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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호 칼럼] 서울과 도쿄에 대한 가볍게 지나갈 이야기(3)

열 번 정도 생각해 본 참을 수 있는 사적인 고찰

5화. 폭격도 비켜 간 성역과 청계천의 역설전쟁은 도시의 모든 가면을 벗깁니다. 평소에는 감춰져 있던 가치의 서열이 생존이 걸린 극한 상황 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도쿄와 서울은 전쟁이라는 동일한 비극을 겪었지만, 그 폐허 위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다시 세웠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1945년 3월 10일 도쿄 대공습의 밤, 도시는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미군의 폭격은 목조 가옥이 밀집한 시타마치를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었고, 하룻밤 사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도쿄는 거

청계천 공구 상가 일대. (사진_안현호 기자)
청계천 공구 상가 일대. (사진_안현호 기자)
청계천 공구 상가 일대. (사진_안현호 기자)
청계천 공구 상가 일대. (사진_안현호 기자)

5화. 폭격도 비켜 간 성역과 청계천의 역설

전쟁은 도시의 모든 가면을 벗깁니다. 평소에는 감춰져 있던 가치의 서열이 생존이 걸린 극한 상황 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도쿄와 서울은 전쟁이라는 동일한 비극을 겪었지만, 그 폐허 위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다시 세웠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1945년 3월 10일 도쿄 대공습의 밤, 도시는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미군의 폭격은 목조 가옥이 밀집한 시타마치를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었고, 하룻밤 사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도쿄는 거대한 잿더미로 변해 있었으나 기이하게도 도시 한복판의 황궁 숲만은 멀쩡했습니다. 이 장면은 종종 기적처럼 회자되지만, 사실은 냉혹하고 치밀한 전략적 계산의 결과였습니다.

당시 미군 사령부의 작전 계획에서 황궁은 폭격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회피해야 할 구역으로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천황이라는 상징을 제거하거나 황궁을 파괴할 경우, 일본인들의 저항이 극에 달할 것이라 경고했습니다. 전후 일본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는 저 상징을 살려둬야 한다는 전후 통치 전략에 대한 고려가 작용한 것입니다. 결국 권력의 주체는 바뀌었지만, 공간의 중심인 숲은 살아남아 도시를 지탱하는 기준점이 되었습니다.

서울의 전쟁 이후는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2005년 10월, 서울은 콘크리트 도로 아래 묻혀있던 청계천을 복원해 물길을 열었습니다. 덮였던 물을 다시 흐르게 한 것은 분명 환경 및 경관 측면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변화는 예기치 않은, 흥미로운 역설을 불러왔습니다. 청계천 복원은 단순한 환경 복원을 넘어, 주변 지역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바꿔버렸습니다.

쾌적하고 세련된 물길이 돌아오자,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 물길 옆에 붙어 있는 낡은 건물들로 향했습니다. 맑은 물과 화려한 조명 바로 옆에서 기계를 돌리고 쇳가루를 날리는 오래된 공구 상가들은, 갑자기 '도시의 미관을 해치는 흉물'이자 '정비해야 할 낙후 지역'으로 분류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개발의 논리는 단순해집니다. "도쿄의 마루노우치처럼 깨끗하고 높은 빌딩을 짓자."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간과된 맥락이 있습니다. 도쿄 마루노우치의 마천루들은 황궁이라는 중심을 존중하며 그 '옆'에서 오랜 시간 합의를 거쳐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반면 지금 서울의 논의는 종묘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삶의 터전을 단지 낡아 보인다는 이유로 정비 대상으로 규정하고, 그 과정을 생략한 채 도쿄의 겉모습(마천루)만 이식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그곳이 수십 년간 서울을 지탱해 온 치열한 산업 현장이라는 사실은 '경관 개선'이라는 미명 아래 흐릿해졌습니다. "이렇게 예쁜 물길 옆에 기름때 묻은 공장이 있는 것은 낭비다"라는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청계천의 생태적 복원이, 역설적으로 바로 옆 종묘 앞을 더욱 고밀도로 개발하려는 논리에 정당성을 부여한 셈이 되었습니다.

도쿄가 그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얻기 위해 지난 100년간 무엇을 참아내고, 무엇을 포기했는지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과연 우리는 도쿄의 '높이'를 흉내 낼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그 자격을 묻기 위해, 이제 도쿄의 심장부, 마루노우치와 서울 을지로의 태생적 차이를 들여다보려 합니다.

청계천 주변부 도심 개발 사진. (사진_안현호 기자)
청계천 주변부 도심 개발 사진. (사진_안현호 기자)

6화. 계획된 엘리트 도시와 쇳가루 날리는 야생의 골목

도시는 태어나는 방식에 따라 그 성격과 운명이 결정됩니다. 누군가의 치밀한 설계도 위에서 태어난 도시는 질서와 안정을 중시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손때와 시행착오 속에서 저절로 자라난 도시는 생존과 효율을 중시합니다. 도쿄의 마루노우치와 서울의 을지로는 바로 이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두 곳 모두 국가의 심장부에 인접해 있고 경제 활동의 핵심 거점이지만, 그 성장의 문법은 정반대였습니다.

1890년, 일본 메이지 정부는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황궁 바로 옆에 붙어 있던 육군 연병장 터, 지금의 마루노우치를 민간에 매각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자본가들은 아무도 이 땅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비만 오면 질퍽거리는 늪지대였기 때문입니다. 이때 미쓰비시가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여 이 땅을 전격 매입했습니다. 세간에서는 "천황 폐하의 옆자리이긴 하지만, 저 늪지대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겠단 말인가"라며 무모한 투자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미쓰비시는 확고한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영국의 런던 롬바드 거리를 모델로 삼아 붉은 벽돌의 서양식 오피스 빌딩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일정런던(一丁倫敦)', 즉 '1번지 런던'이라 불리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버려진 늪지대였던 마루노우치는 일본 최고의 비즈니스 지구로 재탄생했습니다. 이곳은 철저한 자본의 기획과 설계로 만들어진 '탑다운(Top-down)' 방식의 엘리트 도시입니다. 미쓰비시라는 거대 자본이 주도했기에 거리의 미관, 건물의 높이, 입주 기업의 수준까지 체계적인 관리와 통제가 가능했습니다. 오늘날 마루노우치의 정돈된 스카이라인은 이러한 강력한 통제와 기획의 산물입니다.

반면 서울의 을지로와 세운상가 일대는 전혀 다른 토양에서 자라났습니다. 이곳은 계획이 아닌 처절한 생존 본능이 만들어낸 야생의 도시이자, '바텀업(Bottom-up)' 방식의 생태계입니다. 한국전쟁 직후, 폐허가 된 서울로 몰려든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기술을 익혔습니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고철을 주워 기계를 만들고 부품을 깎았습니다. 작은 수리점에서 시작해 가공소와 제작소가 거미줄처럼 얽히며 성장했습니다.

"도면만 있으면 탱크도 만든다"는 말이 을지로에서는 전설처럼 회자됩니다. 그만큼 다양한 가공 공정이 밀도 있게 모여 있다는 뜻입니다. 이곳은 단순히 낡은 가게들이 무질서하게 모여 있는 슬럼이 아닙니다. 주조, 금형, 용접, 정밀 가공 등 제조업의 모든 공정이 반경 1킬로미터 안에서 원스톱으로 해결되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도심 제조업 생태계입니다. 대기업 공장에서 몇 주가 걸릴 시제품이 이곳에서는 며칠 만에 나옵니다. 이것이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진 야성과 속도, 그리고 산업적 경쟁력이었습니다.

문제는 지금 서울시가 이 거친 쇳가루 냄새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입니다. 개발 논리는 공공기관의 누적된 부채와 비효율을 해결하기 위해 고밀도 개발이 불가피하다고 말합니다. 수천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이 근거로 제시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숫자에는 뼈아픈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그 비용의 적지 않은 비중이 실제 공사나 인프라 구축에 투입된 돈이 아니라, 정책의 혼선과 지연이 낳은 누적된 이자, 즉 '금융 비용'이라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그리고 계획이 수정될 때마다 오락가락했던 행정의 지연이 빚어낸 채무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매몰 비용'이라 부르는 이 돈은 개발이 필요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어쩌면 지난 시간 동안의 행정 난맥상을 보여주는 영수증일지도 모릅니다. 왜 정책의 혼선으로 생긴 빚을, 500년 된 종묘의 경관을 팔고 서민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해서 갚으려 하는 것입니까.

마루노우치가 자본의 힘으로 기획한 도시라면, 을지로는 서민들의 땀과 기술로 자라난 도시입니다. 이 생태계를 단순히 낡았다는 이유로 밀어버리는 것은 서울의 고유한 산업 유전자를 잃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도시는 비교의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복제의 대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화려한 마천루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그 도시만이 가진 고유한 이야기와 생명력이 아닐까요. 도쿄에는 엘리트의 빌딩이 필요했고, 서울에는 장인의 골목이 필요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도시의 미래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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