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준형의 클담31] 2025 서울국제음악제, 네 명의 거장이 완성한 6일간의 '춤'
바보락-소콜로프-호프만-카라비츠 김준형의 '클래식이 자라는 담벼락' Vol.31
'Dance with Me'라는 주제로 열린 서울국제음악제(SIMF)가 지난 11월 6일 폐막 음악회를 끝으로 6일간의 대장정을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독일과 슬라브의 리듬을 심층적으로 탐구한 이번 축제는 특히 호르니스트 라덱 바보락, 바이올리니스트 발레리 소콜로프, 첼리스트 게리 호프만 등 현시대 최고의 거장들과 지휘자 키릴 카라비츠의 밀도 높은 참여에 힘입어 깊이 있는 예술적 성취를 이뤄냈다.이번 축제는 주제인 '춤'을 고전과 낭만주의 레퍼토리 속에 내재된 원초적 리듬과 에너지로 재해석하며, 청중에게 익숙한 곡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Dance with Me'라는 주제로 열린 서울국제음악제(SIMF)가 지난 11월 6일 폐막 음악회를 끝으로 6일간의 대장정을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독일과 슬라브의 리듬을 심층적으로 탐구한 이번 축제는 특히 호르니스트 라덱 바보락, 바이올리니스트 발레리 소콜로프, 첼리스트 게리 호프만 등 현시대 최고의 거장들과 지휘자 키릴 카라비츠의 밀도 높은 참여에 힘입어 깊이 있는 예술적 성취를 이뤄냈다.
이번 축제는 주제인 '춤'을 고전과 낭만주의 레퍼토리 속에 내재된 원초적 리듬과 에너지로 재해석하며, 청중에게 익숙한 곡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경험하게 하는 데 주력했다.
SIMF의 비전과 류재준 예술감독의 삼위일체적 역할
SIMF는 예술감독 류재준의 혁신적인 기획 아래 매년 새로운 주제와 국제적인 아티스트 구성을 통해 주목받는 음악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류 감독은 이번 축제에서 세 가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SIMF의 질적 성장을 견인했다.
첫째, 독창적인 공연 기획자(Curator)로서의 역할이다. 그는 축제의 주제인 '춤'을 관통하는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데 있어 과감함을 선보였다.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리사이틀과 같은 무게감 있는 기획부터, 한일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타케미츠 토오루의 <가을의 현> 한국 초연과 같은 미지의 보석을 발굴하는 시도까지, 그의 큐레이션 역량은 연주 목록 제공을 넘어 축제 전체에 깊은 학문적 통찰과 서사를 부여했다.
둘째, 작곡가로서의 창의적 시각을 축제에 녹여내는 역할이다. 이번 축제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매년 현역 작곡가로서 자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려 왔으며, 전통 레퍼토리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축제의 프로그래밍에 신선한 해석을 더해왔다. SIMF가 흔히 말하는 '거장들의 집합소'가 아닌 창조성이 살아 숨 쉬는 음악적 플랫폼으로 기능하게 했다.
셋째, 음악감독으로서 연주 수준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역할이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최정상급 연주자들로 단기간 구성되는 SIMF 오케스트라와 실내악 앙상블의 특성상, 연주 수준이 느슨해지거나 앙상블이 미흡해질 위험이 있다. 류 감독은 이러한 일회성 환경 속에서도 엄격한 예술적 조정을 통해 모든 연주가 최정상급의 밀도와 완성도를 갖도록 보장하며,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이번 SIMF의 다채로운 무대에서 짙은 존재감을 발휘한 네 명의 핵심 아티스트의 활약상을 조명한다.
라덱 바보락, 축제의 서막을 연 '호른의 제왕'
호르니스트 라덱 바보락은 베를린 필하모닉의 수석 주자를 거쳐 현재 세계 최고의 호르니스트 중 한 명으로 인정받는 거장이다. 그는 이번 SIMF의 개막 음악회와 실내악 시리즈에서 가장 꾸준하고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호른의 제왕'이라는 명성을 재확인했다.
바보락의 활약은 개막 음악회에서부터 축제의 서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시작되었다. 이 무대는 바보락의 다재다능함이 빛난 무대였다. 그는 SIMF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지휘자로서의 정교함과 협연자 및 독주자로서의 거장적인 기교를 동시에 선보였다.
첫 곡인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7번>은 그야말로 '연회 음악'이라는 제목에 걸맞은 우아함과 재치를 뽐냈다. 바보락의 지휘 아래 SIMF 오케스트라는 특히 춤곡 리듬을 경쾌하면서도 우아하게 살려내며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어진 로세티의 <두 대의 호른을 위한 협주곡>에서는 바보락이 국내 정상급 호르니스트 김홍박과 함께 독주자로 나섰다.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의 모델이 되었을 것으로 평가되는 이 곡에서, 두 연주자는 고전 시대 호른 특유의 장엄한 팡파르와 서정적인 로망스를 완벽한 호흡으로 표현했다. 대미를 장식한 피아졸라의 <탱고의 역사>는 개막 음악회의 백미였다. 이 작품은 피아졸라가 '춤추는 탱고'에서 '듣는 예술 음악'으로 일으킨 혁명의 여정을 호른의 격정적인 목소리로 압축해냈다. 바보락의 호른은 탱고의 관능성과 고독, 그리고 폭발적인 에너지를 완벽하게 담아냈다.
실내악 무대에서도 그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German Dance에서는 베토벤의 초기작 <육중주>를 통해 빈 귀족 사회의 유쾌한 춤곡 리듬을 능숙하게 연출했다. 그의 호른은 다른 악기와 부드럽게 융화되면서도 앙상블 전체의 음향적 균형을 책임졌다. Slavic Dance에서는 러시아 음악의 아버지 글린카의 초기작 <칠중주>에 참여하여, 목관과 현악 사이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며 글린카의 청년기 재기를 명쾌하게 조명했다. 그의 일관된 높은 음악성은 SIMF 실내악의 일관된 높은 완성도를 책임진 숨은 공헌이었다.
발레리 소콜로프, '춤'의 역동성을 수놓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발레리 소콜로프는 현시대 가장 주목받는 젊은 거장 중 한 명으로, 이번 축제 실내악 무대에 참여하여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의 연주는 마치 청중을 섬세하면서도 역동적인 '춤'의 순간으로 이끄는 듯했다.
소콜로프의 활약은 두 차례의 실내악 무대에서 가장 빛났다. 먼저 멘델스존의 <팔중주>에서 제1 바이올린으로서 앙상블을 이끌었다. 그는 16세의 멘델스존이 폭발시킨 천재적인 열정과 에너지를 정교하면서도 폭발적인 기교로 표현해냈다. 특히 질주하는 듯한 리듬 속에서 소콜로프의 리드는 앙상블 전체를 역동적인 춤사위로 끌어올렸으며, 젊은 거장의 카리스마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차이콥스키의 격정적인 명작 <플로렌스의 추억>을 연주하며 러시아 음악의 깊은 정서를 담아냈다. 현악 육중주라는 밀도 높은 편성 속에서 소콜로프는 깊고 뜨거운 슬라브적 감수성을 현에 담아냈다. 그는 폭발적인 열정과 극한의 서정을 오가며 일상적인 앙상블의 차원을 넘어선 드라마틱한 대화를 주도했으며, SIMF가 추구하는 주제 '춤'의 활력과 정교함을 가장 잘 구현해낸 아티스트로 평가된다. 그의 헌신적인 앙상블 참여는 SIMF 실내악의 질을 한 단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게리 호프만, 베토벤으로 '음악과 삶이 하나'임을 증명
첼리스트 게리 호프만은 '베토벤과 함께 춤을' 리사이틀을 통해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전 5곡을 하루 저녁에 연주하는 압도적인 대장정을 펼쳤다. 그의 연주는 "우리는 우리 자신처럼 연주한다"는 신념처럼, 완벽한 기계적 훈련이 아닌 "음악과 삶이 하나"라는 철학적 신념을 투영하는 듯했다.
그는 베토벤의 전 생애에 걸쳐 작곡된 이 다섯 곡을 통해 작곡가의 음악적 성장과 변화를 밀도 있게 그려냈다. 특히 마지막 제5번에서는 호흡이 길고 나른한 아다지오 선율을 통해 깊고 숭고한 명상적 감동을 선사했으며, 이는 호프만 특유의 소리를 빛나게 하는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폐막 공연을 제외한 모든 실내악 무대에서도 앙상블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며 낭만 시대 실내악의 서정성을 극대화했다.
키릴 카라비츠, 라흐마니노프의 마지막 춤 완성
SIMF 오케스트라의 지휘봉을 잡은 우크라이나 출신 지휘자 키릴 카라비츠는 폐막 음악회에서 압도적인 리더십과 역동적인 해석을 선보이며 축제의 대미를 장식했다.
그는 한일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의 첫 곡, 타케미츠 토오루의 비올라 협주곡 <가을의 현> 한국 초연에서 동양적 정서의 고요함과 찬란함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메시앙을 연상시키는 타케미츠 특유의 '조성의 바다' 같은 음향 속에서 비올리스트 박하양과 함께 고요함 속에 숨겨진 '현(끈)'의 움직임을 명확하게 포착했다.
무엇보다 클라이맥스였던 라흐마니노프의 마지막 작품 <교향적 무곡>에 이르러 카라비츠의 진가가 발휘되었다. 그는 이 곡을 춤곡의 범주에 묶어두지 않고, 라흐마니노프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응축된 '교향적 대하드라마'로 격상시켰다. 특히 2악장의 왈츠가 유령의 무도회처럼 음습한 분위기를 연출할 때, 카라비츠는 어두운 색채를 극대화했다. 3악장에서 선율이 교차하며 사후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던질 때, 그의 지휘는 관현악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며 축제의 주제인 '춤'을 강렬한 희망과 감사의 찬가로 마무리 지었다. 앙코르로 선곡한 히사이시 조의 <인생의 회전목마>는 회심의 선택이었다. 한일 수교 60주년이라는 의미를 되새기면서도 청중에게 회고적 감동을 선사했다.
삶의 힘을 되새긴 춤, “Dance with Me”
'춤'이라는 주제로 고전과 낭만, 동서양을 관통했던 2025 서울국제음악제는 베토벤과 슈베르트 속에 숨겨진 댄스 리듬부터, 러시아 음악의 야만적이고 역동적인 춤사위, 그리고 라흐마니노프의 철학적인 '마지막 춤'까지 아우르는 지적이고 감동적인 여정이었다.
거장들의 타협 없는 연주와 국내외 아티스트들의 완벽한 앙상블 속에서, SIMF는 춤이 가진 원초적인 리듬과 에너지가 시대를 넘어 우리의 삶에 어떻게 힘을 불어넣는지 다시 한번 증명해 보였다. 류재준 예술감독의 탁월한 기획력과 아티스트들의 헌신적인 연주가 어우러진 이번 축제는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 깊은 족적을 남겼으며, 다음 해를 기약하는 강렬한 희망의 메시지를 남기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음악 칼럼니스트 김준형
예술의전당 월간지 <Beautiful Life>에서 SAC’s choice 코너를 3년간 연재했으며, 객석, 피아노 음악, 스트라드, 스트링 앤 보우, 월간 오디오 등 음악 관련 매체들에 오랫동안 칼럼을 기고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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