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법무법인 성지파트너스 최정욱 변호사
법무법인 성지파트너스 최정욱 변호사

지난 칼럼에서 유죄추정의 현실을 비판한 일본의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를 소개하며 우리나라의 지하철 성추행 처벌(성폭력처벌법상 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위 영화의 배경이 된 일본의 2006년과 달리 2022년 우리나라의 성범죄 처벌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켜지고 있을지, “저는 절대 만지지 않았습니다. 경찰과 법원이 저의 무죄를 밝혀줄 것이라고 믿었는데, 1심 재판에서 유죄가 선고되었어요.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말했던 한 남자의 무죄를 향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어린 두 자녀를 홀로 양육하는 아버지로 양육에 있어 부모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 매일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해 편도 2시간에 달하는 출·퇴근을 감수해야 했으며, 그 날도 여느 날과 같은 출근길이었다.

출근길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블루투스 이어폰을 착용한 채 드라마를 보며 버스에서 지하철로 환승하고 두 정거장이 지났을 무렵, 누군가 그의 멱살을 잡아채며 소리 질렀다.

“어딜 만져요! 당장 내려요”

좋게 얘기해서 소리친 것이지 상스러운 욕설과 함께 모욕적인 비난이 잇따랐다.

그렇게 그는 출근길에 뜬금없이 지하철 성추행범으로 몰린 채 곧바로 지하철 내 경찰대에서 조사를 받게 되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사실대로 진술하며 억울함을 토로하였고, 드라마를 시청 있었던 휴대폰 화면, 들고 있던 모자, 클러치 등을 경찰에게 보여주었다.

조사를 마치고 회사의 상사에게 억울하게 성추행범으로 몰려 지각을 하게 되었다고 보고하고 점심시간에는 동료들에게 황당한 에피소드처럼 출근길에 겪은 일을 이야기했다.

그는 그렇게 제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유죄를 선고받은 그는 항소심에 이르러 나를 찾아왔고 너무나도 억울함을 간절히 호소하였으나, 변호인의 직업상 의뢰인의 말을 전부 신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변호인조차 설득하지 못하는 주장은 엄격한 판사의 판단을 결코 넘을 수 없으며, 지하철 성추행과 같이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의 진술을 신빙하여 유죄로 인정된 사건을 항소심에서 무죄 주장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기에, 3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경찰조사보다 높은 강도로 그의 주장을 비판하고 탄핵하는 면담을 거쳤다.

그의 주장은 일견 타당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그의 범행 여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의뢰인과 변호인 사이의 신뢰를 형성하고 항소심에서 입증 증거로 사용하기 위해 그에게 사설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받아 올 것을 요청하였고, 그는 거짓말 탐지기 검사에서 진실반응을 받아왔다.

그러나 증거능력이 없는 거짓말 탐지기 검사결과는 입증계획을 수립할 단초에 불과했고, 객관적인 증거 없이도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만으로 유죄추정을 받는 우리나라 성범죄 처벌의 현실상, 억울한 피고인은 스스로 무고함을 입증해야만 한다.

우리는 항소심 재판부에 거짓말 탐지기 검사결과를 제출하며 입증계획을 밝혔고, 3D 디자인 회사에 의뢰하여 당시 전동차 내부에서의 피해자와 그의 위치를 재현하는 한편, 당시 그가 휴대폰으로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1년이 지나 발급이 불가능하다던 데이터 사용량 자료를 통신사에 읍소해 받아낸 뒤 제출했다.

또 당시 그가 입고 있던 복장, 들고 있던 모자, 클러치 등을 CCTV를 통해 입증하여 이를 피고인신문에서 전부 착용하고 자세와 상황까지 재현하였고, 피해자가 추행 당시 그의 손을 전혀 보지 못하였고 들고 있던 물품도 기억하지 못함에도 위치만을 근거로 그가 범인이라고 지목하는 등 추측에 의한 단정을 한다는 점과 이외의 객관적인 정황 등을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변호인 의견서를 통해 수차례 제출하며 제3자가 범행하였을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였다.

결국 항소심에서 재판부의 직권으로 피해자를 다시 소환하여 재차 증인신문을 할 기회까지 주어졌다.

황당한 에피소드라고 생각했던 그 날의 일은 약 1년 6개월간의 지리하고 치열한 법정공방 거친 끝에서야, 그는 결국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그가 제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기까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시간은 사건 당일 지하철 내 경찰대에서의 일방적인 1회 조사뿐이었고,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의 수집은 어떠한 수사기관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 이에 그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자신의 무고함을 스스로 입증하여야만 했다.

2022년의 대한민국은 2006년의 일본과 달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형사법의 대원칙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켜지고 있는 것일까?

법무법인 성지파트너스 최정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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