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전)동의대 철학윤리문화학과 외래교수
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전)동의대 철학윤리문화학과 외래교수

국민배우 이선균의 갑작스러운 자살 소식이 충격적이고 안타깝다. 마약 복용 혐의로 전 국민을 놀래켰지만 처음 보도된 것과는 달리 마약검사와 정밀검사에서까지 모두 음성으로 밝혀지고, 자신의 억울함을 거짓말 탐지기까지 요청하며 호소하던 차였기에 그의 죽음이 더욱 충격적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에게 죽음을 선택하도록 만들었을까. 그는 무슨 마음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결정을 했을까. 아니면 그를 자살이라는 죽음으로 내몬 그 어떤 불가항력적인 무엇이 있었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을까? 스스로 나의 목숨을 내 마음대로 할 권리가 나에겐 있을까? 20세기 중엽 프랑스의 소설가로 현대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가진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일찍이 기성사회에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외친 바 있다. 

그녀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극단적 자유주의를 펼쳤다. 마약을 하던 자살을 하던 신체를 파괴하던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개인의 권리라는 것이다.

극단적 개인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 달리 말해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은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자유이자 선택의 권리이다.

하지만 우리는 로빈슨 크루소우처럼 무인도에 살지 않기에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일단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는 논외로 하더라도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 만약 허용된다면 그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은 그의 저서 '자살론'에서 자살의 성격을 여러 유형으로 분석한 바 있다.

첫째, 이기적 자살이다. 가장 많은 유형으로 일상적인 현실과 좀처럼 타협 또는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자살이 해당된다. 정신질환자의 자살도 이 경우에 속한다. 이기적 자살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전반적으로 팽배해있는 사회에서 자주 일어난다.

두번째, 이타적 자살이다. 자신이 속한 사회 또는 집단에 지나치게 결속돼 일어나는 유형이다. 집단주의적 경향을 강하게 지닌 사회에서 보다 자주 일어난다. 예컨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군 가미카제나 무슬림 무장단체의 자살 테러 등이 이에 속한다.

셋째, 아노미적 자살이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지던 가치관이나 사회 규범이 혼란 상태에 빠졌을 때 일어나는 자살 유형이다. 서로 다른 가치 규범이 뒤섞여 있는 사회, 급격한 변동의 와중에 있는 사회에서 아노미적 자살이 보다 자주 일어난다. 예전 IMF 경제위기 시절에 많이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숙명적 자살이 있다. 사회가 과도하게 욕망을 억압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절망 속의 자살을 낳는 것이다. 노예의 자살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배우 이선균의 자살은 어느 범주에 속할까? 그는 세 차례의 고강도 수사를 받으며 '억울함'을 호소해 왔다. 하지만 허위와 추측, 악의적인 보도에 의해 이미 마녀사냥 당해온 상황에서 그의 억울함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답답함과 절망감, 그리고 수사의 중압감으로 더욱 크나큰 절망과 고통 속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더 이상 다시 사회로 나올 의지도 힘도 상실한, 결국 삶을 자포자기하는 절망적 상황에서 선택하는 '숙명적 자살' 유형에 가깝기도 하고 규범의 혼란으로 선택하는 '아노미적 자살' 유형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다. 

뒤르켐에 따르면 이유야 어쨌든 자살은 엄연히 사회 현상이며 자살의 원인 역시 사회적이다. 배우 이선균의 안타까운 죽음에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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