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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우 시사칼럼] 노동절, 노동에 대한 철학적 고찰
노동은 인간 고유의 본질이다. 인간은 노동함으로써 인간성을 발현한다. 노동을 통해 동물적 본성인 식욕과 성욕 그리고 수면욕을 넘어 인간 고유의 창조성과 생산성을 발현한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한다. 그래서 노동은 신성하다. 노동은 본질적으로 창조적(=생산)이다.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설계하고, 그 계획에 따라 실행하고, 노동의 산물인 생산물을 전유하는 행위 그 자체야말로 인간성의 발현인 동시에 인간이 다른 생물종들과는 다른 인간을 인간이게끔 만드는 과정이다.이와달리 노동의 소외, 소외된 노동은 생산자(=노동자)가 생산을 계
노동은 인간 고유의 본질이다. 인간은 노동함으로써 인간성을 발현한다. 노동을 통해 동물적 본성인 식욕과 성욕 그리고 수면욕을 넘어 인간 고유의 창조성과 생산성을 발현한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아를 실현한다. 그래서 노동은 신성하다.
노동은 본질적으로 창조적(=생산)이다.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설계하고, 그 계획에 따라 실행하고, 노동의 산물인 생산물을 전유하는 행위 그 자체야말로 인간성의 발현인 동시에 인간이 다른 생물종들과는 다른 인간을 인간이게끔 만드는 과정이다.
이와달리 노동의 소외, 소외된 노동은 생산자(=노동자)가 생산을 계획하지도, 생산과정을 인지하지도, 생산물을 전유하지도 않는다. 노동자는 생산의 계획에서 소외되며, 생산과정에도 소외되고, 생산행위(=노동)로부터도 소외되며 생산의 결과물인 생산물로부터도 소외된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산업사회 임노동의 본질이다.
사적 소유와 임노동에 기반한 사회에서 노동의 소외, 소외된 노동은 필연적이다.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영위하는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에 대해 낯설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 결과에 대해 아무런 소유권도 가지지 못하며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소외되고, 수많은 공정으로 '나누어진' 노동 과정의 한 부속품이 돼 버린다. 이때 소외는 경제적 박탈과 함께 심리적 박탈을 동반한다.
소외된 노동은 인간 본질의 실현 과정인 노동의 '대상화', 즉 창조적 노동행위가 노동의 '현실화'가 아닌, 노동의 '탈현실화'로 역전된다. 인간은 사용가치를 생산해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노동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의 노동생산물이 그들의 욕구와는 무관한, 그들과는 낯선 독립적인 힘으로서 그들을 지배하게 된다. 요컨대 노동자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자연적 노동대상에 자신의 생명을 집어넣게 되지만 이렇게 노동대상에 투여된 노동자의 생명이 노동자로부터 떨어져 나가 그에게 낯선 적대적인 힘이 되는 것이다.
소외는 생산의 '결과'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생산 행위 곧 생산하는 활동 '내부'에서도 나타난다. 노동자는 자기의 생명을 대상화한 노동의 결과, 즉 노동 생산물로부터 소외됐을 뿐만 아니라 생산의 과정에서, 그리고 생산 활동 그 자체 내에서 소외된다. 전자가 생산물로부터의 소외라고 표현된다면, 이것은 생산 활동으로부터의 소외, 또는 노동 자체로부터의 소외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인간의 소외를 마르크스는 '자기소외'라고 불렀다.
소외된 노동에 대한 지금까지의 두 가지 규정으로부터 그것의 '제3의 규정'이 나온다. 이 두 가지 소외의 형태는 유적 생활과 개인적 생활을 소원한 것으로 만들고 추상화된 개인생활을 추상화되고 소외된 형태로서의 유적 생활의 목적으로 삼음으로써 유적 생활을 개인적 생활의 수단으로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이것이 유적 존재로부터의 소외이다.
소외된 노동은 인간에게서 자연을 소외시키고, 그 자신을, 즉 그의 고유한 능동적 기능, 그의 생활 활동을 소외시킴으로써, 인간에게서 유(類)를 소외시킨다. 소외된 노동은 인간의 유적 생활을 개인적 생활의 수단으로 만들어 버린다. 첫째로 소외된 노동은 유적 생활과 개인적 생활을 소외시키고, 둘째로 추상 속에 있는 후자를, 마찬가지로 추상된, 소외된 형식 속에 있는 전자의 목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해 결국 노동하는 인간, 노동자는 인간(=타인)에게서 소외될 뿐 아니라 스스로에게서도 소외된다. 노동자의 노동은 더 이상 창조도 아니고 생산도 아닌 고통과 생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이제 노동자는 노동할 때가 아니라 노동을 멈출 때 행복감을 느낀다. 노동할 때 보다 먹고 자고 쉴 때가 즐겁고, 먹고 자고 쉬기 위해 노동한다. 다른 동물들처럼. 이것이 현대사회의 소외된 노동, 소외된 인간의 현주소다.
노동이 유희가 되고, 노동이 창조가 되고, 노동이 자아실현의 과정과 결과가 될 때만이 비로소 즐겁고 행복한 삶이 구현된다. 그것이 노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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