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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의 클래식 동맹①] “인어공주, 처절하고 비참하다고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국립발레단 제200회 정기공연, 존 노이마이어의 ‘인어공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5/1-4)

인어공주의 꼬리였던 긴 바지가 벗겨지고 앙상한 맨 다리가 고통의 걸음을 내디딜 때 객석에선 신음이 흘러나왔다. 전기에 감전된 듯한 몸짓은 춤이라기보다, 신체로 형상화된 고통 그 자체였다. 존 노이마이어(John Neumeier, 1939.2.24.~)의 발레 의 장면에서다.지난 5월 1일부터 4일까지, 국립발레단이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세계적인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의 발레 를 초연했다. 안무뿐 아니라 무대와 의상을 총괄한 노이마이어는 사랑의 고통을 날 것으로 드러내는 연출을 통해 아름다운 동화를 현실적인 사

존 노이마이어의 인어공주(사진_국립발레단)
존 노이마이어의 인어공주(사진_국립발레단)

인어공주의 꼬리였던 긴 바지가 벗겨지고 앙상한 맨 다리가 고통의 걸음을 내디딜 때 객석에선 신음이 흘러나왔다. 전기에 감전된 듯한 몸짓은 춤이라기보다, 신체로 형상화된 고통 그 자체였다. 존 노이마이어(John Neumeier, 1939.2.24.~)의 발레 <인어공주>의 장면에서다.

지난 5월 1일부터 4일까지, 국립발레단이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세계적인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의 발레 <인어공주>를 초연했다. 안무뿐 아니라 무대와 의상을 총괄한 노이마이어는 사랑의 고통을 날 것으로 드러내는 연출을 통해 아름다운 동화를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로 전위시켰다.

5월 2일에 공연된 발레 <인어공주>는 사랑하는 사람의 결혼식을 바라보는 시인 안데르센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시인의 눈물은 검푸른 바다로 떨어지고, 조개가 되어 인어공주를 탄생시킨다. 바닥에 끌릴 정도로 길고 넓은 바지를 입은 인어공주는 순진한 표정과 유연한 폴 드 브라(port de bras, 발레에서의 팔 동작)로 바다에서 헤엄치는 인어공주의 모습을 그려낸다. 노이마이어는 다리가 없는 인어공주를 표현하기 위해 일본의 전통 공연 ‘노’의 긴 의상에서 영감을 얻었다. 또한 검은 옷을 입고 인어공주의 움직임을 돕는 세 명의 남성 무용수는 관객의 눈에 띄지 않고 인형을 움직이는 일본의 전통 인형극 ‘분라쿠’에서 착안됐다.

존 노이마이어의 인어공주(사진_국립발레단)
존 노이마이어의 인어공주(사진_국립발레단)

파드되 & 포인

왕자는 육지에서 골프를 치다가 바다에 빠지고, 왕자를 발견한 인어공주는 왕자를 육지로 끌어올린다. 인어공주와 왕자의 교감은 아름다운 파드되(pas de deux, 발레에서 주연 남녀 무용수 두 사람이 추는 춤)로 표현되지만, 정신을 차린 왕자는 다른 공주와 사랑에 빠져버린다. 몸은 교차되지만 시선은 교차되지 않는 파드되는 인어공주의 사랑이 짝사랑임을 암시하고, 검푸른 바다와 밝고 환한 육지의 색채 대비는 두 사람의 세계가 극명히 다르며, 결합될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1 막의 하이라이트는 왕자에게 반한 인어공주가 그의 사랑을 얻기 위해 끔찍한 고통을 딛고 인간이 되는 장면이다. 마녀가 인어공주의 꼬리를 빼앗는 장면은 인어공주의 의상이 풀려서 마녀에게 감기는 것으로 표현되는데, 인어공주를 맡은 무용수는 의상을 풀기 위해 다른 무용수에게 들려 쉴 새 없이 몸을 회전시킨다.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는 맨발로 첫걸음을 떼 보지만, 엄청난 고통에 몸서리친다. 노이마이어의 안무는 고통을 아름답게 미화시키지 않고, 뼈가 으스러질 듯한 아픔을 직관적으로 표현한다.

2 막은 병동과도 같은 흰 방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인어공주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손과 발이 분절되는 듯한 안무와 넓은 무대의 한 쪽에 고립된 공간은 사랑을 얻지 못하고 자유를 박탈당한 인어공주의 절망을 드러낸다. 이내 왕자와 공주의 결혼식에서 들러리가 된 인어공주는 고통을 딛고 완전한 포인(pointe, 발가락 끝부분으로 수직으로 서는 것)으로 왕자에게 마음을 전하나 외면받는다.

존 노이마이어의 인어공주(사진_국립발레단)
존 노이마이어의 인어공주(사진_국립발레단)

금관과 타악의 위협적인 악센트를 대동하고 등장한 마녀는 인어공주에게 칼을 쥐여주며 왕자를 죽이라고 하지만, 인어공주는 차마 그럴 수 없다. 이어지는 장면은 격동하는 감정 변화로 무용수가 배우가 되는 드라마 발레의 정수를 보여준다. 인어공주는 칼에 찔린 척한 왕자를 보고 고통스러워하다가 왕자가 살아있음을 깨닫고 기뻐하며, 왕자의 장난에 즐거워하다가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왕자의 모습에 절망한다. 결국 홀로 남겨진 인어공주는 토슈즈와 드레스를 벗어던지며 고통에 스러지고, 시인 안데르센이 그녀를 감싸 안는다. 두 사람의 영혼은 어둠 속에서 별이 빛나는 피안(彼岸)의 세계로 나아가 서로 교차된다.

레라 아우어바흐의 음악

막이 닫히자 몇몇 관객들이 눈물을 훔친다. ‘무용수가 살아있는 감정의 형태가 되도록 하는 것’이라는 노이마이어의 작품 철학이 증명된 셈이다. 현대 작곡가 레라 아우어바흐(Lera Auerbach, 1973.10.21.~)의 음악도 높은 몰입도에 한몫했다. 아우어바흐의 음악은 고전적인 발레 음악이라기보다 심리극의 배경음악으로 들릴 만큼 치밀하게 인물에 녹아들었다. 특히 인어공주의 불안한 심리를 드러내는 솔로 바이올린과 전자 기장을 손으로 작동시켜 소리를 내는 트레밀의 불협화음은 안무의 직관적인 이해를 도우며 몰입을 유도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역시 시작과 끝이 모호한 전개에서도 작품의 긴장을 주의 깊게 이끌었다. 마녀가 등장할 때는 관악이 주도적으로 등장하며 위협적인 분위기를 자아냈고, 인어공주가 왕자를 구하며 파드되를 춘 뒤 육지로 왕자를 끌어올릴 때는 현악과 목관이 교차하며 유일하게 신비롭고 평화로운 순간을 그려냈다. 

존 노이마이어의 인어공주(사진_국립발레단)
존 노이마이어의 인어공주(사진_국립발레단)

지난해 노이마이어의 지목으로 주목을 받은 인어공주 역의 최유정은 노련한 신예였다. 긴 바지를 입고 소화하는 안무도 흔들림 없이 소화한 그녀는 신체뿐 아니라 감정으로도 인어공주의 처절함을 고통스럽게 그려냈다. 시인 역의 변성완은 섬세한 손짓과 애절한 눈빛으로 안데르센의 슬픔을 표현하며 작품의 숨은 주인공 역을 톡톡히 해냈다. 이 외에도 왕자 역의 허서명과 공주 역의 정은영은 유연하고 부드러운 합으로 발레의 서정성을 더했고, 바다 마녀 역의 곽동현은 절도 있는 동작으로 작품의 긴장감을 이끌었다. 그러나 1막에서 선원들의 군무와 수녀들의 군무는 다소 어수선한 합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에로스의 종말

주지하였듯 노이마이어의 <인어공주>는 몰입도가 높았다. 그러나 고통을 날 것으로 묘사한 안무는 비극도 우아하게 표현된 기존 발레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당혹스러웠을지 모른다. 심지어 노이마이어는 작품의 주제를 ‘내가 아무리 누군가를 사랑한대도 상대가 날 사랑할 책임은 없다’고 요약한다. 그렇다면 인어공주의 사랑은 실패한 사랑이며, 사랑으로 인정할 수 없는 사랑인 것일까. 그렇지 않다. 역설적으로 노이마이어는 인어공주의 사랑을 누구보다 열렬하게 ‘사랑’이라 옹호한다.

철학자 한병철은 『에로스의 종말』에서 ‘사랑은 우리를 급습하고 상처 입히며 추락하게 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이 안락함, 소유, 가까움 등의 긍정성을 추구하면서 타인이 소거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병철이 말하는 에로스의 본질은 ‘붙잡다, 가지다, 알다’의 실패다. 그는 에로스의 본질을 타자와 나 사이의 좁힐 수 없는 이질성, 다르다는 것의 부정성으로 규정한다. 

존 노이마이어의 인어공주(사진_국립발레단)
존 노이마이어의 인어공주(사진_국립발레단)

순수한 사랑 그리고 고통

인어공주는 왕자의 인간 세계와는 본질적으로 섞일 수 없는 존재다. 비록 그녀는 왕자의 사랑을 갈망하며 인간으로 변모했지만, 왕자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를 죽이지 않는다. 그녀와 안데르센은 사랑하는 사람의 타자성을 인정한 것이다. 그들은 이별을 고했다는 이유로 연인을 무참하게 살해한 남자나, 욕망에 화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세례 요한의 머리를 베어 그에게 입 맞추는 오페라 속 팜므파탈 ‘살로메’와는 다른 인물이다.

사랑에 순수할수록 상대에게 외면받는 고통은 처절하다. 그렇기에 우아하지 못한 인어공주의 모습은 무대를 나와 사랑에 아파한 적 있는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모던 발레에 가까운 발레 <인어공주>가 어떤 작품보다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더욱이 노이마이어는 모든 것을 초월한 열반의 세계에 안데르센과 인어공주를 놓는다. 이는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그의 위로이자, 관객에게 전하는 숨겨진 메시지가 아닐까. 이소라가 ‘내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말아요,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려 한다고 괜한 헛수고라 생각하진 말아요’라 노래했듯 말이다.

음악 칼럼니스트 김보경

눈부시게 아름다운 어느 5월에 슈만의 가곡을 듣고 클래식에 입문했다. 객석 한켠에서 음악이 마치 나만을 향하는 것처럼 진심으로 듣는다. '네 비평은 음악보다 어려워‘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충격을 받아, 깊이 있으되 쉽게 읽히는 리뷰를 지향한다. 숙명여대 대학원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했고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KoCACA)에서 근무했다.

제200회 정기공연  인어공주(포스터_국립발레단)
제200회 정기공연 인어공주(포스터_국립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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