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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우 시사칼럼] 풍요 속에서도 평등은 왜 오지 않을까?

생산의 시대에서 소비의 시대로오늘날 우리는 '사물'에 둘러싸여 있다. 사물에 둘러싸인다는 건 달리 말하면 우린 그 어느 때보다 엄청난 '풍요' 속에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학자와 사람들, 특히 민주주의 핵심인 평등을 강조하는 이들에게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사물'이 풍요롭지 않을 때 평등은 모두가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됐다. 따라서 사물이 풍요롭다는 것은 바로 그러한 '평등' 즉 소유의 평등을 이루는 지름길로 인식됐고 그런 측면에서 산업사회의 폭발적인 생산은 찬양됐다. 그러나 모든 것이

조용우 시사칼럼니스트, 전 동의대 철학과 외래교수.
조용우 시사칼럼니스트, 전 동의대 철학과 외래교수.

생산의 시대에서 소비의 시대로

오늘날 우리는 '사물'에 둘러싸여 있다. 사물에 둘러싸인다는 건 달리 말하면 우린 그 어느 때보다 엄청난 '풍요' 속에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학자와 사람들, 특히 민주주의 핵심인 평등을 강조하는 이들에게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사물'이 풍요롭지 않을 때 평등은 모두가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됐다. 따라서 사물이 풍요롭다는 것은 바로 그러한 '평등' 즉 소유의 평등을 이루는 지름길로 인식됐고 그런 측면에서 산업사회의 폭발적인 생산은 찬양됐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듯이 시대가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가 너무나 중요한 문제였고 사람들 모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몰두했지만 이제 사람들은 물건을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보다 그걸 어떻게 팔 것인가 하는 문제가 더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관심은 '소비'의 문제로 옮겨오게 됐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생산의 시대에는 풍요가 분명 평등을 가져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소비의 시대가 되면서 그러한 평등은 여전히 요원한 문제가 됐다. 사라져야할 불평등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생산은 집단적으로 이뤄졌지만 소비는 개인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라는 상식 역시 흔들리게 됐다. 사람들은 개성적으로 '소비'한다고 생각하지만 개성 그 자체가 집단적인 성격을 띠게 됐다.

그렇다면 풍요 속에서 평등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분배의 정의를 가장 먼저 거론할 수 있다. 일부 상위층의 부의 독점과 편중, 분배의 불공정이 풍요 속에서도 여전히 불평등의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임은 자명하다. 일부 상류층을 제외하곤 대다수 서민은 '풍요속의 빈곤'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철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자면 그 비밀은 소비의 성격에서 찾을 수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소비'란 필요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소비, 즉 소유의 목적은 단순히 필요를 채우는 것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만일 단지 소비가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라면 우리는 불평등을 고민할 필요가 없고 '과소비'니 '충동소비'니 하는 말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소비의 시대에 불평등은 더욱 심화하고 일부 지배계층의 사치와 과소비 등은 일상화 됐으며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환경 오염 등은 너무나 흔한 말이 됐다. 

소비의 본질은 '차이'

이러한 사태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소비의 어떤 성격 때문에 풍요가 평등으로 연결되지 않고 과소비와 사치와 허영 같은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가? 

사실 소비는 대중적이지가 않다. 중산층에 의해 창조된 소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밑바닥 층에서 생산된 소비가 상류계층으로 전달되는 경우도 없다. 거의 모든 소비는 '위로부터 아래로의' 소비인 것이다. 맨 처음 상류층에 의해 생성된 소비 형태는 희소성을 띠며 향유되다가 일반화의 길을 통해 대중에게로 전파된다. 소비의 문제에 있어서는 대중은 언제나 상향적이고 수동적이다. 물론 간혹 하층민의 문화가 재구성돼 유행을 타고 소비되는 경우가 있긴 하나 이는 별개의 문제다.

그렇다면 왜 소비는 이러한가? 사람들이 그저 필요만을 채우기 위해 소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필요·사용가치에 따른 소비를 넘어 그 물건이 가지는 상징가치를 추구한다. 

내가 타고 다니던 10년 지난 경차와 오늘 뽑은 최신형  벤츠와는 사물의 기능에는 큰 차이가 없다. 내가 들고 다니는 낡은 가방이나 거액의 명품 백 또한 마찬가지다. 자동차의 경우 물론 좀 더 안전하고 편리한 것의 차이는  있지만 그것만을 위해 상상하기 힘든 가격을 부담하려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면서까지 '필요 이상'의 소비를 하려 한다.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사려는 것일까? 낡은 가방과 명품 백, 경차와 벤츠의 사물 차이가 아니라  그것이 가지는 가치(상징가치)의 차이를 소비하는 것이다. 명품 백과 벤츠를 소비함으로써 소비자는 그것이 가지는 상징과 부유함, 상류사회, 특별함 등을 가진다. 또한 그는 자신과 비슷한 소비를 하는 계급에 속하게 된다. 이런 소비는 궁극적으로 소비자를 사회 속에 특정 지점에 위치시킨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런 상징과 가치, 위치지음을 소비하려 하는가? 다른 이들과 자신을 차별화시키기 위해서다. '차이화' 이것이 바로 소비의 핵심이다. 

사람들은 상류층과 같은 사물을 소비함으로써 그들과 같은 상징과 가치를 향유하고 같은 계급에 속하는 '평등'을 누리려 하면서도 동시에 자신과 같은 소비를 할 수 없는 자들과 자신을 차별화시키고자 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이러한 행위를 '구별짓기'라고 규정한 바 있으며 현대 소비사회의 주요한 문화현상으로 파악했다.

이 차이화에의 욕망이 바로 소비의 본질이다. 사람들은 필요에 대해서는 만족을 누릴 수 있어도 이 차이화에 대해서는 결코 만족할 줄 모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차이를 '개성'이라는 개념으로 포장하려 하지만 우리는 쉽게 그 허점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벤츠를 소비함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의 개성을 가지려 하지만 그는 벤츠를 샀던 사람들을 따라감으로써 개성을 상실한다. 다른 이들과 차별화되고 싶다는 욕망이 많은 이들을 똑같이 만들어버리는 아이러니를 초래하는 것이다.

소유의 양식에서 존재의 양식으로

그래서 생산의 풍요 속에서 차이화의 욕망에 따른 소비 또는 소유의 삶은 풍요 속의 빈곤을 불러올 뿐 결코 개인의 자아실현이나 사회적 불평등의 해소는 이뤄질 수가 없다. 갈증 해소를 위해 바닷물을 마시면 오히려 마실수록 더욱 갈증이 커지듯이 차별과 불평등의 심화만 증폭시킬 따름이다.

따라서 소유적 삶의 양식을 극복하고 풍요속의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존재적 삶의 양식이 요청된다. 존재적 삶의 양식으로 자신의 삶을 변화하고 차이화의 욕망에서 벗어날 때만이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도 근본적인 해법이 보일 것이다.

여기서 존재적 삶의 양식이란 '어떤 것을 소유하지도 않고 또 소유하려고 갈망하지도 않으면서 즐거워하고 자기의 재능을 생산적으로 사용하며 세계와 하나가 되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자본주의와 산업화가 가져온 불평등과 소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산업 사회의 '소유적 삶의 방식'을 '존재적 삶의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일찌감치 '소외'에 대해 천착했던 에이리히 프롬은 '존재적 삶의 방식'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사회를 다음과 같이 그린다. 첫째, 새로운 사회는 무한 성장보다는 필요에 의한 선택적 성장을 지향한다. 둘째, 물질적 이익보다는 정신적 만족을 추구한다. 쾌락이나 다른 사람의 인정(認定)이 아닌 진정한 내면적 깨달음에 삶의 중심이 있다는 뜻이다. 셋째, 사람들은 기본적인 삶의 안정을 보장받으며 관료제에 얽매이지 않고 주체적인 결단에 의한 삶을 살아간다.

나아가 프롬은 존재가 지배하는 새로운 삶을 이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한다. 첫째, 소비자 운동을 통한 건전한 소비 지향이다. 욕망을 통제하고 윤리적 소비, 착한 소비를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둘째, 노동자가 임금을 위해서가 아니라 기업 주체로 일하고 경영에 참여하는 산업민주주의 실현이다. 셋째, 관료제가 아닌 인도주의적 조직 운영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능동적 참여를 위한 최대한의 분권화이다. 21세기 지방자치와 분권 실현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은 소유의 삶에서 벗어나 존재의 삶을 추구할 때만이 소외와 불평등을 극복하고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프롬의 진단은 '풍요속에서 왜 평등은 오지 않은가'에 대한 단서와 더불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불평등과 소외의 문제를 어떻게 넘어서야 하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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