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허경영이 말하는 50여 년 봉사 인생
전쟁고아, 검정고시, 야간 법대생...22세부터 시작 ‘허경영 하늘궁 무료급식소’, 매월 1억 들여 1년 365일 무료 급식 한국유엔봉사단 수석 부총재 취임
[시사매거진] 서울 종로 탑골공원 옆, 낙원상가로 향하는 작은 길. 언제부턴가 이곳은 매일 오전이면 긴 줄이 생긴다. 주로 60대, 70대의 노인들인데, 조금이라도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나와 번호를 적어놓은 상자로 자리를 ‘찜’해 놓는 사람도 있다. 평균 400~500명이 줄을 서는데, 정오가 되면 따뜻한 밥 한 끼를 무료로 해결하기 위한 줄이었다.강추위가 불어 닥친 12월 23일에는 고급스러운 도시락과 인근 낙원상가의 유명 떡집들에서 맞춘 떡과 죽염건빵, 생수 1병, 그리고 핫팩과 내의 한 벌씩을 허경영 총재가 직
[시사매거진] 서울 종로 탑골공원 옆, 낙원상가로 향하는 작은 길. 언제부턴가 이곳은 매일 오전이면 긴 줄이 생긴다.
주로 60대, 70대의 노인들인데, 조금이라도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나와 번호를 적어놓은 상자로 자리를 ‘찜’해 놓는 사람도 있다. 평균 400~500명이 줄을 서는데, 정오가 되면 따뜻한 밥 한 끼를 무료로 해결하기 위한 줄이었다.
강추위가 불어 닥친 12월 23일에는 고급스러운 도시락과 인근 낙원상가의 유명 떡집들에서 맞춘 떡과 죽염건빵, 생수 1병, 그리고 핫팩과 내의 한 벌씩을 허경영 총재가 직접 현장에서 나눠주었다.
‘허경영 하늘궁 무료급식소’에서 매월 1억 들여 1년 365일 무료 급식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무료급식을 하고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위해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위치한 ‘하늘궁’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종로 탑골공원에서 매일 무료급식 봉사를 하고 있는지 몰랐다. 다른 봉사 활동도 꽤 오래 전부터 해왔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봉사로 한 평생을 살아왔다. 시작한 건 22세 무렵부터니까 한 44년 정도 되었나? 어려서부터 기부하는 게 몸에 배어 있다. 예를 들어, 2008년 1월 어느 날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되기 직전에 형사한테 양해를 구하고 은행 창구로 가서 지갑에 가지고 있던 돈 24만 원 전부를 소아암재단으로 송금했다. 2009년 8월에 교도소에서 퇴소하는 날도 거기에서 모은 영치금 74만 원을 그대로 어린이소아암재단에 기부했다.(자신의 말을 증명해 주는 사진과 문서 등을 기자에게 일일이 보여주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봉사와 기부를 해왔다면 비용이 꽤 많이 들었을 텐데?
어림짐작으로 빌딩 한 10채는 들어갔을 거다. 며칠 전에 탑골공원에서 말했지만 지금 하고 있는 무료급식만 해도 한 달에 1억은 족히 들어간다.
정말 큰 금액인데 비용은 어디에서 충당하는지
내가 하는 건 여기 하늘궁에서 하는 강연이 주이고 그것으로 버는 돈이다. 출판 등으로 인한 수익도 있지만 가장 큰 수익은 강연 수익이다. 그 수익으로 봉사를 하고 기부를 한다. 내가 일을 해서 번 돈으로 한다. 물론 세금도 투명하게 내고 있다.
지난달 23일 취재할 때 보니 10명 정도 되는 분들이 현장에서 도시락을 나눠주고 있던데
무료급식 봉사를 제대로 하려고 재단법인으로 만들었다. 피카디리 극장 건물 6층에 사무실이 있다. 1차로 30억을 기부해서 무료급식 봉사를 할 수 있게 했고, 10명 정도가 무료 봉사를 해주신다.
매일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닐텐데
나는 어려서부터 봉사한다는 게 체화가 되어 있어서 힘들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한다. 얼마 전에는 유튜브에 '허경영을 폭로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서 무슨 일인가 봤는데 이런 거더라. 미국에 사는 어떤 부부가 탑골공원에 왔다가 줄 서 있는 걸 본 거다. 그 때가 추석이었고 우리는 송편 도시락을 푸짐하게 드렸었다. 그분들이 그걸 보고 나에 대한 생각이 바뀐 거다. 미국에 살 때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봤다는 건데, 노인들에게 밥을 주고 떡을 주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편지를 써서 영상으로 만들어 올린 거다. 그런 걸 보면 내가 봉사를 하는 게 헛된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봉사를 하게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아마 제가 전쟁고아라서 그렇게 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워낙 많이 굶었다. 국민학교(초등학교) 때는 남의 집에 머슴살이도 했고. 검정고시로 야간 중‧고등학교에 방송통신대 법대도 야간으로 다녔다. 낮에는 봉사활동을 했고.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주로 어떤 봉사들을 해왔는지
일일이 말씀드리자면 밤을 새워야 하고, 제가 40세 되던 해에 주간지 <주간중앙>의 '이 사람'이라는 코너에 ‘인간성 회복 운동가 허경영’, ‘18년간 불우이웃 1만5천 명 도와’라는 타이틀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 기사에 ‘허 씨는 18년 동안 ’조흥연합봉사회‘, ’한국사회복지연구원‘, ’한국농어촌근로봉사단‘ 등의 봉사 모임을 만들어 1만5천여 명의 밑바닥 인생을 도와 온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봉사활동에 대한 감사장이나 위촉장들이 있는가
그렇다. 이름은 굳이 밝힐 것 없겠고 청주교도소장, 법무부 서울소년과장, 소년감별소장, 전국교도소재소자교화후원회장, 사회복지법인 혜명 보육원장, 법무부장관, 서울지방검찰정 검사장 등에게 받은 위촉장, 감사장을 대부분 보관하고 있다.
기부나 봉사를 하는 마음가짐은
지금까지 해온 것들이나 지금 하고 있는 무료급식도 어떤 의도가 있거나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다. 제 진심에서 우러나서, 좋아서 하는 거다.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고아와 마찬가지가 되어 어렵게 살며 남의 도움을 받은 제 삶의 경험이 밑바탕이 되었기에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 고향에서 상경하면서 돌아가신 어머니 무덤에서 흙을 가져와 병에 넣어놓고 늘 바라보며 살아온 것도 그 어떤 힘든 환경에서도 바르게 생활하기 위함이었다.
봉사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많은 분들이 생각난다. 지금 무료급식 하는 곳이 ‘송해 길’ 바로 옆인데 한번은 송해 선생님이 오셔서 본 적이 있다. 나보고 참 통 큰 남자라고 '엄지 척' 해주신 장면이 떠오른다. 또 어떤 날은 모자를 푹 눌러쓴 어떤 노인이 나한테 다가왔다. 자기가 고급 공무원이었는데 쫄딱 망했다는 거다. 인생을 모르겠다고, 아내도 죽고, 부정을 저지른 것도 아니었고, 아무것도 없이 노인수당 받고 살고 있는데 이렇게 따뜻한 한 끼를 줘서 정말 고맙다고 하더라. 자기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면서 연신 고개를 숙였다. 지금 대한민국의 노인 빈곤이 극심하다. 해결해야 한다. 사실 이렇게 봉사를 하고 기부를 하면서 어려운 분들하고 대하다 보면 힘이 있으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안 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정치를 하려고 했던 거다. 지금 그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니고.
최근에 한 봉사단에서 중요한 직책을 받았다는데
허허, UNV Korea라고 사단법인 한국유엔봉사단이다. 1970년 12월 UN총회 만장일치 결의에 의해 UN 산하에 봉사단이 설립되었고 1971년 3월 박정희 대통령의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설립된 민간단체다. 역대 총재로 안호상 초대 문교부장관, 2대 이수성 전 국무총리, 3대가 백선엽 장군, 4대가 이인제 전 노동부장관, 5대가 김성재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고 이번에 제가 6대 수석 부총재로 취임했다.
허경영 총재가 한국유엔봉사단 수석 부총재면 어깨가 더 무거워졌을텐데
허 - 저야 무슨 직책과 상관없이 44년간 묵묵히 봉사를 해온 거니까 다른 많은 봉사단체들이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려고 한다.
2023년 계획은
특별한 계획보다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봉사를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하려 한다. 우리 사회에 더 큰 희망을 드리기 위해 하고 싶은 것들이 없지는 않지만, 그런 건 다음 기회에 천천히 말씀드리겠다. 감사합니다.
박희윤 기자 bond003@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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