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먹는 것과 먹지 않는 것 사이 중간지대를 찾아 나선 어느 도축사 이야기

저자 캐머스 데이비스 | 옮김 황성원 | 출판사 ㈜메디치미디어

[시사매거진=신혜영 기자] 10년 동안 사귄 애인과 헤어지고 정체불명의 치통과 불면증에 시달리던 음식전문 기자에게 어처구니없이 날아든 해고 통보. 말 그대로 30년 인생이 바닥으로 내리꽂히는 기분을 맛 본 그녀는 어느 날 창밖에서, 절묘한 타이밍에 벌레를 낚아채는 개똥지빠귀를 관찰하다가 느닷없이 마음을 먹는다. “더는 진짜에 대한 글을 쓰지 않겠다. 내가 직접 진짜가 되겠다”고….

‘칼을 든 여자’는 동물이 접시 위에서 생을 다할 때까지 거치는 모든 과정을 되도록 가까이에서 지켜보려는 어느 도축사의 집념 어린 다큐멘터리다. 잡지의 라이프스타일 지면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최고의 삶을 사는 방법을 조언하면서 10년의 시간을 보내다 환멸을 느낀 저자는 자의 반 타의 반 직장을 그만 두고 도축과 정형을 배우러 프랑스 가스코뉴로 간다.

가스코뉴에서 캐머스는 자신들이 재배한 곡물로 돼지를 먹이고, 그 돼지를 직접 도축하고 가공해 시장에 내다파는 샤폴라르 집안사람들을 만나 그들에게서 도축과 정형 기술을 배운다.

샤폴라르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그녀는 음식 전문 기자로 일하던 지난 10년 동안 자신이 전부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무너지고 눈앞의 상황들을 설명할 어떤 단어도 찾지 못한 채 블랙홀에 빠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프랑스어는 ‘몰라요’와 ‘미안해요’ 정도고, 돼지고기의 가장 비싼 부위를 싸구려 꼬치구이용 고기로 둔갑시키며, 돼지 사체와 포옹하듯 미끄러지고, 대부분은 헛발질을 하면서도 서서히 돼지의 흉곽을 ‘책처럼 펼치는 법’, 안심이나 등심 따위가 아니라 피와 내장, 머리와 혀, 살과 뼈 모두를 훌륭한 음식으로 바꾸어내는 법을 하나둘 깨우치게 된다.

도축업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이 강하고, 누구보다 고기를 사랑하지만 누구보다 그 고기를 만들어낸 죽음을 연상시키는 모든 것을 터부시하는 미국 사회에서, 그리고 그 터부만큼 고기 자체를 거부하는 문화가 강한 포틀랜드 한복판에서 장인의 전통적인 도축과 정형 기술을 가르치려는 그녀의 행보는 과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적어도 캐머스는 미디어의 주목을 끄는 데는 확실히 성공한다.

‘칼을 든 여자’는 고기를 먹는 것과 먹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 삶에 확실성을 더하기 위해 낯설고 힘든 길을 걷기로 마음먹은 여자의 꿈과 그 꿈을 실현시키는 데 필요한 용기와 집념, 그리고 정직함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 대부분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지점에서 끝까지 진실을 파고들려는 저자의 시도는 우리 앞에 놓인 접시와 그것을 둘러싼 세계를 우리 스스로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캐머스는 지금도 열심히 기르고 죽이고 맛보며, 그 모든 행위들에 깃든 역설을 의식하며, 고기를 먹는 것과 먹지 않는 것 사이의 중간지대를 확장해 가는 중이다.

우리는 우리가 먹는 고기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좋은 삶을 살았고, 좋은 죽음을 맞았다 말할 수 있을까? 동물의 사체를 눈앞에 두고 죽음과 음식의 교환이 일어나는 어느 한순간도 외면하지 않는 저자의 태도에서 우리는 우리 대부분이 외면해온 육식의 본질에 다가서려는 시도를 발견한다.

‘기르고, 죽이고, 먹는’ 모든 행위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자신의 경험을 재료 삼아 저자가 차려낸 식탁은 풍부하고, 흥미로우며, 무엇보다 숨김없이 사실적이다.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들 앞에 놓인 접시를 스스로 바라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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