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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의 클담32] 츠베덴-액스, “창백한 신세계와 고요한 베토벤”
얍 판 츠베덴과 이매뉴얼 액스(11/27-28) 김준형의 '클래식이 자라는 담벼락' Vol.32
지휘자 얍 판 츠베덴이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과 피아니스트 이매뉴얼 액스를 맞이하여 선보인 무대는 낭만적 관습에 물든 두 거장(베토벤, 드보르자크)의 레퍼토리를 냉철한 지성과 엄격한 통제로 해부하고 재조명하는 미학적 시도였다. 이 연주회는 감정적 과잉을 경계하며 구조적 명료함과 사운드의 질감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려는 츠베덴의 일관된 음악적 철학을 확인하는 장이었다.명쾌한 고전주의의 복원1부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은 흔히 내포하는 비극적인 무게감을 의도적으로 덜어내며 시작되었다. 츠베덴이 이끄는 서울시향은 1악장을 경쾌하고
지휘자 얍 판 츠베덴이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과 피아니스트 이매뉴얼 액스를 맞이하여 선보인 무대는 낭만적 관습에 물든 두 거장(베토벤, 드보르자크)의 레퍼토리를 냉철한 지성과 엄격한 통제로 해부하고 재조명하는 미학적 시도였다. 이 연주회는 감정적 과잉을 경계하며 구조적 명료함과 사운드의 질감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려는 츠베덴의 일관된 음악적 철학을 확인하는 장이었다.
명쾌한 고전주의의 복원
1부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은 흔히 내포하는 비극적인 무게감을 의도적으로 덜어내며 시작되었다. 츠베덴이 이끄는 서울시향은 1악장을 경쾌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열어 역동적인 운동감을 부여하는 동시에 균형 잡힌 유기적 사운드를 형성했다. 이는 베토벤의 드라마를 낭만주의적 격정보다는 고전주의적 규격 아래 두려는 츠베덴의 해석적 의도를 명확히 드러냈다.
이에 응답한 액스는 명료함이 돋보이는 피아니즘으로 음악의 구조를 해부하며 지적 통제 아래 놓인 명쾌한 음악을 창조했다. 오케스트라의 목관 앙상블과 피아노의 고요하고 정제된 타건이 빚어낸 조화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1악장 종결부에서 액스가 연출한 '고요함'은 단순한 종결이 아닌, 깊은 명상의 2악장으로 진입하기 위한 '침묵의 음악(Musica Silenziosa)'으로 기능하며 연주의 깊이를 더했다.
2악장 라르고에서 액스는 대가의 풍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의 카덴차는 서정성과 장엄함을 겸비한 가운데 깊이 있는 명료함을 잃지 않았다. 츠베덴은 오케스트라를 균형 있게 통제함으로써 이 명상적 순간이 더욱 고귀하게 빛나도록 했다. 3악장 론도는 장쾌한 추진력 속에서도 액스의 고음은 화려한 기교 대신 소박하고 아름다운 인상을 남기며 베토벤 음악의 건강한 생명력을 담아냈다.
낯선 서늘함의 미학
2부의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는 츠베덴의 해석적 모험이 더욱 과감하게 드러났다. 1악장의 출발은 서정적이고 그윽했으나, 곧 연주 전체에 창백한 느낌이 드리우며 일반적인 낭만적 열기를 거부했다. 츠베덴은 곡에 리드미컬한 활력을 부여하되, 미묘한 템포 전환과 엇갈리는 리듬을 활용하여 곡의 드라마를 전통적인 서사 대신 청각적 쾌감과 긴장으로 채웠다.
2악장 라르고는 빠른 템포로 진행되어 장엄함과 치밀하게 짜인 구도가 강조되었으며, 감성보다 이성이 전면에 나섰다. 츠베덴의 현악기 조련 솜씨는 비올라와 첼로를 부각하며 예민하고 섬세한 정서를 발산하게 했고, 이는 낭만적 포근함 대신 서늘하고 낯선 효과를 청중에게 전달했다.
3악장 스케르초는 엄격한 템포 통제 아래 극도의 긴장감을 유발하며 강렬한 추진력으로 몰아쳤다. 이러한 긴장감은 4악장에서 새로운 차원으로 전환되었다. 강력함보다 서정성에 방점을 두고 철저히 갈고닦은 조탁(彫琢)의 아름다움을 선보였다. 오케스트라는 '슈퍼 사운드'를 갖추고도 비르투오지티가 아닌 피어오르는 듯했고, 드보르자크의 향수를 지적으로 정제된 형식미로 치환하려는 츠베덴의 확고한 의지를 드러냈다.
통제된 지성의 승리
이번 연주회는 츠베덴의 일관된 지적 통제력이 승리한 무대였다. 베토벤과 드보르자크, 두 시대를 아우르는 명곡들이 지휘자의 엄격한 해석과 정밀한 오케스트라 트레이닝을 거치며 새로운 구조적, 미학적 명료함을 획득했다. 츠베덴의 음악은 다소 서늘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이는 낡은 감상주의를 걷어내고 음악의 본질적인 구조와 생명력을 탐구하려는 현시대 거장의 진지한 질문이자 청중에게 고전 레퍼토리를 새롭게 각인시키는 미학적 승리였다.
음악 칼럼니스트 김준형
예술의전당 월간지 <Beautiful Life>에서 SAC’s choice 코너를 3년간 연재했으며, 객석, 피아노 음악, 스트라드, 스트링 앤 보우, 월간 오디오 등 음악 관련 매체들에 오랫동안 칼럼을 기고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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