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김찬우 교수)메타티칭의 시대, 끝까지 읽는 아이가 노벨상을 연다

“활기찬 아침을 지휘하는 CEO 이미영”

아티스트 챌린지 시리즈 vol.1

[시사매거진]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현실은 잔혹하기만 하다. 늘어만 가는 부채와 치솟는 고금리, 고물가, 불경기 그리고 주변의 레드오션을 바라보자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러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속담처럼 신은 우리에게 ‘기회’라는 또 다른 창문을 열어 놓으셨다. 바로, 예술인으로부터 출발한 자신의 삶에서 큰 변화를 이루어 낸 ‘지휘하는 CEO 이미영’. 그의 인생 가운데 펼쳐진 드라마틱한 비포와 애프터를 들여다보았다.제1악장, 기적의 터닝 포인트“돈

지휘하는 CEO 이미영 ©최윤하 작가
지휘하는 CEO 이미영 ©최윤하 작가

[시사매거진]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현실은 잔혹하기만 하다. 늘어만 가는 부채와 치솟는 고금리, 고물가, 불경기 그리고 주변의 레드오션을 바라보자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러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속담처럼 신은 우리에게 ‘기회’라는 또 다른 창문을 열어 놓으셨다. 바로, 예술인으로부터 출발한 자신의 삶에서 큰 변화를 이루어 낸 ‘지휘하는 CEO 이미영’. 그의 인생 가운데 펼쳐진 드라마틱한 비포와 애프터를 들여다보았다.

지휘하는 CEO 이미영 ©최윤하 작가
지휘하는 CEO 이미영 ©최윤하 작가

제1악장, 기적의 터닝 포인트

“돈 벌려면 나랑 인셀덤 하자” 바로 이 말이었습니다. 내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다준 충격적인 지인의 말.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흥분이 되고 심장이 쿵쾅 거립니다. 당시 사업에 대한 비전과 마케팅을 듣고 곧바로 시작한 사업은 현재 함께하는 사람이 3000여 명, 직하 대리점 4개, 산하 대리점 29개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불과 2년 만에 이룬 성과입니다.

“인셀덤 썼는데 안 예뻐지면 기적이고 예뻐졌는데 돈 못 벌면 더 큰 기적이다!” 이것이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의 슬로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과거의 어두웠던 기억들을 뒤로하고 재정적인 자유와 인생의 누림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사진=이미영)
(사진=이미영)

제2악장, About 이미영

‘경북 봉화군 법전면 척곡리’ 저의 고향입니다. 그곳에서 저는 오남매 막내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어릴 적 노래도 곧잘 했는지 동네잔치 등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저의 재능을 맘껏 발휘했습니다. 동요는 물론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 등 인기 가요도 부르며 동네의 어르신들의 예쁨을 독차지했습니다. 요즘 같으면 ‘미스 트롯’에 나오는 유명 인사였겠지요. (웃음) 그러다 성악의 소질을 발견하고 산골에서 어렵사리 음악대학 진학을 위해 도회지로 레슨을 받으러 다녔습니다. 문화적인 이해와 경제적인 이유 등 가족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힘겹게 버신 돈으로 저의 음악 공부를 지원해 주셨습니다.

제18회 수원합창제 (22. 10. 8~10)에서 (사진=이미영)
제18회 수원합창제 (22. 10. 8~10)에서 (사진=이미영)

이후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전문 합창단에 들어가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펼쳐갔습니다. 음악적인 열정이 컸는지, 합창 지휘까지 영역을 넓혀 지금도 다양한 공연들을 기획하며 합창단을 지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의 닉네임이 ‘지휘하는 CEO 이미영’입니다. 따라서 음악은 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산소’이자 ‘행복’ 그 자체이며 평생의 ‘사명’입니다.

(사진=이미영)
(사진=이미영)

제3악장, 어머니의 화장품

어머니는 당시 유명 화장품 브랜드 쥬단학에서 방문판매 일을 하셨습니다. 매일 장부를 넘기며 꼼꼼히 정산을 하셨고, 판매왕도 여러 차례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의 화장품이 저를 음악대학에 보냈고, 노래하는 예술인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자식을 길러보니 어머니의 수고와 희생이 어떤 의미였는지, 비로소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간혹 어머니는 후회를 하시곤 하셨습니다. 당신이 고생해서 버신 돈으로 딸내미 음악 공부를 시켰지만, 결국 그 음악이 빛을 못 보고 딸을 고생시켰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의 화장품이 저를 음악가의 길로 이끌었다면, 지금 이 화장품 역시 저의 인생에 있어서 엄청난 반전을 가져다준 ‘인생템’인 것입니다. 어머니와 나, 이렇게 ‘화장품’이라는 공통분모가 마치 운명인듯싶습니다.  

지휘하는 CEO 이미영, 카페 '연필'에서 ©최윤하 작가
지휘하는 CEO 이미영, 카페 '연필'에서 ©최윤하 작가

제4악장, Before “아침이 두려웠던 날들”

중산층에 대한 기준이 해외 선진국들과는 달리 대한민국은 30평대 아파트, 잔고 1억 이상, 중형차 등 소유에 집착한 기준이라고 합니다. (웃음) 저희도 그 일이 있기 전에는 비교적 비슷한 삶을 살았습니다. 안정적인 남편의 월급이 있었고, 저의 음악 활동과 단란한 가족 분위기 등 마치 에드거 앨런 포의 낭만주의적 연애시 <애너밸리>에서의 사랑처럼, 우린 서로 사랑하고, 서로 사랑받는 것 외엔 부러움이 없었습니다. 하늘나라의 날개 달린 천사들도 시샘하는 그런 사랑 말입니다. 이것이 이유였는지, 우리 가정에도 환난이 찾아왔습니다.

남편의 잘못된 투자가 문제가 되어 가진 돈을 모두 날리게 되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의 건강마저 잃게 되었습니다. 암 선고를 받고, 남편은 홀연히 사라져버렸습니다. 남편의 부재는 고스란히 제 몫이 되어 저를 옥죄기 시작했습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생지옥의 삶을 살게 된 거죠. 아침이 밝아 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당시 저는 거의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두 아이를 키우며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쳐야만 했습니다.

지휘하는 CEO 이미영 ©최윤하 작가
지휘하는 CEO 이미영 ©최윤하 작가

그렇게 모든 상황을 원망하며 낙담하고 있던 어느 날, 저 자신에게 미치도록 화가 났습니다. 수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똑같은 상황 속에,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었다는 것. 그저 음악이 좋아 노래와 지휘, 수많은 공연을 치렀지만 정작 이런 상황에 제가 그토록 좋아했던 음악은 저의 현실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게 내 탓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이후 더 이상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정신줄을 단단히 부여잡고 두 아이를 위해서 반드시 살아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에게 한줄기의 빛 같은 ‘기회(機會)’라는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지휘하는 CEO 이미영 ©최윤하 작가
지휘하는 CEO 이미영 ©최윤하 작가

제5악장, After “나의 일과 사랑하는 사람들”

아침마다 흥분하며 출근하는 이곳은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한 곳입니다. 그러기에 전 날마다 종합선물을 받는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아침이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밤이 되면 다음날 아침을 고대하고 기다리는 삶이 저 ‘이미영’의 루틴이 되었습니다.  

이곳의 사람들은 모두가 얼굴에 광채가 흐릅니다. 그것은 바로 ‘인성’을 강조하는 두 대표님의 인간 철학 때문이기도 합니다. 신은 우리의 내면을 관찰 하지만 인간은 외모를 보기에 그렇습니다. 첫인상이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이곳은 파트너 간의 돈독한 유대와 따스함이 넘치는 곳입니다. 그래서 5락실이 존재합니다. 웬 오락실이냐고요? 게임을 하는 오락실이 아닌, 다섯 가지의 즐거움(삶, 가족, 관계, 건강, 지갑)을 뜻하는 ‘5락실(5樂室)’입니다.

롯데콘서트홀에서 (사진=이미영)
롯데콘서트홀에서 (사진=이미영)

음악도 소리 음(音), 즐거울 락(樂)입니다. 그러나 소리가 즐거우려면 우선 5가지의 즐거움이 있어야 음악(音樂)이 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다수 예술가들의 삶이 그렇지 못하기에 안타깝기만 합니다. 지난날의 저의 삶 또한 그들과 같았기에 저의 인생에 환란이 닥친 순간 보호해 줄 그 어떤 방패막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다릅니다. 이곳에는 저와 뜻을 함께하는 든든한 동지들이 있으며, 성장과 성공을 지원하는 시스템과 최고의 리더들이 있습니다.

또한, 이곳에는 여러 그룹들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가장 강력한 SGM 그룹과 파트너들의 소통 채널인 ‘성공매니아’, ‘5락실’ 그리고 ‘뮤직패밀리’가 있습니다. 뮤직패밀리는 문화예술인들의 특성을 살린 특화된 그룹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 올해도 두 차례의 콘서트를 통해 의미 있는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뮤직패밀리는 인셀덤 안에서 잘 브랜딩 된 팀으로 5락실의 즐거움과 함께 멋진 활동을 펼쳐가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과거의 시간 속에 있지 않습니다. 잃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모두 제게로 돌아왔습니다. 집을 떠났던 남편이 돌아왔고, 두 딸이 예쁘게 성장하며 자신들의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또한 누군가의 드림카가 저의 애마가 되었고, 부동산 투자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결코 이곳에선 저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두가 한결같이 구구절절한 드라마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을 벗어나는 과정이거나 이미 새로운 삶을 누리는 파트너들로 가득합니다.

지휘하는 CEO 이미영 ©최윤하 작가
지휘하는 CEO 이미영 ©최윤하 작가

신용불량자 여섯 명과 함께 두 대표님이 시작했다는 인셀덤, 이제는 국내 1위는 물론 글로벌 시장으로의 속도가 빨라져 이미 북미 판로가 열렸고, 대기업 CEO들이 합류하는 경이로운 시간 속에 있습니다.

‘바람 불 때 연 날린다’는 말처럼 적절한 타이밍의 때가 왔습니다. ‘뜻을 이루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며 나아간다’는 승풍파랑(乘風破浪)의 선배들이 계시고 그분들이 앞서 힘든 길을 놓았기에, 시스템 안에서 누구나 성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누가 그 ‘기회의 시간’ 속에서 승자가 될지 사뭇 기대가 됩니다. 이후 저의 드라마는 어떻게 전개가 될까요?

지휘하는 CEO 이미영, 카페 '연필'에서 ©최윤하 작가
지휘하는 CEO 이미영, 카페 '연필'에서 ©최윤하 작가

코다, 인터뷰를 마치고...

바흐의 악보에는 악상 기호가 없다. 그러기에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마다 음악이 제각각 다르다. 빠르기, 셈여림 등 음악의 디테일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은 전적으로 연주자의 해석과 능력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우리네 인생 또한 마찬가지. 인생의 맛을 살리는 것 역시 각자가 자신의 인생 악보에 무엇을 기록하느냐에 따라 결정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누구나 일생(一生)을 살아간다. 즉 ‘단 한 번의 기회’라는 말과도 같다. 시간이 많은 것 같으나 결코 그리 넉넉한 시간이 아니다. 예행연습할 시간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통계에 따르면 “사람들은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누군가를 닮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세월을 보낸다”라고 한다.

시선의 각도를 조금만 바꾸면 다양성과 기회가 있음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주변에 많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휘하는 CEO 이미영’의 지난 인생사는 기적같이 다가온 신의 구원의 손길이자, 이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그의 탁월한 선택의 기록이었다. 잃었던 것을 모두 다시 찾은 기쁨. 얼마나 행복했을까?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지휘하는 CEO 이미영 ©최윤하 작가
지휘하는 CEO 이미영 ©최윤하 작가

강창호 기자  alexkang7777@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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