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라파우 블레하츠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2/13)
김준형의 '클래식이 자라는 담벼락' vol.15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_협연. 라파우 블레하츠 (사진_부천아트센터)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_협연. 라파우 블레하츠 (사진_부천아트센터)

2023년 5월 개관하여, 세계적인 홀사운드로 찬사를 받고 있는 부천아트센터가 올해 의욕적으로 기획한 ‘BAC 프라임 클래식 시리즈’의 신호탄으로 초청한 콘서트다. 동유럽의 음악적 전통을 간직한 이들의 연주 자체도 대단했지만 폴란드 음악의 진가를 다시금 일깨워줬다.

폴란드 음악을 들려주려 내한한 연주자는 적지 않았다. 폴란드를 대표하는 음악 단체인 바르샤바 필하모닉을 비롯하여 신포니아 바르조비아 등의 앙상블과 짐머만 등 많은 폴란드 출신의 아티스트를 통해 폴란드 음악을 접했다. 이번 콘서트의 루토슬라프스키의 <작은 모음곡>, 바체비치의 <오베레크>, 블레하츠가 앙코르로 들려준 쇼팽의 피아노 작품 2곡은 그야말로 절품이었다. 쇼팽 콩쿠르의 우승자로서 현역 피아니스트 가운데 가장 빼어난 쇼팽 음악의 해석가로 알려진 그의 연주는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경지였다.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사진_부천아트센터)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사진_부천아트센터)

아울러 이번 연주회를 통해 음악의 본질은 ‘사운드’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였다. 오케스트라가 갖고 있는 고유의 사운드가 ‘슈만과 브람스’라는 정통 독일 음악이 요구하는 소리와 결은 달랐다. 동유럽 특유의 음영이 드리워졌으나, 힘차면서 생생한 사운드가 잘 드러났는데, 이런 음향적 효과를 극대화한 홀 사운드라는 또 하나의 악기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되었다.

첫 곡은 루토스와프스키의 <작은 모음곡>. ‘작은’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지만 참으로 역설적이었다. 폭넓은 스펙트럼의 작곡 기법, 다양한 음악적 표정, 그리고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는 지휘자 안제이 보레이코와 오케스트라의 확고한 자신감까지 그 어느 음악보다 웅장하고 거대했다. 물론 마지막 곡의 유니즌의 스케일과 후련함에 담긴 폴란드의 정서도 감동적이었지만 목관 앙상블을 중심으로 한 낯선 조성과 토속적인 민속 선율 그리고 정교하면서 확신에 찬 합주력 그리고 동구권 특유의 음색 등이 어느 하나의 장면도 놓칠 수 없을 정도로 인상적이었고 흥미로웠다. 2악장의 경묘함과 아기자기함으로 오케스트라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었고, 3악장에선 음색과 음향의 엇갈림이 펼쳐지며 홀 사운드의 쾌적함에 힘입어 작품의 진가를 만끽할 수 있었다. 앙코르로 연주한 그라지나 바체비치의 <오베레크>도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된 작품이었는데, 자신들의 음악을 소개하는 그들의 자신감은 물론이고, 필자는 새롭고 멋진 작품을 접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_협연. 라파우 블레하츠 (사진_부천아트센터)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_협연. 라파우 블레하츠 (사진_부천아트센터)

물론 부천아트센터에서 연주하기 직전까지 일본에서 도쿄 산토리홀을 비롯하여 오사카, 후쿠오카를 순회하면서 충분히 앙상블을 다듬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쇼팽 콩쿠르 우승자로도 잘 알려진 브루스 리우를 비롯해 여러 피아니스트와 협연 무대가 있었지만 역시 라파우 블레하츠와의 협연 무대가 하일라이트가 아니었을까? 부천에서 블레하츠의 연주를 만났다는 점도 청중에게는 행운이었다. 블레하츠의 슈만은 독오 피아니스트의 오소독스한 사운드는 아니었으나 쇼팽 스페셜리스트 다운 영롱하게 조탁된 아름다운 울림과 완벽한 비르투오소 적인 현란한 기교가 눈부신 연주였다. 특히 제1악장 카덴차에서 놀라운 연주력을 보여주었다. 낭만성보다는 투명하고 청초한 슈만의 모습으로 단장하고 시작한 1악장은 솔리스트의 독주에 살포시 얹어진 오케스트라의 어울림이 좋았다. 주제의 낭만적인 가요성을 잘 살리면서 가공할 만한 볼륨의 저음과 현란한 고음의 대조가 멋졌다.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_협연. 라파우 블레하츠 (사진_부천아트센터)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_협연. 라파우 블레하츠 (사진_부천아트센터)

수줍으면서도 명료한 철학적 깊이를 실감케한 2악장은 머뭇거리듯 관조적인 연주를 들려준 블레하츠의 소박한 연주가 오케스트라와 내밀한 대화를 나눴다. 3악장으로 넘어가는 대목의 아름다움이 각별했고, 강력한 3악장의 마무리는 장쾌했다. 솔리스트와 오케스트라의 대결로 협주곡을 정의하는 견해에 비춰보면 아무리 폴란드를 대표하는 아티스트와 오케스트라의 연주라 해도 호흡이 어긋나는 장면이 과하게 비음악적이라 생각되지는 않았다. 앙상블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이들이 자아내는 사운드의 아름다움에 방점이 찍힌 연주였다.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_지휘. 안제이 보레이코 (사진_부천아트센터)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_지휘. 안제이 보레이코 (사진_부천아트센터)

인터미션 후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브람스의 ‘전원교향곡’이라 불리는 제2번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오케스트라의 고전적인 낭만성과는 궤를 달리했다. 구조적으로 정돈되고 정련된 사운드는 아니었지만 특유의 매력을 지닌 호방함이 있었다. 특히 아름다운 노래를 충만하게 들려준 목관악기 솔리스트들의 소박하면서 무게감이 있는 정제된 연주는 또 다른 브람스의 면모였다. 폴란드의 음악과 오케스트라를 통해 그간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와의 조우였다.

음악 칼럼니스트 김준형

예술의전당 월간지 <Beautiful Life>에서 SAC’s choice 코너를 3년간 연재했으며, 객석, 피아노 음악, 스트라드, 스트링 앤 보우, 월간 오디오 등 음악 관련 매체들에 오랫동안 칼럼을 기고해 오고 있다.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_협연. 라파우 블레하츠 (포스터_부천아트센터)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_협연. 라파우 블레하츠 (포스터_부천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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