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커버스토리] 대한민국 ‘슈퍼 에이지’를 위한 선택
노인복지청추진위원회 이규택 공동위원장 “노인복지청 설립해 법적‧제도적 콘트롤타워 만들어야” 소비 패턴 바꿀 ‘슈퍼 파워’ 세대가 바로 ‘우리’
[시사매거진 신현희 기자] 아프리카 속담 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이는 노인 한 사람이 가진 지식과 정보의 양이 도서관만큼 방대하고 많다는 뜻일 것이다. 또한 그들이 살아온 시간에 비례해 쌓인 지혜와 지식의 깊이는, 그 시간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을 대변하고 해법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하물며 오랫동안 정계에 몸담아 온 분들의 전문성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그 시간동안 국민과 지역민이 보다 잘 살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결론을 내고 거기에 따른 책임을 졌을 것이
[시사매거진 신현희 기자] 아프리카 속담 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
이는 노인 한 사람이 가진 지식과 정보의 양이 도서관만큼 방대하고 많다는 뜻일 것이다. 또한 그들이 살아온 시간에 비례해 쌓인 지혜와 지식의 깊이는, 그 시간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을 대변하고 해법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오랫동안 정계에 몸담아 온 분들의 전문성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그 시간동안 국민과 지역민이 보다 잘 살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결론을 내고 거기에 따른 책임을 졌을 것이다. 언론인 출신으로 국회의원 4선을 하는 동안 오롯이 격동의 현대사를 겪어낸 인물, 그리고 회원 90만 명의 한국교직원공제회라는 큰 조직의 수장으로 유의미한 결과물을 만들며 추앙받은 인물. 이제 한갓진 일상을 누려볼 만한데 그는 아직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남아있었다.
곧 노인 1000만 명 시대다.
이 노인들의 지혜와 파워를 하나로 결집해야 할 대한노인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노인들을 위한 콘트롤타워가 없어 제대로 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도 어렵다.
이에 노인복지청추진위원회 이규택 공동위원장은 우리나라의 가장 강력한 ‘슈퍼 파워’ 세대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그는 지난 14대부터 17대까지 국회의원 4선을 이어오는 동안 국가와 지역을 위한 정치는 잘 해냈다. 그리고 이제는 그동안의 지혜와 경력의 노하우를 모아 자신과 주변 노인들을 위한 자양분으로 점철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가 오랫동안 정치를 하면서 내린 결론은, 모두가 함께하는 ‘합창’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노인 문제는 나 혼자 잘나서 노래하는 ‘독창’이 되어서는 안 된다.
힘 있는 사람의 목소리뿐 아니라 목소리를 낼 수조차 없는 사람, 돈도 배경도 힘도 없는 사람들과 춥고 배고픈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도 함께 어우러져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의 목소리나 자신을 응원해 준 사람들의 목소리, 일부 노인이나 단체, 계층의 이야기만을 대변하는 하는 것은 ‘중창’에 불과하다. 이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이규택 위원장은 자신을 응원해준 노인도, 응원해주지 않는 노인도 모두 함께 가야 할 사람들임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이들 모두의 손을 잡고 함께 노래할 수 있는, 그런 합창단을 만들고 싶다. 이미 나이가 들어 정형화된 아름다운 하모니는 나오지 않겠지만, 조금은 투박해도 함께 노래하는 합창이 나올 것이라 믿는다.
이규택 위원장은 곧 1000만 명이 될 이들의 합창이 곧 우리나라 ‘슈퍼 에이지의 파워’라고 했다.
그는 “1955년생부터 1965년생까지 베이비부머 세대를 위시한 720만명이 현재 가장 큰 소비계층일 뿐 아니라 50대부터 70대 초반까지가 소위 ‘돈이 가장 많은’ 세대로 우리나라 소비 패턴을 좌우할 막강한 세력”이라고 말했다. 이규택 위원장이 서두에 말한 “아직 해야할 중요한 일들이 남았다”에서 중요한 일이 바로 흐트러진 대한노인회를 바로 세우고 노인복지청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노인복지청이 설립된다면 1000만을 향하는 노인을 위한 제대로 된 복지정책과 산하 기관들의 제도적 정착이 가능해지리라 생각된다.
노인복지 전문부처는 지난 2012년부터 여야를 막론하고 관련 법안을 마련해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오리무중이다. 그러는 동안 예산은 여러 부서로 흩어지고 노인복지는 말뿐이다. 지난 22대 총선에도 경로당 복지에 대한 공략이 있었지만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 공략을 믿고 한 표를 던진 분들은 어디 가서 하소연할 것인가. 이 모든 것이 노인복지청이 설립되어야 해결될 문제들이다.
다음은 이규택 위원장과의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노인복지청 설립이 왜 필요한가.
- 우리나라도 이제 곧 노인 1000만 명 시대, 초고령화 사회가 되는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OECD 회원국 중 노인빈곤율, 노인자살율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위주로 여러 부서에 흩어져 있는 노인 복지 및 정책을 전문적으로 책임질 부서가 필요하다. 이미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국가단위의 전문적인 노인 관련 부서가 있고, 그 아래 각 지자체에 또한 전문 부서를 두어 국가와 지자체 간 유기적인 시스템을 통해 관리하고 있다.
2012년 홍문표 의원께서 노인복지청 설립 법안을 국회에 입안한 이래 최근에는 서삼석, 이종배, 김영호 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 할 것 없이 관련 법안을 마련해 추진하고 있다. 초고령 사회를 대비해 노인복지 및 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은 국민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이미 인지하고 있다. 노인복지를 위한 예산 11조 원 중 복지부 예산은 5조 원뿐이고 나머지는 행안부, 여가부, 환경부 등 11개 부처가 85개 사업을 벌이는데, 이중 65개가 중복사업으로 예산낭비라 볼 수 있다. 만약 노인복지청 한 곳에서 이 예산을 집중관리한다면 우리나라 노인복지는 지금보다 훨씬 개선될 것으로 생각된다. 노인복지청 설립은 정부와 정치권의 의지 문제다. 이와 함께 저출산문제, 청년빈곤 문제 등도 함께 해결해야 할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 대한노인회중앙회는 어떤 조직이며, 중앙회 회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 대한노인회는 대한노인회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해 운영되는 사단법인으로 중앙회 산하 16개 시도연합회, 244개 시군구지회, 1개 직할지소, 20개 해외지회, 약 7만여개의 경로당으로 구성된 대한민국 최대 노인관련 단체다. 노인대학, 취업지원센터, 노인복지관 등도 운영하고 있다. 나는 국회의원 시절 여주 노인복지관, 마을회관, 경로당 100여 곳을 유치하기도 했는데, 정치인 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노인복지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경로당 회원이기도 하다.
2013년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으로 재직할 때도 캐치프레이즈가 ‘100세 시대, 지금부터 준비하자’였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노령사회에 대한 대비를 해야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실천하고 있다. 가난한 노인, 고독한 노인, 노인이 대접받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인복지청 설립과 동시에 대한민국 노인단체를 대표하는 대한노인회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한노인회의 실질적인 위상을 높여 노인들이 은퇴한 퇴물로 취급받는 사회가 아닌 경험과 노하우를 통해 노인복지‧사회통합‧세대갈등 문제 등에 이바지할 수 있는 조직이 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대한노인회의 위상을 바로 세우는데 나의 역할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대한노인회가 나아갈 방향은.
- 앞서 말했듯, 대한노인회의 중지를 모아 노인복지청을 설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하고, 대한노인회는 정치적 중립이어야 한다. 대한노인회는 노인들을 위한 복지와 정책을 펴는 곳이지 정치를 하기 위한 곳이 아니고, 노인들의 지혜와 연륜을 모아 숙원사업을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더 늘어날 노인들이 조금 더 행복한 노년을 누릴 수 있다.
미국을 예를 들어보면,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경로당이 아니라 은퇴자협회가 있는데, 노인복지청 옆 자문기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은퇴자협회에서 요양시설, 요양병원 등을 관리하면서 노인들이 이곳에서 봉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처럼 자문기구화해서 노인과 관련된 시설들을 스스로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노인들이 봉사하고 일할 수 있는 곳이 생기고 삶의 활력이 생긴다. 일평생 가족들을 위해 일한 노인들이 존경받고 행복해할 수 있도록, 숙원사업을 꼭 해결하고 싶다.
‣ 평소 이것만은 꼭 지키고 살아왔다는 소신이 있다면.
-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하고 난 다음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나는 여주 산골짜기에서 10km를 걸어서 중학교를 다녔다. 왕복 20km를 걷고 집에 와서 또 어두운 등잔불 아래 졸린 눈을 비비며 공부를 했다. 그때 다져진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목표를 향해 끝까지 집중하는 법을 배웠던 것 같다.
‣ 청년 시절 민주화 운동부터 정계 입문까지 과정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
- 서울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양방송(TBS)에서 사업부장으로 재직 중일 때 1980년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언론통폐합이 추진되었다. 이때 동양방송이 KBS에 통합되었다. 나도 KBS 문화사업부장으로 옮겼는데, 한참 언론탄압이 진행되던 시기였다. 1980년 5월 18일 직후 경향신문 외신부장을 하던 친구 이경일이 잡혀간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경향신문 기자를 비롯해 여러 언론인이 잡혀가거나 대량 해직되었다. 이경일은 2년의 옥고를 치르고 KBS에 있는 나를 찾아와 한약방을 차렸다고 했다. 후에 그 한약방이 이부영, 박계동 같은 재야인사들의 아지트가 되었고, 나도 자연스럽게 이곳에 드나들며 민언련(민주언론운동협의회)에 가담해 해직 기자들과 어울렸다. 그때 보안사에서 경고도 받고, KBS 사장에게 불려가 파면협박도 받았다. 결국 감사를 받게 되고 직원들까지 피해를 볼까봐 사표를 냈다. 이때가 1984년 즈음이다. 1984년 8.15공동선언 발표를 계기로 김대중, 김영삼 양 진영이 결집해 민주화추진협의회를 조직했는데 나는 1983년 YS 단식이 끝난 시점에 민주산악회에 들어갔다. 이때 김동영, 최형우 등도 알게되고, 대학동문인 김덕용 씨의 권유로 민추협에 들어갔다. 민추협 활동을 하면서 1987년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을 계기로 민추협 재야인사들이 비밀모임을 거쳐 1987년 5월 향린교회에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를 출범시켰다. 그 당시 발기인만 2000명이 넘었다. 이후 6.10민주항쟁 준비에 들어가 성공회 서울 대성당에서 박종철 군 고문치사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민주헌법 쟁취를 위한 범국민대회 준비작업에 뛰어들었다. 이때 나도 잠시 구속되었다. 6.10항쟁이 있기까지 민추협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민주산악회부터 민추협까지 YS가 민주화를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1987년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이 된 후 88년 치러진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의 승리로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되었는데 1990년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 이 세분이 3당 합당을 선언했다. 당시 YS가 나도 불러 설득했지만 거절했다. 군부독재라며 노태우를 욕하고 선거운동을 했는데 3당 합당을 한다니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규택, 노무현, 김정길, 김광일, 이철, 이부영, 김부겸 등과 잔류파인 꼬마민주당에 몸담고 있다가 14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여주이천에 출마해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때부터 17대까지 4선을 하면서 지역민과 국가를 위해 일했다.
이규택 위원장은 정계은퇴 후에도 헌정회 부회장, 민족중흥회 부회장, 국가유공자 장학재단 상임고문 등에 몸담으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해왔다. 정계에 있을 때에도 ‘의리의 돌쇠’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 우직하고 묵묵히 국가를 위해 일했던 그가 이제는 노인들을 위한 일에 발벗고 나섰다.
자신도 여주 오학동 아파트 경로당 회원인 만큼, 누구보다 노인들을 위해 선행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그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노인들, 그들은 현재 소비 패턴을 바꿀 수 있는 슈퍼 파워이기도 하고, 최소한의 연금도 허락되지 않는 가장 하위층에 있기도 하다. 이규택 위원장은 이들의 행복한 노년을 위해 ‘노인복지청’이라는 숙원사업을 해결하려 한다. 그의 움직임에 많은 노인들이 함께하고 있다. 또한 앞으로 나이가 들어갈 젊은 층들도 힘을 보탠다.
이제 실천할 일만 남았다. ‘노인복지청’은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을 위한 화룡점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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