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다” ‘정부의 경기낙관론’무색 소비 ‘꽁꽁’ 버스·택시·밀가루등 줄줄이 인상 대기
국제 원자재 가격상승으로 촉발된 물가 불안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버스·지하철·택시 등 그동안 인상을 억제해온 공공요금이 하반기부터 줄줄이 인상되는 데다, 원재료 가격상승으로 밀가루·라면·음료 등 생활 필수품 가격도 속속 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작년 말부터 시작된 원자재값 급등 요인이 이달 말부터 본격적으로 소비자 물가에 반영되는 데다 각종 개발계획과 고속철 주변의 개발 기대가 물가불안을 가중시킬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저성장 고물가’구조 정착 우려
서울시는 오는 7월 1일부터 시내버스 체계를 전면 개편하면서 버스·지하철·택시 등 대중교통의 요금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서울시는 시정개발연구원 등에 요금 조정안을 용역 의뢰한 상태이며, 5월 중 공청회를 거쳐 요금 인상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서울시는 7월부터 정부의 유류(油類) 보조금이 100%에서 50%로 줄어드는 데다 지하철 구내의 각종 시설유지비를 요금에 반영하라는 정부 지침 때문에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택시 요금 역시 2001년 이후 요금 인상을 하지 않아 관련 업계의 경영 압박이 심각하다는 것. 서울시 관계자는”버스노선체계 개선과 함께 거리별 요금제가 도입될 전망이어서 버스요금이 어느 정도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생활과 직결되는 식료품 가격은 거의 모든 품목에서 인상되고 있다.
동아제분은 최근 밀가루 가격을 평균 6.9∼10.4% 인상한다고 밝혔다. 국제 원맥(原麥) 가격이 오른 데다 해상운임비도 t당 50달러로 작년 이맘 때보다 2배 가까이 올랐기 때문. 국내 밀가루 생산 1·2위 업체인 대한제분과 CJ도 이르면 이달 안으로 제과·제빵·가정용 밀가루 가격을 인상할 계획이다. 제과업계는 주재료인 밀가루와 과당·물엿·포도당 등 전분당 가격상승으로 제품값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크라운베이커리는 이달 초 재료비 상승을 이유로 생크림케이크 30여종의 가격을 품목별로 500∼1000원씩 인상했다. 기린 등 다른 업체들도 제품 중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원자재가격 인상분을 반영할 계획이다. 이 밖에’서민 식품’인 라면 가격 역시 작년 말과 올해 초에 걸쳐 6∼7% 오른 데 이어 또다시 들썩이고 있으며, 콜라 등 탄산음료와 주스류도 줄줄이 가격이 오르고 있다.
또 최근 철강업체들이 열연강판과 냉연강판의 가격을 20% 안팎 올리면서 이를 사용하는 가전과 자동차 등 관련 업계에서도 소비자 가격의 상승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이라크 사태로 인한 원유가격 상승세와 총선 정국도 물가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달 초부터 시작된 OPEC(석유수출국기구)의 원유 감산 결정은 3~4개월 후 국내에도 직접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유가가 1달러 오르면 국내 소비자 물가는 0.15% 정도 상승한다. 시장조사기관 코리아PDS에 따르면 총선이 치러지는 해의 물가상승률은 평년보다 0.26% 포인트 높았다. 코리아PDS 민재영 물가분석연구원은 “물가불안은 가계수지를 압박하고 소비를 위축시켜’저성장 고물가’구조가 정착될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


“장사 이렇게 안되기는 처음”
주부 강숙희(46·서울쌍문동)씨는 얼마전부터 시작된 EBS 수능 강의가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대학 2년, 고 3년, 중 1년 세 자녀를 둔 강씨는 그동안 늘어나는 사교육비 문제로 등골이 휠 정도로 압박을 받았다. 견디다 못한 강씨는 지난 겨울부터 둘째 아이의 과외를 끊고 셋째 아이의 가정학습지도 2개에서 1개로 줄였다. 강씨는”남편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가 껑충 뛰어 살림살이가 말이 아니다”며”외식도 절반으로 줄였고 내 옷은 장만할 엄두도 못내고 있다”고 털어놨다. 서울 중랑구청 사회복지과 공무원 김영희(49·여)씨는 시장 가기가 두려울 정도다. 반찬거리 값이 치솟아 같은 돈을 써도 장바구니가 반으로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그는”1000원이면 감자를 5∼6개 샀는데 지금은 2000원을 줘도 같은 양을 사기 어렵다”며”예전에 집에서 말려놓은 무 말랭이를 일주일에 서너차례 밥상에 올린다”고 말했다.
한창’돈 쓸’나이인 김모(30)씨는 요즘 친구 만나기가 겁난다. 백수 처지인 그는 대출금 2000만원을 갚지 못해 신불자가 된 지 1년이 넘다보니 친구들과 어울려 술 한잔 할 형편도 못 된다. 김씨는”얼마전에 법원에서 채무 지급명령 통지서까지 날아왔다”며 “카드대출을 대환대출로 돌릴 때 보증을 선 동생에게 피해가 갈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이처럼 씀씀이를 줄이는 소비현실은 통계청 자료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서비스업 생산 중 음식업은 1월 수입이 1년만에 10.6%나 준 데 이어 2월에도 1.2% 감소했다. 특히 병·의원 수입은 1월 -37.7%, 2월 -16.4%를 기록하며 4개월째 극심한 침체가 이어졌고 학원도 1년전보다 0.7% 수입이 줄며 계속 내리막길이다. 소비자들이 이처럼 지갑을 열지 않다 보니 재래시장 상인들은 죽을 맛이다. 밤마다 소매상들이 타고 온 전세버스로 북적였던 서울 동대문 의류상가는 활기를 잃은 지 오래다. 동대문 밀리오레에서 여성캐주얼 매장을 운영중인 김선미(26·여)씨는”매출이 잘 팔릴 때의 반도 안될 정도여서 외환위기 때보다 오히려 못한 실정”이라며”손님들이 살 생각은 않고 구경만 하다 간다”고 한숨을 지었다. 평화시장에서 남성용 점퍼를 판매하는 남재우(48)씨는 “10년 넘게 이 자리에 있었는데 이 정도로 장사가 안되기는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백화점업계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주요 백화점들이 지난 2일부터 정기세일에 들어갔으나 지난해 봄 정기세일보다 매출이 4∼6%나 줄어 울상을 짓고 있다. 백화점 업계는 지난 3월 매출도 1년전보다 11%나 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처럼 소비부진이 계속되다보니 서비스업 생산활동중 소매업의 매출은 지난해 2월부터 13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을 기록하며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소비부진의 주범으로 가계부채를 꼽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국내 가계신용(가계대출+외상구매) 잔액은 총 447조5675억원, 가구당 평균 부채는 2926만원으로 사상 최고치다. 특히 지난해 말 현재 은행권의 총 가계대출잔액은 252조8000억원으로, 이중 41.6%인 105조원이 올해 갚아야 할 돈이다. 이는 지난해 만기 77조원보다 36.4% 증가한 수치다. 가계마다 빚 갚기에 급급한 상황이어서 수입이 생겨도 지갑을 열 형편이 못되는 것이다.
자고 나면 오르는 물가도 가계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소비자물가는 지난 3월에 전월보다 1.0% 치솟는 등 넉달째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신불자 문제는 내수경기 회복에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신불자 수는 지난 2월 한달에만 5만6964명이 늘어나 382만5269명(2월말 현재)을 기록중이다. 신불자는 작년 한해에만 108만명이나 급증했다. 특히 지난해말 신불자 372만명 가운데 연체금액 1000만원 이상이 52.6%(195만6000명)로 1년 전의 49.0%보다 높아졌고 연체된 금융기관이 2개 이상인 다중 신불자의 비중도 지난해말 63.1%로 증가했다. 신용불량이 고액·다중으로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30,40대와 여성 신불자가 크게 늘어 가족 전체가 신불자로 내몰린다는 점이다.
한국경제연구원 허찬국 박사는”소비자들은 여전히 경제상황에 불안을 느끼며 향후 소득에 대한 확신이 없어 지갑을 닫고 있다”며”실효성에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정부가 계획한 대로 일자리가 늘고 가계부채문제, 신불자문제가 정리돼야 소비도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 내수업체 체감경기’싸늘하기만
정책당국은’2ㆍ4분기부터 경기회복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해 보이지 않는다. 소비심리는 살아날 듯 하다가 다시 거꾸러졌고 모처럼 상승커브를 그렸던 유통업체 매출도 한달 만에 내림세로 돌아섰다. 중소 내수업체들의 체감경기도 여전히 싸늘하기만 하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박승 한국은행 총재의 잇단 낙관론이 무색할 정도다.
언제쯤 내수가 살아나겠느냐는 질문에 전문가들도 자신 있는 예측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는”수출과 내수의 양극화가 점점 고착화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며”수출 활황이 내수로 확산돼야 하는데 아직 통계에는 그러한 조짐이 전혀 잡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수출 신장세는 눈이 부실 정도다. 지난 3월 중 수출액(통관기준)은 월간기준으로는 사상 처음 200억달러를 넘어섰고 1년 전과 비교해도 39.5%나 급증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제조업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서도 수출호조에 힘입은 기업들의 기대감이 잘 드러난다.수출기업의 4월 업황전망BSI는 97로 기준치인 100에 바짝 다가섰다. 내수기업이 94에서 95로 소폭 올라 차이가 더 벌어졌다. 매출에 있어서도 4월 수출증가율전망 BSI는 전월의 104에서 105로 한 계단 더 올라선 반면 내수판매증가율BSI는 86으로 아직 기준치에도 한참 못 미치고 있다. 가동률전망 BSI는 수출과 내수 모두 개선되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수출기업의 경우 99에서 107(8포인트), 내수기업의 경우 97에서 98(1포인트)로 정도의 차이를 뚜렷하게 보여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도 좁혀지지 않고 있다. 수출에 힘입어 대기업업황BSI는 92로 지난해 1월 93을 기록한 후 가장 높았지만 중소기업은 77에그쳐 기준치인 100에 크게 못 미쳤다. 매출증가율 역시 대기업의 경우 105로 2002년 4ㆍ4분기의 116 이후 가장 높았지만 중소기업은 86에 머물렀다.

수출과 내수의 극단적인 양극화 지속

소비심리는 여전히 위축된 상태다.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소비자전망조사에서도 소비자기대지수는 2개월째 하락했다. 이에 대해 이 부총리는”소비심리지표가 2개월 연속 하락한 것은 경제 내부적 요인에 아니라 탄핵과 물가불안 때문”이라며 “따라서 2ㆍ4분기 말쯤에는 내수회복이 예상되며 소비심리에 영향을 주는 금융시장 불안요인도 거의 제거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소비에 가장 민감한 유통업계는 아직 낙관론은 이르다고 보고 있다. 한 대형 백화점의 영업담당 임원은”2월 한달 매출이 반짝 상승한후 다시 3월 매출이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은 지갑을 열겠다고 마음 먹은 소비자 층이 전혀 늘어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어떤 모멘텀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소비위축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LG경제연구원의 한 연구위원도”소비자기대지수가 지난해부터 4개월 연속 더딘 상승세를 보이다가 2월부터 내리 하락세를 보인 것을 그저 정치상황이나 물가불안 때문으로 해석하는 것은 너무 안이한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정 전무는”지난해 2ㆍ4분기에 바닥을 친 경기가 수출을 중심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수출 역시 반도체ㆍ휴대전화 등 5대 품목이 주도한 일종의 착시현상”이라며 수출과 내수의 극단적인 양극화는 하반기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부”물가 시장불안 최소화”단계별 대응

정부가 유가급등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 등 시장불안 요인을 최소화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재정경제부ㆍ산업자원부 등을 중심으로 유가모니터링시스템을 24시간 가동하고 단계별 대책을 차근차근 준비중이다. 정부는 국제유가가 추가로 상승할 경우 즉시 대책을 발동, 국내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대한 줄여나갈 방침이다.
정부의 대책은 시장요인에 의해 가격만 상승하는 경우와 가격상승과 수급차질이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로 구분된다. 최근처럼 수급불안 없이 가격만상승하는 경우 승용차 10부제 운행 등 강제적인 에너지수요 억제조치는 취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단계별로 석유수입부과금 할당관세 인하등 가격안정대책을 발동하기로 했다. 그 시점은 두바이유 기준으로 10일이동평균이 배럴당 32달러를 넘어서는 때다.
지난해 이라크전 때 마련했던 컨틴전시플랜(유가비상대응계획)에서는 29달러 이상으로 잡았으나 시장변화 등을 감안해 3달러 가량 상향조정된 것이다. 고정식 산자부 에너지산업국장은 “국제유가가 전쟁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연평균 유가를 기준으로 상하 20% 수준에서 등락하는 현실을 반영해 이처럼 가격안정대책 적용기준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가격상승과 함께 수급차질이 우려되거나 실제로 수급난이 발생하는 상황이오면 가격안정대책과 함께 비축유 방출, 석유수급조정명령 등 수급안정대책도 병행해 추진하기로 했다. 국제유가가 35달러 이상으로 급등할 때는 지난해 이라크전쟁 때 취해진 것과 마찬가지로 내국세(교통세 및 특별소비세 등)를 내리거나 유가완충자금을 집행하는 동시에 유가 상승분 가운데 일부를 시장가격에 반영해나갈 방침이다. 이와 함께 승용차 강제 10부제와 전력제한 송전, 유흥업소 영업시간 제한 등 에너지수요 억제대책도 취해진다.
정부는 이 같은 상황별 대응방안과 함께 중장기적인 석유위기 대응능력을 높이는 대책도 추진하고 있다. 현재 106일 수준인 비축유를 110일 이상으로 확충하고 국내는 물론 해외유전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에너지자급률을 3% 수준에서 오는 2010년에는 10%선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아울러 신재생 에너지 개발과 보급을 확대하는 한편 경제를 에너지 다소비구조에서 고효율 구조로 전환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이같은 대책의 일환으로 이르면 6월부터 에너지 다소비업체에서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혁신공정에 투자할 경우 투자액의 7%를 세액공제해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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