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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의 클담30] 서울시오페라단 40주년 기념, 베르디 ‘아이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11/15) 김준형의 '클래식이 자라는 담벼락' Vol.30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본래 장대한 규모의 오페라를 담아내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드문 공간이다. 이번 서울시오페라단 40주년 기념 무대는 그러한 공간적 강점을 십분 활용해, 가 요구하는 거대한 스케일을 정면으로 구현한 연출이었다. 무대 전체를 장악하는 대형 구조물은 이집트 왕국의 위용과 질감을 생생하게 재현했고, 장면마다 등장하는 상징적 오브제와 세트는 작품의 공간적 변화를 역동적으로 환기시켰다.특히 2막 개선 장면은 이번 프로덕션의 야심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대규모 합창, 무용수, 병사 군무가 무대를 완전히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본래 장대한 규모의 오페라를 담아내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드문 공간이다. 이번 서울시오페라단 40주년 기념 무대는 그러한 공간적 강점을 십분 활용해, <아이다>가 요구하는 거대한 스케일을 정면으로 구현한 연출이었다. 무대 전체를 장악하는 대형 구조물은 이집트 왕국의 위용과 질감을 생생하게 재현했고, 장면마다 등장하는 상징적 오브제와 세트는 작품의 공간적 변화를 역동적으로 환기시켰다.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사진_서울시오페라단)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사진_서울시오페라단)

특히 2막 개선 장면은 이번 프로덕션의 야심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대규모 합창, 무용수, 병사 군무가 무대를 완전히 점령하며 스펙터클을 극대화했고, 오르간 플랫폼까지 확장된 트럼펫 반다는 360도 입체적 음향을 구현해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장엄한 공간감을 실현했다. 이 장면의 에너지와 시각적 밀도는 베로나의 아레나 야외극장이나 브레겐츠의 호반 무대를 떠올리게 할 만큼 강렬했다.

대규모 군무가 만들어내는 집단적 힘과 무용수의 상징적 몸짓이 합창과 어우러지며 개선 장면의 공간감을 입체적으로 확장시켰다. 이 세 요소는 군사적 행렬의 박력과 의식적 움직임의 예술성을 균형 있게 결합해 장면의 밀도를 끌어올렸고, 결과적으로 2막은 물량 과시를 넘어 서사적 에너지와 무대적 긴장감이 집중된 절정으로 완성되었다.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사진_서울시오페라단)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사진_서울시오페라단)

그렇다고 이 공연이 규모의 과시에만 머문 것은 아니다. 작품의 극적 동력은 결국 노예 신분의 에티오피아 공주 아이다와 이집트 왕녀 암네리스라는 두 여성의 심리적 대립에서 비롯된다. 라다메스를 사이에 둔 연정의 충돌이자, 신분·권력·사랑이 얽혀 비극을 향해 급류처럼 흘러가는 긴장 구조다.

연출은 이를 과장된 동작 대신 미니멀한 무대와 절제된 조명으로 응축해 표현했고, 1막 3중창과 2막 1장에서 드러난 인물 간의 정서적 팽팽함은 과장 없이 섬세하게 구축되었다. 이러한 긴장 축적은 나일강 장면에서 한층 강렬한 갈등의 분출로 이어졌다. 특히 나일강 장면은 두 사람의 비밀스러운 고백과 도망의 꿈, 그리고 그것이 산산이 무너지는 순간까지의 감정선이 단계적으로 확장되어, 장면의 비극적 중력이 한층 더 깊이 전해졌다.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사진_서울시오페라단)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사진_서울시오페라단)

4막의 심판 장면은 연출적 선택이 돋보였다. 심판관이 무대에 등장하지 않고, 무대 뒤편에서 울려 퍼지는 서라운드 음향으로만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극장 전체가 심판의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이는 보이지 않는 권력의 공포와 폐쇄감, 그리고 라다메스를 옥죄는 비가시적 권위를 극적으로 부각시켰다.

암네리스와 라다메스의 장면은 애틋함과 절망이 교차하는 깊은 정서의 층위를 만들어냈다. 특히 암네리스의 사랑, 분노, 포기의 감정이 교차하며 라다메스를 향해 뻗어가는 호소는, 단순한 비극적 순간을 넘어 그녀의 운명 그 자체를 응축한 듯했다. 마지막 4막 2장에서 아이다와 라다메스가 맞이하는 마지막 중창 역시 고요한 절망 속에서 묘한 평온이 배어 있었고, 두 사람이 선택한 ‘함께하는 죽음’이 장중한 음악적 호흡 속에 침잠하며 작품의 비극적 완결성을 선명히 했다.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사진_서울시오페라단)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사진_서울시오페라단)

성악가들의 해석: 목소리로 구축한 심리와 서사

타이틀 롤을 맡은 임세경은 2015년 이탈리아 베로나 아레나 축제에서 아이다를 맡은 한국인 최초의 소프라노로서, 이후 스칼라 극장 등 유럽 여러 무대에서 이 배역을 반복해 해온 경력이 있다. 그런 베테랑답게 이번 연주에서도 “아이다만 100회”를 부르며 쌓아온 내공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녀의 발성과 프레이징 전체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고, 캐릭터의 서사를 흔들림 없이 이끌어가는 안정감이 돋보였다. 비극적 인물의 내면을 품고 있었고, 장대하고 날카로운 고음과 매력적인 중음역을 오가는 과정에서도 긴 호흡과 섬세한 텍스처가 살아 있었다.

특히 <이기고 돌아오라>와 <오 나의 조국이여>와 같은 유명한 아리아 장면에서의 폭발적인 성량, 그리고 고음의 파괴력까지 모두 안정적으로 펼쳐 보였다. 그러나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중창 장면에서의 심리 표현이었다. 아이다가 지닌 정체성(여인으로서 사랑, 공주로서 조국에 대한 충성, 딸로서의 의무)이 복합적으로 교차하는 순간들을 그녀는 과장 없이, 그러나 깊이 있게 구축하며 주역으로서 극의 중심축을 완벽하게 세웠다.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사진_서울시오페라단)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사진_서울시오페라단)

암네리스 역의 양송미는 중후한 중저음의 질감이 작품의 권력 구조를 소리로 표현해냈다. 음색의 밀도와 안정적 발성 덕분에 인물의 위압감은 확실히 확보되었고, 2막의 대립 장면에서는 공격적 어택과 어두운 음색으로 질투와 분노의 에너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심리 묘사 면에서 아이다 대비 감정선이 조금 더 직선적이었지만, 인물의 상징성에는 적절히 부합했다.

람피스 역의 최웅조는 깊고 단단한 저음으로 사제의 권위와 냉혹함을 구현했고, 대극장에서도 잃지 않는 소리의 존재감은 극의 기둥 역할을 확실히 해냈다. 아모나스로 역의 유동직은 거친 질감의 음색을 캐릭터의 성격 묘사로 적극적으로 변환해냈고, 전사적·호전적 기질을 생생하게 드러내며 극에 강한 긴장감을 더했다.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사진_서울시오페라단)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사진_서울시오페라단)

40주년 의미: 한국 오페라 제작사의 저력 증명

서울시오페라단의 40년은 곧 한국 오페라 제작사(史)의 중요한 축과 맞닿아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 오페라 생태계가 점차 체계를 갖추어가는 과정에서, 이 단체는 기획·제작·공연의 삼박자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온 공공 오페라 제작 기관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이번 서울시오페라단 40주년 기념 ‘아이다’는 장대한 스케일과 섬세한 심리 묘사, 뛰어난 성악진과 짜임새 있는 합창·군무, 그리고 대극장의 공간성을 극대화한 연출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무대였다. 이는 단순히 기념 공연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한국 오페라가 도달한 현재의 위치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상징적으로 제시하는 무대였다.

음악 칼럼니스트 김준형

예술의전당 월간지 <Beautiful Life>에서 SAC’s choice 코너를 3년간 연재했으며, 객석, 피아노 음악, 스트라드, 스트링 앤 보우, 월간 오디오 등 음악 관련 매체들에 오랫동안 칼럼을 기고해 오고 있다.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포스터_서울시오페라단)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포스터_서울시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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