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교사 “고교학점제, 폐지 생각해 볼 정도로 유지 어렵다”
교육부, 고1·2 대상으로 고교학점제 전문적인 상담 7월부터 본격 제공

[시사매거진 신혜영 기자] 고교학점제가 시행 넉 달을 맞은 가운데 고교학점제 폐지 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교원단체 및 일선 교사들 사이에서 ‘졸속 시행’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_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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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학점제’는 고등학생도 대학처럼 학생이 진로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고, 고교 3년간 최소 192학점을 이수해 졸업하는 제도다. 과목출석률(수업횟수 2/3 이상)과 학업성취율(40% 이상)을 충족하면 해당 과목 학점을 딸 수 있다. 그동안 학생들은 주어진 교육과정에 따라 수업을 들었으나 고교학점제 시행으로 현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은 자신만의 시간표를 만들어 진로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선택적으로 수강할 수 있다.

2025학년도부터 고교학점제가 도입됐고 시행 넉 달을 맞았다. 그러나 제도 안착과 관련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폐지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고교교사 3명 중 1명 고교학점제, 폐지 생각해 볼 정도로 유지 어렵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고교학점제의 학교 현장 실태를 파악한 바에 따르면 고교교사 3명 중 1명이 “고교학점제, 폐지 생각해 볼 정도로 유지 어렵다”는 의견이 나왔다.

교총은 지난 6월12~17일 전국 고교교사 103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24일 발표했다.

고교학점제의 학교 정착 정도를 묻는 물음에 대해 ‘여러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나 교원들의 희생으로 겨우 유지하고 있다’는 응답이 54.9%로 가장 많았다. 이어 ‘폐지를 검토해야 할 정도로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답변이 31.9%, ‘시행착오를 겪고 있으나 비교적 정착되고 있다’는 10.5%, ‘안정적으로 정착됐다’는 응답은 단 1.5%로 조사됐다.

학생의 과목선택권 확대와 관련해 선생님은 몇 개 과목을 담당하느냐는 물음에 담당 과목이 3개라는 응답이 29.5%, 4개는 5.9%, 5개 이상은 1.7% 순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담당 과목이 늘면 어떤 부담이 가장 크냐’는 질문(복수응답)에는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등 학생부 기재 부담’이 72.2%로 가장 높았고 이어 ‘수업 준비 및 업무 부담’이 63.5%, ‘시험문제 출제 부담이 43.8%를 차지했다.

강주호 교총회장은 “준비되지 않은 고교학점제는 교사 부담을 가중시키고 학생에게까지 피해를 초래한다”며 “교육부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서 나타난 여건 불비 실태와 관련해 특단의 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근 교원단체들이 고교학점제 전면 폐지 또는 유예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사진은 박영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 5월 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고교학점제 폐지 촉구 위한 교사 서명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_뉴시스)
최근 교원단체들이 고교학점제 전면 폐지 또는 유예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사진은 박영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 5월 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고교학점제 폐지 촉구 위한 교사 서명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_뉴시스)

교원단체들, 전면 폐지 또는 유예 요구

최근 교원단체들이 고교학점제 전면 폐지 또는 유예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고교학점제가 학생들의 낙오를 강요하고 수업 파편화를 가속화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교조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진로를 확정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고교학점제는 이 시기에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면 실패자로 낙인찍고 있다”며 “과목별 이동 수업으로 학생들은 매 교시 교실을 찾아 떠돌고, 담임·학급 친구와의 소통과 유대가 끊어지며 공동체에서 고립된 개인으로 분리되고 있다”고 말했다.

과목별로 이동수업을 해야 하는 학생들의 출결 처리 역시 교사들이 오랫동안 고충을 호소해왔던 부분이다.

전교조는 “법적 근거도 없이 공강 시간 지도의 모든 책임이 떠넘겨지고, 기존 1~2단계면 처리할 수 있었던 출결은 8~9번의 단계를 거쳐야 겨우 처리되고 있다”며 “교육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언제 마련될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빈껍데기만 남은 고교학점제는 고쳐 쓸 수 없다. 폐지만이 답”이라고 말했다.

다른 교원단체들에서도 고교학점제 폐지 목소리는 공통적으로 나오고 있다.

서울교원단체총연합회도 “취지와는 달리 현재 학교 현장에서는 실질적인 준비 부족, 지역 및 학교 간 격차 확대, 맞춤교육을 위한 교원 수급 미비, 현행 입시제도와의 불일치 등으로 인해 운영상의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며 “학교의 혼란만을 가중시키는 고교학점제에 대해 전면 재검토 아니면 폐지가 정답”이라고 했다.

(사진_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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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과 학부모, 교과 과목 선택부담 느껴

고교학점제의 핵심인 ‘선택 과목 중심 교육’은 이상적으로는 학생 맞춤형 교육을 지향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선 과목 선택에 대한 부담이 따르고 있다. 고교학점제의 핵심은 학생이 스스로 과목을 선택하는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이 선택이 부담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고1~고2 학생들에게 진로와 과목 선택을 조기에 요구하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1월 열린 국가교육위원회 제10차 대토론회에서 이용하 이화여대 수학교육과 교수가 교사 506명, 학부모 509명, 고등학생 5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고교학점제와 관련된 의견으로 ‘선택 과목 교육의 어려움에 대한 우려’에 대해 교사는 5점 만점에 4.4점, 학부모는 4.1점, 고등학생은 3.9점을 부여했다.

이에 교육부는 현재 고등학교 1·2학년 학생들에게 2026학년도에 고교학점제 과목 선택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적인 상담을 7월부터 본격 제공한다.

교육부는 현직 고교 교사(진로진학상담교사 포함)로 구성된 진로·학업 설계 지원단 총 450여명을 확충, 상담 신청 학생에게 진로 상담을 포함해 진학 희망 계열에 따른 과목 선택 조언, 과목별 학습방법 지도(코칭) 등 자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학생이 상담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교육디지털원패스’ 회원 가입이 필요하며, 발급받은 아이디(ID)를 통해 ‘함께학교’ 누리집에 접속해 상담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상담은 신청 순서에 따라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며 통상 2주 정도 후에 상담 결과를 받아 볼 수 있다.

교육부는 11월 30일까지 진로·학업 설계 집중 상담을 실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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