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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미얀마의 슈바이처’ 탄 윈(Dr. Than win) 박사- 가난한 지역과 오지를 다니며, 10년 동안 무료 의료봉사 진행
  • 홍승표 기자
  • 승인 2019.01.09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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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홍승표 기자, 최지연 기자] 미얀마의 양곤에서 병원을 운영하며 안과 의사로 활동하는 '미얀마의 슈바이처' 탄 윈(Dr. Than win) 박사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오지를 다니며 10년 동안이나 무료 의료봉사를 해온 인물이다. 뛰어난 실력과 따듯한 마음을 가진 탄 윈 박사를 만나 보았다.

탄 윈 박사

현재 하시고 계시는 일과 의료봉사에 대한 설명 해달라

미얀마에서 안과의사로 활동하며, 양곤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의료봉사 같은 경우는 평상시 큰 버스를 대절해 직원들과 장비를 대동해서 오지와 가난한 지역으로 직접 향한다. 현장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등 하루에 50명 정도 백내장 등 의료봉사를 펼치고 있고 매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생활이 어려운 분들에게도 무료로 의료봉사를 해드리고 있다. 또 평상시에도 오지에서 오시거나 가난한 분들에게도 돈을 받지 않고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의료봉사를 하게 된 동기나 계기는 

내가 태어난 나라인 국교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미얀마는 불교 국가이다. 불교의 항상 남을 도와주고 자비를 베푸는 기본 마인드를 나 또한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었다. 의사가 되면서부터 불교 정신을 이어받아 남들한테 베풀자는 마음으로 봉사를 하게 됐다.

 

봉사를 언제부터 하셨는지, 가장 뜻 깊었던 적이 있다면 

봉사를 시작한지 10년이 되었다. 오지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의료봉사를 받았을 때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끊임없이 전해 주실 때 나로서도 같이 감동을 느끼고 잘 왔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현재도 감사하다는 인사가 끊이질 않고 있다. 그럴 때마다 어려운 분들을 위해서 봉사해야겠다는 마음을 늘 되새긴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탄 윈(Dr. Than win)박사와 부인 강영애 씨

의료봉사를 하시면서 어려운 점이 많을 거 같은데, 힘든 점들은 없었는지 

의료봉사이기 때문에 먹거나 자는 부분에 대해서는 각오한 부분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병원에서 의료장비와 치료에 필요한 것을 모두 갖추고 봉사를 나가기 때문에 어려운 점들은 크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어렵고 부족한 부분을 꼽자면 시간적인 부분이다. 오지라던지 병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로 의료봉사를 하러 갈 때는 시간적인 어려움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예전에 한 번 의료봉사를 했을 때 예상했던 것보다 다른 곳에서도 많은 분들이 진료를 받으러 오셔서 1시간씩 잠을 잔 적도 있고 밤을 샜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피곤함을 잊고 어려운 분들 한 분, 한 분 내 가족이라 생각하고 정성껏 진료를 했다.

 

봉사하시며 지원받는 부분은 없는지 

전부, 100% 내 자비로 하고 있다. 미얀마의 기업 같은 경우는 마케팅적으로 기업 이미지를 좋게 이어 가려는 부분이 있다. 따라서 나에게도 의료봉사에 있어서 지원을 해주겠다는 기업이 줄지어 요청이 온다. 그러나 나는 봉사가 누구에게 도움을 받아서 하는 것 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 내에서 최선을 다해 환자를 정성껏 돌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 한다. 때문에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않고 전부 내가 가지고 있는 한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병원으로 찾아오는 어려운 분들이 많다고 들었다. 그들에게도 의료봉사를 하는지 

당연하다. 의료봉사 뿐만이 아닌 병원에서도 어려운 분들을 위해서는 돈을 받지 않고 진료 및 백내장 수술을 하고 있다. 봉사와 병원을 구분지어서 하면 진정한 봉사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진료비를 내게 되는 상황일 경우 다른 곳은 6000~8000원 정도를 받지만 우리 병원에서는 1500원을 받는다. 이익적인 면에서 얻는 부분이 크지는 않지만 어려운 분들을 위해 우리가 도와야한다라는 생각을 우선적으로 하고 있다.

탄 윈(Dr. Than win) 박사와 부인, 딸이 함께한 가족사진

부인이 한국분이신데, 두 분이서 만나게 된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일본의과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도중 메이지대학 경영학도였던 부인(강영애)을 만나게 됐다. 당시 일본의 ‘헬로 키티 재단’에서 나와 부인이 장학생으로 뽑혔는데 그때 눈이 맞았다. 부인이 나한테 반했다(웃음).

이후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 학술모임이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됐고 결국 결혼까지 골인했다.

 

자녀분이 어떻게 되시는지 

내년에 대학교에 들어가는 딸(Khin Thi da)이 있다. 미모가 상당해서 별명이 ‘양곤 김태희’다(웃음). 나처럼 딸도 의과대학에 진학하게 됐다. 오지에 의료 봉사를 하러 갈 때도 항상 같이 다니며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 봐왔다. 어려서부터 내가 진료한 것을 봐오며 병원을 놀이터이자 삶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딸도 의사를 꿈꾼 것 같다.

 

박사님의 마음속에 가지고 계신 꿈이 있다면 

앞으로도 계속 지금과 같이 어려운 분들을 위한 의료봉사를 이어가며 많은 사람들의 건강한 눈을 위해 도와주겠다는 생각뿐이다. 이 과정에서 기쁨을 얻는 것은 내 최고의 모토이자 중요한 가치다.

안과에서 고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앞으로 고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지속적인 연구를 해 안과질환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 내 꿈이다. 또한 어려운 사람들에게 봉사로 감동과 기쁨을 계속해서 함께 나누는 것도 목표이자 소원이다. 

시사매거진, SISAMAGAZINE

홍승표 기자  sphong889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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