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보경의 클래식 동맹④] “손수건에 무너진 영웅의 페르소나, 오텔로의 절규가 섬뜩한 이유”
2024년 예술의전당 오페라
연인이 밥을 먹다가 다른 이성의 깻잎을 떼어준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한때 SNS를 강타해 여전히 대화 주제로 오르내리는 논쟁이 있다. 일명 ‘깻잎 논쟁’이다. 이는 2019년, 에서 방영된 노사연과 이무송의 에피소드가 재생산되고 확대된 것이다. 질문을 받은 이들은 한결같이 당혹감을 드러내지만, 이내 행위에 내재된 연인의 심리를 유추하며 불쾌감을 토로한다. 가상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깻잎 한 장은 순식간에 질투의 단서가 된다.이렇듯 질투는 작은 단서 하나에도 눈두덩처럼 커져 심리적 위협을 촉발하고, 심한
연인이 밥을 먹다가 다른 이성의 깻잎을 떼어준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한때 SNS를 강타해 여전히 대화 주제로 오르내리는 논쟁이 있다. 일명 ‘깻잎 논쟁’이다. 이는 2019년, <집사부일체>에서 방영된 노사연과 이무송의 에피소드가 재생산되고 확대된 것이다. 질문을 받은 이들은 한결같이 당혹감을 드러내지만, 이내 행위에 내재된 연인의 심리를 유추하며 불쾌감을 토로한다. 가상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깻잎 한 장은 순식간에 질투의 단서가 된다.
이렇듯 질투는 작은 단서 하나에도 눈두덩처럼 커져 심리적 위협을 촉발하고, 심한 경우 열등감과 자아 존중감의 상실로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초래한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남성은 상대방의 성적 부정이 암시될 때 민감하게 반응한다. 더불어 심리학자 함진선과 이장한의 연구에 따르면, 외향적인 남성일수록 성적 질투를 더 강하게 느낀다고 한다. 이러한 점은 질투를 다룬 오페라가 현대에도 유효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이유와 손수건을 단서로 벌어진 ‘오텔로’의 비극에 관한 흥미로운 추측을 제공한다.
<오텔로>를 위해 모인 천군만마
지난 8월 18일부터 25일까지 예술의전당은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 프로덕션과 공동으로 기획한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를 선보였다. 필자는 22일, 오텔로 역에 이용훈과 이아고 역에 프랑코 바살로, 데스데모나 역에 흐라추히 바센츠, 카시오 역에 이명현이 출연한 공연을 관람하였다. 베르디는 오페라 작곡 초기에는 이탈리아 국민의 염원을 대변하는 작품으로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이후 인간의 심리와 갈등을 강렬하게 부각시키는 작품을 선보였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좋아했던 베르디는 대본가 아리고 보이토(Arrigo Boito, 1842~1918)와의 만남으로 『오텔로』를 오페라로 만들 결심을 하게 된다. 질투를 소재로 한 오페라의 목록에서 빠질 수 없는 이 작품은 현대적인 불협화음과 끝없이 이어지는 음악, 심리를 치밀하게 파고드는 드라마틱한 작품으로 베르디의 말년을 대표하는 역작이다.
세계적인 연출가 키스 워너(Keith Warner)의 연출과 뉴욕 메트 오페라(MET Opera)의 주역으로 데뷔해 전 세계를 누빈 테너 이용훈의 캐스팅은 국내 관객들의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워너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텔로』를 읽으며 ‘인간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있다’며 감탄했다던 베르디의 정신을 살려 구도와 조명을 통해 오텔로의 심리를 드라마틱 하게 표현했다. 또한 워너는 베르디와 보이토가 무어인의 특성을 인지하면서도 외면적으로는 그 정체성을 명확하게 드러내도록 지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초연 오텔로에서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을 캐스팅해 인종적 타자성을 해체했다. 이번 프로덕션의 주역인 이용훈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동양인으로서 유럽 무대에서 겪은 설움을 언급하며 지극히 인간적인 오텔로의 등장을 예고했다.
파국을 암시하는 강렬한 상징
1막과 2막은 조명과 공간의 분리를 활용한 상징적 연출이 빛났다. 도입부에서 번뜩이는 번개를 연상시킨 흰 조명은 강렬한 악의 잔상을 남기며 폭풍우를 뚫고 돌아왔지만 악에 잠식당하는 오텔로의 역설적인 운명을 암시했다. 오텔로와 데스데모나가 사랑을 나누는 침실은 모로코풍 장식을 조명으로 구현하며 외부와 구분된 공간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 장식은 수많은 구멍을 연상시키며 외부의 시선에 취약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는 오텔로가 처한 환경적 특성에서 어린 시절부터 길러졌을 오텔로의 경계심과 불안을 연상시켰다.
손수건을 매개로 극적 긴장감이 조성되는 2막 후반부는 이번 프로덕션의 수준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데스데모나, 바이올린이 주도하는 따스한 분위기는 파국으로 향하는 오텔로와 초조한 이아고의 모습과 대조되며 아이러니를 자아냈다. 특히 의심의 싹이 튼 오텔로와 그를 표현하는 저음역의 현악은 이아고를 드러내는 포악한 금관과 긴장감을 형성하며 인물의 심리를 주도적으로 조성했다. 반면 데스데모나와 에밀리아를 묘사하는 고음역의 현악은 섬세한 피아니시모로 인물의 심리를 고요히 뒷받침했다.
오텔로와 사자상
3막과 4막은 인물 간 구도와 극단적인 하이라이트, 오텔로의 영광을 상징하는 사자상을 통해 오텔로의 파국이 연출됐다. 3막에서 이아고와 카시오의 대화를 엿듣는 오텔로는 그들의 반대편에 놓인 좁고 높은 흰색 발코니에서 의심에 갇혔고, 4막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조각난 사자상은 흰 침실과 대조적으로 배치되어 인물의 운명을 암시했다. 특히 작품 전반에 걸쳐서 등장한 날개 달린 사자상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상징성을 지니며 극에 통일성과 입체감을 부여했다.
우선 사자상은 오텔로의 이방인으로서의 영광을 보여준다. 사자상은 가톨릭에서 성인인 성 마르코를 상징하는 사자상에서 차용한 것이다. 성 마르코는 작품의 배경인 키프로스 섬 출신의 성인으로, 이방인 출신의 기독교인을 위해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서를 전한 인물이다. 그는 이집트로 파견되어 알렉산드로에 교회를 세우고 주교가 되었으나, 이방인의 습격에 의해 희생된다. 따라서 1막과 3막에서 성 마르코로 위시된 오텔로는 선구자적인 이방인이자 키프로스의 영웅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한다.
더불어 이러한 가톨릭적 상징은 오텔로가 추앙받았던 이유에 성스러운 인간성이 내포되었음을 함의한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 오텔로의 성품은 ‘격정에도 끄떡없는 고결한 성품’으로 묘사된다. 따라서 4막에서 무대 오른편에 배치된 두 동강난 사자상은 오텔로의 덕성이 완전히 몰락했음을 상징한다. 이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연상케 하는 자세로 죽어간 데스데모나와 완전한 대비를 이루며 처절한 여운을 남겼다.
베르디의 위대함이 드러난 음악
이렇듯 상징적이면서도 직관적인 워너의 연출은 지휘자 카를로 리치(Carlo Rizzi)의 손끝을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더해져 빛을 발했다. 도입부의 짧은 음형에서는 오케스트라의 긴장이 느껴져 응집력을 의심했지만, 귀를 찢듯 포효하는 총주는 폭풍우를 효과적으로 묘사하며 우려를 잠식시켰다. 후반부에서도 집중력을 잃지 않은 국립심포니는 4막 중 데스데모나의 두려움과 순수함이 교차하는 ‘버들의 노래’와 ‘아베마리아’에서도 현악과 목관이 회상과 체념의 정서를 주도하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에베레스트를 넘은’ 성악가들의 열연은 명작을 빛내고 한국의 오페라 강국으로서의 도약을 기대하게 했다. 작품을 이끌어간 이용훈은 다소 극적이고 거친 성구전환으로 오텔로의 심리 변화와 갈등을 강조했다. 특히 데스데모나의 이름을 부르고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은 팔세토(falsetto, 가성)로 처리했는데 순결한 사랑에 감격하는 뉘앙스를 덧붙여 서정성을 부각시켰다. 이러한 모습은 데스데모나의 순수함을 부각시킨 바센츠와 무리 없이 어우러졌다. 바센츠는 포근하면서도 풍부한 음색으로 오텔로의 고통과 고독을 감싸주는 데스데모나를 품위 있게 그려냈다. 바센추의 절제되고 우아한 움직임은 발작적인 몸짓과 일그러진 표정으로 격분하는 이용훈과 대비되어 관객의 몰입을 자아냈다.
의외의 아쉬움은 이아고 역을 맡은 바리톤 프랑코 바살로에게 남았다. 바살로는 분명 안정적인 연주와 연기를 선보였으나, 문제는 그가 ‘안정적’이라는 데에 있었다. 작품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이아고의 아리아,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에서도 바살로는 일관된 톤으로 다소 평면적인 연주를 선보였다. 베르디는 자신의 오페라에서 연극적 표현의 강조와 더불어 힘 있는 발성과 분출하는 음의 표현을 요구했으며, 당시 유럽을 휩쓸었던 바리톤의 절창을 듣고 이아고의 영감을 받아 오페라에 착수했다. 따라서 절대악을 자처하여 신에 대한 믿음을 전복시키는 이아고에게는 단순한 표현을 넘는 고도의 연기가 요구된다. 바살로는 태연한 표정과 찌푸리는 눈짓을 오가며 이아고의 심리를 드러냈지만, 내면이 추동하는 강력한 악의 힘에서 발현된 표현에는 미치지 못했다.
총체적 수작이 남긴 씁쓸한 뒷맛
주지하였듯 워너는 다소 절충적인 레지테아터(Regie-Theater, 연출가가 원작의 시대와 배경을 자신의 해석에 따라 바꾸는 것) 방식을 취하여 고전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극의 몰입을 유도했다. 특히 그는 의상과 배경에서 15세기를 비롯해 시간적 배경을 짐작하게 하는 요소를 일관되게 제거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동일하게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 프로덕션으로 올랐던 오페라 <노르마>나 올해 5월 초연한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가 극의 진행 과정에서 현대적 요소를 삽입하여 관객의 거부감을 일으켰던 것과 비교되었다.
오페라 <노르마>의 경우 2막 중 노르마의 집에 TV가 놓이고 애니메이션이 방영되는 부분은 노르마의 기품과 갈등의 몰입을 훼손하며 당혹감을 자아냈다. 오페라 <죽음의 도시>에서는 3막의 마리에타의 의상이 엇갈린 반응을 낳았다.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신앙으로 회복하는 파울은 1900년대 초의 정장을 입고 있지만, 그를 비웃는 마리에타는 헐렁하고 편안한 회색 잠옷을 걸친 것이다. 이러한 현대적 장치는 인물의 상황이나 성향을 보여주려는 의도였지만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그렇다면 워너의 연출은 병적인 질투에 사로잡혀 최후를 맞은 오텔로의 서사를 모두에게 설득시켰는가? 막이 내리자 ‘연출과 연주는 훌륭했지만 오텔로의 비극을 동정하기는 어렵다’는 반응이 지배적으로 들려왔다. 이러한 반응의 1차적인 책임은 셰익스피어의 원작 『오텔로』에서 1막을 삭제하여 무어인이자 이방인으로 자란 오텔로의 특수한 심리성향을 삭제한 베르디에게 있을 것이다. 그러나 2차적인 책임은 연출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워너는 ‘데스데모나의 마돈나화는 베르디 작품의 약점 중 하나인 듯하다’며 베르디 작품의 한계를 인지했으면서도, 병적이고 파괴적인 상상력으로 데스데모나를 살해한 오텔로를 ‘외로움과 절망의 희생양’으로 옹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인에게 질투로 벌어지는 참극은 더 이상 파토스(Pathos, 청중의 감성)를 유발시키는 장치가 아닌, 범죄이자 위협으로 인식된다.
현실과 공명하는 오페라를 기대하며
지난 2018년 1월, 이탈리아 피렌체 마지오 피오렌티노 극장에서는 결말을 뒤바꾼 오페라 <카르멘>이 올랐다. 카르멘이 자신을 살해하려는 돈 호세를 쏘아 죽인 것이다. 연출을 맡은 레오 무스카토(Leo Muscato)는 이 같은 연출을 두고 ‘남편이나 남성에 의해 살해되는 여성을 위해 결말을 바꾸고, 이탈리아의 사회적 현실에 대항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여성 살해는 과거의 일이 아니다. 한국여성의전화의 보고서에 의하면 작년 한 해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 내 여성 살해’ 피해자는 최소 138명이라고 한다. 영국인 연출가인 워너가 한국의 상황을 대변하기는 어렵겠으나, 이런 상황에서 오텔로의 외로움에 공감하며 연민을 의도하는 연출은 현실 착오적으로 다가온다. 폭력을 옹호하지 않을 의무는 전 세계에 있고, 레지테아터는 오페라를 현실과 공명시켜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공동기획인 예술의전당은 여성 살해 보도가 빈번하게 들려오는 한국의 현실을 고려할 수는 없었을까. 지난 2002년에도 로열오페라하우스 프로덕션의 오페라 <오텔로>를 선보인 예술의전당은 현재까지 오페라 기획의 선구적인 쾌거를 이끌어왔다. 하지만 공연이 해외 프로덕션의 소개 이상의 의미를 지니려면, 막이 올라가는 곳이 ‘한국’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깻잎과 손수건은 가볍고 우습지만, 데스데모나의 죽음은 섬뜩하고 안타깝다. 앞으로의 기획공연에서는 보다 현실과 공명하는 오페라를 기대해 본다.
음악 칼럼니스트 김보경
눈부시게 아름다운 어느 5월에 슈만의 가곡을 듣고 클래식에 입문했다. 객석 한켠에서 음악이 마치 나만을 향하는 것처럼 진심으로 듣는다. '네 비평은 음악보다 어려워‘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충격을 받아, 깊이 있으되 쉽게 읽히는 리뷰를 지향한다. 숙명여대 대학원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했고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KoCACA)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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