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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호 칼럼] 서울과 도쿄에 대한 가볍게 지나갈 이야기(5)

열 번 정도 생각해 본 참을 수 있는 사적인 고찰

9화. 도심 속 갈라파고스와 이코모스의 경고도시는 스스로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도시는 언제나 외부의 시선에 의해 비로소 규정됩니다. 특히 세계유산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그 공간은 한 도시의 소유물을 넘어 인류 전체의 기준 위에 올라서게 됩니다. 제도와 계획, 개발의 논리는 이 지점에서 새로운 질문과 마주합니다.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훼손해서는 안 되는가'라는 질문입니다.도쿄 황궁의 가장 깊숙한 영역에는 일반인의 발걸음이 닿지 않는 비밀의 숲, 후키아게 교엔이 있습니다. 수백 년 동안 금단의 구역으로 남겨진 이

세운상가에서 바라 본 종묘의 모습. (사진_안현호 기자)
세운상가에서 바라 본 종묘의 모습. (사진_안현호 기자)

9화. 도심 속 갈라파고스와 이코모스의 경고

도시는 스스로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도시는 언제나 외부의 시선에 의해 비로소 규정됩니다. 특히 세계유산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그 공간은 한 도시의 소유물을 넘어 인류 전체의 기준 위에 올라서게 됩니다. 제도와 계획, 개발의 논리는 이 지점에서 새로운 질문과 마주합니다.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훼손해서는 안 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도쿄 황궁의 가장 깊숙한 영역에는 일반인의 발걸음이 닿지 않는 비밀의 숲, 후키아게 교엔이 있습니다. 수백 년 동안 금단의 구역으로 남겨진 이곳은 도시의 변화와 무관하게 원시의 시간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항공 사진으로 도쿄를 내려다보면, 빽빽한 빌딩 숲 한가운데에 마치 구멍이 뚫린 듯 짙은 녹색의 섬이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변은 빛과 도로, 마천루가 끊임없이 변하지만 이곳만은 변하지 않습니다.

최근의 생태 조사에 따르면 이 숲에는 도심에서는 보기 드문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하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인간의 출입을 막고 개발을 포기한 덕분에, 이곳은 의도치 않게 도심 속 '갈라파고스'가 되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장면은 이 숲속에 천황이 직접 장화를 신고 벼를 심는 논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담장 하나 너머에는 세계 금융을 주무르는 최첨단 마천루들이 번쩍이는데, 그 바로 옆에서는 중세 시대와 똑같은 농경 의식이 치러지고 있습니다. 이 초현실적인 공존은 일본이 최첨단을 달리면서도 무엇을 중심에 두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서울의 종묘 역시 도심 속에서 유사한 역할을 합니다. 종묘는 단순한 목조 건물 군집이 아닙니다. 북악산에서 창덕궁을 거쳐 종묘로 이어지는 녹지축은 서울의 차가운 바람을 도심 깊숙이 끌어들이는 거대한 생태적 허파이자 바람길입니다. 서울시가 최근 내세운 '녹지생태도심' 비전도 이 축을 남산까지 연결하겠다는 구상에서 출발합니다. 취지는 타당합니다. 그러나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바닥에 녹지를 만들기 위해 주변을 고층 빌딩으로 벽을 치겠다는 발상은, 오히려 바람의 길을 막고 생태적 흐름을 차단하는 모순을 안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 지점에서 우리는 도쿄와 서울의 결정적인 차이를 직시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도쿄 황궁 주변도 개발하는데 서울은 왜 안 되느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습니다. 도쿄의 황궁은 일본의 국가적 상징일 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들은 국제기구의 직접적인 관리 기준을 적용받지 않은 채 자체적인 판단에 따라 개발의 수위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반면, 서울의 종묘는 인류 전체가 보호해야 할 세계유산입니다. 유네스코의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는 유산을 평가할 때 단순히 건물의 보존 상태만을 보지 않습니다.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 중 하나는 바로 '시각적 완전성(Visual Integrity)'입니다. 유산이 놓인 맥락, 즉 주변 경관과 시각적 관계가 훼손되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지를 묻습니다. 유산은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주변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그 가치가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이 기준은 결코 추상적인 경고가 아닙니다. 우리는 영국의 리버풀(Liverpool) 항구가 겪은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한때 대영제국의 번영을 상징하며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던 리버풀은, 항만 재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현대식 고층 건물들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유네스코는 수차례 우려를 표했습니다. 개발이 역사적 스카이라인을 훼손하고 유산의 진정성을 해친다는 것이었습니다. 리버풀은 이를 간과하고 개발을 강행했고, 결국 2021년 세계유산 목록에서 삭제되었습니다. 건물 자체는 남아 있었지만, 그 건물을 감싸고 있던 맥락이 사라졌다는 이유였습니다.

도쿄는 세계유산 등재 여부와 상관없이 황궁 주변을 엄격하게 관리해 왔습니다. 중심이 무너질 경우 도시 전체의 신뢰와 품격이 흔들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물며 서울의 종묘는 이미 세계유산입니다. 도쿄가 '국가적 상징'으로서의 관리를 선택했다면, 서울은 '인류의 유산'으로서의 관리를 국제사회에 약속했습니다. 이 약속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서울에서는 리버풀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는 위험한 계획들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종묘 앞 완충구역에 최고 140미터가 넘는 빌딩을 허용하겠다는 계획은 이코모스의 가이드라인과 긴장 관계에 놓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2009년 조선왕릉이 세계유산에 등재될 때도 태릉 선수촌 주변의 아파트 높이가 문제가 되어 철거 논란이 일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종묘는 그보다 훨씬 민감하고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국제 사회의 기준은 생각보다 엄격합니다. 작은 훼손이 반복되고 예외가 쌓이면 신뢰는 무너질 수 있습니다. 종묘가 더 이상 침묵의 신전이 아니라, 고층 빌딩 숲에 포위된 왜소한 유적으로 전락하는 순간, 세계유산이라는 타이틀은 심각한 경우 흔들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잃게 될 것은 단순히 유네스코 목록의 한 줄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도시가 지켜왔던 역사적 자존심일지도 모릅니다.

도쿄의 숲이 갈라파고스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곳이 보호받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재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종묘 역시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당장의 개발 이익을 위해 세계가 인정한 가치를 훼손할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리버풀의 삭제된 이름이 서울의 미래가 되지 않도록, 지금 우리는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 종묘 주변 도심의 풍경. (사진_셔터스탁)
서울 종묘 주변 도심의 풍경. (사진_셔터스탁)

10화. 바벨탑 이후의 도시, 비움이 곧 품격이다

서울과 도쿄, 아시아를 대표하는 두 거대 도시가 품고 있는 침묵의 공간을 해부해 보았습니다. 도쿄의 황궁이 권력과 자본의 정교한 타협으로 만들어진 '통제된 비움'이라면, 서울의 종묘는 전쟁과 가난, 그리고 난개발 속에서 상처 입은 채 위태롭게 버텨온 '아픈 비움'이었습니다. 이제 긴 여정을 마치며, 우리는 서울이 마주한 마지막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도쿄 마루노우치의 성공 신화는 분명 우리에게 매력적인 참조 모델입니다. 공중권을 사고팔아 역사적 건물을 복원하고, 용적률을 완화해 스카이라인을 정비한 그들의 기술은 세련되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규제를 풀어 종묘 앞에도 고층 빌딩을 짓자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가 도쿄에서 배워야 할 것은 그들의 화려한 건축 기술이 아니라, 그들이 끝내 넘지 않았던 '선(Line)'이기 때문입니다.

마루노우치가 빛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멈춰야 할 지점을 명확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황궁이라는 중심을 비워두었고, 색채를 낮추었으며, 역사적 맥락을 존중하는 대가로 높이를 얻었습니다. 황궁의 '옆'에서 자본의 욕망을 품격이라는 틀 안에 가둘 줄 알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서울의 상황은 다릅니다. 지금 논의되는 세운지구 개발 계획은 종묘의 옆이 아니라 '앞'을 가로막는 형태입니다. 황궁은 숲에 둘러싸여 있어 주변 빌딩이 보여도 내부의 신비감이 어느 정도 유지되지만, 종묘는 정전에서 뻗어 나가는 시각적 개방감이 곧 그 공간의 생명입니다. 종묘 앞에 마루노우치 식의 거대한 빌딩 장벽을 세우는 것은, 500년 된 신전이 본래의 맥락을 잃은 단순한 관광 명소로 변질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것은 문화재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박제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무조건적인 보존도, 무분별한 개발도 아닌 제3의 길, 바로 '정교함(Sophistication)'에서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첫째, "돈은 누가 내느냐"는 질문에 대해 서울시는 '한국형 공중권 거래(TDR)'라는 시장 친화적 해법을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뉴욕은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을 보존하기 위해 터미널 상공의 '짓지 않은 용적률'을 인근 개발업자에게 팔게 했습니다. 그 수익으로 문화재는 유지되었고, 주변은 고밀도로 개발되었습니다. 서울 역시 종묘 앞을 저층으로 비워두는 대신, 해당 토지주들에게 후면부나 다른 역세권으로 용적률을 팔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면 어떨까요? 막대한 세금을 들이지 않고도 사유재산권을 보장하면서, 종묘의 경관을 지켜낼 수 있는 '윈-윈(Win-Win)'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수천억 원 규모의 재정 부담을 이유로 땅을 고밀도로 개발해야 한다는 논리는, 이러한 제도의 상상력 부재를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둘째, 낙후 지역으로 분류되며 지워질 위기에 처한 을지로 산업 생태계를 위해 '순환형 재개발' 방식의 도입을 생각해 봅니다. 낡은 공구 상가를 밀어버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파리의 '리브 고슈'나 성남시의 사례처럼, 인근에 공공 임대형 지식산업센터(스마트 앵커)를 먼저 지어 장인들을 이주시키고, 기존 공간을 단계적으로 정비하는 방식을 좀 더 이어간다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를 통해 서울의 제조업 실핏줄을 끊지 않으면서도, 화재와 안전 문제를 해결하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쫓아내는 개발이 아니라, 함께 사는 재생이 진정한 선진국의 방식 아닐까요?

도시는 결국 기억으로 평가받습니다. 100년 뒤의 후손들이 2025년의 서울을 돌아볼 때, 그들은 우리가 얼마나 높은 빌딩을 지었는지 기억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계 어디에나 있는 마천루는 서울의 정체성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들은 우리가 무엇을 지키기 위해 욕망을 절제했는지, 그 '멈춤의 용기'를 기억할 것입니다. 바벨탑처럼 쌓아 올린 콘크리트는 언젠가 다시 허물어지지만, 한 번 파괴된 경관과 단절된 역사의 맥은 영원히 복구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종묘는 지금도 말없이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높지 않고, 화려하지 않으며, 조용합니다. 그러나 그 침묵은 약함이 아니라 단단함입니다. 이 침묵을 지켜내는 것은 과거를 위한 일이 아니라, 미래의 서울을 위한 가장 품격 있는 선택입니다. 종묘는 단순히 '망한 왕조의 유물'이 아닙니다. 1395년부터 500년 넘게 이어져 온 문명과 예법, 그리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려 했던 건축 미학의 집성체입니다. 당장의 경제 논리로 500년의 문명을 가려버리는 것은, 우리가 쌓아온 문화적 정체성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선택이 아닐까요?

뉴욕이 센트럴파크를 개발하지 않는 이유, 런던이 하이드파크를 지키는 이유는 그 땅이 '놀고 있는 비싼 땅'이 아니라 도시의 허파이자 경쟁력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종묘와 그 앞의 바람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도시는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들은 더 높이 올라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가 아니라, 어디까지 멈출 용기가 있는가. 앞으로의 세대에도 서울의 심장이 건강하게 뛰고 있도록, 지금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고, 숫자가 아닌 가치를 바라보는 선택을 해야 할 때입니다.

예 잘 압니다. 저의 사견이 그럼에도 부족할 수 있다는 것을요. 그래도 제 의견의 '참을 수 없는 지루함'을 잘 참아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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