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역사 앞에 모두가 평등해지는 미얀마에 다녀오다

1일 - 밍글라바, 미얀마!
5월13일 오전 10시 35분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현지시간)오후 1시 5분 베트남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은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베트남항공 직원을 만나 양곤행 비행시간까지 공항 내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베트남 커피를 마시며 그제야 어색한 첫 인사를 나눴다.
오후 6시 10분 미얀마 양곤의 밍글라돈 공항에 도착한 우리를 맞이한 것은 투어미얀마의 가이드 말고도 또 있었다. 주인공은 바로 미얀마의 무더위였다. 첫발을 내딛자마자 온 몸을 뒤덮은 후끈한 공기는 일정 내내 우리가 감당해야 할 더위를 알려주는 전주곡 같았다.
이렇게 인천공항을 떠나 베트남 하노이를 경유해 미얀마에 도착해 저녁식사를 한 후 양곤의 숙소 침대에 몸을 뉘이기까지 하루가 걸렸다.
최근 미얀마에는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낯선 숙소의 적막함을 내쫓아볼 요량으로 켠 미얀마 국영방송에는 이태 전 고인이 된 모 여배우가 생전 출연했던 드라마가 방송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낯선 곳에서의 첫날밤, 낯익은 여배우의 모습을 보며 잠이 들었다.

2일 - 바간의 역사앞에 서다
본격적인 투어 일정이 시작된 둘째 날은 양곤-바간 국내선 일정상 한국에서보다도 일찍 시작되었다. 국내선 출발시간이 6시 15분이라 우리는 5시에 숙소를 나섰고, 이른 시간이라 거리가 적막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거리 곳곳에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양곤 밍글라돈 공항은 엄숙하고 분주한 우리의 공항 분위기와 달리 친근했다. 국토가 넓어 이동수단으로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이 익숙한 그들에게 공항은 우리의 버스터미널과도 같았다. 이른 시간이라 공항에 도착해 하루의 첫 끼니를 시작하는 이들도 제법 많았다.
바간에 도착해 처음 둘러본 곳은 올드바간의 재래시장. 그 지역의 생활을 알고 싶다면 시장에 가라는 말이 있다. 미얀마인들이 즐겨먹는다는 삭힌 죽순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재래시장에는 론지(미얀마 전통의상. 남녀노소 천을 둘러 치마처럼 입는다)를 파는 사내, 꽃을 파는 여인, 과일과 채소를 파는 이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 다음 목적지는 쉐지곤 파고다. 마얀마의 파고다(탑)는 벽돌을 쌓아올린 전탑에 금을 씌운다. ‘쉐’가 바로 황금을 뜻하는 말이다.
1,000년 전에 조성한 쉐지곤 파고다는 미얀마를 통일한 아노라타 왕이 국력을 동원해 조성한 파고다로 그 의미가 남달라 바간 유적의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당시 아노라타 왕은 흰코끼리 등에 부처님의 사리함을 얹고 풀어준 뒤, 처음 정착한 곳에 사원을 조성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쉐지곤 파고다.
미얀마에서는 사원에 출입할 때 지위여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맨발이어야 한다. 그리고 지나친 노출을 삼가기 때문에 무릎을 가리는 옷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가 미얀마를 방문한 때는 우리나라로 치면 한여름. 뜨겁게 달궈진 바닥을 맨발로 딛는 것은 일정 내내 쉬이 익숙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평등해질 수 있었다.
이어 찾아간 곳은 마누하 사원이다. 이곳은 드라마틱한 사연을 간직한 사원으로 더욱 유명하다. 불교에 심취했던 아노라타 왕은 불교가 융성했던 타론왕국의 마누하 왕에게 불경 사본을 요구했지만 마누하왕이 이를 거절하자 그를 포로로 끌어다가 가두었고 후에 자유의 몸이 된 마누하왕이 건립한 사원이 바로 마누하 사원이다.
좁고 어두운 사원 안에는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만큼 답답하게 갇혀있는 거대한 부처상이 모셔져 있다. 이는 일국의 왕에서 하루아침에 감옥신세를 져야 했던 마누하 왕이 당시 자신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기도 하다. 유난히 부풀어 있는 가슴은 당시의 터질 듯 갑갑했던 마누하 왕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 했다.
마누하 사원을 나온 우리는 바간에서 가장 오래된 파고다로 미얀마의 젖줄인 이와라디 강변을 배경으로 세워진 부파야 파고다에 잠시 들른 후 탈로민로 사원으로 향했다.
왕이 막내 후궁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왕자들을 불러놓고 ‘일산(탑의 상부로 왕을 상징한다)’을 던져 그 꼭지가 가리키는 왕자에게 왕권을 넘기겠다고 공언하고 결국 그 막내아들의 후계가 결정된 자리. 왕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여기에 탈로민로 사원을 세웠다.
이어 찾아간 아난다 사원은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사원이다. 1091년에 지어진, 동서남북 각각 다른 4개의 부처상을 모시고 있는 아난다 사원에서 눈여겨 봐야하는 것은 보는 거리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불상의 표정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엄한 표정을 짓고 있고 조금 멀리 떨어져서 보면 활짝 미소 짓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불상 가까이에서 부처님께 기도하는 수행자들이 엄한 부처님의 모습을 보고 수행이 부족한 자신을 항상 다그치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기도 하다.
석양이 조금씩 내리깔리기 시작할 시간, 우리는 직접 탑에 올라갈 수 있는 쉐산도 파고다로 향했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탑 위에 오르면 바간에 세워진 2,500여 개의 탑들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탑들 사이로 붉게 타는 석양이 장관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처럼 그 시각 쉐산도 파고다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온 많은 관광객들이 저마다 석양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쉐산도 파고다의 석양이 짙게 깔리면서 둘째 날 우리의 일정도 마무리 되었다.

3일 - 미얀마의 상징을 만나다
바간에서 다시 국내선을 타고 양곤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셋째 날 일정은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찾은 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백옥 부처상이 모셔진 로카찬다 사원이었다. 10대 갑부로 꼽히는 ‘우마웅지’라는 인물이 오로지 개인비용만으로 조성한 이 부처상은 이동 과정이 TV에 중계될 정도로 조성 당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양곤 지방은 비가 많이 내리는 기후적 특성상 우기 때 언덕에 사원을 짓기 마련인데, 이 옥불을 모시던 15일 동안에는 비가 단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우마웅지는 이 옥불을 종교성에 환원, 현재는 정부에서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드디어 미얀마의 상징을 만났다.
‘쉐다곤’ 파고다를 빼놓고는 미얀마를, 그리고 미얀마의 불교를 논할 수 없다. 양곤에서는 쉐다곤보다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고, 쉐다곤이 보이는 호텔의 객실은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할 정도로 쉐다곤은 인기가 좋고, 의미 또한 크다.
커다란 의미만큼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사원 규모만 해도 2만 평에 이르는 이 장엄한 쉐다곤 파고다의 대탑 높이는 무려 100m에 이른다. 부처님의 머리카락을 받아와 조성했다는 이곳 ‘쉐다곤’은 황금을 의미하는 ‘쉐’와 양곤의 옛 지명인 ‘다곤’이 합쳐져 양곤의 황금대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미얀마의 상징이자 세계 불자들의 성지순례지답게 쉐다곤 파고다에서는 어디를 둘러보더라도 탑을 향해 기도하는 이들을 볼 수 있다. 첫날 숙소로 이동하던 버스 안에서 “미얀마에서 불교는 종교가 아닌 생활”이라던 가이드의 설명이 눈으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4일 - 나의 몸과 마음을 자세히 보다
미얀마의 스님들은 오후 12시가 넘으면 입으로 씹는 음식을 일체 먹지 않는다. 제대로 된 식사는 매일 새벽 탁발을 나가 얻어 온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이 전부다. 이 식사는 오전 10시쯤 이루어진다.
이 시간에 맞춰 숙소 근처에 위치한 마하시 명상센터를 방문했다. 전 세계에 346개의 분원을 가지고 있는 이곳 마하시 명상센터에서는 ‘위파사나’ 수행을 한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자세히 본다는 이 수행은 석가모니 시절부터 행해 온 수행법으로 좌선과 행선(경행)을 기본으로 한다.
이윽고 10시가 되자 탁발공양 행렬이 식당으로 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참 후에야 그 끝이 보일 정도로 긴 행렬이었다.
미하시 명상센터에서 몸과 마음을 가다듬은 우리는 67m의 와불상이 모셔져 있는 차욱탓치 파고다를 방문했다. 와불상은 일반적으로 발의 모양에 따라 열반상(나란히 놓임)과 휴식상(포개짐)으로 나뉘는데 이 와불은 발을 살짝 포개고 있어 휴식상에 속한다.
길게 누워있는 차욱탓치 와불상은 발 끝 부분에 놓인 단에 올라서야만 그 전체를 관람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단에 올라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와불의 분홍색 발바닥이다. 이 발바닥에는 불교의 세계관을 담은 108개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어 문화재 탐방 마지막 일정으로 부처님의 치아사리를 모신 쉐도사원 방문한 것을 끝으로 미얀마에서의 일정은 끝이 났다.

5일 - 다시, 일상으로
전체 일정을 마치고 미얀마 양곤을 출발해 하노이를 경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비행기는 5월17일 오전 5시 30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찾아 일행들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니 또 다시 평소와 다름없는 출근시간이었다. 뜨거웠던 3박 4일간의 투어 일정에 적응하느라 올라갔던 체온은 다시금 평소의 리듬을 회복하기 위해 서서히 내려가고 있었다. 조금 일찍 맛보고 온 2010년의 여름. 그리고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 느낀 미얀마의 지난 시간들. 나의 몸과 마음에 온전히 아로새겨졌으리라.

지면을 통해 이번 미얀마투어를 제공해준 베트남항공에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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