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안현호 칼럼] 서울과 도쿄에 대한 가볍게 지나갈 이야기(1)
열 번 정도 생각해 본 참을 수 있는 사적인 고찰
1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어둠과 101미터의 침묵도쿄라는 거대 도시를 떠올릴 때 뇌리에 가장 먼저 스치는 이미지는 대개 빛입니다.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를 가득 메운 인파, 신주쿠 가부키초의 맹렬하게 점멸하는 네온사인, 소비와 정보가 동시에 분출되는 화면들입니다. 자본주의는 본래 소음과 빛을 먹고 자라는 생물과 같아서, 더 크고 더 밝은 것이 곧 진보라는 믿음이 도쿄의 표면을 지배해 온 듯 보입니다. 하지만 도쿄역 마루노우치 북쪽 출구를 나와 황궁, 즉 고쿄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면 도시는 갑자기 태도를 바꿉니다. 소리는 낮아지고
1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어둠과 101미터의 침묵
도쿄라는 거대 도시를 떠올릴 때 뇌리에 가장 먼저 스치는 이미지는 대개 빛입니다.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를 가득 메운 인파, 신주쿠 가부키초의 맹렬하게 점멸하는 네온사인, 소비와 정보가 동시에 분출되는 화면들입니다. 자본주의는 본래 소음과 빛을 먹고 자라는 생물과 같아서, 더 크고 더 밝은 것이 곧 진보라는 믿음이 도쿄의 표면을 지배해 온 듯 보입니다. 하지만 도쿄역 마루노우치 북쪽 출구를 나와 황궁, 즉 고쿄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면 도시는 갑자기 태도를 바꿉니다. 소리는 낮아지고, 빛은 이유 없이 사라지며, 공간은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감을 띠기 시작합니다.
이곳 마루노우치는 일본을 움직이는 메가뱅크와 대기업 본사가 밀집한 자본주의의 심장부이자, 공시지가 기준으로도 세계에서 손꼽히는 금싸라기 땅입니다. 자본의 논리대로라면 이곳은 가장 화려하고 가장 공격적인 시각 언어로 치장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빌딩 옥상을 점령해야 할 대기업의 대형 광고탑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고, 눈을 찌르는 미디어 파사드의 춤사위도 도시를 압도하는 방식으로 전면에 나서지 않습니다. 심지어 1층에 입점한 편의점의 로고조차 우리가 아는 그 원색의 발랄함을 버리고, 채도를 잔뜩 낮춘 톤으로 바뀌어 걸려 있습니다.
이 어둠은 결핍이 아닙니다. 이것은 치요다구 경관 조례와 옥외광고물 규정이 만든, 선택된 어둠입니다. 황궁의 해자를 마주한 구역에서는 황궁의 품격을 해칠 우려가 있는 점멸 조명과 붉은색 계열의 사용이 엄격히 금지됩니다. 이것은 자본보다 상위의 권위가 존재함을 도시 공간 전체에 선언하는 행위입니다. '감히 천황이 거주하는 숲을 향해 상업적 욕망의 빛을 쏘지 말라'는 암묵적 명령이 아스팔트 아래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마루노우치의 그 거대한 빌딩들은 밤이 되면 마치 성벽처럼 조용히 직립하여, 세상에서 가장 비싼 어둠을 지킵니다.
시선을 서울로 돌려봅니다. 서울 역시 거대한 소음과 빛의 도시입니다. 그러나 종로 한복판, 종묘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도쿄와는 결이 다른 차원의 거대한 정적과 마주합니다. 종묘의 핵심인 정전 앞에 섰을 때 압도되는 것은 높이가 아니라 길이입니다. 국보 제227호 정전은 단일 목조 건축물로는 세계 최장 수준인 약 101미터에 달합니다. 19개의 신실이 옆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이 기형적일 만큼 강조된 수평의 미학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서양의 성당이 신에게 닿기 위해 첨탑을 하늘 높이 올릴 때, 조선의 신전은 땅을 향해 무겁게 가라앉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기둥과 지붕이 무한히 옆으로 증식하는 이 구조는 인간의 욕망은 결코 하늘에 닿을 수 없다는 겸손이자, 죽음이라는 절대적 권위 앞에서의 무거운 침묵입니다. 도쿄가 빛을 죽여 성역을 존중했다면, 서울은 높이를 낮춰 성역을 완성했습니다. 두 도시 모두 그 심장에 거대한 침묵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쌍둥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 서울의 101미터 앞에는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수평으로 엎드린 신전 앞에서, 수직으로 솟아오르려는 도시의 에너지가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쿄가 빛을 끄고 어둠을 선택했듯, 서울도 이 침묵을 계속 품고 갈 수 있을까요? 아니면 시대의 흐름에 맞춰 새로운 풍경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제부터 두 도시의 서로 다른 선택과 그 갈림길에 선 서울의 이야기를 개인적인 의견으로 조심스럽게 살펴보려 합니다.
2화. 경계선 - 물로 지킨 성역과 도로로 잘린 기억
도시에서 경계는 단순한 선이 아닙니다. 경계는 도시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흘려보내는지에 대한 고백이며, 권력이 어디까지 작동하고 어디서 멈추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정직한 장치입니다. 도쿄와 서울은 모두 성역을 품은 도시이지만, 흥미롭게도 그 성역을 둘러싼 경계의 성격은 극명하게 다릅니다. 도쿄는 물로 경계를 만들었고, 서울은 도로로 경계를 만들었습니다. 이 역사적 선택의 차이가 두 도시의 현재를 어떻게 갈라놓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도쿄의 황궁을 물리적으로 격리하고 있는 것은 깊고 검은 물길, 바로 해자입니다. 에도 시대 도쿠가와 막부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파놓은 이 거대한 수로 시스템은, 21세기에 이르러 더욱 강력하고 상징적인 시간의 결계로 진화했습니다. 물은 흐르지만 쉽게 넘을 수 없고, 시야를 가리지만 완전히 차단하지도 않습니다. 이 물길은 단순한 방어 시설을 넘어, 도시의 시간을 두 개로 쪼개버리는 역할을 합니다.
도쿄의 평일 저녁, 해자 바깥쪽인 고쿄가이엔은 최신 러닝화를 신고 땀을 흘리며 달리는 현대인들의 세상입니다. 이른바 '황궁 런'을 즐기는 시민들의 표정은 밝고 역동적이며, 귀에는 무선 이어폰이 꽂혀 있습니다. 그러나 불과 50미터 떨어진 니주바시 다리 너머의 세상은 다릅니다. 그곳은 신분증 없이는 진입이 불가능하며, 제복을 입은 황궁 경찰이 미동도 없이 지키는 전근대의 성역입니다. 구글의 스트리트 뷰 카메라조차 이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멈춰 서며, 도쿄 땅 밑을 거미줄처럼 뚫어놓은 지하철 노선도 황궁 지하만은 감히 건드리지 못하고 빙 돌아갑니다.
도쿄는 이 명확한 선 긋기를 통해 성역을 박제하고 보존했습니다. 물은 부드럽지만, 그 어떤 콘크리트 장벽보다 단호하게 두 세계를 가릅니다. 도쿄는 성역을 도심의 장애물로 취급하지 않고, 도심의 질서를 재조정하는 기준점으로 삼았습니다.
반면 서울의 경계선은 훨씬 거칠고 복잡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본래 조선 시대의 종묘는 고립된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북쪽의 창경궁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울창한 숲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왕은 창경궁에서 숲길을 걸어 종묘로 이동하여 조상을 만났습니다. 산 자의 공간인 궁궐과 죽은 자의 공간인 종묘가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였습니다.
이 흐름이 끊어진 것은 1932년, 일제강점기였습니다. 당시 경성부 도시계획 자료에 따르면, 일제는 동서 교통을 원활하게 한다는 명분으로 창경궁과 종묘 사이의 기존 연속성을 물리적으로 끊어내고 도로를 개설했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율곡로입니다. 왕조의 맥은 차가운 아스팔트 아래로 끊어졌고, 종묘는 도심 속에 덩그러니 남겨진 고립된 섬이 되었습니다. 도로는 빠르고 명확했지만, 그 대가로 도시의 지형적 맥락을 단절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아스팔트는 누구나 건널 수 있었지만, 아무도 머물지 못하게 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종묘 남쪽을 흐르던 물길의 운명입니다. 본래 북악산과 인왕산의 물길이 모여 종묘 앞을 지나며 도심의 명당수 역할을 했던 청계천은 해방 후 근대화 과정에서 콘크리트 밑으로 사라졌습니다. 1958년부터 시작된 복개 공사로 물길은 덮였고, 그 위로 개발 시대의 상징인 삼일고가도로가 들어섰습니다. 종묘 정전 월대에서 남산을 바라볼 때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할 시선과 생태의 흐름이, 거대한 구조물과 도로에 의해 결과적으로 이중 차단되는 구조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도쿄가 물(해자)로 성역을 감싸 안을 때, 서울은 도로로 성역을 가르고 물(청계천)을 덮어버리는 선택을 했습니다. 하나는 성역 보존을 중심에 둔 선택이었고, 다른 하나는 교통과 개발의 효율을 우선한 선택이었습니다. 도쿄의 해자가 성역을 설명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게 한다면, 서울의 도로는 성역을 끊임없이 질문의 대상, 논쟁의 대상으로 만들어왔습니다. 최근 서울시가 율곡로를 지하화하고 지상의 녹지축을 복원하려하는 것은 잃어버린 맥락을 되살리려는 의미 있는 시도로 보입니다. 과연 서울은 끊어진 기억을 다시 이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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