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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의 클담35] 이자벨 파우스트, 바이글레와 펼친 독일 낭만주의 정수

도쿄 현지 취재-요미우리 니폰 심포니 제283회 일요마티네시리즈(도쿄 예술극장, 1월 25일) 김준형의 '클래식이 자라는 담벼락' Vol.35

이날의 연주회는 클래식 콘서트를 넘어선 ‘음악적 고고학’의 현장이었다. 상임 지휘자 제바스티안 바이글레는 에밀리 마이어, 로베르트 슈만, 펠릭스 멘델스존이라는 세 명의 독일 낭만주의 거장을 호출하여, 그들이 공유했던 음악적 형식미와 그 이면에 숨겨진 문학적·철학적 서사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해냈다.에밀리 마이어: — 저음의 고뇌에서 피어난 ‘구원의 빛’연주회의 문을 연 에밀리 마이어의 은 이번 프로그래밍의 가장 영리한 한 수였다. 1880년 최만년에 집필된 이 곡은 괴테의 대작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이날의 연주회는 클래식 콘서트를 넘어선 ‘음악적 고고학’의 현장이었다. 상임 지휘자 제바스티안 바이글레는 에밀리 마이어, 로베르트 슈만, 펠릭스 멘델스존이라는 세 명의 독일 낭만주의 거장을 호출하여, 그들이 공유했던 음악적 형식미와 그 이면에 숨겨진 문학적·철학적 서사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해냈다.

이자벨 파우스트 & 제바스티안 바이글레(사진_요미우리 니폰 심포니)
이자벨 파우스트 & 제바스티안 바이글레(사진_요미우리 니폰 심포니)

에밀리 마이어: <파우스트 서곡> — 저음의 고뇌에서 피어난 ‘구원의 빛’

연주회의 문을 연 에밀리 마이어의 <파우스트 서곡>은 이번 프로그래밍의 가장 영리한 한 수였다. 1880년 최만년에 집필된 이 곡은 괴테의 대작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협연자 이자벨 ‘파우스트’의 이름과 제목을 일치시킨 유희적 선곡을 넘어 그 자체로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제바스티안 바이글레(Sebastian Weigle)는 파우스트의 난해하고 어두운 내면을 투영하기 위해 배치된 3대의 트롬본과 튜바의 중후한 저음역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바순과 저음 현악기가 조용히 열어젖힌 서주는 숭고한 긴장감을 자아냈고, 뒤이어 터져 나온 용맹한 주제는 대음악학자 A.B. 마르크스로부터 계승된 베토벤적 조형미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특히 악보에 기록된 “그녀는 구원받았다(Sie ist gerettet)”라는 메시지처럼, 곡의 마지막을 장식한 당당한 C장조의 전조는 비극적 고뇌를 뚫고 솟아오른 낭만주의적 광휘의 정수였다.

이자벨 파우스트 & 제바스티안 바이글레(사진_요미우리 니폰 심포니)
이자벨 파우스트 & 제바스티안 바이글레(사진_요미우리 니폰 심포니)

슈만 바이올린 협주곡: 해체된 서사와 지적 변론의 만남

이어지는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는 이자벨 파우스트의 지성적 해석이 빛을 발한 학구적 정점이었다. 파우스트는 기교적 과시를 배제한 채, 슈만 말기의 병적인 고독이 투영된 난해한 텍스트를 해체해 나갔다. 특히 2악장에서 그녀가 들려준 논-비브라토의 서늘한 음색은 약음기 없이도 악기 본연의 공명을 극대화하며 작곡가의 내밀한 고통을 미화 없이 직시하게 했다. 3악장의 폴로네즈 리듬 역시 전형적인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파우스트는 특유의 절뚝거리는 듯한 싱코페이션과 날카로운 아티큘레이션을 강조함으로써, 슈만이 의도했던 ‘불안한 유희’의 본질을 완벽하게 복원해냈다. 이는 마이어의 서곡이 보여준 ‘구원의 확실성’과 대조되는, 파편화된 영혼의 치열한 사투를 보여준 지적 변론이었다.

제바스티안 바이글레(사진_요미우리 니폰 심포니)
제바스티안 바이글레(사진_요미우리 니폰 심포니)

멘델스존 ‘스코틀랜드’: 구조적 엄밀함으로 완성한 숭고미

메인 프로그램인 멘델스존의 <교향곡 제3번 '스코틀랜드'>에서 바이글레와 오케스트라는 독일 관현악의 전통적인 중후함과 멘델스존 특유의 투명함을 결합했다. 바이글레는 전 악장을 중단 없이 연결하는 ‘아타카(Attacca)’ 방식을 택해 서사적 응집력을 극대화했다. 1악장 도입부의 안개 낀 풍광을 묘사하는 비통한 ‘모토 동기(Motto Motif)’는 전 악장을 유기적으로 관통하며 변용되었고, 이는 마침내 4악장 피날레의 장엄한 마에스토소(Maestoso) 코다에서 찬란하게 승화되었다. 도쿄 예술극장의 분석적인 음향은 오케스트라의 레이어를 선명하게 드러냈으며, 바이글레는 금관 섹션의 밸런스를 엄격히 통제하며 멘델스존이 스코틀랜드의 황량한 자연 속에서 마주했던 숭고미를 견고한 사운드 건축물로 완성해냈다.

제바스티안 바이글레(사진_요미우리 니폰 심포니)
제바스티안 바이글레(사진_요미우리 니폰 심포니)
제바스티안 바이글레(사진_요미우리 니폰 심포니)
제바스티안 바이글레(사진_요미우리 니폰 심포니)

지성과 감성이 교차하는 음악적 고고학

이번 공연은 에밀리 마이어라는 잊힌 과거를 호출하여 이자벨 파우스트라는 현대의 거장과 연결시킨, 일종의 ‘음악적 고고학’과 같았다. 제바스티안 바이글레의 견고한 리더십 아래 요미우리 니폰 심포니는 서구 낭만주의의 전통적 가치를 수호하면서도, 그 경계를 확장하려는 동시대적 시도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마이어의 서곡이 예고한 ‘구원’의 메시지가 멘델스존의 장엄한 피날레와 수미상관을 이루며 마무리된 이번 공연은,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낭만주의 음악의 본질적인 깊이를 다시금 일깨워준 기념비적인 무대였다.

음악 칼럼니스트 김준형

예술의전당 월간지 <Beautiful Life>에서 SAC’s choice 코너를 3년간 연재했으며, 객석, 피아노 음악, 스트라드, 스트링 앤 보우, 월간 오디오 등 음악 관련 매체들에 오랫동안 칼럼을 기고해 오고 있다.

이자벨 파우스트 & 제바스티안 바이글레(포스터_요미우리 니폰 심포니)
이자벨 파우스트 & 제바스티안 바이글레(포스터_요미우리 니폰 심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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