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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의 클래식 동맹⑤] “단풍과 닮은 환상적 선율, 서울에서 만난 비엔나의 정경”

2024 서울국제음악회 ‘비엔나의 여름’ (10/19) 김보경의 클래식 동맹 vol. 5

매년 10월이면 생각나는 국제음악제가 있다. 올해로 16년째 다양한 주제로 시대를 넘나드는 작품을 선보여 온 ‘서울국제음악제’다. 지난한 여름이 앗아 간 생기를 불어넣으려는 듯, 이번 서울국제음악회의 주제는 ‘중부유럽여행’이었다.그중 필자가 주목한 공연은 오스트리아 빈 태생의 두 작곡가, 쇤베르크와 슈베르트의 실내악이 나란히 연주된 ‘비엔나의 여름’ 공연이었다. 10월 19일에 열린 이 공연은 쇤베르크 탄생 150주년을 맞아 19세기와 20세기 작곡가의 대표작을 역순으로 배치하였다. 하지만 음악적 이상을 위해 색다른 표현을 시도하고

매년 10월이면 생각나는 국제음악제가 있다. 올해로 16년째 다양한 주제로 시대를 넘나드는 작품을 선보여 온 ‘서울국제음악제’다. 지난한 여름이 앗아 간 생기를 불어넣으려는 듯, 이번 서울국제음악회의 주제는 ‘중부유럽여행’이었다.

그중 필자가 주목한 공연은 오스트리아 빈 태생의 두 작곡가, 쇤베르크와 슈베르트의 실내악이 나란히 연주된 ‘비엔나의 여름’ 공연이었다. 10월 19일에 열린 이 공연은 쇤베르크 탄생 150주년을 맞아 19세기와 20세기 작곡가의 대표작을 역순으로 배치하였다. 하지만 음악적 이상을 위해 색다른 표현을 시도하고, 개인의 상황과 심리를 음악에 녹여낸 두 작곡가의 정신을 유기적으로 드러내 박수를 이끌었다.

2024 SIMF 실내악 '비엔나의 여름' (사진_오푸스)
2024 SIMF 실내악 '비엔나의 여름' (사진_오푸스)

시대를 품고 개인을 담다, 쇤베르크 <정화된 밤>

이날 연주된 작품은 쇤베르크의 <현악 육중주를 위한 ‘정화된 밤’(Op.4)>(이하 <정화된 밤>)과 슈베르트의 <팔중주 바장조(D.803)>였다. <정화된 밤>은 리하르트 데멜의 시 ‘두 사람’을 음악으로 옮긴 작품으로, 후기 낭만주의의 특징과 쇤베르크의 음악 언어가 집약된 걸작이다. 대립과 화합을 반복하는 여섯 대의 현악은 등장인물의 심리는 물론 당대 예술가들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암시한다.

당시 빈의 젊은 예술가들은 프로이센과의 전쟁으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와 가부장제의 모순, 부르주아의 권력욕에 깊은 회의를 품었다. 더욱이 빈의 음악계는 브람스파와 바그너파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두 사람 모두를 받아들인 쇤베르크의 음악을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화된 밤>은 관습의 모순에 부딪힌 인간의 혼란과 새 시대를 향한 쇤베르크의 열망을 빗대어 들을 수 있다.

2024 SIMF 실내악 '비엔나의 여름' (사진_오푸스)
2024 SIMF 실내악 '비엔나의 여름' (사진_오푸스)

유기적인 갈등과 대립

첫 곡을 위해 모인 여섯 명의 현악 연주자들은 호흡과 음량에 세밀한 주의를 기울이며 균형 있는 앙상블을 이끌어냈다. 첨예한 갈등에도 균형감이 돋보인 연주였다. 뒤 쪽 벽면에는 데멜의 시가 음악에 맞춰 띄워져 작품의 이해를 도왔다.

1절에서는 비올라와 첼로의 주도로 극적 긴장감이 신중하게 조성됐고, 2절과 3절에서는 바이올린이 빛났다. 바이올리니스트 엘리나 베헬레의 섬세한 트레몰로와 김재원의 매끄러운 도약은 여인의 불안에 성스러움을 덧댔다. 갈등의 심리가 최고조에 이르기 전, 모든 연주자들은 충분한 휴지로 정서의 대비를 부각시켜 긴장과 완화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2024 SIMF 실내악 '비엔나의 여름' (사진_오푸스)
2024 SIMF 실내악 '비엔나의 여름' (사진_오푸스)

절제된 활기로 비감을 조성하던 비올리스트 김상진과 하세호는 4절에 이르자 서정적인 보잉으로 남성의 포용력을 부각시켰다. 첼로를 맡은 아르토 노라스와 심준호는 진중하고 담백하게 정경을 그려냈다. 비록 5절의 종결부에서 피치카토의 흔들림은 아쉬웠지만, 극도의 피아니시모를 섬세하게 조절해 여운을 남겼다.

전반적으로 이날의 연주는 균형을 잃지 않은 호흡이 돋보였고, 관능적인 색채보다 정화의 순수한 환희가 여운을 남긴 호연이었다. 그러나 이 점은 당시의 시대상을 떠올리는 데에 한계를 야기하는 지점이기도 했다. 격렬한 불안과 충동, 관능과 에로티시즘은 당시 예술가들에게 보수적인 사회의 모순을 폭로하는 장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셈여림이나 속도에서 좀 더 극단적인 대비를 이끌었다면 작품 이면의 시대 정서가 더 크게 다가왔으리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2024 SIMF 실내악 '비엔나의 여름' (사진_오푸스)
2024 SIMF 실내악 '비엔나의 여름' (사진_오푸스)

웃음에 어린 미묘한 그림자, 슈베르트 <팔중주>

인터미션 이후 이어진 슈베르트의 <팔중주>는 분위기를 반전시켜 친숙하고 경쾌한 가을 여행을 이끌었다. 클라리넷, 호른, 바순,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는 여러 색의 단풍이 조화롭게 펼쳐진 가을 풍경을 연상시켰다. 쇤베르크의 작품과 형식적 차이가 뚜렷했지만, 앞서 언급했듯 작곡가가 전통을 바탕으로 고유의 음악 언어를 녹여냈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2024 SIMF 실내악 '비엔나의 여름' (사진_오푸스)
2024 SIMF 실내악 '비엔나의 여름' (사진_오푸스)

작품을 작곡할 당시의 슈베르트는 생사를 오가는 극심한 병세에서 겨우 회복해 한결 성숙하고 초연한 자세로 작곡에 임했다. 그는 이 작품과 현악 사중주 두 개를 거의 동시에 작곡했는데, 그중 한 곡이 <죽음과 소녀(D.810)>다. 대체로 경쾌하고 명랑하게 흘러가는 팔중주지만 낙관적인 노래에 어둑한 비애가 드리워지는 이유다.

여덟 주자 모두 유려한 색채로 연주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고전과 낭만을 넘나드는 악상을 밀도 있게 구현했다. 은밀하게, 혹은 불현듯 급습하는 슈베르트의 양면성은 목가적인 색채가 돋보인 클라리네스트 김 한과 신비로운 웅장함을 자아낸 호르니스트 라도반 블라트코비치, 역동성과 추진력이 돋보인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의 대비로 느낄 수 있었다.

2024 SIMF 실내악 '비엔나의 여름' (사진_오푸스)
2024 SIMF 실내악 '비엔나의 여름' (사진_오푸스)

슈베르트를 말하는 여덟 대의 악기

1악장은 하나로 특정 짓기 어려운 멜랑꼴리를 품고 우아한 대화가 이어졌다. 각 악기가 주제부를 순차적으로 이어받을 때 리듬이나 질감이 달라지는 구간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균형감이 돋보이는 연주였다. 모든 연주자들은 과장된 속도 대신 호흡에 주의를 기울였고, 조성이 바뀔 때 정서 변화를 강조했다. 특히 호른을 맡은 블라트코비치는 단단한 음형으로 교향악적 효과를 불어넣었고, 제2바이올린을 맡은 스티븐 김은 차분한 보잉으로 안정감을 유도했다.

목가적이면서도 애수를 머금은 2악장은 클라리넷을 맡은 김 한의 유려한 호흡이 돋보였다. 주선율을 섬세하게 받쳐주며 슈베르트의 내성적인 면모를 묘사한 비올리스트 이한나의 활약도 이목을 끌었다. 전반적으로 청년 슈베르트가 지녔을 사랑과 꿈을 연상시켰고, 시적인 악상의 통일감이 돋보였다. 침묵도 음악으로 만드는 실내악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2024 SIMF 실내악 '비엔나의 여름' (사진_오푸스)
2024 SIMF 실내악 '비엔나의 여름' (사진_오푸스)

스케르초의 경쾌함을 지닌 3악장은 주제 간 리듬과 셈여림의 대조가 뚜렷해 입체감이 돋보였다. 그러나 초반엔 응집력과 활기가 저하되어 아쉬움을 남겼다. 제1바이올린을 맡은 백주영은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악센트를 강조하고 속도를 당겼지만, 악기군의 음량차가 선명해져 의도와는 반대의 효과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후반부에선 악기 간 균형이 살아나며 안정적인 마무리가 이루어졌다.

4악장은 민요풍이었지만 고상함을 머금고 시작됐다. 변주가 진행될수록 각 악기의 색채가 돋보여 팔중주의 묘미를 선사했다. 특히 제2변주에서 겹점음표를 깊이 있게 처리한 첼리스트 김민지의 선율이 돋보였다. 제4변주의 계단식 음형에서 선명도가 떨어진 구간은 아쉬웠지만, 다채로운 변화가 이어지는 후반부에서도 저음현의 풍부함으로 악상의 변화를 주도하며 입체감을 불어넣었다.

2024 SIMF 실내악 '비엔나의 여름' (사진_오푸스)
2024 SIMF 실내악 '비엔나의 여름' (사진_오푸스)

은은한 애수가 깃든 5악장은 현악과 목관이 주제를 균일하게 이어받으며 아늑한 정서를 이끌었다. 특히 목관의 주도로 내성적인 슈베르트가 일관되게 연상되었다. 레가토에 이어지는 끝 음을 간결하게 처리한 클라리넷은 소년 슈베르트의 모습을 자아냈고, 여유롭고 단단한 호흡의 호른은 고독을 딛고 성숙해진 청년 슈베르트를 연상시켰다.

별다른 휴지 없이 이어진 6악장은 도입부에서 위기감을 조성했으나, 이내 우아한 활기를 되찾으며 한 시간에 이르는 긴 여정을 경쾌하게 마무리했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도입부의 서주에서 셈여림의 대비와 트레몰로의 진동이 좀 더 강렬했다면 슈베르트의 양면성이 입체적으로 드러났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열정과 희망이 내포된 재현부의 악상이 강조된 것은 ‘비엔나의 여름’에 걸맞은 종결이었다.

2024 SIMF 실내악 '비엔나의 여름' (사진_오푸스)
2024 SIMF 실내악 '비엔나의 여름' (사진_오푸스)

실내악, 경청의 의미를 복구하다

교향곡이 작곡가의 자서전이라면, 실내악은 작곡가의 일기를 엮은 산문과 비슷하다. 2024 서울국제음악제는 개막음악회를 시작으로 약 6일에 걸쳐 중부 유럽과 한국 작곡가들의 실내악을 중점적으로 선보였다. 매년 동시대와 호흡해 온 서울음악제이기에 이번 음악제는 인내심이 짧아진 사회에서 경청의 의미를 복구하려는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실내악은 2인 3각 달리기와 비슷하여 각자의 실력보다 서로에게 보폭을 맞추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슈베르트의 <팔중주>를 듣는 내내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뿐 아니라 더블베이스를 맡은 박정호, 바순을 맡은 김현준 등의 연주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균형감을 이루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타인의 호흡을 경청하고 관찰하며 주선율을 받쳐준 연주자들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며, 서울국제음악제의 활약이 앞으로도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2024 SIMF 실내악 '비엔나의 여름' (사진_오푸스)
2024 SIMF 실내악 '비엔나의 여름' (사진_오푸스)

음악 칼럼니스트 김보경

눈부시게 아름다운 어느 5월에 슈만의 가곡을 듣고 클래식에 입문했다. 객석 한켠에서 음악이 마치 나만을 향하는 것처럼 진심으로 듣는다. '네 비평은 음악보다 어려워‘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충격을 받아, 깊이 있으되 쉽게 읽히는 리뷰를 지향한다. 숙명여대 대학원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했고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KoCACA)에서 근무했다.

2024 서울국제음악제(포스터_오푸스)
2024 서울국제음악제(포스터_오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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