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5,631억 펀드 투자, 누구를 위한 선택이었나…최윤범 회장 '선행투자' 의혹 확산
고려아연
[시사매거진 = 주성진 기자] 국내 대표 비철금속 기업 고려아연이 수천억원을 출자한 사모펀드의 투자 과정에서 최윤범 회장과 일부 재계 인사들의 개인투자가 얽혀 있다는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회사가 출자한 펀드의 자금이 경영진과 관련 인사들이 먼저 투자한 기업에 유입됐다는 주장에 이어, 해당 기업의 가치평가와 투자금 회수 가능성까지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특히 고려아연이 원아시아파트너스가 운용하는 펀드에 투입한 것으로 보도된 5,631억원 규모의 자금이 어떤 기준과 절차에 따라 운용됐는지, 그 과정에서 최 회장 개인의 투자 이해관계가 영향을 미쳤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번 논란은 2024년부터 이어진 고려아연과 영풍·MBK파트너스 간 경영권 분쟁과도 맞물려 있다. 영풍·MBK 측은 대규모 펀드 투자와 경영진의 개인투자 사이에 이해상충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고려아연은 운용사의 독립적인 투자 활동을 경영진의 사익 추구와 연결하는 것은 사실관계를 왜곡한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관련 의혹의 중심에는 드라마 제작사 아크미디어가 있다. 최근 디스패치와 관련 매체 보도에 따르면 아크미디어에는 최 회장 일가를 비롯해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지창배 원아시아파트너스 대표, 이인옥 조선내화 회장,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 측 등 재계 인사들이 개인적으로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디스패치가 확보했다고 밝힌 2021년 아크미디어 주주명부에는 김동관 부회장 10.18%, 지창배 대표 2.55%, 이인옥 회장 3.56%, 윤관 대표 측 2.55% 등의 지분이 기재된 것으로 보도됐다. 같은 해 6월 기준 최 회장 측 일가 3명도 합계 7.26%의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최 회장과 학교 동문 등 개인적인 인연으로 연결돼 있다. 김동관 부회장과 최 회장은 미국 세인트폴 스쿨 동문이며, 지창배 대표는 최 회장의 경기초등학교·청운중학교 동창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 관계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부당한 거래나 투자 공모가 이뤄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관건은 실제 투자 과정에서 회사 자금의 집행 계획이 사전에 공유됐는지, 경영진이나 관련 인사들이 투자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여부다. 영풍·MBK 측은 구체적인 투자 시점을 근거로 선행투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영풍이 지난 10월 12일 공개한 자료 등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2020년 5월 12일 원아시아파트너스가 운용하는 코리아그로쓰제1호 펀드에 약 236억5,900만원을 출자했다. 해당 금액은 펀드의 아크미디어 투자 요청액 250억원 가운데 고려아연 출자 비중인 약 94.64%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이후 같은 달 29일 최 회장은 개인 명의로 아크미디어 제1회 전환사채(CB) 17억원어치를 인수했다. 이어 6월 5일에는 최 회장의 지인 등 7명이 제3자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주당 5,000원에 신주를 배정받은 것으로 영풍 측은 주장했다.
같은 날 지창배 원아시아파트너스 대표가 아크미디어 사내이사로 취임했고, 같은 해 7월 10일에는 코리아그로쓰제1호 펀드가 아크미디어 제2회 전환사채 250억원어치를 인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려아연의 펀드 출자에서 실제 아크미디어 투자 집행까지 약 59일이 걸렸으며, 이 기간 최 회장과 관련 인사들의 개인투자가 먼저 진행됐다는 것이 영풍·MBK 측이 제기한 의혹의 핵심이다.
영풍·MBK는 최 회장과 관련 인사들이 후속투자 가능성을 미리 알고 지분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초기 유상증자에 참여한 인사 가운데 1명이 이듬해 고려아연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선임됐다는 점도 내부통제 독립성과 관련한 검증 대상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투자 순서가 이어졌다는 사실만으로 미공개 정보 이용이나 업무상 배임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최 회장이 펀드의 투자계획을 어느 시점에 알았는지, 투자 결정을 지시하거나 관여했는지, 개인투자를 통해 부당한 이익을 얻었는지는 별도의 증거와 법적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아크미디어의 기업가치가 단기간에 크게 높아진 과정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디스패치 보도에 따르면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2022년 아크미디어에 500억원을 투자하면서 주식 1,302주를 주당 약 3,838만원에 취득했다. 해당 투자단가를 기준으로 산정한 아크미디어의 기업가치는 약 1조원 수준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최 회장이 앞서 인수한 아크미디어 전환사채의 주당 전환가격은 25만원으로 보도됐다. 단순히 두 가격을 비교하면 약 153배의 차이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초기 투자자들이 후속 투자 과정에서 상당한 평가상 이익을 얻을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전환사채의 전환가격과 신주 투자가격은 시점과 계약 구조가 달라 단순 비교에 한계가 있다. 기업가치 평가액이 급등했다고 해서 투자자가 실제로 해당 금액의 수익을 실현했다고 볼 수도 없다. 투자자의 전환권 행사 여부와 실제 지분 처분 내역, 전환 이후 지분 희석과 주식 수의 변동 등을 확인해야 한다.
아크미디어의 성장 과정에서 원아시아파트너스의 자금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투자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디스패치는 원아시아파트너스가 2022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관련 기업인 그레이고 지분 42.53%를 약 1,000억원에 인수했고, 이후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아크미디어 투자가 이뤄졌다는 거래 구조를 보도했다.
이와 같은 거래가 각각 독립적인 사업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는지, 기업가치 산정 과정에서 투자자 사이의 이해관계가 영향을 미쳤는지는 추가 검증이 필요한 사안이다. 대규모 펀드 자금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유입된 배경도 논란의 한 축이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원아시아파트너스가 운용하는 8개 펀드에 총 5,631억원을 출자했다. 이들 펀드는 아크미디어를 비롯해 음악 기획사 하이헷, 드라마 제작사 슬링샷 등에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된 투자금액은 아크미디어 290억원, 하이헷 320억원, 슬링샷 80억원 등이다. 일부 투자기업이 자본잠식 상태에 놓이거나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펀드 투자자산의 회수 가능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출자금 전체가 손실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펀드별 출자약정액, 실제 납입액, 회수액, 평가손익, 최종 청산손익은 서로 구분해야 한다.
영풍·MBK 측은 아크미디어와 관련된 추가 투자 위험도 제기했다. 지난 9월 관련 등기자료 등을 분석해 기존에 알려진 아크미디어 투자금 290억원 외에 포커스이엔지에 대한 약 101억원의 투자가 추가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영풍·MBK 측 설명에 따르면 포커스이엔지는 이후 아크미디어의 후신인 씬앤스튜디오에 흡수합병됐다. 이에 따라 이들은 아크미디어 관련 투자 위험이 약 390억원에 이른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는 영풍·MBK 측의 투자 연결관계 분석에 따른 위험 노출 규모다. 실제 손실액으로 확정된 금액은 아니며, 해당 투자자산의 공정가치와 회수 가능성은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하다.
투자손실의 적정한 회계처리 여부도 별도의 쟁점이다. 그동안 금융당국의 회계 감리와 관련한 보도에서는 고려아연이 보유한 원아시아파트너스 펀드 투자자산의 가치 하락이 재무제표에 적시에 반영됐는지가 주요 검토 대상으로 거론돼 왔다.
일부 투자자산의 가치가 크게 하락했음에도 회사가 손실을 뒤늦게 인식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반면 고려아연은 투자자산의 가치평가와 손실 인식은 관련 회계기준에 따라 이뤄졌다는 취지로 설명해 왔다. 가치평가 시점이나 회계적 판단에 차이가 있다는 것만으로 회계 부정을 단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회계기준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당시 투자자산의 공정가치 평가 근거, 외부감사인의 검토 내용, 손상 또는 평가손실 인식 시점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이 같은 논란은 이미 법적 절차에서도 다뤄지고 있다.
지난 5월 법원은 고려아연에 원아시아파트너스의 코리아그로쓰 및 아비트리지 펀드 관련 투자 경위와 운용 자료 등을 제출하도록 명령한 것으로 보도됐다. 영풍·MBK 측은 해당 결정이 투자 과정과 의사결정 경위를 확인할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반면 고려아연은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통상적인 문서제출 절차일 뿐, 위법성이 인정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자료제출 명령 자체가 배임이나 불법 투자에 관한 법원의 판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펀드 출자와 운용 관련 기록이 분쟁의 중요한 증거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절차가 주목된다. 고려아연과 한화그룹의 과거 지분 거래 역시 이번 논란과 함께 재조명되고 있다.
고려아연은 2022년 11월 한화와 약 1,568억원 규모의 자사주 교환 거래를 진행했다. 양사는 당시 수소, 탄소포집, 자원개발 등 신사업 분야에서 전략적인 협력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고려아연은 2024년 12월 보유하던 한화 지분 7.25%를 한화에너지에 약 1,519억원에 매각했다. 최초 거래 당시 평가액보다 약 49억원 낮은 금액이다. 이후 한화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지분을 계속 보유했다면 상당한 평가이익을 얻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다만 사후적인 주가 상승만을 기준으로 과거의 매각 결정이 부적절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당시 고려아연은 영풍·MBK와의 경영권 분쟁 속에서 유동성 확보의 필요성이 있었다는 취지로 매각 배경을 설명했다.
고려아연은 원아시아파트너스 펀드와 관련해 제기된 사익편취 및 이해상충 의혹을 지속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고려아연은 지난 10월 12일 입장문을 통해 회사가 펀드 출자자(LP)로 참여했을 뿐 투자 대상 선정과 집행은 운용사(GP)가 투자심의 및 실사 절차를 거쳐 결정하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영풍·MBK 측이 개별 거래의 시점과 인적 관계를 연결해 경영진의 사익 추구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객관적 근거가 부족한 자의적 해석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반복적으로 제기하는 행위가 시장 혼란을 초래하고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며 법적 대응 가능성도 언급했다. 이러한 양측의 공방은 단순히 개별 투자 건의 적정성을 둘러싼 다툼을 넘어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영풍·MBK 측은 원아시아파트너스 투자와 미국 이그니오홀딩스 인수 등 최 회장 체제의 투자 의사결정을 지속적으로 문제 삼고 있다. 반면 고려아연은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의혹이 회사의 사업 활동과 기업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결국 시장이 확인해야 할 것은 양측의 주장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강경한가가 아니다.
대규모 회사 자금이 투입된 펀드의 투자 판단이 실제로 독립적으로 이뤄졌는지, 경영진과 관련 인사들의 개인적 이해관계가 적절히 관리됐는지, 투자자산의 가치와 손실이 회계기준에 맞게 반영됐는지 등이 객관적으로 확인돼야 한다. 특히 경영진이 개인적으로 투자한 기업에 회사 출자 펀드가 투자하는 경우에는 법률상 위법 여부와 별개로 이사회 감독과 내부통제의 적정성에 관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기업이 정상적인 절차를 거쳤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만큼, 해당 절차가 실질적으로 작동했음을 입증하는 것도 중요하다.
원아시아파트너스 관련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고려아연의 투자 의사결정 체계와 경영진의 책임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다. 반대로 독립적인 투자 절차와 적정한 가치평가가 객관적 자료로 확인된다면 제기된 의혹에 대한 평가 역시 달라질 수 있다.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갈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수천억원에 이르는 투자자금의 운용과 경영진의 개인투자를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의 본질은 경영권을 누가 확보하느냐에만 있지 않다. 회사의 자금이 어떤 절차를 거쳐 어디에 투자됐으며, 그 결과가 주주들에게 어떻게 귀속됐는지를 투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에 있다. 고려아연의 원아시아파트너스 투자 논란이 한국 대기업의 투자 의사결정과 지배구조에 어떤 과제를 남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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