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인터뷰] 누빔킴, “새로운 빛… My Way”
Nubim Kim Group 내한 공연을 마치며 코튼클럽 사운즈한남, 클럽 에반스, 광주 ACC X뮤직페스티벌, CJ아지트 광흥창
"재즈는 실수를 좋은 것으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이다.” 빌 에반스가 남긴 이 말은 음악이 어떻게 삶의 모난 부분마저 빛으로 물들이는지를 일깨운다. 1961년 뉴욕 빌리지 뱅가드에서 울려 퍼진 그의 연주는 그 증거처럼 남아 있다. 와 나란히 담긴 My Foolish Heart, 직역하면 ‘나의 어리석은 마음’이라 불리는 이 곡은, Jazzy 한 선율을 넘어 수많은 영혼의 나침반이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잊고 있던 꿈을 불러냈고, 또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결정을 이끌어낸 힘이 되었다.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작
"재즈는 실수를 좋은 것으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이다.” 빌 에반스가 남긴 이 말은 음악이 어떻게 삶의 모난 부분마저 빛으로 물들이는지를 일깨운다. 1961년 뉴욕 빌리지 뱅가드에서 울려 퍼진 그의 연주는 그 증거처럼 남아 있다. <Waltz for Debby>와 나란히 담긴 My Foolish Heart, 직역하면 ‘나의 어리석은 마음’이라 불리는 이 곡은, Jazzy 한 선율을 넘어 수많은 영혼의 나침반이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잊고 있던 꿈을 불러냈고, 또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결정을 이끌어낸 힘이 되었다.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작곡가 누빔킴(김소영)에게도 이 음악은 운명처럼 다가와 삶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이제, 그가 들려주는 시간의 여정을 따라가 본다.
Turning Point, 그때로 돌아간다면?
저에게는 인생을 뒤흔든 두 가지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건축가로 촉망받으며 대한민국 건축대전에서 입상까지 했던 삶이 단 한 곡의 음악으로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빌 에반스의 ‘My Foolish Heart’였습니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이유도 모른 채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슬픔을 담담하고 아름답게 그려낸 이 음악은 제 내면 깊은 곳에서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울려오는 외침과도 같았습니다.
주변의 만류는 거셌습니다. 잘나가던 건축 일을 그만두고, 서른 가까운 나이에 재즈를 하겠다니 누구나 어리석은 선택이라 했지요. 그러나 결국 저는 재즈의 세계로 들어섰습니다. 학사 과정에서는 재즈 피아노를, 석사 과정에서는 재즈 작곡을 전공하며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갔습니다. 건축을 하면서는 결코 경험하지 못했던, 존재의 본질에 닿는 감각을 음악 속에서 마주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수영하며 물살을 헤치는 것이 아니라 바닥을 짚으며 깊이를 체감하는 일과도 같았습니다. 그 순간, 음악이야말로 제 삶에 더 잘 맞는 길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다 더 큰 갈증을 견디지 못해 네덜란드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의 일입니다. 많은 이들이 제가 유럽에서 우아하고 낭만적인 삶을 사는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외로움과 절망 속에서 치열하게 버텨낸 시간이었습니다. 아들과 함께하기도 했지만, 그것 역시 서로에게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네덜란드어를 하지 못하면 전문 분야의 중심부에 편입되기 어려웠고, 그렇지 못하면 영어 하나로 버텨야 했습니다. 다행히 네덜란드는 영어로 석·박사 과정을 밟을 수 있는 드문 나라였고, 저는 그 틈새에서 오로지 음악에만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이미 학위를 마친 터라 더 이상의 학위는 필요치 않았습니다. 다만 제 음악을 더 깊고 넓게 탐구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클래식 작곡 석사과정을 밟으며 유럽의 음악적 어법을 흡수했고, 그것을 제 음악 속에 녹여냈습니다. 그렇게 제 영역은 조금씩 확장되었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예술적 허기를 채우며 성장의 기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훌륭한 스승과 동료들을 만난 것도 큰 축복이었습니다. 돌아보면 모든 순간이 감사였고, 하나님의 손길이 아니었다면 버텨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다만, 인생에서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10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라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한 번 경험한 것으로 충분하다.” (웃음)
내 이름, Nubim Kim
그렇게 재즈의 길에 들어선 후, 저는 제 음악의 정체성과 이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예명 ‘누빔(Nubim)’은 ‘새로운 빛(new beam)’을 뜻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누비며 빛을 전하고 싶다는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2006년 칸 국제음악박람회 Midem에서 제 한국 이름 소영을 영어로 소개했을 때 “So young이면 80세가 되어도 so young이냐”는 농담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가벼운 농담이 오히려 제게 큰 계기가 되었고, 저는 유럽 무대에서도 자부심을 지킬 수 있는 한글 이름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제 음악과 앨범 제목에는 언제나 ‘빛’이 들어 있습니다. Chapel of Light, Light in January, Between Silence and Light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음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녹록지 않은 삶 속에서도 희망은 있다’는 것. 그래서 제게 빛은 곧 희망의 상징입니다.
예전에 네덜란드에서 장애인을 돕는 호스트를 위한 하우스 콘서트를 연 적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겨울철 햇빛 부족으로 우울증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실제 햇살을 선물할 수는 없지만, 음악으로 빛을 건넬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연주한 Chapel of Light가 끝나자 청중의 눈에 고이는 눈물을 보며, 음악이 누군가의 어둠을 밝힐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체감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누빔’이라는 이름은 제게 주어진 선물이자, 음악으로 빛과 희망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음악적 DNA
저는 부모님 두 분으로부터 서로 다른 성향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평생을 철저한 준비와 끈기 있는 집필로 일관하셨습니다. 마지막 강의 날까지도 강의와 저서 준비에 흔들림 없는 집중력을 보여주셨던 아버지의 모습은 제게 목표를 향한 집념과 정직한 노력이 무엇인지 깊이 새기게 해주었습니다.
반면 어머니는 오랜 세월 서예가로 활동하셨고, 뛰어난 그림 실력도 겸비하셨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전시와 공연에 저를 자주 데려가셨고, 덕분에 자연스럽게 미술과 음악을 접하며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 안의 감수성과 창의력이 깨어나고 자라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저를 만든 두 축은 아버지에게서 배운 끈기와 성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예술적 감성입니다. 이 두 축 위에서 삶과 학문, 그리고 예술을 향한 여정을 한결같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내한 공연을 마치고
지난 8월은 저와 팀 모두에게 꿈같은 시간이었습니다. 팀원들에게는 첫 내한이었고, 저에게는 10년 묵은 과제를 제출하는 듯한 순간이었습니다. 오랜 체증이 내려간 듯 비로소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첫 무대였던 코튼클럽 사운즈한남은 유난히 강렬했습니다. 교르기 체노프(Georgi Tsenov, 퍼커션)는 “마치 고향에 온 듯했다”며 관객과의 교감을 전했고, 비쯔 부어만스(Wietse Voermans, 알토 색소폰)는 한정된 공간이 오히려 서로의 소리를 더 깊이 듣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관객들은 낯설지만 새로운 조합의 음악을 반겼고, 그 호응이 현장 분위기에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베르베르 히어레마(Berber Heerema, 첼로 & 보컬)는 “예상치 못한 따뜻한 반응”을 전했고, 마티아스 반 덴 브란드(Matthias Van den Brande, 테너 색소폰)는 “먹고 마시는 공간임에도 끝까지 집중하는 관객들”을 인상 깊게 기억했습니다. 시요 옌(S’yo Yen, 피아노) 역시 작은 무대가 집중을 더욱 이끌어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연주자들은 네덜란드 초연 때보다 한층 여유로운 몰입을 경험했다며, 재즈 클럽이라는 친밀한 공간에서 낯선 음악이 울려 퍼지는 순간 새로운 공명이 태어났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후 클럽 에반스, 우리에게 큰 용기를 준 광주 ACC X뮤직페스티벌, 그리고 마지막을 불태운 CJ아지트 광흥창까지. 모든 무대에서 예상보다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저와 멤버들 모두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내한 공연이 끝난 지 한 달이 가까워 오지만, 여전히 관객들로부터 “가슴이 차오르는 감동이 이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초연에 이어 한국 공연에서도 폭발적인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저 감사한 일입니다. 타국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곡을 써 내려가던 사막 같은 지난 10년. 그 시간이 이제 의미와 보람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역시 제 음악은 음반보다 공연을 통해 전해질 때 더 큰 힘을 얻는 듯합니다. 앞으로는 더 자주, 더 다양한 무대에서 관객들과 만나고 싶습니다.
함께 울린 시간, 함께 나눈 울림
이번 내한 공연을 통해 저는 다시금 확신했습니다. 음악은 혼자가 아니라, 서로의 빛과 그림자가 겹치며 만들어지는 공명이라는 것을요.
비쯔 부어만스는 무대 위에서 언제나 예기치 못한 색깔을 펼쳐내며, 음악이 가진 무한한 실험정신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의 따뜻한 성격 뒤에 숨은 치열한 연습과 몰입은 저뿐 아니라 관객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마티아스 반 덴 브란드는 도시의 숨결을 품은 연주로 음악이 어떻게 공간과 호흡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학구적 탐구심은 늘 저를 자극하며, 앞으로의 협업에서 어떤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하게 합니다.
교르기 체노프는 늘 묵묵히 곁을 지켜준 힘이자 중심이었습니다. 따뜻한 마음과 흔들림 없는 헌신, 그리고 악기에서 끌어낸 강렬한 퍼포먼스는 우리 팀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시요 옌은 제 음악을 가장 오래 지켜봐 준 동료이자 친구입니다. 매번 ‘아리랑’을 연주할 때마다 다른 우주를 열어 보이는 그의 해석은 저에게 늘 신선한 영감을 줍니다. 제게 그는 단순한 한 명의 연주자가 아니라, 제 음악을 함께 호흡하는 또 하나의 심장이자 별 같은 존재입니다.
베르베르 히어레마는 팀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녀의 음악은 이미 무대를 압도할 만큼 강렬했습니다. 첼로와 목소리로 만들어낸 깊은 울림은 우리의 음악을 또 다른 차원으로 이끌어주었고, 그녀의 열정은 앞으로 우리가 함께 써 내려갈 새로운 서사의 단초가 될 것입니다.
이 멤버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제게 무엇보다 큰 선물입니다. 우리가 함께 울린 순간들은 음악을 넘어, 제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으로 남을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이들과 함께, 그리고 이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새로운 울림을 나누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네덜란드 Codarts 작곡과 교수 르네 아이런호이트(René Uijlenhoet)는 누빔킴의 음악을 이렇게 평했다. “색채는 화성을 이루고, 명암은 음색이 되며, 선은 시간의 흐름을 담은 제스처로 남아 음악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실제로 그의 음악은 빛을 향해 열린 공간 속에서 울려 퍼진다. 명료함과 깊이를 동시에 추구하는 사운드 안에서 우리는 맑고 투명한 울림을 경험한다. 각 음은 방황하지 않고, 꼭 있어야 할 자리에 놓이며 하나의 세계를 완성해 간다. 서양 음악의 치밀한 체계와 한국 음악의 고유한 깊이가 서로를 비추어, 누빔킴만의 독창적인 색채로 피어나는 것이다.
이제 홀로 걸어온 길은 다섯 명의 동행과 함께 더욱 넓어진다. Nubim Kim Group이라는 이름 아래, 그는 음악의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 10년이 결실의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시간은 점차 고조되는 크레셴도처럼 펼쳐질 것이다. 성취의 순간이 더 이상 혼자가 아닌 ‘함께의 기쁨’으로 확장되며, 그의 음악은 이제 또 다른 막을 열고, 더 큰 울림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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