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치아박, 예술의 언어로 옷을 짓다
패션을 매체로 삼는 예술가의 탄생
[시사매거진 김진석 기자] 루치아박은 스스로를 디자이너라 부르지 않는다. 그녀는 예술가다. 단지 그 표현 매체로 패션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녀가 구축해온 예술 세계는 피아노, 조소, 회화라는 세 갈래의 언어에서 비롯되었다. 형태를 다루는 손, 소리를 이해하는 귀, 색과 질감을 인식하는 눈이 하나의 미학적 사고 아래에서 통합되며, 그것은 결국 '입는 예술'이라는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간다.루치아박에게 있어 패션은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녀의 예술 세계를 확장하기 위한 매개이며, 또 하나의 문화적 하위 텍스트다. 옷은 그녀의 작
[시사매거진 김진석 기자] 루치아박은 스스로를 디자이너라 부르지 않는다. 그녀는 예술가다. 단지 그 표현 매체로 패션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녀가 구축해온 예술 세계는 피아노, 조소, 회화라는 세 갈래의 언어에서 비롯되었다. 형태를 다루는 손, 소리를 이해하는 귀, 색과 질감을 인식하는 눈이 하나의 미학적 사고 아래에서 통합되며, 그것은 결국 '입는 예술'이라는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간다.
루치아박에게 있어 패션은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녀의 예술 세계를 확장하기 위한 매개이며, 또 하나의 문화적 하위 텍스트다. 옷은 그녀의 작업에서 단순한 유행의 도구가 아니라, 사고를 입히는 '표현의 장'이다. 그녀의 드레스는 누군가를 아름답게 보이게 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예술가의 내면이 외부로 형상화되는 하나의 과정이며, 입는 사람은 단지 소비자가 아닌, 작품의 일부가 된다.
실제로 그녀의 작품을 마주하면 일반적인 패션쇼와는 다른 긴장감이 감돈다. 조형적 사고로 치밀하게 설계된 실루엣, 음악의 리듬을 닮은 움직임, 회화적 감각으로 직조된 색채와 질감. 그녀의 드레스는 하나의 악장이고, 하나의 조형물이며, 하나의 회화다. 각기 다른 예술 언어들이 혼성적으로 결합되어 옷이라는 형식을 빌려 현실 속에 구현된다.
루치아박은 말한다. "패션을 예술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패션은 예술가가 선택한 하나의 언어일 뿐입니다." 이 선언은 그녀의 창작 태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사유다. 그리고 그 사유가 인간의 몸 위에서 실현되는 순간, 그것은 일종의 퍼포먼스가 된다. 패션은 그녀의 세계 안에서 예술의 결과이며, 절대 그 반대가 아니다.
현대 패션계는 점점 더 ‘디자이너 아티스트’라는 정체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예술적 사고로 패션을 대하는 이는 드물다. 루치아박은 그런 점에서 독보적이다. 그녀는 예술에서 출발해 패션으로 도착하는 반대의 길을 걷는다. 유행이나 시장성에 휘둘리지 않고, 자율적인 창작의 궤도 위에서 옷을 만든다. 그렇기에 그녀의 작업은 감각적이고 직관적이며, 때로는 도전적이기까지 하다.
그녀의 드레스를 입은 모델들은 ‘착용자’가 아닌 ‘공존자’가 된다. 신체 위에 걸쳐지는 것이 단순한 직물이 아닌 하나의 예술적 문장이기 때문이다. 보는 이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시가 되고, 음악이 되고, 조각이 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패션이 단지 소비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호흡하고 감각하는 ‘예술의 장’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루치아박은 말한다. "예술이 근원이고, 패션은 그 결과 중 하나입니다." 이 간결한 문장 속에는 그녀의 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녀에게 있어 예술은 사유의 시작점이며, 패션은 그것을 세계와 공유하는 방식이다. 루치아박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입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패션이 예술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오래된 질문에 그녀는 조용하지만 확고한 대답을 내놓는다. 아니, 이미 그녀는 답을 만들고 있다. 매 컬렉션마다, 매 작품마다, 그리고 매 생각마다. 그녀의 언어는 패션이지만, 그 어법은 분명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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