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건강기본권과 태아의 생명. 어느 한 쪽이 맞다고 판정 짓기 어려워
비판하기에 앞서 사회적 제도 잘 정비되어 있는 지 살펴야

[시사매거진251호=신혜영 기자] 지난 해 5월 낙태허용을 놓고 헌법에 어긋나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한 공개변론이 있었다. 그리고 지난 2월 14일, 보건복지부가 8년 만에 인공임신중절(낙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낙태죄 처벌이 합당한지를 두고 다시 한 번 찬반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다. 낙태의 찬반 논란의 쟁점은 ‘생명 중시’냐 ‘여성의 권리 보장’이냐다. 이를 놓고 낙태문제는 늘 첨예하게 대립해 왔다. 그리고 이번 정부의 발표로 또 다시 도마 위에 오르며 여전히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이르면 4월 헌법재판소(헌재)가 낙태죄 위헌 여부 선고를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관심이 쏠리고 있다.

흔히들 낙태는 여성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낙태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여성이 낙태하게 되는 대부분의 이유가 바로 사회와 남성위주문화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낙태법 개정, 미혼모 보호, 입양, 바른 성교육 등에 모든 사람들이 참여해야 한다. (사진출처_뉴시스)

지난해 공개변론의 핵심쟁점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보다 우선한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모자보건법 시행령에 따르면 임신중절수술은 임신 24주 이내인 사람에게만 허용된다. 우리나라 형법 제269조 제1항, 제270조 제1항은 각각 부녀의 낙태죄, 의사 등의 낙태 및 부동의 낙태죄를 규정함으로써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낙태시 형사처벌을 하도록 하고 있다.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낙태를 도운 의사, 한의사 등도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단, 우리나라는 모자보건법 제14조에 크게 5가지 경우에만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 본인·배우자가 우생학·유전학적 정신질환이나 신체질환,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한 임신,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이나 인척간 임신,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 등이다. 이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에서 낙태는 죄에 해당한다.

 

28세 여성 평균, 많게는 7회까지 낙태 경험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낙태 실태조사에는 여성들이 낙태죄와 낙태 허용 사유 개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의 내용과 양육에 대한 남성 책임 의무화, 자연유산 유도약 합법화, 의료비 지원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9~10월 15~44세 여성 1만 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실태조사에서 인공임신중절을 경험한 여성 756명으로 경험률 7.6%를 보였다. 경험률은 성경험 여성(7320명) 대비 10.3%, 임신경험 여성(3792명) 대비 19.9% 수준으로 인공임신중절 당시 연령은 17세부터 43세로 평균 28.4세(±5.71세)였다. 평균 횟수는 1.43회(±0.74)였는데 많게는 7회까지 경험한 경우도 있었다.

피임을 하지 않은 여성들은 그 이유(중복응답)로 가장 많은 50.6%가 ‘임신이 쉽게 될 것 같지 않아서’라고 답했고, ‘콘돔 등 피임도구를 준비하지 못해서’라는 답변이 18.9%로 뒤를 이었다. ‘파트너가 피임을 원하지 않아서’라는 경우도 16.7%나 됐으며 ‘피임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비율은 12.0%였다.

임신중절을 하게 된 이유(2개 복수응답)로 10명 중 3명가량이 ‘학업, 직장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 33.4%, ‘경제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고용불안정, 소득이 적어서 등)’ 32.9%, ‘자녀계획 때문에(자녀를 원치 않아서, 터울조절 등)’ 31.2% 등을 꼽았다.

10대와 20대 초반에선 사회활동 때문에 임신중절을 했다는 응답률이 19세 이하 55.9%, 20~24세 52.7% 등 50%를 웃돌았다. 경제적 어려움은 20~24세(37.6%), 25~29세(35.3%), 35~39세(37.2%) 등에서 높게 나타났다. 인공임신중절을 하지 않았으나 임신 기간을 고려한 경우에도 경제적 이유 46.9%, 자녀계획 44.0%, 사회활동 지장 우려 42.0% 등으로 조사됐다.

경험자 10명 가운데 9명(90.2%)인 682명이 수술만 받았으며 자연유산유도약이나 자궁수축유발을 위해 위궤양에 쓰이는 약물 등을 사용한 경우는 9.9%(74명)이었다. 약물사용자 중 53명은 약물로 인공임신중절이 되지 않아 의료기관 등에서 추가로 수술을 받았다.

여성들은 우선순위 정책으로 ‘피임·임신·출산에 대한 남녀공동책임의식 강화’(27.1%)를 꼽았으며 ‘원하지 않는 임신을 예방하기 위한 성교육 및 피임교육’(23.4%), ‘양육에 대한 남성 책임을 의무화할 수 있는 법·제도 신설’(18.1%), ‘출산·양육에 대한 사회경제적 지원’(13.1%) 등을 꼽았다.

지난해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교수 모임’의 대학교수 96명은 공개변론을 앞두고 낙태죄 폐지에 반대하는 탄원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 이들은 성명서에서 “형법에서 금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낙태가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다. 이에 대한 처벌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어 낙태죄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하며 “자기결정권 존중이라는 미명아래 산모를 낙태로 내모는 낙태죄 폐지 주장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진출처_뉴시스)

낙태 처벌 조항, 태아 생명 수단이 아닌 선언에 불과

헌재가 주목하는 핵심 쟁점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보다 우선한다고 볼 수 있는 지다. 모자보건법 시행령은 임신 24주 이내인 사람에게만 임신중절수술을 허용하고 있다. 2017년 2월 헌법소원을 제기한 산부인과 의사 A씨 측은 실제 낙태죄 규정이 임신중단 결정을 좌우하는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연간 17만 건 상당 수술이 행해지고, 검찰의 기소 건수도 10건 이하인 점에 비춰 낙태 처벌 조항은 태아생명 수단이 아닌 선언에 불과할 뿐이라는 지적이다.

당시 여성가족부는 공개변론을 앞둔 5월 23일 “여성의 기본권중 건강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현행 낙태죄 조항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한 바 있다. 여가부는 의견서에서 “헌법과 국제규약에 따라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재생산권, 건강권은 기본권으로서 보장돼야 한다. 형법 제269조 제1항과 제270조 제1항이 규정하는 낙태죄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여성의 이러한 기본권을 제약하고 있다”며 “낙태죄가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목적을 달성하기에 적정한 수단인지, 법익의 균형을 넘어 여성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지 않은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행 낙태죄는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으로 낙태건수를 줄이고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모든 인간 생명이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고 할 때 그 가치가 서로 충돌하는 등의 경우에 국가는 어떠한 생명 또는 법익이 보호돼야 할 것인지 그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는 헌재의 1996년 판결을 인용하며 “임신중절에 대한 헌법적 판단은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가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할 의무의 정도는 여성이라는 '완성된 생명'을 보호해야 할 의무의 정도와는 달리 판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한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낙태죄 폐지에 관해 어떤 입장을 취하든 태아의 생명도 소중하며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가 없고 국가의 의무로서의 태아의 생명 보호 의무를 부정할 수는 없다”면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는 기본권 주체가 될 수 없어 생명권의 주체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2012년 헌재의 결정은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임을 전제로 해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기본권을 대립 구도에 놓고 형량한 것으로 명백한 오류며 헌법재판의 기본적인 심판 원칙을 위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지난해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교수 모임’의 대학교수 96명은 공개변론을 앞두고 낙태죄 폐지에 반대하는 탄원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형법에서 금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낙태가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다. 이에 대한 처벌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어 낙태죄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하며 “자기결정권 존중이라는 미명아래 산모를 낙태로 내모는 낙태죄 폐지 주장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등 22개 단체로 구성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측은 “낙태죄 폐지는 시대의 요구”라며 ▲낙태죄 폐지 ▲모자보건법 조항 전면 개정 ▲성교육 강화 ▲피임기술 및 의료시설 접근권 보장 ▲인공임신중절 처벌 강화하는 의료법 시행령 개정 입법예고안 철회 등을 요구했다.(사진출처_뉴시스)

국가적 차원의 실효성 있는 지원책 필요

현재 미국이나 스웨덴, 호주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30개국이 경제적 또는 사회적 사유로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낙태죄를 놓고 ‘생명 중시’냐 ‘여성의 권리 보장’이냐의 의견 대립이 팽팽하다. 한국을 비롯해 아일랜드, 뉴질랜드, 폴란드, 칠레, 이스라엘 등 6개국은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아일랜드는 지난해 5월 국민투표로 낙태 금지를 규정한 헌법 규정 폐지가 결정된 상태다. 현재 임신 12주 이내 수술엔 제한을 두지 않고 12~24주 사이 특정 사유에 대해 낙태를 허용하는 법안이 제출돼 있다.

사실 경제적‧사회적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성계는 사회·경제적 이유에 따른 허용 여부에 대해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면서도 이를 위해선 인공임신중절을 범죄시하기보다 사회적 지지와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흔히들 낙태는 여성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낙태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낙태법 개정, 미혼모 보호, 입양, 바른 성교육 등에 모든 사람들이 참여해야 한다.

이소영 연구위원은 “위기상황을 예방하거나 위기상황에 있는 여성을 지원하기 위해 성교육 및 피임교육을 더욱 강화하고 인공임신중절전후의 체계적인 상담제도, 사회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한 지원 등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

여성의 건강기본권, 그리고 태아의 생명. 어느 한 쪽이 맞다고 판정 짓기 어렵다. 그렇다면 해결방안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낙태를 했던 한 여성의 말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여성들의 낙태를 비판하기에 앞서 과연 사회적 제도는 잘 정비되어 있는지 먼저 묻고 싶네요. 여성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나쁘다, 잘못됐다 비판하면 여성들은 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요.”

낙태 문제가 공론화된 지금, 생명존중의 기본적 가치와 여성과 태아가 행복을 나란히 추구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마련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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