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학교 공자학원 중국 측 초대 원장 최선화

[시사매거진 제299호]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 언론을 통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온갖 영역에서 중국과의 갈등이 전달되니 중국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 표면적인 소리로만 양국 관계를 가늠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 세월 동안 묵묵히 양국 교류의 끈끈한 발판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 만난 사람도 그중 한 명이다.

올해 초까지 한양대학교 공자학원 중국 측 초대 원장으로 재직하다 현재 중국 길림대학교에서 근무 중인 최선화 전 원장은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출신이다. 그녀는 중국 길림성 장춘에 소재한 길림대학교에서 각종 국제교류업무에 종사하며 한국과 소통해왔다.

필자는 한중미술협회와 한양대학교 공자학원이 함께 개최한 ‘한중청소년 예술페스티벌’ 행사를 통해 그녀를 알게 됐다. 최 원장은 양국 교류의 일선에서 담백하지만 단단하게 일했고, 오늘을 진단하고 내일을 구상하는 모습에서 양국 교류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다.

차홍규 한중미술협회장과 한양대 공자학원 중국 측 최선화 초대원장. (사진_ 최선화제공)
차홍규 한중미술협회장과 한양대 공자학원 중국 측 최선화 초대원장. (사진_ 최선화제공)

‘중한 교류기획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는데, 좀더 자세히 이야기해 준다면

말 그대로 양국의 교류를 기획하는 일을 한다. ‘교류’를 국가나 사회나 개인의 접촉면이 넓어지면 저절로 발생하는 ‘현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최소한 국가와 사회 단위, 즉 개인을 제외한 영역에서 교류의 밀도와 농도는 기획의 시선과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가령 교류의 각 대상과 단위를 고려하지 않고 그냥 있어 보이는 프로그램을 무작정 배치하면 오히려 일을 그르치고 만다.

교류는 결국 사람이 핵심이다. 관련 주체들을 깊이 이해하고, 그 주체들의 욕망과 호기심을 프로그램이나 관련 기관의 정책에 녹여내야 교류의 지속성이 보장된다. 단순한 ‘정책 및 프로그램 개발’로는 국가 간 교류의 지점들을 제대로 만들거나 오래 이어가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양국의 교류를 2D에서 3D, 4D로 입체화, 실체화, 능동화하는 게 필요하고, 이 필요의 지대에서 디렉터(Director)와 코디네이터(coordinator) 역할을 결합한 게 ‘교류기획자’가 하는 일이다.

사실 이건 내가 내 ‘일’을 정의하고 소개하고 싶어서 만든 말이다. 직장이나 직책으로는 내가 하는 일의 본령을 잘 전달하기 힘들다. 나는 길림대학교에서 근무하는데,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국립대학교 교육 공무원인 셈이다.

직장은 십여 년 이상 변하지 않았다. 이에 반해 내 직책은 수시로 바뀐다. 물론  대부분 국제교류 업무나 유학생 관련 업무를 수행하지만, 학교 상황이나 주무 부처, 내 상황 등에 따라 자주 달라진다. 그런데 나라는 사람은 이 십 수년 동안 여러 공부와 경험을 통해 성장했고, 이 과정에서 나의 방향성이 무르익었다.

결국 깨달았다. ‘아, 내가 사람을 만날 때 교환하는 명함에는 바뀌지 않을 직장과 명칭이 자꾸 달라지는 직책만 있고 나의 방향과 시선은 없었구나.’라고 말이다. 그래서 직장과 직책이 아니라 내가 나아가는 방향과 나의 일인 직업을 정의하는 말로 나를 소개하자고 결심했었다. 그게 바로 내가 살아온 삶과 살아가고 있는 삶과 살아갈 삶을 모두 담고 있는 ‘교류기획자’라는 단어다.

한국공자학원 연석회의. (사진_최선화 제공)
한국공자학원 연석회의. (사진_최선화 제공)

공자학원의 역할은 무엇인지

공자학원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중국과의 소개팅’이다. ‘중국을 소개’한다고 말하지 않고 중국과의 소개팅이라고 한 이유는, 공자학원은 중국을 소개해주는 곳이기도 하지만 이곳을 찾고 활용하는 외국인과 직접 만나는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즉, 중국을 만나고 싶지만 현재 중국에 체류하지 않거나 중국에 가기 힘든 외국인이 만날 수 있는 중국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19년 기준으로 160여 국가에 약 550개 공자학원과 1,172개의 공자학당이 설립됐으니, 전 세계와 중국의 소개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크게 중국어 교육, 중국 문화 안내, 인적 교류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현지와 만나고 있다.

한양대학교 공자학원은 다른 공자학원보다 다양한 문화행사를 많이 하는 것 같은데

한양대학교 공자학원 역시 공자학원의 기본 축인 중국어, 중국 문화, 인적 교류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활동하고 있다. 여기에 나는 ‘다양성과 소통성’이라는 원칙을 결합했다. 중국어 교육의 경우는 수준 높은 중국인 원어민 교사 확보와 한국인 학습자가 가장 원하는 분야인 회화와 HSK 관련 수업을 기본으로 유치원, 학원, 인터넷 강의 등의 다양한 형식을 접목시켰다. 

특히 우리가 개발한 전문가가 주도하는 중국어 관련 트레이닝 프로그램은 상당히 유용했다. 수준별 학습에서 가장 어려운 건 초급이 아니라 고급 학습자를 만족시키는 일인데, 그 수요를 권위 있게 해소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기분이다. 중국 문화 안내 영역에서도 고민이 많았다. 한국은 공공기반 지식서비스 영역이 굉장히 강한 나라다. 그래서 단순한 중국 문화 안내는 큰 도움을 주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월병 만들기나 도삭면(우리식 칼국수) 만들기 같은 음식 문화 체험부터 경극 소품 만들기 같은 참여형 문화 교류 프로그램을 최대한 많이 운용했는데 반응들이 상당히 좋았다. 일방적인 안내나 소개가 아니라 양국 사람이 직접 만나거나 소통하면서 활동하는 방식에 관한 고민을 많이 했었다.

또한 한국의 중국 문화 인식이 너무 전통적인 영역에 편향된 거 같아서 SF영화 감독의 초청 강연 등 ‘오늘의 중국’을 소개하려 애썼다. 인적 교류는 휘발성‧단발성 행사보다는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활용할 수 있는 말하기대회나 체험수업 위주로 편성했다. 힘을 많이 쏟은 건 한양대학교 학생과 지역 주민들에게 중국과 관련하여 전문가를 활용한 진로 상담 프로그램이었다. 중국 관련 영역에서 공부와 취업이 연결되는 지점을 소개하고 이 영역에 입문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는데 코로나 19로 인해 제도화되지 못한 점은 많이 아쉽다.

제2회 전국 중고등학교 중국어 말하기 대회 시상식.(사진_최선화 제공)
제2회 전국 중고등학교 중국어 말하기 대회 시상식.(사진_최선화 제공)

한국 학생들의 참여도와 성취도는 어떠했나. 그리고 그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기본적으로 한양대학교 학생의 참여도와 성취도는 기대 이상이었다. 참여도는 프로그램의 특성과 코로나19 등 외부 변수에 따라 저마다 달랐지만, 성취도는 상당했다. 일례로 우리 모두를 자랑스럽게 했던 ‘중국어 말하기 대회’가 있다. 한양대학교에서 중국어 비전공자 중국어 말하기 대회를 주최했는데, 여기서 성과를 얻은 학생들이 나중에는 더 큰 대회에서도 좋은 성과를 얻었다.

이 인원을 주축으로 전 세계 공자학원이 각축을 벌이는 영상 대회에서 한양대학교 공자학원이 대상을 받기도 했다. 한양대학교 공자학원이 만든 프로그램을 통해 참여자들의 중국어 실력이 향상됐다는 사실, 나아가 이 프로그램이 많은 사람의 중국어 학습 동기를 유발하고 강화했다는 점, 이 모두가 아직까지 기억 속에 기쁨으로 남아 있다.

이런 성과들은 아마 한양대학교 공자학원의 프로그램과 진행 수준이 좋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이미 20년에 가까운 세월을 양국 교류 현장에서 보냈다. 이 기간에 양국 교류의 접촉면은 무럭무럭 자랐다. 20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중국어나 중국은 취업 내지는 활용을 위한 ‘도구’로 인식되고 활용됐다.

하지만 지금은 관심과 애정의 영역, 즉 잉여 측면도 넓어졌다. 그러니 어학 같은 자격증 취득에 집중됐던 관심의 방향이 이제는 문화, 교류, 소통, 활동 등으로 다변화된 것이다. 중국의 공자학원뿐 아니라 양국의 모든 교류 관련 기관과 주체들도 이러한 변화들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도구 측면의 수요도 굉장히 중요하다. 삶에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부분이니까 말이다. 결국 현재 양국 교류의 성패는 도구와 잉여라는 두 영역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결합하고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키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언제부터 ‘교류기획자’로 활동했나.

‘교류기획자’라는 표현을 쓴 건 약 10년 전부터다. 나는 20대에 중국 길림대학교 내 국제교류 담당 부서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한국 유학생을 관리하고 유학생 관련 정책을 집행하는 업무를 주로 담당했는데, 이때는 교류 영역에서 일하는 노동자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러다가 2010년쯤 길림대학교에 석사 과정으로 유학을 온 한 한국인의 활동을 목격했다. 그 사람은 자비를 들여 자기 책을 한국에서 옮겨와 책방을 열고, 프로젝트 학회를 만들었다. 유학생과 길림대학교 학생이 모두 어우러져 뭔가를 하는 모습이 당시 내게는 생경했는데, 활동을 주도하던 사람이나 참여하는 사람 모두 자연스럽고 신이 나 있었다.

그런 그가 내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해왔다. 외국인을 접촉하기 힘든 교외 지역 농촌 학생들과 길림대학교 유학생의 정기적인 교류를 진행하고 싶은데, 교통 등의 지원이 가능하냐는 문의였다. 나는 담당 부서장을 설득해 그들의 활동을 길림대학교 공식 활동으로 만들어서 그들을 지원했다.

이 작은 일 하나로 나는 내 일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프로젝트형 교류 활동을 기획하고 지원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 시기 그가 나를 농담 식으로 부른 호칭이 ‘교류기획자’였는데, 마음에 쏙 들어서 계속 쓰게 됐다.

그게 2010년 무렵이었으니, 내가 내 일의 성격과 방향을 정의하고 산지도 10여년 정도 된 셈이다. 박사 논문도 한국을 좀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주제를 찾아 썼고, 어떤 부서로 이동하든 ‘교류기획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노력하며 공부하고 준비했다. 한양대학교 공자학원 부임 이후에도 원장으로 부여받은 공식직책과 내가 설정한 교류기획자라는 직업의 두 균형점을 조화롭게 운용하려고 노력하였다.

한양대-길림대 대학생 창업교류 프로그램.(사진_최선화 제공)
한양대-길림대 대학생 창업교류 프로그램.(사진_최선화 제공)

앞으로 ‘교류기획자’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중국에 한국을 알리고, 중국에서 한국과 만날 수 있는 교류 공간을 만들려 한다. 현재 북경, 상해, 광주 같은 1선급 대도시가 아니면, 한국을 이해하거나 한국과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 당연하다. 한국 정부가 중국 전역에 한국을 알리고 한국과 만날 지점을 만들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게 마냥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중국의 1선, 2선급 대도시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다. 한국을 향한 관심, 한국과 관련된 욕망, 한국이 필요한 이유가 제각각이다. 그러므로 한국이 가능하고 한국이 원하는 형태로 교류 지점을 만들어 역할을 하면 좋겠다.

하지만 중국 3선급 도시와 비도시지역의 경우는 다르다. 대도시와 달리 세밀하게 현지의 필요와 욕망을 이해해야만 적절한 교류의 지점을 만들 수 있다. 섣불리 ‘홍보 위주’의 한국 관련 공간을 개설하고 운영하면 자칫 역효과가 날 수 있다.

한양대학교 공자학원 중국 측 원장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며 생각했다. ‘이제 중국에 한국을 알리고, 중국에서 한국과 만날 수 있는 문화 공간을 일구자’고. 직장에서의 내 직무는 기본적으로 중국에 관심이 있는 한국인과 관련된 것이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부서와 직책이 달라질 뿐, 본질적으로는 유사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내 경험을 살려서, 작지만 알찬 공간과 장소를 언젠가는 만들고 그 안에서 다양한 양국 교류 프로젝트를 발족하려고 한다.

이게 10여 년 전 나를 교류기획자로 재정의할 때 세웠던 내 꿈이었고, 지금은 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 그때보다 훨씬 더 많아졌다. 조금 더 연구하고 기획해서 꼭 실현하고 싶다. 그때 교수님도 역할을 해주시면 좋겠다.

최선화 원장과의 대담은 현장을 누비며 생활해 온 소중한 경험과 한중 교류기획자답게 전문가의 시선과 해법 및 양국의 발전을 도모하려는 의지가 느껴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오랫동안 한 방향을 보며 걸어온 사람의 내공을 담백한 언어로 펼치는 모습을 보며, 언젠가 이 사람이 만든 터전에서 나 역시 함께 어울리며 공동의 프로젝트를 맡아 양국 교류의 현장 속으로 빠져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글 차홍규 한중미술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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