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섬 이야기] 해수면 상승과 싸우는 시(詩)의 힘, 가라앉는 고향을 위한 서사 - 마셜제도(Marshall Islands)
바다에 잠기는 시어(詩語) - 기후위기의 전선에서 외치는 캐시 제트닐-키지너 ... "우리는 우리 섬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UN에서 울린 딸을 향한 시 한 편2014년, 마셜제도 출신의 시인이자 기후정의운동가인 캐시 제트닐-키지너는 유엔 기후정상회의 무대에 섰다. 그녀는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을 향해 자신의 고향, 마셜제도를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바닷물이 점점 높아져 섬을 집어삼키고, 심지어 묘지에 묻힌 이들의 유해마저 땅에서 떠밀려 나오는 현실을 절절히 전하며 딸에게 바치는 시를 낭송했다. 그녀의 시는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아무도 물에 빠지지 않아, 아가야. 아무도 이곳을 떠나지 않아."트럼프 이후, 더욱 힘겨워진 싸움그로부터 4년 후, 미국의 행
UN에서 울린 딸을 향한 시 한 편
2014년, 마셜제도 출신의 시인이자 기후정의운동가인 캐시 제트닐-키지너는 유엔 기후정상회의 무대에 섰다. 그녀는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을 향해 자신의 고향, 마셜제도를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바닷물이 점점 높아져 섬을 집어삼키고, 심지어 묘지에 묻힌 이들의 유해마저 땅에서 떠밀려 나오는 현실을 절절히 전하며 딸에게 바치는 시를 낭송했다. 그녀의 시는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아무도 물에 빠지지 않아, 아가야. 아무도 이곳을 떠나지 않아."
트럼프 이후, 더욱 힘겨워진 싸움
그로부터 4년 후, 미국의 행정부가 바뀌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제트닐-키지너는 "이제 정치인들에게 특별히 전하고 싶은 말은 없다"고 했다. 그녀는 “우리가 기후위기의 존재를 인정하게 만들기 위해 다시 처음부터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권 이후로 더 많은 이들이 기후변화를 부정하거나 외면하게 됐고, 그로 인해 활동이 더 어려워졌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위기가 사람들을 하나로 묶었다. 그녀는 “우리가 지역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고,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오히려 우리가 계속 싸워야 할 이유를 더 분명히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물에 잠기는 섬, 그리고 분노
제트닐-키지너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체감한 것은 2010년, 하와이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섬의 평평함, 그리고 거대한 바다가 코앞까지 다가오는 것을 본 그녀는 처음으로 홍수를 경험했다고 한다. 만조 때마다 바닷물이 육지로 넘쳐흘렀고, 그녀는 그제야 자신의 고향이 처한 위기를 깨달았다.
그녀는 당시 읽은 기사들이 마셜제도의 사람들 대신 외부인의 시선으로만 쓰였던 것에 분노했다. “기사는 늘 우리가 떠나야 할 운명이라고만 썼다. 정작 우리와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게 가장 괴로웠다”고 말했다.
마셜제도의 이중고통
마셜제도는 총면적 181.43km²에 불과한 작은 섬나라다. 29개의 환초와 1,156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부분의 섬이 해수면보다 고작 2~3미터 높이에 위치해 있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보고서에 따르면, 2100년까지 해수면이 1미터 상승할 경우 마셜제도의 40%가 물에 잠길 것으로 예측된다.
이미 지난 20년간 해수면은 연평균 3.4mm씩 상승했으며, 이는 전 세계 평균인 2.8mm보다 높은 수치다. 2014년부터 2019년 사이에는 마셜제도에서만 6번의 심각한 홍수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약 2,500가구가 피해를 입었다. 이는 전체 인구의 약 25%에 해당하는 규모다.
핵실험과 기후변화, 이중의 재난
마셜제도는 오랫동안 재앙을 겪어왔다. 1946년부터 1958년까지 미국은 마셜제도에서 67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했다. 이는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1,000배에 달하는 위력이었다. 특히 1954년 3월 1일에 실시된 '브라보' 핵실험은 예상보다 2.5배 강력한 15메가톤의 폭발력을 일으켰고, 주변 섬들에 방사능 낙진을 뿌렸다.
이로 인해 주민들의 암 발병률은 전 세계 평균보다 30% 높아졌으며, 갑상선암 발병률은 무려 5배나 높다. 방사능 노출로 태어난 아이들은 '해파리 아기'라 불렸고, 두개골에 종양이 생긴 아이들은 '포도송이'라는 잔혹한 이름으로 불렸다.
현재 에뉴에타크 환초의 루닛섬에는 방사능 폐기물을 담은 콘크리트 돔이 있는데, 현지 주민들은 이를 '무덤'이라 부른다. 이 돔에는 약 88,000m³의 방사성 폐기물이 담겨 있으며, 최근 해수면 상승과 구조물 노후화로 인해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경제적 현실과 생존의 위기
마셜제도의 경제상황은 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1인당 GDP는 약 3,300달러로 세계 평균의 1/3 수준이며, 최저임금은 시간당 2.50달러에 불과하다. 인구의 36%가 빈곤선 아래에서 생활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농경지 염류화로 2010년 이후 농작물 생산량이 20% 감소했다. 2013년에는 심각한 가뭄으로 식수 부족 사태가 발생했고,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당시 1일 식수 배급량은 1인당 3리터로 제한되었으며, 세계보건기구(WHO) 권장량인 15리터의 1/5 수준이었다.
여성에게 더 가혹한 기후위기
제트닐-키지너는 "이 모든 문제는 여성에게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유엔여성기구(UN Women)의 조사에 따르면, 기후재난 발생 시 여성과 아동의 사망률은 남성보다 14배 높다. 마셜제도에서는 가정 내 물 관리와 식량 확보가 주로 여성의 책임인데,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담수 오염은 이들의 노동 시간을 50% 이상 증가시켰다. 또한 기후위기로 인한 스트레스는 가정폭력 증가로 이어졌다. 마셜제도 여성지원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심각한 기후재난이 발생한 해에는 가정폭력 신고가 평균 35% 증가했다. 그녀는 "이런 상황 속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과 학대가 더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시와 희망을 잃지 않는 싸움
그녀는 시인으로서 이 절망의 땅에서도 희망을 말하고자 한다. 유엔에서 낭송했던 시 '그들에게 전하라(Tell Them)'에서는 마셜제도의 황금빛 파파야 노을과 반짝이는 바다를 노래하며, 딸에게 자랑스러운 고향을 물려주고 싶다는 바람을 담았다.
또한 청년 비영리단체 '조 지쿰(Jo Jikum)'을 운영하며, 다음 세대에게 '우리의 땅'을 지키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 단체는 지금까지 500명 이상의 청소년들에게 기후변화 교육을 제공했으며, 10개 이상의 지역사회 기반 기후적응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떠나고 싶지 않다. 한 번도 떠나고 싶었던 적이 없다. 우리는 섬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세계에 외치는 목소리, 그리고 어머니와의 연대
제트닐-키지너는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녀의 어머니 힐다 하이네는 마셜제도 대통령이자, 태평양 도서국 최초의 여성 지도자이다. 모녀는 함께 세계 무대에서 기후정의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인구 5만 3천 명의 작은 나라가 강대국들과 맞서 싸우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녀는 "결국 시 한 편이 모든 것을 바꾸지는 못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가 호주에 대해 들은 소식은 실망스러운 이야기뿐이다. 특히 퀸즐랜드 아다니 석탄광산 프로젝트에 대한 호주 정부의 지지에 강한 우려를 표했다. 이 프로젝트는 연간 6천만 톤의 석탄을 생산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마셜제도 전체 배출량의 약 700배에 달한다.
"나는 '스톱 아다니' 캠페인을 지지한다. 새로운 석탄광산 개발은 태평양 전체, 오세아니아 전체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말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강력한 정책이다. 화석연료는 땅속에 두고, 석탄광산 개발은 멈추고,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이건 우리 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다. 우리 섬이 살아야 세상이 산다."
그들에게 전하라(Tell Them)
나는 미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선물을 준비했다 반달 모양으로 짜여진 귀걸이 폭풍 속 눈동자처럼 빛나는 검은 진주 바구니도 함께 보냈다 튼튼하게 짜여진 윤이 나는 갈색 조개껍데기 굳은살 박인 손가락으로 정교하게 만든 만다라 바구니 안에는 이런 메시지가 담겨있다:
이 귀걸이를 착용하라
파티에서 수업과 회의에서 식료품점, 구멍가게에서 버스를 탈 때도
이 바구니에 보석, 향, 동전 그리고 이런 편지를 보관하라
누군가 묻거든 어디서 얻었냐고
그들에게 전하라
마셜제도에서 온 것이라고
지도에서 우리가 어디 있는지 보여주라
우리는 자랑스러운 민족이라고 전하라
나무 그루터기의 조각된 갈비뼈처럼
진한 갈색으로 그을린 우리는
세계 최고의 항해사들의 후손이라 전하라
우리 섬들은 거인이 든 바구니에서 떨어졌다고 전하라
우리는 바람처럼 빠른 카누의 빈 선체라고
태평양을 가르는 우리는 나무 부스러기,
말리는 판다누스 잎,
켐엠에서 먹는 끈적한 브윌로라고
우리는 할머니, 어머니, 이모, 자매들의
달콤한 하모니라고
밤늦게까지 부르는 노래라고
우리는 속삭이는 기도,
신의 숨결,
메리 아주머니의 하얀 바다 거품 머리카락을 감싸는 진홍빛 꽃 화관이라고
우리는 일로미즈를 기다리는
빨간 쿨에이드가 담긴 스티로폼 컵이라고
우리는 반짝이는 바다로 번져가는
파파야 빛 황금 노을이라고
우리는 장엄한 풍경으로 펼쳐진
맑고 깨끗한 하늘이라고
우리는 대양이라고
그 힘이 두렵고도 당당한 우리는
콘크리트 현관에서 훔쳐진 먼지 묻은 고무 슬리퍼라고
우리는 찢어진 솔기와 택시의 부서진 문손잡이라고
우리는 더위 속에서 다른 땀에 젖은 손을 흔드는 땀에 젖은 손이라고
그들에게 전하라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뜨거운 낮과 밤이라고
우리는 비 아래에서 옆구르기하는 땋은 머리의 소녀들이라고
우리는 고운 하얀 모래 아래 파묻힌 깨진 맥주병 조각이라고
우리는 씽씽거리는 차들로 막힌 도로를
고무줄처럼 가로지르는 아이들이라고
그들에게 전하라
우리에게는 단 하나의 길밖에 없다고
그리고 이 모든 것 후에 물에 대해 이야기하라
그것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다고
우리 묘지를 범람하고
방파제를 넘쳐흐르며
우리 집을 덮치는 그들에게 전하라
대양이 땅과 수평을 이루는 것을 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들에게 전하라
우리는 두렵다고
우리는 정치나 과학에 대해 잘 모르지만
우리 자신의 뒷마당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본다고 전하라
우리 중 일부는 신이 약속을 했다고 믿는 늙은 어부들이고
우리 중 일부는 신에 대해 더 회의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전하라
우리는 떠나고 싶지 않다고
우리는 한 번도 떠나고 싶지 않았다고
그리고 우리는 우리 섬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시인/Kathy Jetnil-Kijiner
"Tell Them" by Kathy Jetnil-Kijiner at Southbank Centre for London 2012 Poetry Parnassus
Beached: Poetry written and performed by Kathy Jetñil-Kijiner
글/ 박재아 Daisy Park (daisyparkkorea@gmail.com)
박재아는 태평양기후위기대응협의회 사무처장이자 태평양학회 이사, 팔라우 대통령 경제·관광 직속 자문을 맡고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국제지역학 석사를 취득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관리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조선대학교 대외협력 외래교수로 활동하며, 피지(Fiji)·사모아(Samoa) 관광청 한국지사장, 솔로몬제도 관광청 특별자문, 태평양 관광기구(SPTO) 한국지사장, 인도네시아 관광창조경제부(MoTCE-RI) 지사장을 역임했다. 문화와 생태적 다양성을 바탕으로 섬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연구하며, 섬나라의 가치를 한국에 알리고 양국 간 관광 및 문화 교류 활성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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