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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우 시사칼럼] 막말의 정치학
선거가 다가오니 정치인의 막말이 또다시 들불처럼 타오른다. 선거때마다 상대를 향한 혐오나 증오 발언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지만 이번 총선만큼 '막말'이 이슈가 된 적도 드물 듯하다.애초에 여야지도부가 '입조심'을 그렇게 외쳤건만 설화는 아랑곳없이 터져나왔고 과거의 막말까지 새롭게 조명되면서 정치판의 품격을 더욱 혼탁하게 이끌고 있다. 결국 여야는 각각 최고의 막말러로 주목받은 두 후보의 공천을 철회하며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이것으로 사태가 해결될런지는 미지수다. 그런데 정치권의 막말 행태와 수위를 보면 여야가 대동소이 하지만 이들의
선거가 다가오니 정치인의 막말이 또다시 들불처럼 타오른다. 선거때마다 상대를 향한 혐오나 증오 발언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지만 이번 총선만큼 '막말'이 이슈가 된 적도 드물 듯하다.
애초에 여야지도부가 '입조심'을 그렇게 외쳤건만 설화는 아랑곳없이 터져나왔고 과거의 막말까지 새롭게 조명되면서 정치판의 품격을 더욱 혼탁하게 이끌고 있다. 결국 여야는 각각 최고의 막말러로 주목받은 두 후보의 공천을 철회하며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이것으로 사태가 해결될런지는 미지수다.
그런데 정치권의 막말 행태와 수위를 보면 여야가 대동소이 하지만 이들의 막말 패턴은 다소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현 여권인 국민의힘 인사들이 물의를 빚고 있는 막말을 보면 주로 왜곡된 역사관 또는 과거역사폄훼 막말이 많다. 최근 논란이 됐던 김구 선생을 '폭탄 던지던 분'으로 발언했다던가 '일제 강점기에 더 살기 좋았을지 모른다'든가 또는 '이토 히로부미는 인재'라는 발언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이번에 공천 박탈까지 된 발언 또한 '5.18 광주민주화운동 폄훼' 발언이었다.
반면에 최근 논란이 됐던 야권인사들의 발언은 주로 상대진영이나 경쟁 상대에 대한 혐오와 조롱성 막말이 주를 이룬다. '암컷이 설친다'는 발언이나 '발목때기를 분질러 놔야 한다'는 발언, 그리고 '어린 놈'이라는 발언 등이 모두 상대에 대한 증오성 막말 성격이 짙다.
이와는 별도로 정치인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 비윤리적 막말로 개인의 도덕성에 문제가 제기된 경우도 많다. 여권 후보의 '난교 발언' 이라든지 결국 낙마한 야권 인사의 '발목지뢰 목발 선물'이 대표적이다. 이 인사는 방송에서 국민을 '벌레'라 호칭하기도 하고, 동료 정치인을 조롱하며 쌍욕까지 서슴치 않은 언행으로 더욱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자면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Die Sprache ist das Haus des Seins).’ 즉 언어는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 존재는 그 언어 안에서 거주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언어 사용은 그 존재의 사유방식을 알 수 있는 척도가 된다.
이런 측면에서 요즘 여야 총선 후보를 위시한 정치인의 막말과 욕설 퍼레이드를 보면 어느 편이 좀 더 낫고 더 나쁜 지는 주관적 판단 영역이겠지만 그들의 품격이나 정신세계 뿐 아니라 그들이 경쟁 상대나 상대 진영 또는 국민을 대하는 의식의 흐름이 어떠한지 가늠할 수 있다.
사실 정치권의 막말이 하루 이틀 있어 온 건 아니지만 유독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막말이 덧셈이 아닌 뺄셈 방식으로 진행되는 일종의 네거티브 캠페인이기 때문이다. 통상 ‘막말’은 지지자를 결집하는 데 효과적이다. 또 막말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극렬 지지세력의 반응도 더해진다. 일종의 ‘매운맛’ 중독에 가깝다. 단기적으론 정치적 효과가 있을 수 있겠으나, 더 많은 힘을 규합하는 쪽이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선거에서는 패착일 수가 있다. 2000년대 이후 여러 선거 결과가 패배 정당의 막말 행태로 자주 설명되기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세대나 계층과 관련한 폄훼 발언은 결정적인 해악을 끼쳤다.
막말 정치가 끼치는 해악은 또 있다. 서로 막말을 앞세운 정치적 공방 속에서 출산과 주거, 고용과 같은 시급한 민생 문제 그리고 기후재난과 기후불평등 문제와 같은 서민과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는 실종되고 정책적인 경쟁보다는 극한 대립과 소모적인 정치적 공방만 난무하게 된다는 점이다. 결국 극단적 정쟁의 피해는 우리 국민들이 고스란히 다 받게 된다.
사실 ‘말재주’는 정치인의 전문 영역이다. 시대정신을 담은 강력한 연설, 혹은 말 한마디는 사람을 감동시키고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에 충분하다.
링컨의 그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나 케네디의 대통령 취임식 연설 “나라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를 묻기 전에 먼저 자신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라” 등은 시대를 관통하고 대중을 움직인 대표적인 연설이었다.
그런데 작금의 우리 정치권에는 영혼을 울리는 명언은 없고 역사의식도 품격도 찾아볼 수 없는 기교뿐인 말재주와 말장난, 대중의 말초적 감각을 자극하고 상대를 겁박하는 막말만 난무하고 있다. 심지어는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노골적인 욕설이나 왜곡된 역사인식, 민주사회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반사회적 발언까지 국민의 정치 혐오를 더욱 조장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정치권 자체가 어느덧 막말 정치인이 살아가기에 최적의 조건을 두루 갖춘 환경이 조성된 탓이다. 극단적인 진영논리와 극렬 팬덤의 형성, SNS나 유튜브 같은 매체의 발전 그리고 그 바탕에는 '노이즈 마케팅' 자체가 인지도 제고에 도움이 된다는 얄팍한 계산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일시적 비난이야 시간이 흐르면 잊혀질 것이고 팬덤 확보와 인지도 상승만하면 된다는 정치적 계산이 득이 되는 정치 환경이 조성돼 있기 때문 아닐까. 내 부고장 소식만 아니면 뭐든지 상관없다는 여의도 정가에 전해오는 속설처럼.
논어 자로편에 이러한 구절이 있다. "명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순통하지 못하고(名不正 則言不順), 말이 순통하지 못하면 일도 이뤄질 수 없다(言不順 則事不成)." 격조 있는 정치 문화는 품격 있는 언어로부터 출발하고, 정치인의 품격 있는 언어는 국격의 척도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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