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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선의 스케치플레이5] 시각적 피로의 시대, 관계적 주의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이미지를 본다. 스마트폰 화면을 넘길 때마다 사진과 영상, 광고와 작품 이미지가 나타나고, 하나를 충분히 바라보기도 전에 다음 이미지가 도착한다. 보는 일은 쉬워졌지만, 한 이미지 앞에 오래 머무는 일은 오히려 어려워졌다.

미술 감상도 예외는 아니다. 작품은 전시장에 놓인 실물이면서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이미지다. 관객은 작품을 만나기 전 검색하고, 관람 중 사진을 찍으며, 전시장을 떠난 뒤에도 화면으로 작품을 다시 본다. 작품을 경험하는 일과 이미지를 소비하는 일이 긴밀하게 얽힌 것이다.

문제는 이미지의 양만이 아니다. 끊임없이 주의를 요구하는 환경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지나치며, 무엇에 의존해 대상을 이해하는가. 시각적 피로는 이미지의 과잉뿐 아니라 주의가 형성되고 사용되는 방식의 변화와도 관련된다.

<그림1> 마르코 브람빌라(Marco Brambilla), 《Heaven’s Gate》, 2025, 포틀랜드 미술관(Portland Art Museum), 설치 전경(Installation View)
<그림1> 마르코 브람빌라(Marco Brambilla), 《Heaven’s Gate》, 2025, 포틀랜드 미술관(Portland Art Museum), 설치 전경(Installation View)

자극 이후의 미학

오늘날 이미지는 시선을 붙잡기 위해 경쟁한다. 강렬한 색채와 구도,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하는 장면은 짧은 시간 안에 관심을 끌고, 온라인 노출과 이미지의 확산은 작품과 작가를 발견하는 주요 경로가 되었다. 그러나 주목받는 것과 충분히 경험되는 것은 다르다. 강한 인상과 이미지의 확산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즉시성은 관심을 발생시키지만, 지속성은 의미를 형성한다.

물론 모든 작품이 느린 감상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작품은 순간적인 효과로 강한 경험을 만들고, 어떤 작품은 오랜 바라볼 때 형태와 색채, 재료와 공간의 관계를 드러낸다. 중요한 것은 빠른 감상과 느린 감상 중 하나를 우위에 두는 것이 아니라, 작품마다 다른 경험의 속도와 밀도를 인정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자극 이후의 미학은 무엇을 의미할까. 자극을 배제하거나 감각적 강도를 낮추는 미학을 뜻하지 않는다. 자극 이후 우리의 주의가 어디로 향하고, 작품과의 관계가 어떻게 이어지며, 무엇이 경험 속에 남는지를 묻는 관점이다.<그림1>

<그림2> 이우환,《Relatum: Lee Ufan》전시전경, 2026, 프랑스 아비뇽 교황청(Palais des Papes). 사진 ⓒDavid Giancatarina, 출처: 국제갤러리
<그림2> 이우환,《Relatum: Lee Ufan》전시전경, 2026, 프랑스 아비뇽 교황청(Palais des Papes). 사진 ⓒDavid Giancatarina, 출처: 국제갤러리

우리는 무엇에 의존하는가

작품을 바라보는 일은 작품과 관객 사이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시 공간, 작품을 소개하는 매체, 이미지가 반복 노출되는 플랫폼, 관객이 작품 앞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도 감상에 관여한다. 작품을 만나기 전 무엇을 보았고 어떤 이미지에 익숙해져 있는지에 따라 같은 작품도 다르게 경험될 수 있다.

니콜라 부리오의 관계미학은 예술을 사회적 관계와 만남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관점을 제시했다. 이우환의 작업과 사유에서도 사물과 물질, 공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중요한 문제다. 이들의 논의는 예술을 고립된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도록 한다.

오늘날에는 관계를 매개하는 환경이 더욱 복잡해졌다. 플랫폼은 이미지를 배열하고, 알고리즘은 관심에 따라 콘텐츠를 추천한다. 무엇이 먼저 보이고 무엇이 반복되며 쉽게 지나쳐지는지는 개인의 선택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작품 자체뿐 아니라 작품에 도달하기까지의 여러 매개와 이미 형성된 기대를 통해 작품을 바라본다.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관점으로 ‘관계적 주의’를 제안할 수 있다. 이는 주의를 개인의 집중력이나 취향만으로 설명하지 않고, 작품과 관객, 매체와 공간, 시간과 환경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살펴보려는 시도다. 단순히 얼마나 오래 집중하느냐에 그치지 않고, ‘무엇이 우리의 주의를 이끌고, 우리는 무엇에 의존해 대상을 이해하며, 그 과정에서 어떤 가능성을 놓치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는 모든 감상이 알고리즘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스스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기술적·사회적 환경이 시야와 해석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그림2>

<그림3> 비야 셀민스(Vija Celmins), 《Untitled (Ocean)》, 1977,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 소장
<그림3> 비야 셀민스(Vija Celmins), 《Untitled (Ocean)》, 1977,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 소장

관계하는가, 소비하는가

이미지의 노출과 소비가 빨라지는 환경에서 작품을 만나는 일은 때로 이미지를 확인하는 행위로 축소된다. 작품을 보았다는 사실과 작품을 경험했다는 사실은 같지 않다. 이미지를 저장하고 공유하는 일은 작품을 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작품과의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작품과 관계한다는 것은 작품의 형식과 재료를 살피고, 화면의 여백과 밀도를 감각하며, 작품이 놓인 공간과 자신의 경험을 연결하고,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의미를 다시 발견하는 과정까지 포함한다.

이러한 경험은 작가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미술관과 전시 기획자, 미디어와 미술시장이 작품을 소개하는 방식도 관객의 주의에 영향을 미친다. 무엇이 쉽게 발견되는지, 어떤 작품이 충분히 경험될 기회를 얻는지, 어떤 가치가 즉각적인 반응 수치로 환산되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짧은 노출 시간과 반응 수치만으로는 오랜 시간 축적된 작업의 언어와 조형적 탐구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강렬한 이미지나 빠른 반응이 언제나 피상적인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특정한 감상 방식을 보편적인 기준으로 삼지 않는 일이다. 작품마다 속도와 밀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술 감상의 문제는 관객에게 집중력을 회복하라고 요구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작품의 특성에 맞는 감상 환경을 마련하고, 즉각적인 해석과 반응만을 요구하지 않으며, 관객이 스스로 발견하고 질문할 여지를 확보하는 일도 중요하다.<그림3>

<그림4> 윤여선,《APEIRO: Infinite Light Journey》, 160x160cm, aluminium, fabric and light, 2026. 사진: 윤여선
<그림4> 윤여선,《APEIRO: Infinite Light Journey》, 160x160cm, aluminium, fabric and light, 2026. 사진: 윤여선

AI 시대, 무엇을 경험하게 할 것인가

AI는 이미지를 생성하고, 플랫폼은 이미지를 선별하며, 알고리즘은 이미지를 추천한다. 이미지의 생산과 유통이 기술적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작가의 역할을 이미지 제작에 한정하기는 어렵다.

AI가 이미지를 생산할 수 있다면, 작가는 무엇을 생산해야 하는가.

재료와 형식의 선택, 개념을 발전시키는 과정, 작품을 통해 세계를 해석하는 태도는 여전히 창작의 중요한 부분이다. 여기에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뿐 아니라, 어떤 경험이 가능하도록 할 것인가라는 창작의 질문이 더해진다. 작가는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이면서, 이미지가 어떤 방식으로 경험될 것인지 질문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예술의 역할은 이미지를 더하는 데만 있지 않다. 우리가 익숙하게 지나치던 것을 다시 바라보게 하고, 쉽게 설명되지 않는 대상 앞에 머물게 하며,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도록 만드는 데에도 있다.

작품을 본 뒤 모든 장면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색과 형태는 흐려져도 화면의 작은 빛 한 점이나 설명하기 어려웠던 감각은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떠오르기도 한다. 이미지가 사라진 뒤에도 작품과 관계하는 동안 형성된 경험은 남는 것이다.

자극 이후의 미학은 무엇이 우리의 시선을 붙잡았는가를 넘어, 그 시선은 어디로 향했고, 무엇을 경험하게 했는지 묻는다. ‘이미지가 사라진 뒤에도 무엇이 남는가.’

이미지는 앞으로도 계속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모든 이미지를 보는 일이 아니라, 그중 무엇과 어떻게 관계할 것인가를 묻는 일이다. 시각적 피로의 시대에 ‘관계적 주의’는 작품을 더 빠르게 소비하는 방법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에 의존해 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하나의 비평적 관점이 될 수 있다.

윤여선(Yeosun Lumiel Yoon)

성균관대학교 예술학 박사. 회화, 설치, 미디어를 아우르는 시각예술가이자 학제 간 연구자로, 동시대 미술과 시각문화에 대한 비평적 탐구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외 전시 활동과 학술 연구를 바탕으로 예술과 경영, 기술의 접점을 탐색하며, 기업 협업과 강의 및 집필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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