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자들의 벗’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교황은 평생 주님과 교회에 헌신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신실함과 용기, 보편적 사랑으로 복음의 가치를 실천하라”
[시사매거진 신혜영 기자] 평생 가난한 사람들의 벗으로 살아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4월 21일(현지 시간) 선종했다. 향년 88세. 부활절인 20일 잠시 대중에 모습을 보였던 교황은 21일 아침 7시35분 선종했다. 사인은 뇌졸중으로 인한 코마다. 교황청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교황은 뇌졸중 이후 코마 상태에 빠졌고 심장 순환 기능도 불가역적으로 손상돼 의료진은 심전도를 기준으로 사망을 선언했다. 케빈 페럴 궁무처장은 “오늘 오전 7시35분, 로마 주교 프란치스코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다”며 “그분은 평생을 주님과 교회를 위해 헌신했다”고 밝혔다.
교황은 지난 3월 14일 호흡 곤란으로 제멜리 병원에 입원했고 양측 폐렴 진단을 받았다. 입원 중 두 차례 위기를 겪었으나 다행히 점차 호전됐고 입원 38일 만인 지난 3월 23일 두 달간의 회복 관찰 등을 전제로 퇴원했다. 교황 부활절 주일인 지난 4월 20일 짧게 대중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부활절 미사를 직접 주재하진 않았지만 낮에 성베드로 광장에 운집한 신도들을 축복하기 위해 거소 발코니에 얼굴을 보였고, 이어 광장으로 나가 3만 5000여 명의 신도들과 마주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의료진 만류를 뿌리치고 대중을 만나 전한 마지막 메시지는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위해 노력하라”였다.
평소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실천했던 교황은 자신이 사후 안치될 장소로 이탈리아 로마 소재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지하를 꼽았다. 통상 교황은 사후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 안치된다.
바티칸뉴스가 공개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언장에 따르면 교황은 “무덤은 땅속에 있어야 한다”라며 “간단하게, 특별한 장식품 없이, 오직 ‘프란치스쿠스(Franciscus·프란치스코의 라틴어명)’라는 비명만 새겨 달라”라고 했다.
유언장은 삼위일체 기도와 함께 “내 속세의 삶에 황혼이 다가오는 것을 느낌에 따라,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고한 희망과 함께, 내 매장 장소에 대한 마지막 소망을 밝히고자 한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어 “나의 삶에 걸쳐, 그리고 사제이자 주교로서 사목(司牧)하는 동안 나는 언제나 주님의 어머니인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자신을 의탁했다”라며 “나의 속세의 마지막 여정이 내가 언제나 사도 순방의 시작과 끝에 들렀던 이 고대 마리아 성당에서 끝나기를 희망한다”라고 했다.
교황은 아울러 “나를 사랑했고 계속 나를 위해 기도할 모든 이들에게 주님이 합당한 보상을 내리기를 기원한다”라며 “내 인생의 마지막 부분을 장식한 고통을 세계의 평화와 사람들 간의 우애를 위해 주님께 봉헌한다”라고 유언장을 끝맺었다.
보도에 따르면 해당 유언은 2022년 6월29일에 미리 작성한 것이다.
전 세계에서 이어진 추모 물결
교황의 선종 소식에 전 세계에서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소식이 발표되자 성베드로 광장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기리기 위해 교회에 꽃을 바쳤다. 가톨릭 신자들은 교황을 추모하는 촛불을 밝히고 기도를 했다. 그가 태어난 아르헨티나에서는 이날부터 7일간 국가애도기간이 선포됐다. 스페인에서는 사흘의 애도 기간을 공표했다. 아울러 브라질에서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이 일주일의 애도 기간을 선언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추모의 의미로 조기를 게양하기로 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는 교황의 삶을 기리는 88번의 조종(弔鐘)이 울렸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교황은 평화와 인간의 존엄성, 사회 정의를 위한 초월적인 목소리였다”며 “유엔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우리 조직의 목표와 이상에 대한 그의 헌신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고 기렸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별도의 성명을 내고 “교황은 전 세계 난민과 이주민, 강제 이주자의 권리와 존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옹호자”라며 그의 선종을 깊이 애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교황을 기리며 미국 전역에 조기 게양을 명령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온라인으로 중계된 부활절 행사 발언에서 “교황은 세상을 사랑한 매우 좋은 사람이다. 특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했다”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교황 선종 소식이 전해지자 트루스소셜을 통해 “평화 속에 잠들기를”이라며 “그와 그를 사랑한 모든 이에게 신의 은총을 빈다”고 추모했다.
영국 국왕 찰스 3세는 교황의 선종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라며 “인간과 지구를 보살핌으로써 교황은 무수히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라고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크나큰 겸손으로 가장 취약한 이들의 편에 섰다”라며 교황이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줬다고 평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인도주의와 정의라는 높은 가치의 수호자”라고 칭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죽음은 나를 매우 슬프게 한다. 교황은 사회의 가장 약한 구성원들과 정의와 화해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헌신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애도했다.
입원 기간 교황을 방문했던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교황의 우정, 조언, 그리고 가르침을 누릴 수 있는 영광을 누렸다.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그 가르침은 결코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라고 했다.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은 깊은 신앙과 무한한 연민을 지닌 분이었다”며 “중동의 평화와 인질들의 안전한 귀환을 위한 교황의 기도가 곧 응답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X에 썼다.
이란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세계의 비인도적 행위를 거부하는 인도주의적인 태도는 그 영적인 삶과 리더십의 빛나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류의 양심에 새겨질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교황은 평화와 정의의 가치를 위해 헌신한 탁월한 세계적 인물”이라고 말했다.
인도 총리는 “깊이 고통받고 있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연민, 겸손, 영적 용기의 등불로 항상 기억될 것”이라고 X에 말했다.
가난한 이의 목자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는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 플로레스에서 이탈리아 이주민 가정의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Jorge Mario Bergoglio)다. 어린 시절 축구와 농구, 영화, 탱고를 좋아했던 프란치스코는 플로레스에 연고를 둔 축구팀 ‘산 로렌소 데 알마그로’를 평생 응원했다.
화학 기술을 배우던 프란치스코는 1956년 신학교에 입학해 1969년 사체 서품을 받고 ‘호르헤 베르고글리오 신부’가 됐다. 이후 1973년부터 1979년까지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장을 맡았다. 아르헨티나 시기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빈민가, 교도소, 병원, 노동조합의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의 어려움을 듣는 데 주력했다.
1980년대 중반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1992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 보좌주교에서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을 거쳐 2001년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추기경에 서임됐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2013년 3월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전격 사임으로 소집된 콘클라베에서 다섯 차례 투표 끝에 제 266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역사상 최초 남아메리카 출신 교황이면서, 최초 예수회 출신 교황이다.
프란치스코는 13세기의 성인(聖人)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본 딴 이름으로, ‘빈자의 성인’으로 기록된 인물이다. 프란치스코가 교황명으로 쓰인 것은 가톨릭 역사상 최초다.
2013년 3월 16일 기자들에게 교황 명을 프란치스코로 정한 이유에 대해 “가난한 사람. 가난한 사람. 이들을 생각하니 곧바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떠올랐습니다“라고 말했다.
진보 색채를 띤 비유럽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은 일은 영화 ‘두 교황’으로 제작됐다.
평생을 빈자들의 벗으로 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보듬었던 교황이다. 원칙을 따르되 소외된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소박함과 겸손함, 비참하고 가난한 사람과 소수자에 대한 관심으로 교회를 넘어 세계적으로 존경을 받았다.
과거 전임 교황들이 사도 궁전에 거주했던 데 반해 그는 성녀 마르타 호텔을 거주지로 택했다. 교황직에 선출될 당시 전통적으로 교황 선출자가 전통적으로 착용하는 붉은색 교황용 모제타를 입지 않았다. 전례를 집전할 때 입는 검소하고 소박한 제의를 입었다. 전통적 순금으로 주조해왔던 어부의 반지를 도금한 은반지로 바꿨다. 목에 거는 가슴 십자가는 추기경 시절부터 착용하던 철제 십자가를 고수했다.
그는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는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은 유지하면서도 동성애자들을 사회적으로 소외시키거나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고 2013년 로마 인근 소년원에서 여성 2명, 무슬림 2명이 등 소년원생 12명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민자와 전쟁 난민을 위해서도 목소리를 냈다.
2013년 9월 미국이 사린가스를 쓴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공습하기로 결정하자 금식기도를 하며 막아서려 했었고, 2015년엔 내전 중인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해 기독교와 이슬람교 화해를 기도했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했을 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평화적 해결을 촉구했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땐 양측에 특사를 보내 중재를 시도하기도 했다. 2023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 땐 제노사이드(대량학살) 조사를 촉구하며 학살은 규탄했다.
최초 여성 교황청 장관 임명, 낙태, 재혼자에 대한 성체성사 허용, 성직자의 독신 의무에 대해서도 진보적 행보를 보여줬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무슬림 지도자들에게 다가갔는데 특히 신도들이 위험에 처해 있는 지역의 무슬림 지도자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무슬림 종교 지도자들과 서로의 권리를 인정하고 취약한 가톨릭 소수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주요 협정에 서명했다.
교황은 생전에 자서전 ‘나의 인생’과 ‘희망’을 펴내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삶에 대한 조언을 건넸다.
인류가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사랑’을 강조한 교황은 “사랑함으로써 우리는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장벽을 허물고 갈등을 극복하며 무관심과 증오를 물리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교황은 자신의 자서전 ‘희망’을 통해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를 위한 모든 장례 준비는 끝났다고 합니다. 교황 장례 예식이 너무 성대해서 담당자와 상의하여 간소화했습니다. 화려한 장례 제대도, 관을 닫는 특별한 의식도 없애기로 했습니다. 품위는 지키되, 다른 그리스도인들처럼 소박하게 치르고 싶습니다.”
한국과의 인연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2014년 8월 16일 한국을 방문해 광화문에서 열린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과 대전교구에서 열린 아시아 청년대회 참석차 이뤄졌다. 교황이 대륙 단위 청년대회에 참석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당시 교황 한국 방문은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 후 25년 만이었다.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장 작은 차를 타고 싶다”는 뜻을 우리 측에 전달, 기아차 ‘쏘울’을 타고 이동했다. 이동 중에도 길에 어린이가 보이면 차를 세워 안아주는 모습이 화면에 담기면서 큰 관심을 받았다.
당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4개월 뒤여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 학생 등을 만나 위로했다. 교황은 “세월호 침몰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모든 한국 사람들이 슬픔 속에 하나가 됐다”며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일부 유가족에게는 직접 세례를 주기도 했다.
8월18일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전세기에서 ‘세월호 추모 행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말했다.
세계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왔던 교황은 지난 2023년 한국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평화의 ‘예언자’가 되도록 모든 한국인을 격려하고자 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반도의 평화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2018~2019년 무렵 방북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은 최근 한국 최대 산불 피해에 대해서도 피해자 유가족을 위로하고 소방관 및 다른 응급구조 관계자들을 위한 기도와 격려하는 내용이 담긴 전보를 보냈다.
후임 교황 선출, 콘클라베는
새 교황 선출 절차는 선종 후 15~20일 사이 시작된다. 80세 미만 모든 추기경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교황 선출의 비밀 투표회동 ‘콘클라베’(conclave)를 연다. 콘클라베는 라틴어 ‘cum’(함께)과 ‘clavis’(열쇠) 합성어인 ‘쿰 클라비’(cum clavis)에서 유래했다. 열쇠로 문을 잠가 외부와 단절된 선거를 뜻한다. 원칙상 가톨릭 남성이라면 누구든 교황이 될 수 있지만, 추기경단에서 선출되는 게 관례다. 추기경단에서 선출되지 않은 교황은 1379년 어반 6세가 마지막이었다. 현재 자격을 갖춘 추기경은 136명이다. 3분의 2 이상 득표로 후임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추기경들은 밀실에 유폐된 것처럼 한 장소에서 투표와 휴식을 이어간다. 투표용지는 즉각 난로에 소각하는데 선출에 실패하면 검은색, 후임 교황이 선출되면 성당 굴뚝에 흰 연기를 피어 신도들에게 알린다.
새 교황이 선출을 수락하면 교황명을 말한다. 교황 복장을 한 뒤 성 베드로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에 나와 대중 앞에 첫 등장한다.
추기경단 단장은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이라고 선언해 새 교황 선출을 알리고, 교황은 첫 축복과 강론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 로마와 전 세계에)를 발표한다.
새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아일랜드 출신인 케빈 패럴 추기경이 ‘인터레그럼’ 기간 교황 직무를 대행한다. ‘정권과 정권 사이’라는 뜻의 인터레그럼은 교황의 사임이나 선종 이후 새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공석 기간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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