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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체육혁신을 기대한다

1900년 제2회 파리올림픽은 만국박람회(엑스포)가 열리던 기간에 열렸다. 지금과 달리 5월에서 10월까지 종목별 세계대회가 개최되었다. 당시에 파리올림픽은 선수 수급을 위해 대회 주최측이 박람회장을 돌며 출전선수들을 모집하기도 하였다.만국박람회에는 대한제국 사람들이 참여했었다. 파리 만국박람회장에 전시관으로 대한제국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있던 대한제국 사람들이 경기 출전이나 참여에 수락만 했다면, 우리나라의 올림픽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Coree’가 1900년 파리올림픽 기록에 포함될 수도 있었다.124년 뒤 파리올림

허건식(체육학 박사)
허건식(체육학 박사)

 1900년 제2회 파리올림픽은 만국박람회(엑스포)가 열리던 기간에 열렸다. 지금과 달리 5월에서 10월까지 종목별 세계대회가 개최되었다. 당시에 파리올림픽은 선수 수급을 위해 대회 주최측이 박람회장을 돌며 출전선수들을 모집하기도 하였다.

만국박람회에는 대한제국 사람들이 참여했었다. 파리 만국박람회장에 전시관으로 대한제국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있던 대한제국 사람들이 경기 출전이나 참여에 수락만 했다면, 우리나라의 올림픽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Coree’가 1900년 파리올림픽 기록에 포함될 수도 있었다.

124년 뒤 파리올림픽에서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은 적은 선수단이 참가했음에도 88서울올림픽 이후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며 성공적인 올림픽 경기를 마쳤다.

대회 초반 대표팀은 사격, 양궁, 펜싱에서 강세를 보였다. 이 중에서 양궁은 세부종목 전체를 금메달로 장식하면서 양궁 강국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우리가 활을 잘 쏘는 유전자를 가진 민족이고 훈련시스템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좋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는 이야기가 또 회자 되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양궁 강국이 된 데에는 역사적으로 우리 국민들이 활에 대한 믿음과 공감, 공정한 선수선발과 훈련시스템의 신뢰, 그리고 협회의 지원이 조화를 이루어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성과와는 달리 파리올림픽이전부터 국내 체육계는 내홍이 있었다. 올림픽 예선에 탈락한 축구와 축구협회의 문제, 대한체육회와 문화체육관광부와의 갈등, 그리고 국제스포츠계의 급변화 등은 이번 올림픽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그 이상으로 선전해 준 선수와 지도자들의 모습은 돋보였다. 이 와중에 배드민턴에서 금메달을 딴 안세영 선수의 인터뷰는 국내 체육계의 문제를 소환했다.

언론들은 기성세대들이 종목별 협회 운영에 있어 역량이 부족하고, 선수 성적은 올림픽 강국임에도 스포츠정책과 현회의 운영은 시대착오적 악습이 반복되면서 스포츠의 후진국을 만들고 있다고 대서특필했다. 그리고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선수들이 처한 상황도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결과 중심의 엘리트 스포츠 올인 정책이 선수들의 일상을 파괴하고, 소통 없는 폐쇄적 구조를 만들어 선수들에게 금메달만 향하는 외길 인생을 강요하는 반인권적 엘리트 스포츠를 만들었다는 비난도 이어졌다. 여기에 교육부가 운동선수의 학습권 보장으로 내세운 체육 최저학력제 역시 오는 9월 시행을 앞두고 비판의 여론이 일고 있다.

안세영의 금메달은 우리 스포츠계에 던진 항거였다. “금메달을 따야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는 안 선수의 말 한마디는 우리 스포츠계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 그곳에서 안 선수가 쏘아 올린 공에 대해 체육회와 해당 종목협회는 반론을 제기했다. 그중에서 협회측은 ‘관습’이라는 말을 앞세우며 개선을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 해명으로는 분노한 국민들과 선수들을 설득하기에는 부족했다. 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하기까지 쏟아부은 시간과 고충, 그리고 이를 위해 선수와 함께 뛰었던 지도자들의 노력이 빛났어야 할 파리의 시간이었다. 이러한 분위기였음에도 이번 올림픽의 성과에 대해 해병대 캠프의 성과라는 이야기는 우리 국민들에게 더욱 신뢰받지 못 할 일이 되었다.

이번 올림픽를 계기로 국내 체육계에도 소용돌이가 칠 것으로 예상된다. 협회와 선수단의 갈등, 협회간 운영실태의 격차, 체육회와 정부간 갈등 등은 혁신이 있어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관습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혁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스포츠 종목들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협회 운영과 선수선발 및 관리, 그리고 지원에 혼신을 다한 모범을 보여준 종목협회 사례들도 있으니 희망은 있다.

관습을 거부한 혁명의 도시가 파리였다. 1900년 대한제국의 사람들이 대한제국관을 설치하고 서방에 우리를 알린 도시이기도 하다. 정부는 체육계 기강잡기가 아니라 혁신적인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을 할 시기다. 노하우(know-how)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노웨어(know-where)를 찾을 때다. 경험으로서는 한계를 이겨내기에는 어렵기 때문이다. 국내에 신세대 젊은 연구진들과 필요하다면 해외 연구진들도 참여해 계획단계부터 변화가 필요하다. 급변하는 국내외 스포츠 환경과 세대가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그것을 효율적으로 찾아 정책에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대선 때마다 후보들은 체육정책 공약을 내세웠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늘 현안에 반영되지 못하고 뒷전이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임시 처방은 한계를 보여 왔다. 이번 올림픽에는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정부도 정치권도 체육만큼은 정쟁의 수단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우리 체육이 제대로 갈 수 있는 길을 고민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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