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뿐인 ‘#덕분에’챌린지 대신, 간호사 인력난 해결이 우선
간호 수 OECD 평균 대비 1.5배인데 반해 활동 간호사는 평균 이하 입사 1년 이내 신규 간호사의 이직률 45.4%달해 간호사 면허 소지자 중 단 절반만 병원에서 일해…
[시사매거진281호] 지난 10월 25일 간호사 1명당 담당 환자수를 제한하는 ‘간호인력 인권 향상을 위한 법률’ 국민동의청원이 10만 명 동의를 받아, 법제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에 국회는 10만 명의 동의를 얻은 해당 청원을 소관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에 넘겼다고 밝혔다.지난 2018년 2월 15일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 중이던 故 박선욱 간호사(27)가 송파구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진 채로 발견됐다. 고인이 병원에 입사한지 5개월 만의 일이였다.투신 20여분 전 고인은 “‘할 수 있다’라는 말로 버텨왔습니다. 하루에 서너
[시사매거진281호] 지난 10월 25일 간호사 1명당 담당 환자수를 제한하는 ‘간호인력 인권 향상을 위한 법률’ 국민동의청원이 10만 명 동의를 받아, 법제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에 국회는 10만 명의 동의를 얻은 해당 청원을 소관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에 넘겼다고 밝혔다.
지난 2018년 2월 15일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 중이던 故 박선욱 간호사(27)가 송파구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진 채로 발견됐다. 고인이 병원에 입사한지 5개월 만의 일이였다.
투신 20여분 전 고인은 “‘할 수 있다’라는 말로 버텨왔습니다. 하루에 서너 시간의 잠과 매번 거르게 되는 끼니로 인해 점점 회복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라는 미처 완성되지 못한 메모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사망 전 친구와 나눈 대화에는 “업무를 하는데 설명을 하나도 못 들어봤다, 무서워서 물어보지 못하겠다, 스트레스가 가득해 정신을 못 차리겠다.”는 호소가 담겨있었다.
故 박선욱 간호사 사건이 시사 하는 바
대학을 졸업한 신입 간호사는 자신에게 배정된 프리셉터(preceptor)라 불리는 사수 간호사에게 2~3개월동안 1대1 교육을 받게 된다. 교육이 끝난 직후부터 별도의 테스트 없이 각자 환자를 담당하는 간호사로 독립한다.
그러나 신입 간호사 교육을 위한 인력을 별도로 배치하거나, 프리셉터의 업무를 완화해주는 등의 조치는 따로 없다. 프리셉터는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환자를 온전히 돌보는 동시에 신입 간호사를 교육해야 한다. 때문에 사수 간호사의 교육은 충실히 이뤄지기 어렵고, 받을 수 있는 교육의 양과 질도 천차만별이다.
3교대 근무를 하던 고인 박씨는 저녁 근무 시 오후 1시에 출근해 다음 날 새벽 1~2시, 늦으면 5시에 돌아왔다. 퇴근 후에는 부족한 교육을 보충하기 위해 공부해야 했고,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자지 못하는 일이 허다했다. 정신없이 일하면서 끼니를 자주 걸렀고 입사 후 몸무게는 5㎏이나 빠졌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고 박씨는 ‘독립’하게 된다.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느낀 상황에서 환자를 책임지게 된 것이다. 언젠가부터 고인은 “불안하고 심장이 떨려 출근하기 싫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숨지기 전 한 달 동안은 부쩍 “소송이 걸릴 수도 있다. 의료사고를 내면 특히 신입 간호사들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했다.
투신 이틀 전 박씨는 근무 중 환자의 자세를 바꿔주던 중 담즙을 빼내는 배액관을 빠지게 하는 실수를 했다. 다음 날 저녁 박씨는 병원 수간호사와 프리셉터를 만났고, 만남 후 12시간을 뜬눈으로 의료 소송에 대해 검색하며 초조해 했다.
업무압박감에 시달리던 박씨는 결국 오전 10시40분경 투신했다. 박씨는 이미 자신의 환자를 돌보느라 바빴던 선배 간호사에게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중환자 3명을 책임져야 하는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상황이었다. 대한중환자의학회에서는 중환자실 환자는 병이 중하기 때문에 간호사 한 사람이 한두 명의 환자를 맡는 게 적정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병원이라는 현장, 특히 박씨가 일했던 중환자실은 작은 실수로도 환자의 목숨이 위태로워 질 수 있다. 이 경우 환자들이 의료인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도 있고,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물리적 위해를 가할 가능성도 있다. 박씨는 이런 긴장감과 중압감 속에 하루 16시간을 근무해온 것이다.
해당 사건을 이른바 ‘태움’(‘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에서 나온 말,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괴롭힘 등으로 길들이는 규율을 지칭하는 용어)이 극단적 선택의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의 직업적 특성에 인력난으로 인한 과중한 업무가 겹치면서, 결국 자신과 남을 태우면서 일할 수밖에 없게 된 구조적 문제도 분명히 있다.
유족은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고 서울동부지법은 병원 측이 유족에게 3천 9백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신입 간호사인 박 씨에게 적절한 교육 없이 과중한 업무를 맡겼고, 이로 인한 압박감과 피로가 더해져 자살에 이르렀다.”며 병원 측에 40%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근로복지공단은 2019년 박 간호사의 사망을 산업재해로 인정하며 “적절한 교육 체계나 지원 없이 과중한 업무를 수행해 피로가 누적되고 우울감이 증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결론 내렸다.
면허 소지자의 단 절반만 병원서 근무
박씨의 사건이 있고 3년이 흘렀지만 ‘인력부족→ 숙련도저하→ 노동 강도 강화→ 이직률 증가→ 인력부족’의 악순환은 계속 되고 있다.
환자의 상태가 위중한 중환자실은 보통 간호사 1명당 환자 3명, 대학병원의 일반 병동은 간호사 1명당 12명에서 20명, 요양병원의 경우 많게는 간호사 1명이 40명의 환자를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한간호협회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간호사 1인당 평균 환자 수는 16.3명으로, 간호사 1인당 평균 5.3명의 환자를 돌보는 미국이나 스위스(7.9명), 영국(8.6명) 등과 비교하면 2~3배 많은 상황이다.
눈여겨볼 것은 2016년 기준 대학을 졸업한 신규 간호사 공급은 인구 1,000명당 35.0명으로 OECD 평균(26.5명)보다 높다는 점이다. 문제는 병원에 새로 들어온 신입 간호사의 절반이 채 1년을 채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2019년 간호사의 이직률은 15.4%인데 반해, 입사 1년 이내의 신규 간호사 이직률은 45.4%에 달했다.
떠난 간호사의 자리는 숙련 간호사가 아닌 신규 간호사로 다시 채워지면서 숙련도 저하 문제가 발생하고, 이는 다시 노동 강도 강화와 그로 인한 퇴사, 인력부족으로 돌아온다.
나순자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간호사들의 이직은 소극적인 저항이라고 생각한다. 신입직원의 절반이 그만두는 산업이 또 어딨나? 일이 너무 힘들다는 신호인데 간호사 스스로 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절을 고치는 대신 떠나려고만 한다”고 지적했다.
인력부족문제, 의료서비스 하락으로 이어져
2014년 벨기에, 잉글랜드, 핀란드 등 유럽 9개국 300개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환자 42만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간호사의 비율을 10% 높이면 환자 사망률이 7% 감소되었다는 결과가 있다.
2019년에는 전 세계 30개국에서 동시에 진행된 ‘간호가 환자 결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연구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등 491개 병원에 입원한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담당 환자가 1명이 증가할 때 간호사 업무가 가중되고 재입원률이 상승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외에도 다양한 연구에서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수를 낮출 경우 사망률, 재원률, 재입원률, 낙상, 투약오류 등이 감소한다고 밝혀졌다.
실제로 호주 퀸즈랜드 주에서는 간호사 인력배치 수준을 확대한 이후 환자 사망률을 12% 낮추고, 12%의 감염을 예방하는 효과를 보았다.
일찍이 간호사와 환자의 비율을 법으로 규정한 나라들이 있다. 199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간호사 한명이 1~5명의 환자만 돌보도록 간호사 최소 배치기준을 정하는 법을 만들었다. 2000년 호주 빅토리아주에서도 환자 대 간호사 비율을 법제화했다.
한국의 의료법에서도 간호사 1인당 환자 12명이라는 기준을 정해놓았지만 강제조항이나 처벌조항이 없어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간호사 인력난, 병원의 고용문제
95%에 달하는 민간병원들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병상 수에 비해 현저히 적은 규모로 간호사를 채용하고 있다. 적은 수의 간호사는 자연스럽게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과잉업무를 떠안게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병원이 간호사를 더 고용하면 재정적 보장을 하는 ‘간호등급제’를 20년 넘도록 시행해왔다. 그러나 간호관리료를 받는 것보다 간호인력의 인건비를 절감하는 것이 더 큰 이익이 되기 때문에 간호등급제의 효과는 미비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더 많은 의료 인력이 필요해지면서, 결국 2021년 10월 ‘간호인력 인권 향상을 위한 법률’ 국민동의청원이 10만 명 동의를 얻으며 소관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에 넘겨졌다.
간호인력인권법은 근무 장소에 따라 간호사 1인당 담당해야 할 환자 수를 제시했다.
일반 병동은 병원 종별과 관계없이 환자 12명당 간호사 1인 이상이 담당하고, 중환자실·신생아 집중치료실·관상동맥환자 집중 치료실은 환자 2명당 간호사 1명 이상이 돌본다는 내용이다. 외상 응급실은 환자 1인당 간호사 1명, 수술실은 환자 1인당 간호사 2명을 배치하며 응급실과 소아과 병동, 산모 분만실의 경우 환자 4명당 간호사 1명 이상이 담당한다. 이를 위반시 의료기관에는 징역과 벌금이 부과되는 처벌조항도 포함됐다.
이와 함께 간호 인력의 임금 등 처우개선을 위한 내용도 담겼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간호 인력의 임금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매년 지역·직종별 임금 현황을 정기적으로 조사하고, 임금격차 해소를 위해 개선안과 임금 기준안을 제시하도록 규정했다.
더불어 폭언·폭행·성희롱 등을 간호활동 침해행위로 규정하고, 피해자 치유와 권리회복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제안했다.
간호인권인력법이 국회 심사를 받게 되자 의료연대본부는 “이제 국회가 응답해야 할 차례”라며 “10만 명의 목소리가 무로 돌아가지 않도록 국회와 정부는 관련한 후속조치를 빠르게 시행하고, 각 정당의 대선후보들은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에 대한 입장을 발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 요구를 비롯해 보건의료 및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와 관련된 5대 요구를 걸고 오는 11월 11일 총파업 총력투쟁에 나설 예정”이며 “대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대선후보들이 관련한 정책들을 낼 수 있도록 지속적인 캠페인도 진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여호수 기자 hosoo-1213@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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