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 도우미 단속’쫓고 쫓기는 추격전
어느 시대나 도덕적으로 부패하기 시작하면 곧 망하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사회나 국가가 망하려는 조짐은 도덕적 타락으로 가늠할 수 있다. 로마가 그랬고, 고려시대 말의 타락한 사회가 그러했다. 우리 사회의 타락한 모습을 개인의 자유로 돌리며 간과해버리기에는 이미 그 끝 점으로 치달아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최근 가정주부의 알바로 물의를 빚고 있는 노래방도 그것이다.

우정, 친목 다지는 건전노래방 문화 지켜야
시대별로 타락의 온상이 되는 곳이 존재했다. 고려시대의 사원이 그랬고, 로마 멸망의 한 원인이 된 공중목욕탕이 그러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시대의 타락의 온상이 되는 곳은 어디일까. 노래방이 아닐까싶다. 어느 때부터인지 노래방은 노래만 부르는 곳이 아닌 소규모 윤락업소로 전락하고 말았다.

노래방 도우미 단속 숨바꼭질

“어쩌겠어요, 돈이 원수지….” 주부 k모씨(36)가 노래방 도우미로 나선 건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였다. 아는 동네 아줌마와 같이 일을 시작했다. 일이라고 해야 불러주는 손님이 있는 노래방에 들어가 신나게 노래 불러주고 분위기 띄워주면서 술 몇 잔 같이 마셔주는 것뿐이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 짓궂은 손님이 더듬더듬 몸을 만지기도 하지만 그렇게 엮여 2차를 가게 되면 짭짤한 부수입이 추가되니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일을 시작한 지는 6개월 정도 됐다. 전화번호와 가명을 적은 명함을 만들어 노래방 업소를 돌며 직접 돌렸다. 업주들 역시 알음알음으로 연락을 취해 온다. 저녁 8시쯤 출근(?)해 노래방 부근에서 기다리다 보면 찾는 손님이 있다는 업주의 전화가 걸려온다. 그때부터 영업시작이다. 1시간 같이 놀아주면 2만원, 2차까지 나가면 보통 10만원 정도 받는다.
‘노래방 도우미’의 사연 뒤에는 딱한 남편들의 사정이 있었다. S씨(44·경기 의정부시)는 “집사람이 노래방 도우미로 돈을 번다는 걸 알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새벽 1∼2시가 넘어서 술냄새 풍기며 들어오는데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냐”며 “처음에는 울컥 화가 치밀기도 했지만 애들 학원비도 대야하고, 내가 무능해서 그런 건데 어쩌겠냐 싶어 말리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무능이 아내의 탈선을 방조한 것이라고 자책했다.
이달 들어 경찰이 노래방 도우미 집중 단속에 들어갔다. 서대문경찰서의 경우 하루 평균 2곳 이상의 불법 도우미 고용 노래방을 적발해내는 등 연일 강도 높은 단속을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경기 침체로 그렇지 않아도 영업이 잘 안 돼 울상을 짓고 있는 노래방들이 초상집 분위기다.’몰래바이트’로 재미를 보던 주부 도우미들 역시’일터’를 잃고 한숨을 짓고 있다.
일선 경찰들은 그러나 노래방 도우미 단속이 쉽지 만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이달 들어 매일 저녁 노래방 단속에 나서는 서대문경찰서 생활질서계 담당자는“범죄 상황을 입증하는 ‘진술서’를 받아내기가 어려워 도우미라는 거 뻔히 알고도 적발 건수를 만들지 못한다”며 “멀쩡한 가정주부 죄인 만들 수도 없는 일이고…”라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제보가 들어온 노래방으로 단속을 나가더라도 손님과 미리 입을 맞춰둔 도우미들이’일행’이라고 우기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손님과 도우미가 같이 짜고’회사 동료다’,’일행이다’하면 달리 확인할 방법도 없다. 게다가 2차라는 윤락행위 등의 범죄행위가 있지 않은 한 도우미나 노래방 손님을 연행해 조사할 수도 없다. 현행법상 노래방에서 접대 도우미를 고용하고 있다는 것이 적발되면 고용 업주만 처벌대상이 돼 영업정지 등의 행정처분과 2년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형을 받게 된다. 때문에 법이 보다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노래방 업주와 도우미 아줌마, 그리고 경찰간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진행 중이다.

농촌 노래방 불·탈법 영업 극성
최근 충북 옥천 보은 영동지역 노래방에서 주류판매나 접대부 알선 등 불·탈법 영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군(郡)에 따르면 올 들어 주류제공이나 접대부 알선 등 불법 영업을 하다 적발된 노래방은 16곳(옥천 8, 보은 7, 영동 1곳)으로 이 중 9곳이 영업정지됐고, 7곳에는 과징금이 부과됐다.
옥천읍 M노래방은 지난 2월 접대부 알선 등으로 영업정지(40일) 처분을 받고도 배짱 영업을 하다 또 다시 단속에 걸렸고 인근 T, N노래방 등도 술을 팔거나 접대부를 고용해 퇴폐영업을 일삼다 군과 경찰에 적발됐다.
보은읍 T노래방과 영동읍 E노래방 등도 주류판매나 접대부에게 술시중을 들게 한 혐의로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군과 경찰 관계자는“농촌 노래방들의 불·탈법 영업이 만연해 도우미라는 접대부를 고용하거나 맥주는 물론 양주까지 진열해놓고 파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위반업소는 리스트를 만들어 특별관리하고 자율정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업주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자들은 노래방 도우미라는 여자들을 찾고 가출한 청소년 혹은 쉽게 돈을 벌고자 하는 주부들이 그들의 요구에 응하고, 노래방 업주는 그 둘을 연결해주는 장소를 제공하는, 일종의 상부상조를 하고 있다. 얼마전 군산 경찰서의 경찰관들이 가출 청소년들과 집단 성관계를 가져 파문을 일으킨 시발점은 바로 노래방이다.
유흥업소 주인들과 폭력배, 경찰간의 유착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타락한 경찰관들을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또한 아무런 죄의식 없이 노래방에 드나들며, 도우미의 노래만을 들으려고 그 곳을 찾지는 않는다. 불경기라고 하지만 이런 불법 노래방만은 호황을 누리고 있어 그 숫자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말은 믿고 싶지 않은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불경기에도 불법 노래방은 성행
경찰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 썩고 썩은 줄도 모르고 세상살이가 힘들다고들 푸념한다. 우리 사회는 너무도 많은 퇴폐문화를 용인해주고 있다. 무슨 사건이 한 번 터지면 집중 단속이란 이름 하에 대대적인 사정을 펼치다가 또 시간이 지나면 알면서도 한 쪽 눈을 감는다.
다 그런 거지 뭐라며 지나치기에는 불법 노래방의 폐해가 너무도 크다. 주부와 청소년들이 타락하고 남편, 아버지들이 타락하면 가정이 붕괴되고 사회가 건강함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그게 지나치면 사회가 흔들리고 나라가 약해진다. 경제가 어렵다는 핑계로 봐줄게 따로 있다. 불법 노래방 업주들의 주머니 사정보다 한 나라의 도덕적 건전함이 더 우선이다.
건전하게 쓰지 못하고 건전하게 벌지 못한 돈이 나라 경제를 살릴 리도 만무하지만, 그렇다고 해봤자 모래위에 지은 누각일 뿐이다. 불법이니 소득신고가 제대로 될 리가 없고 세금이 제대로 걷힐 리도 없다. 그저 음성적인 돈의 흐름만 혼탁해질 뿐이다. 도덕적 타락은 도덕적 타락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나라를 말아먹을 수도 있는 검은 힘이 된다.
노래방, 이 시점에서 모두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노래 한 곡당 얼마를 주고 가수가 된 것처럼 목이 터져라 외쳐대며 스트레스를 풀고 친구간에 가족간에 동료간에 친목을 다지던 그 곳은 몇 년 사이에 기형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뭐든’답게’해야 아름답다. 노래방은 노래방답게 노래만 부르는 당연한 그 진리를 그리워하는 이 시절이 어서 빨리 지나갔으면 한다.
저작권자 © 시사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