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공간의 심리학 3
엘리베이터, 타인의 숨결이 닿는 45cm의 공간
[시사매거진 안현호 기자] 얼음 땡! 방금 전까지 왁자지껄 떠들며 걸어오던 우리도 이 문턱만 넘으면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뭅니다. 닫힘 버튼을 누르는 순간, 활기차던 공기는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간 듯 사라지고 남는 건 오르내리며 웅 거리는 소리와, 어색함을 견디는 미세한 숨소리. 시선은 갈 곳을 잃고 허공을 돌다 결국 깜빡이는 층수 표시판에 꽂힙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거의 모두 비슷하게 행동하는 이 기이한 침묵의 의식. 우리는 왜 이 수직으로 움직이는 금속 상자 안에만 들어오면 돌처럼 굳어버리는 걸까요.단순히 매너 때문일
[시사매거진 안현호 기자] 얼음 땡! 방금 전까지 왁자지껄 떠들며 걸어오던 우리도 이 문턱만 넘으면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뭅니다. 닫힘 버튼을 누르는 순간, 활기차던 공기는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간 듯 사라지고 남는 건 오르내리며 웅 거리는 소리와, 어색함을 견디는 미세한 숨소리. 시선은 갈 곳을 잃고 허공을 돌다 결국 깜빡이는 층수 표시판에 꽂힙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거의 모두 비슷하게 행동하는 이 기이한 침묵의 의식. 우리는 왜 이 수직으로 움직이는 금속 상자 안에만 들어오면 돌처럼 굳어버리는 걸까요.
단순히 매너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이건 생존 본능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인류가 만든 이동 수단 중 가장 좁고, 가장 꽉 막혔으며, 모르는 사람과 살을 맞대야 하는 유일한 공간. 드넓은 초원을 달리던 인간의 유전자에게 이 꽉 막힌 밀실은 그 자체로 공포입니다. 문이 닫히자마자 우리가 입을 다무는 건, 좁은 굴속에 갇힌 짐승들이 서로를 자극하지 않으려 숨을 죽이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나 너 안 건드려. 그러니 너도 나 건드리지 마.’ 이 무언의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겁니다.
아까 그 분석을 제공한 이가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이라는 분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 영토'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중 반경 45cm 이내를 '친밀한 거리'라고 부릅죠. 이 거리는 아주 배타적입니다. 부모가 아이를 안아주거나, 사랑하는 연인이 귓속말을 할 때만 허락되는 거리 거든요. 이 선 안으로 누군가 들어오면 우리는 상대의 체온을 느끼고, 냄새를 맡고, 숨결을 공유하며 경계하게 됩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는 이 절대적인 법칙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지옥철이라 불리는 출근 시간의 엘리베이터를 떠올려 보세요. 생면부지의 아저씨와 어깨를 부딪치고, 낯선 사람의 정수리 냄새를 맡아야 하며, 등 뒤에서 들리는 누군가의 거친 숨소리를 견뎌야 합니다. 연인에게만 허락된 45cm의 성역이 강제로 뚫린 겁니다. 뇌에서는 비상경보가 울리지만 도망칠 곳은 없습니다.
얼음 땡! 그래서 우리는 조각상이 되기를 택합니다. 몸을 웅크리고서 뻣뻣한 태도로 시선을 피해버리려하죠.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도 이를 '예의 바른 무관심'이라 불렀더군요. 서로가 서로를 필사적으로 모른 척해 주는 것이죠.
때로 곤혹스러운 건 눈입니다. 이 좁은 곳에서 타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건 동물학적으로 둘 중 하나입니다. 싸움을 걸거나, 아니면 유혹하거나. 그래서 바닥이나 천장만 보고 있기도 합니다.
이때 우리는 몇 층인지를 속으로 셉니다. 1, 2, 3, 4... 바뀌는 숫자가 뭐 그리 재미있다고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사실 숫자가 궁금한 게 아니죠. 그곳이 유일하게 사람의 눈이 아닌, 기계적인 '중립 지대'이기 때문입니다.
엘리베이터 탔을 때 거울이 없으면 왠지 답답하지 않던가요? 초창기 엘리베이터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승객들의 불만이 상당했다고 합니다. 기술자들은 모터를 개량하려 애썼지만, 심리학자들의 해법은 엉뚱했습니다. 그냥 거울을 달아버린 거죠.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거울 속의 자기 얼굴을 보고 옷 매무새를 다듬느라 느리게 시간이 가는 줄 몰랐거든요.
엘리베이터 안에도 순간의 권력은 존재합니다. 버튼 앞에 선 사람, 그는 순간적으로 그 배의 선장이 됩니다. 언제 문을 닫을지, 언제 출발할지를 결정하니까요. 우리의 엘리베이터 버튼을 자세히 보세요. 유독 '닫힘' 버튼만 칠이 벗겨져 있거나 닳아 있습니다. 문이 채 열리기도 전에 닫힘 버튼에 손가락을 올리고 대기하는 '빨리빨리'의 민족. 그 1, 2초를 참지 못하는 우리의 조급증이 그 버튼 위에 고스란히 화석처럼 새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그 버튼 위에서 뭉클한 인류애가 피어나기도 합니다. 저 멀리서 ‘잠시만요!’ 하며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릴 때, 반사적으로 닫힘 버튼으로 향하던 손을 멈추고 열림 버튼을 꾹 눌러주는 그 짧은 순간. 헐레벌떡 뛰어온 사람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고 버튼을 눌러준 사람은 눈인사로 답할 때 45cm의 차가운 경계는 잠시 눈 녹듯 허물어집니다. 삭막한 도시의 수직 통로에서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가장 작은 배려입니다.
오늘 퇴근길, 엘리베이터 거울 속에 비친 당신의 표정은 어떤가요. 타인을 경계하느라 너무 딱딱하게 굳어 있지는 않은가요. 어차피 피할 수 없는 45cm의 동행이라면, 숫자판만 보는 대신 거울 속의 나에게 그리고 곁에 선 이에게 마음으로 나마 눈인사를 건네면 어떨까요. 이 삭막한 수직의 동행이 아주 잠시 따뜻한 공간이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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