, 오는 11월에 <쟈니 블루스> 싱글 앨범 발매를 예정하고 있다.

가수 쟈니리(Johnny Lee), 신곡 '쟈니 블루스' 11월 싱글 발매를 예정하고 있다. (사진=최윤하 작가, Kon ll Pause)
가수 쟈니리(Johnny Lee), 신곡 '쟈니 블루스' 11월 싱글 발매를 예정하고 있다. (사진=최윤하 작가, Kon ll Pause)

새로운 가족

부산항 부둣가,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의 추위 속에 떨고 있던 어린 그에게 ‘새 가족’이라는 인연이 찾아왔다. 6·25 전쟁 당시 군수물자 운송을 담당하던 미국인 사령관(랙스 무섬)이 그를 양아들로 입양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미국 생활이 시작되었다. 넓은 집과 호화로운 주변 환경들 속에서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풍요하고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 지금도 그는 그 시절을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다’는 것이 무엇이며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고 반추한다.

피아노를 치며 노래 부르는 것을 즐겨 하셨던 양부와 생활하면서 미국의 재즈와 스탠더드 팝송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아들의 목소리가 미국의 천재 가수 쟈니 마티스(Johnny Mathis)를 닮았다 하여 양부가 지어준 이름이 ‘쟈니’였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는 그 당시의 음악들이 쟈니리의 음악적 자산이 되었다. 그렇게 양부의 노래를 따라 부르다 처음으로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항상 음악 있는 곳에 쟈니리를 데리고 다니셨다. 그러나 입양된 지 3년 만에 양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불행이 찾아왔다. 영원할 것 같았던 따스한 행복의 순간들은 끝이 나고 그는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가수 쟈니리(Johnny Lee), 신곡 '쟈니 블루스'를 부르고 있다. (사진=최윤하 작가, Kon ll Pause)
가수 쟈니리(Johnny Lee), 신곡 '쟈니 블루스'를 부르고 있다. (사진=최윤하 작가, Kon ll Pause)

내일은 해가 뜬다

그의 고난은 다시 이어졌다. 결혼하자마자 그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식도암과 임파선암 판정으로 남은 삶이 막막했으나 현재 아내의 극진한 간호와 정성이 그를 다시 살게 했다. 훗날 그는 "난 보헤미안처럼 자유롭게 산 자유인이었지만 이제는 내 곁에 집사람이 있어 그 자체가 행복"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파란만장한 우여곡절의 그의 인생사는 매일 뜨고 지는 태양을 닮았다. 그의 히트곡이었던 <내일은 해가 뜬다>(1966년, 김문응 작사 길옥윤 작곡)가 그의 삶을 이야기한다.

가수 쟈니리 (사진=최윤하 작가, Kon ll Pause)
가수 쟈니리 (사진=최윤하 작가, Kon ll Pause)

이 노래는 제3공화국 박정희 정권 시절에 금지곡으로 지정돼 그의 힘겨웠던 삶처럼 어려움을 겪은 곡이다. 이후 여러 후배 가수들에 의해서 수차례 리메이크 되었는데 특히 들국화(전인권)의 ‘사노라면’이라는 곡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추후 대중에게 잊혔던 오리지널 가수 쟈니리의 이름이 밝혀져 재조명을 받았다. 이후 2021년 MBC '복면가왕'에 출연해 김현식의 <사랑했어요>,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불러 3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를 계기로 신곡 <바보 사랑>을 발표해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가수 쟈니리와 작사가 이사벨(좌), 작곡가 이유희 (우) (사진=최윤하 작가, Kon ll Pause)
가수 쟈니리와 작사가 이사벨(좌), 작곡가 이유희 (우) (사진=최윤하 작가, Kon ll Pause)

‘쟈니 블루스’ (작사 이사벨, 작곡 이유희)

11월에 발매를 예정하고 있는 ‘쟈니 블루스’는 싱글 앨범에 실리는 곡명이다. 이사벨 작사, 이유희 작곡으로 가수 쟈니리의 인생사를 옮겨 놓은 듯 소울이 충만한 곡이다. 작사가 이사벨은 “선생님에 관한 여러 방송 등을 보면서 역경을 헤쳐나가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이후 선생님의 인생사를 담은 노랫말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분의 인생을 담은 3분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작곡가 이유희는 “최대한 선생님의 보컬을 생각하면서 곡을 쓰기는 했지만 완성시키는 것은 쟈니리 선생님”이라며 “리듬앤 블루스는 노래 부르는 사람에게 가서야 결국 그 사람의 블루스로 완성되는 거죠”라고 <쟈니 블루스>에 관해 설명했다.

가수 쟈니리 (사진=최윤하 작가, Kon ll Pause)
가수 쟈니리 (사진=최윤하 작가, Kon ll Pause)

‘너무 그리워하다가 가슴에 먼지가 쌓였다’라는 흉중생진(胸中生塵), 바로 이 곡에 대한 필자의 느낌이다. 리듬앤 블루스 스타일의 이 곡은 가수 쟈니리의 인생사를 담은 3분 히스토리이다. 그 안에 얼굴을 알 수 없는 생부에 대한 그리움, 전쟁으로 인해 생이별을 해야만 했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자신에게 ‘행복’을 알게 해준 양부에 대한 그리움 등이 아직도 그의 가슴에 먼지가 되어 머물러 있다.

여전히 후배 가수들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지금도 연습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가수 쟈니리, 그는 누구보다도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매일매일 운동을 반복하고 발성과 노래의 스킬을 다듬으며 자신만의 소울을 유지하는 그의 모습을 볼 때 거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실감한다.  

가수 쟈니리 (사진=최윤하 작가, Kon ll Pause)
가수 쟈니리 (사진=최윤하 작가, Kon ll Pause)

인터뷰를 마치고…

가왕 쟈니리, ‘인생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고 말한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말이 생각난다. 그의 험난했던 지난 개인사는 참으로 쉴 틈이 없었다. ‘행복’이라는 친구를 사귈 때면 이내 ‘불행’이라는 불청객이 그를 찾았다. 그때마다 그는 죽어라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그러기에 오늘날 쟈니리가 있다.

여러 행복 중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평생 즐기면서 하는 일이 바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낀다’는 ‘행복(幸福)’이라고 한다. 지금 그는 그렇게 노년을 즐기고 있다. “음악이 너무나 좋아요”라는 말이 그의 온 마음을 대변하듯 현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의 모습이 바로 진정한 행복으로 보인다. 

가수 쟈니리 (사진=최윤하 작가, Kon ll Pause)
가수 쟈니리 (사진=최윤하 작가, Kon ll Pa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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