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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의 클담34] 투간 소키예프와 NHK교향악단, 음향적 텍스처의 변모와 관현악적 광휘의 통섭

도쿄 현지 취재-NHK교향악단 제2055회 정기연주회(NHK홀, 1월 23일) 프랑스 근현대 음악의 정교한 탐미주의와 러시아 관현악법의 원시적 생동감이 교차한 밤 김준형의 '클래식이 자라는 담벼락' Vol.34

지난 23일 도쿄, NHK교향악단 제2055회 정기연주회는 투간 소키예프(Tugan Sokhiev)가 설계한 정교한 ‘음향의 파노라마’였다. 이번 프로그램은 프랑스 인상주의와 현대주의가 지닌 화성적 미묘함을 전반부에, 러시아 국민악파와 스트라빈스키의 리듬적 가변성을 후반부에 배치함으로써 관현악이 도달할 수 있는 탐미적 극치를 탐구했다.인상주의적 유영과 현대적 변모: 드뷔시와 뒤티외공연의 서막을 연 드뷔시의 에서 오케스트라는 온음계와 반음계가 교차하는 특유의 화성 체계를 극히 섬세하게 구현했다. 첫 소절의 플루트

지난 23일 도쿄, NHK교향악단 제2055회 정기연주회는 투간 소키예프(Tugan Sokhiev)가 설계한 정교한 ‘음향의 파노라마’였다. 이번 프로그램은 프랑스 인상주의와 현대주의가 지닌 화성적 미묘함을 전반부에, 러시아 국민악파와 스트라빈스키의 리듬적 가변성을 후반부에 배치함으로써 관현악이 도달할 수 있는 탐미적 극치를 탐구했다.

투간 소키예프와 우에노 미치아키(사진_NHK교향악단)
투간 소키예프와 우에노 미치아키(사진_NHK교향악단)

인상주의적 유영과 현대적 변모: 드뷔시와 뒤티외

공연의 서막을 연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에서 오케스트라는 온음계와 반음계가 교차하는 특유의 화성 체계를 극히 섬세하게 구현했다. 첫 소절의 플루트 솔로는 비브라토의 폭을 유연하게 조절하며 루바토의 미학을 극대화했고, 이에 응답하는 현악기 군의 디비지(Divisi, 파트를 나누어 연주하는 기법)는 안개처럼 흩어지는 음향 텍스처를 형성하며 청각적 공간감을 확장했다.

이어지는 뒤티외의 첼로 협주곡 <아주 먼 세계>는 솔리스트 우에노 미치아키(Michiaki Ueno)와 오케스트라가 대등한 폴리포니(다성음악)적 관계를 맺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무대였다. 2022년 KBS교향악단과 루토스와프스키 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와 날 선 대립을 보여주었던 우에노는 이번 뒤티외 연주에서 곡의 핵심 기법인 '변모(Metamorphosis)'에 집중했다. 그는 고난도의 하모닉스와 미분음을 정확한 인토네이션으로 구사하며 보들레르의 시적 초월성을 소리로 치환했다. 소키예프는 오케스트라의 다이내믹 레인지를 극도로 절제하며 첼로의 미세한 배음이 공연장 전체에 공명하도록 유도했는데, 이는 솔리스트와 오케스트라 간의 유기적 통섭이 이뤄낸 미학적 승리였다.

투간 소키예프(사진_NHK교향악단)
투간 소키예프(사진_NHK교향악단)

러시아적 색채주의와 리듬적 원시주의: 림스키-코르사코프와 스트라빈스키

2부는 러시아 관현악의 화려함이 지배했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황제 술탄의 이야기> 모음곡에서 소키예프는 금관악기 군의 아티큘레이션을 날카롭게 다듬어 서사적 웅장함을 부여했다. 특히 각 악장 사이를 잇는 팡파르의 선명한 울림은 금관 섹션의 압도적인 기술적 명료함을 선보였다.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스트라빈스키의 <불새>(1919년판)는 현대 관현악이 지닌 복합 리듬과 불협화음적 에너지의 폭발이었다. '지옥의 춤'에서 나타난 강력한 스포르찬도(sfz)와 타악기의 불규칙한 악센트는 청중에게 원시적인 생동감을 전달했다. 반면, 최종장으로 향하는 이행부에서 호른 솔로가 보여준 서정적인 칸타빌레와 점진적인 크레셴도를 통한 음향의 층위 축적은 소키예프의 거시적인 구조 설계 능력을 입증했다. 마지막 장조 화음이 NHK홀의 잔향과 결합하여 소멸하는 순간, 오케스트라는 단순한 연주 집단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가청적 건축물을 완성해냈다.

우에노 미치아키(사진_NHK교향악단)
우에노 미치아키(사진_NHK교향악단)

전통과 현대, 개인과 집단의 완벽한 앙상블

이번 공연은 우에노 미치아키라는 젊은 거장이 지닌 현대적 해석력과 투간 소키예프의 통찰력이 NHK교향악단이라는 정교한 악기를 통해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보여준 이정표였다. 뒤티외의 난해한 음향 구조 속에서도 유실되지 않은 서정성 그리고 스트라빈스키의 파괴적 리듬 속에서도 유지된 질서는 이번 연주회가 지향한 '균형의 미학'을 상징한다. 프랑스와 러시아, 전통과 현대라는 이분법적 경계를 허물고 '음색'이라는 본질적 가치로 청중을 설득한 근래 보기 드문 밀도 높은 시간이었다.

음악 칼럼니스트 김준형

예술의전당 월간지 <Beautiful Life>에서 SAC’s choice 코너를 3년간 연재했으며, 객석, 피아노 음악, 스트라드, 스트링 앤 보우, 월간 오디오 등 음악 관련 매체들에 오랫동안 칼럼을 기고해 오고 있다.

투간 소키예프(포스터_NHK교향악단)
투간 소키예프(포스터_NHK교향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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