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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상일, “네오 마에스트로를 향한 첫 포디엄”

피아니스트에서 오케스트라의 리더로 2026년 1월 23일, 프라임필 지휘자 데뷔

“제가 이제 지휘를 하게 됐습니다.”피아니스트이자 아시아퍼시픽피아니스트협회(PAPA)의 얼굴로 활동해온 한상일에게서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영 아티스트들의 ‘파파’를 자처하며 누구보다 분주한 한 해를 보낸 그가 꺼낸 ‘지휘’라는 단어는 기자의 귀를 단번에 붙잡았다. 올 한 해 PAPA의 여러 현장을 누비며 달려온 그의 말에는 하나의 계획으로 치부하기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지휘자의 길, 첫 무대"언제부터였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어렸을 적부터 오케스트라 음악에 관심이 많았어요. 피아노를 연습할 때도 늘 오케스트

“제가 이제 지휘를 하게 됐습니다.”

피아니스트이자 아시아퍼시픽피아니스트협회(PAPA)의 얼굴로 활동해온 한상일에게서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영 아티스트들의 ‘파파’를 자처하며 누구보다 분주한 한 해를 보낸 그가 꺼낸 ‘지휘’라는 단어는 기자의 귀를 단번에 붙잡았다. 올 한 해 PAPA의 여러 현장을 누비며 달려온 그의 말에는 하나의 계획으로 치부하기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지휘자/피아니스트 한상일(사진_PAPA)
지휘자/피아니스트 한상일(사진_PAPA)

지휘자의 길, 첫 무대

"언제부터였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어렸을 적부터 오케스트라 음악에 관심이 많았어요. 피아노를 연습할 때도 늘 오케스트라를 상상하며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2026년 1월, 그 오랜 상상은 마침내 현실이 된다. 피아니스트와 기획자를 거쳐 이제 한상일에게는 ‘지휘자’라는 새로운 이름이 더해진다. 오는 1월 23일, 군포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는 그는 협연자가 아닌 포디엄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른다. 설렘과 긴장을 동시에 안고 내딛는 지휘자로서의 첫걸음이다.

지휘자/피아니스트 한상일(사진_PAPA)
지휘자/피아니스트 한상일(사진_PAPA)

색채감 가득한 피아니즘… 이젠 오케스트라로

"피아노 음악은 언제든 오케스트라로 변신할 수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피아노는 다양한 음색과 모든 음역대를 품고 있는 악기니까요."

리스트는 피아노를 오케스트라처럼, 쇼팽은 성악가의 노래처럼 다루기를 바랐다. 그 결과 리스트는 비르투오조의 상징이 되었고, 쇼팽은 ‘피아노의 시인’으로 남았다.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 라벨의 오케스트레이션을 통해 전혀 다른 세계를 펼쳐 보였듯, 피아노는 언제나 오케스트라를 내포해온 악기였다.

"저 역시 오랫동안 연주하면서 늘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상상해왔습니다. 말러가 ‘가장 중요한 것은 악보에 적혀 있지 않다’고 말했듯, 피아노 악보를 볼 때마다 그 뒤에 숨은 오케스트라의 스코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건반 하나를 눌러도 머릿속에서는 현악과 관악, 타악의 소리가 함께 울리는 느낌이었죠."

지휘자/피아니스트 한상일(사진_PAPA)
지휘자/피아니스트 한상일(사진_PAPA)

지휘자로서의 꿈을 구체화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스크리아빈의 <교향곡 1번>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합창이 포함된 여섯 개의 악장으로 흘러가는 그 음악을 들으며, 다시 한번 큰 꿈을 꾸게 됐습니다. 피아노에서 시작된 상상이 점점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느꼈죠."

20대에 피아노 공부를 마친 뒤, 그는 지휘를 다음 단계로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내 한 기획사로부터 피아니스트로 함께 활동해보자는 제안을 받으며 상황은 달라졌다. 이후 여러 무대와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 이어졌고, 이 시간은 연주자인 동시에 지휘를 꿈꾸는 음악가로서 오케스트라를 현장에서 마주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자 학습의 과정이 되었다.

"'두드리면 열린다'는 말처럼, 마음속에만 그려왔던 음악적 판타지가 조금씩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피아니즘에서 출발한 제 상상은 이제 ‘오케스트라’라는 더 넓은 세계로 향하고 있어요."

유아기 시절의 한상일(사진_PAPA)
유아기 시절의 한상일(사진_PAPA)

음악가의 길

한상일이 피아노를 처음 만난 것은 네 살 때였다. 한글을 채 익히기도 전이었고, 어머니의 기억에 따르면 장난감보다 피아노를 더 좋아해 좀처럼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너무 어린 나이 탓에 학원 원장이 입학을 망설이기도 했고, 당시 돈을 좀 더 보태서 집을 살지를 고민하다가 서울의 아파트 대신 피아노를 선택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는 웃으며 이 일화를 전했다.

부모님 모두 음악을 사랑하고 직접 연주를 즐겼다. 아버지는 재즈 피아노와 포크 기타, 성악에 조예가 깊었고, 어머니 역시 늘 피아노를 취미로 연주했다. 집 안에는 항상 클래식 음악이 흘렀고,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곡들이었다. 피아니스트를 진로로 선택하자 아버지는 다니던 울산의 H사를 그만두고 상경했다.

"저 한 사람 때문에 집도, 직장도 그만두게 되었다고 말하시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온 가족이 한 방향으로 힘을 모아준 시간이었어요."

그는 이제 그 선택과 헌신의 무게를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책임감은 현재의 선택, 즉 지휘와 PAPA 그리고 ‘네오 마에스트로’라는 개념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휘자/피아니스트 한상일(사진_PAPA)
지휘자/피아니스트 한상일(사진_PAPA)

PAPA 1년의 시간, From Korea

지난 1년은 한상일에게 쉼 없이 흘러간 시간이었다. 두 차례의 기자간담회와 아홉 번의 공연을 비롯해 크고 작은 행사를 치르며, 하나의 생각이 실제 움직임으로 구현되는 과정을 경험했다.

PAPA는 ‘유럽처럼 아시아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뜻을 함께하는 피아니스트들과 손을 맞잡으며 시작된 연합은 어느덧 1주년을 넘겼고, 이는 단지 하나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더 큰 계획의 일부가 되었다.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K'라는 키워드는 이제 클래식 음악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 영역에서 세계의 흐름을 이끄는 언어가 되었다.

"이제는 'To Korea'가 아니라 'From Korea'의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비되고 사라지는 아티스트가 아니라 변화를 주도하는 리더가 요구되는 시대. 이를 위해서는 개인의 역량을 넘어서는 연합과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제가 그 시스템 안으로 먼저 들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PAPA는 그 토대이고 포디엄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지점이죠."

지휘자/피아니스트 한상일(사진_PAPA)
지휘자/피아니스트 한상일(사진_PAPA)

네오 마에스트로

한상일이 자신의 지향점을 압축해 표현한 단어가 바로 '네오 마에스트로(Neo Maestro)'다.

"'네오 마에스트로'는 음악의 장(場)을 스스로 개척하는 리더를 의미합니다.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무대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부터 설계, 실행까지 주도하며 아티스트들이 설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죠."

그는 이제 클래식이 더 이상 서양 문화의 전유물로 인식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유럽에서는 사양 산업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클래식을 비롯하여 오페라와 발레가 아시아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활황을 맞고 있고, 세계적인 악단과 아티스트들이 한국을 찾는 흐름만 보아도 클래식 시장의 중심은 이미 상당 부분 이동했다는 것이다.

"서양의 콩쿠르를 통과해야만 세계적인 음악가가 된다는 편견 그리고 서양의 기준만을 정답으로 여기는 문화사대주의를 벗어나고 싶습니다."

클래식은 특정 지역이나 문화의 소유물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며 이제는 스스로의 기준과 자긍심으로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할 시점이라는 그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지휘자/피아니스트 한상일(사진_PAPA)
지휘자/피아니스트 한상일(사진_PAPA)

About 한상일

피아니스트 한상일은 일찍부터 자신의 이름을 또렷이 각인시켜온 연주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 과정 재학 중 부산음악콩쿠르, 동아음악콩쿠르, KBS서울신인음악콩쿠르를 연이어 석권하며 주목받았다. 서울예술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김대진 교수를 사사했으며, 이후 독일 뉘른베르크 음악대학 최고연주자과정에서 볼프강 만츠 교수 문하에서 수학했다.

국내 교육을 기반으로 국제 무대에서 성과를 거둔 1세대 피아니스트로서 2005년 에피날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과 2011년 부조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 파이널리스트 선정은 그의 국제적 행보를 본격화한 계기였다. 이 시기 백건우로부터 "자신만의 개성 있는 소리를 지닌 피아니스트"라는 평을 받았다. 이후 프랑스 로렌 국립오케스트라, KBS교향악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등과 협연하며 음악적 밀도와 색채를 꾸준히 쌓아왔다.

음반 활동 또한 지속적이다. 2016년 Sony Classical에서 발표한 <라흐마니노프 & 프로코피예프>를 시작으로 2023년 Warner Classics를 통해 베토벤 소나타 음반과 뉴에이지 앨범을 선보였으며, 2025년까지 꾸준히 레코딩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그는 연주자이자 교육자로 활동하는 한편, 아시아퍼시픽피아니스트협회(PAPA) 회장과 PANG 프로덕션 CEO 겸 Artistic Director를 맡고 있다.

지휘자/피아니스트 한상일(사진_PAPA)
지휘자/피아니스트 한상일(사진_PAPA)

인터뷰를 마치고…

"존경하는 지휘자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카라얀과 번스타인을 꼽았다. "완벽한 음향미를 추구하는 카라얀의 레가토와 음색, 인간적인 에너지로 충만한 번스타인의 자유로운 해석을 존경한다. 이러한 상반된 두 세계를 균형 있게 담아내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한상일. 이 고백은 앞으로 포디엄 위에서 펼쳐질 그의 예술적 방향을 짐작하게 한다.

지난 1년간 그는 피아니스트와 기획자 그리고 지휘자로서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이러한 행보는 전향이라기보다는 그가 켜켜이 쌓아온 시간의 자연스러운 확장에 가깝다. 이제 그의 다음 행보는 이러한 고민과 경험이 실제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시간이 될 것이다. 

지휘자/피아니스트 한상일(사진_PAPA)
지휘자/피아니스트 한상일(사진_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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