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준형의 클담] “선혈이 낭자한 잔혹 복수극, 거장의 신선한 감각으로 다시 태어나”
국립오페라단 베르디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 (6월 22일 - 25일) 김준형의 ‘클래식이 자라는 담벼락’ vol.9
제14회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조직위원장 신선섭)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국립오페라단(단장 최상호)의 ! 베르디 중기의 걸작임에도 , 와 달리 우리 무대에 자주 오르지 못하고 있다. 연주의 어려움을 극복할 캐스팅의 곤란에 큰 이유가 있었다. 이번 무대는 그간의 갈증을 말끔히 해소하는 세계 정상급의 프로덕션으로 한국 오페라 연주의 쾌거가 아닐 수 없다.훌륭한 감각의 무대 예술에 그 큰 공을 돌리고 싶다. 곧 오페라 연출 60주년을 맞이하는 거장, 잔 카를로 델 모나코가 연출은 물론 무대와
제14회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조직위원장 신선섭)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국립오페라단(단장 최상호)의 <일 트로바토레>! 베르디 중기의 걸작임에도 <라 트라비아타>, <리골레토>와 달리 우리 무대에 자주 오르지 못하고 있다. 연주의 어려움을 극복할 캐스팅의 곤란에 큰 이유가 있었다. 이번 무대는 그간의 갈증을 말끔히 해소하는 세계 정상급의 프로덕션으로 한국 오페라 연주의 쾌거가 아닐 수 없다.
훌륭한 감각의 무대 예술에 그 큰 공을 돌리고 싶다. 곧 오페라 연출 60주년을 맞이하는 거장, 잔 카를로 델 모나코가 연출은 물론 무대와 의상 디자인까지 전부 맡아 완결성을 더했다. 전설적인 드라마티코 마리오 델 모나코의 아들로도 널리 알려진 그는 작년 베르디 ‘아틸라’의 대한민국 초연 무대에서 전통적이면서도 장엄하고 사실적인 무대를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15세기 스페인을 마약과 폭력이 난무하는 현대 미국의 범죄 도시로 이동시켰다. 그가 본작과 스토리의 유사성을 발견했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배경에서 착안하지 않았을까?
TV CF에도 단골 레퍼토리로 등장하는 제2막 ‘대장간의 합창’ 장면을 만리코가 이끄는 갱단에서 내기 격투의 역동성으로 치환했다. 주역 가수뿐 아니라 다수의 연기자를 동원해 그려낸 제4막 감옥 장면이 불러일으킨 잔인하고 공포스러운 감정은 베르디의 음악을 더욱 무겁고 짙게 느끼게 해 주었다. 혼란 속의 십자가 행렬이라던가, 루나 갱단의 장엄한 기둥에서 연출가가 전달코자 하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무대 전환의 어려움이 주는 드라마 흐름의 단절이 아쉬웠으나, 베르디 음악의 무게만큼이나 시각적인 효과가 상당했다. 여기에 전문 배우들의 생동감 넘치는 연기는 물론 합창단원까지도 연출가의 까다로운 요구에 충실하게 화답하여 보기 드문 수준의 그야말로 ‘보는 오페라’를 가능케 했다.
국립심포니를 이끈 레오나르도 시니는 베르디 특유의 강력한 악센트, 두터우면서도 어두운 음색 그리고 무게감과 활달함을 동시에 살린 리듬을 충실하게 재현한 진짜 베르디의 맛을 보여 주었다. 2막의 만리코와 아주체나의 이중창에서 템포를 프레이즈마다 세밀하게 변화시킨 점이나 3막에서 체포된 아주체나를 다그치는 루나와 합창의 장면에서도 템포를 긴박하게 몰아가며 드라마의 역동성을 확보한 대목은 음악적 백미였다. 그러면서도 가수들로 하여금 충분히 노래할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기에 성악의 잔치라 해도 과언이 아닐 연주가 가능했다. 무대와 피트가 혼연일치가 된 오페라를 오랜만에 즐길 수 있었다.
과연 불세출의 테너, 엔리코 카루소가 말한 본작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4인의 가수는 누구였을까? 국립오페라단이 심혈을 기울여 캐스팅한 주역 가수진 역시 수준 높은 프로덕션에 걸맞은 훌륭한 연주로 베르디의 심장을 오페라 하우스에 뜨겁게 뛰게 하였다. 특히 운명의 장난 같은 비극적 최후를 맞는 비련의 주인공, 레오노라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선영 교수가 출연하여 베르디 소프라노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바그너 연주에서도 선보인 바 있는 압도적인 파워로 용광로처럼 뜨겁고 폭발적인 고음에서 후련함을 안겨 주었다. 베르디가 레오노라에 요구한 다양한 기술적인 요구를 거의 완벽하게 소화했고, 마지막 제4막에 애절함을 더하여 무르익은 표현의 깊이를 보여주었다.
마린스키 극장의 주역 가수 에카테리아 산니코바는 짙고 어두운 음영의 음색으로 광활한 시베리아 벌판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고음과 무게감 있는 저역을 특징으로 하는 전형적인 러시아 소프라노였다. 게다가 주요 카발레타에서 기술적 요구를 능숙하게 소화하며 종소리처럼 맑고 투명하게 울리는 고음의 완벽한 콜로라투라 연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음유시인, 만리코로 출연한 테너 이범주는 비록 음성의 강건함은 충분치 않았지만 베르디안다운 맛을 살려냈다. 다만 통렬한 ‘저 타오르는 불길을 보라’를 기대했던 객석에 마지막의 짜릿한 고음을 선사하지는 못했다. 강력한 베르디 바리톤의 면모를 보여준 강주원은 만리코의 연적인 루나 백작의 잔인하면서도 애절한 양면을 모두 성공적으로 소화했다.
이번 무대에서 인상적인 대목이라면 저마다 기량을 뽐낼 수 있는 유명 아리아뿐 아니라 중창이었다. 2막의 마지막 3중창과 4막의 레오노라와 루나의 2중창은 시니의 강력한 서포트를 바탕으로 진정한 예술의 참맛을 보여주었다.
하나 더, 베이스 최웅조는 본고장에서 쌓은 노련함이 빛나는 당당한 노래를 들려주었다. 페란도가 이런 주목을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단단하고 거친 맛의 저음과 안정적이고 강력한 고음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국립오페라단은 올해 시즌을 베르디만으로 구성하여 준비했다. 이제 또 다른 중기의 걸작 <라 트라비아타>와 초기를 대표하는 <나부코>가 하반기 무대를 장식한다. 이미 널리 알려진 프로덕션의 리바이벌 무대다. 보다 완성도 높은 연주를 기대해 본다.
음악 칼럼니스트 김준형
예술의전당 월간지 <Beautiful Life>에서 ‘SAC’s choice’ 코너를 3년간 연재했으며, 객석, 피아노 음악, 스트라드, 스트링 앤 보우, 월간 오디오 등 음악 관련 매체들에 오랫동안 칼럼을 기고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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